사이펀 신작시|이기철
낙서落書 외
농담처럼 보냈지만
할 말은 다 했다
손바닥만 한 편지였지만
타인지불견他人之不見으로 숨겼다
너도 볼 수 없도록……
이젠 서로를 탓하는 타인他人이 되었지만
봉인封印된 시간은 소중하다
쓸쓸한 봉분封墳에 무더기 들꽃 필 때
지나가다 가슴 무너지지 싶다
난, 낙서落書가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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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 본 삶
시가연 친구 영희는
안주로 먹태를 권했다
누군가가 먹태가 뭐냐고 물었다
난,
황태 되려다 만 놈이라 했다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해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모질게 당한,
하지만 그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동상 걸린 것처럼 시커메진 몸뚱어리
참 잔인했다
하하, 호호
너나없이 씹어 돌린 그 자리에서
황태와 먹태는 어이없이 교살絞殺
늘 욕만 듣고 산 한나절
황태 누깔이든
먹태 누깔이든
눈감지 못한, 너희들이 원치 않았을 죽음
망망대해를 담보擔保 잡힌 채
마주친 주막에서 섬뜩한 건배乾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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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철|1999년 시집 《쓸쓸한 당신》으로 작품활동, 시집 《바람 소리여》, 《당신》, 《그리움의 끝》이 있고 시 해설집 《사랑하니깐 울지 마라》 산문집, 《별책부록》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