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왕국 소가야
김 성 문
낙동강과 남해안을 중심으로 나라를 세운 여섯 가야는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며 각각의 가야국으로 성장했다. 소가야는 변한 12국 중에 고자미동국(古資彌凍國)이 정치체제로 발전한 고대국가이다. 경남 고성읍이 중심 지역이고 진주, 산청까지 세력을 넓혔다.
소가야는 중국, 백제, 왜와의 교역을 중개하는 활발한 해상활동을 했다. 소가야의 유적과 유물이 있는 곳을 2019년 12월 답사했다.
소가야는 가락국 김수로왕의 막냇동생인 말로(末露)가 서기 42년에 세웠다. 인근 아라가야나 가락국보다는 상대적으로 약한 소국이었다.
서기 209년 소가야 지역에 있는 포상 8국이 연합하여 가락국을 침략할 때 소가야도 연합국의 일원으로 침공했으나 패했다. 소가야는 무엇 때문에 형의 나라인 가락국을 침략했는가. 조선조 제5대 문종이 사망하자 왕위를 이은 어린 아들 단종을 제거하고 무력으로 왕위를 찬탈한 제7대 임금 세조와 같은 마음이었던가.
소가야는 서기 400년 광개토대왕의 남정으로 다른 지역 가야의 세력이 약해진 것을 보고 아라가야와 함께 가야 재건에 노력을 기울일 때도 있었다. 이때는 다른 가야국 재건을 위해 힘을 합쳤다. 역사는 아이러니하다. 소가야는 다른 가야 세력이 신라에 기울어지자 서기 554년경 신라에 항복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소가야인들은 지배층의 무덤을 조성하였다. 무덤이 조성된 고분군은 여러 군데 있다. 고성읍 송학동, 기월리, 율대리, 동해면 내산리, 회화면 봉동리 등에 있다.
송학동 고분군은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전반에 조성된 곳으로 사적 제119호로 지정되었다. 이 고분군은 고성여자중학교 뒤 무학산 구릉을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다. 고분 앞 주차장에서 야트막한 언덕 위로 볼록볼록한 고분들이 눈에 들어온다. 송학동과 내산리 고분군에서는 각종 유리 장신구, 철기류 등 위세품이 많이 출토되어 찬란했던 소가야 문화를 들여다볼 수 있다.
송학동 고분군은 고분 사이로 걷고 싶은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산책로를 따라 걸으니 아늑하다. 봉분 너머로 보이는 고성읍 시가지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모습이다. 2002년 동아대학교박물관에서 조사한 결과, 모든 고분의 봉토는 인공으로 다져 쌓아 올렸다고 한다. 가장 북쪽에 있는 고분은 돌방무덤으로 입구, 벽면, 천정에 붉은색이 칠해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동해면 내산리에 있는 고분군은 사적 제120호로 지정되었다. 이 고분군은 거의 평지에 가까운 구릉에 크고 작은 고분 60여 기가 있다. 아직도 발굴 중인 고분이 여러 기로 여기저기 파헤쳐져 고분의 속살을 볼 수 있다. 정비가 덜된 고분은 잡초가 무성하다. 논 한 가운데도 작은 고분이 보인다. 고분의 특징은 미리 흙이나 돌로써 봉분을 쌓아 올려 매장 시설을 만드는 무덤 양식이다. 가야시대 무덤 양식의 특징이기도 하다.
소가야를 건국한 말로왕의 무덤을 찾았으나 위치가 확실치 않았다. 말로왕의 후손인 고성김씨종친회장으로부터 회화면 봉동리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고성김씨종친회가 매년 음력 3월 1일, 능소에서 향사를 올린다고 하니 조상을 숭배하여 받드는 정신이 대단하다.
봉동리 입구 과수원에서 일하는 주민을 만나 고분군까지 동행했다. 주민은 “이 고분군에서 토기 조각, 철제 제품이 발견되었다.”고 했다. 이 고분군에는 9개의 무덤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나란히 조성되어 있다. 소가야 시조인 말로(末露)왕부터 9대 이형왕까지 능이다. 이곳은 고대 소가야 왕들의 무덤인데 고증을 거쳐 나라에서 정비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안타까운 사실은 이 고분군도 일제강점기 때 대부분 도굴당했다는 것이다. 소가야 시조 왕릉인데 내가 보기에는 주위 환경이 너무나 조악하다.
소가야인들의 생활상을 보기 위해 고분에서 발굴한 유물이 전시된 고성박물관으로 갔다. 박물관은 2012년에 개관하였고 건물 모습이 거대한 둥근 토기 모양이다.
1층에는 관람객들을 위한 투호, 윷놀이 등 우리의 옛 문화를 맛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북카페가 있어 읽을거리도 있다. 2층 전시실로 올라가는 계단 벽면에는 옛날 고성지역 역사를 알 수 있도록 잘 꾸며져 있다.
2층 전시실에는 소가야 시대 유물과 송학동 고분군을 발굴하면서 출토된 유물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2층 입구에는 소가야의 기마무사 모형을 볼 수 있다.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은 무사가 말 등에 타고 있다. 말도 갑옷과 투구를 쓴 것이 위엄있어 보인다. 발굴 당시 투구에서 금동 장식품이 발견되었다니 당시 화려한 문화를 짐작할 수 있다. 기마무사의 차림을 보면 적들이 혼비백산하여 도망갔을 것 같다.
전시된 유물 중 내산리에서 출토된 넓은 입 구멍 단지는 지금까지 본 토기 그릇과는 사뭇 다르다. 단지 하단 둥근 부분에 구멍이 나 있다. 특이한 단지이다. 송학동 고분에서 출토된 손잡이가 있는 잔은 현재의 커피잔으로 사용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정교하다. 소가야 토기 중 굽다리 접시에 고(古)자를 새겨 소가야 것으로 나타내었다.
고성 동외리 패총에서 출토된 새 무늬 청동기는 작은 방패 모양이고 뒷면에는 아무 장식이 없다. 앞면에 좌우 대칭으로 다양한 문양이 새겨져 있다. 길이 8.6cm에 새를 42마리나 새겼다. 작은 청동판에 너무나 정교하게 만들어진 것을 볼 때 그 당시 금속 다루는 기술이 뛰어났음을 알 수 있었다.
고성박물관을 나와 서기 2008년 국가 어항으로 지정한 고성읍 남쪽 남포항에 갔다. 많은 배들이 오간다. 여기서 그 옛날 소가야와 다른 나라 간에 해상무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감회에 젖은 하루를 보냈다.
첫댓글 저는 역사에 꽤 관심을 갖고 있어 역사에 관한 책을 주로 많이 읽습니다. 요즘 선생님 글을 읽으며 가야에 관해 자료를 읽은 적도 없고 전혀 모른다는 사실에 제 스스로 놀랐습니다. 이기회에 많은 공부가 될 것 같습니다.
조 선생님! 가야에 대한 관심에 존경합니다.
국민 대다수는 우리의 역사인 가야사를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가야사가 복원되어 사국시대로 불리기를 기대합니다.^^
틈만 나면 다시 읽어봅니다. 꽤 흥미진진 ㅋ. 고성은 강원도가 아니고 경남 고성을 말하지요?
@조경숙 우리나라 남단에 있는 경남
고성군입니다.
강원도 고성이면 가야 영토가
대단했습니다. 유머 재미 있어요.
글 속에 고성읍 앞에 경남 삽입했습니다. 댕큐♡
통영 가기 전에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