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원은 ①번을 정답으로 발표했습니다. 그렇다면 ④번 선지는 오답이라는 뜻이 될 것인데, 이는 오류입니다. ④번을 다시 써봅시다.
④ 을: 부유한 국가의 모든 시민들은 원조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을은 싱어)
하나씩 검토해보겠습니다.
첫째, 빈곤에는 절대적 빈곤과 상대적 빈곤이 있는데, 싱어가 ‘해외원조’ 대상으로 삼는 ‘개인’은 항상 ‘절대 빈곤 상태’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산업화된 나라들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사회의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빈곤하다. 그들의 빈곤은 상대적이며, 그들은 그들의 기초적인 필요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한 수입을 올리고 있으며 보통 공짜 건강관리를 받는다. 개발도상국에서 극단적인 빈곤 속에서 살고 있는 14억의 사람들은 절대적인 기준에서 빈곤하다. ...절대적 빈곤은 사람을 죽인다.”(“실천윤리학”, 피터 싱어, 황경식 외 옮김, 연암서가, 2016, p.339)
“이렇게 말할 때, 나는 절대빈곤과 그에 따른 배고픔, 열악한 영양상태, 주거의 부족, 문맹, 질병, 높은 유아 사망률, 낮은 평균수명 등을 나쁜 것이라고 가정한다. ...우리는 절대빈곤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도울 의무를 갖게 되며...”(같은 책, p.353)
둘째, 그런데 이러한 절대적인 빈곤 또는 극단적인 빈곤은 풍요로운(부유한) 나라에는 ‘사실상 없다’는 것이 싱어의 주장입니다.
“모든 풍요로운 나라에도 상대적으로 빈곤한 다소의 시민은 있다. 그러나 절대빈곤은 대개 개발도상국에만 존재한다.”(같은 책, p.358)
셋째, 그런데 백보를 양보해서 부유한 나라에도 절대적 빈곤 상태에 있는 사람이 있다고 칩시다. 우리의 원조 의무는 가난한 나라의 절대적 빈곤 상태에 있는 사람과 부유한 나라의 절대적 빈곤 상태에 있는 사람 중 누구에게 발생할까요? 가난한 나라의 절대적 빈곤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 발생합니다. 왜 그럴까요? ‘구매력’ 때문입니다.
“세계은행이 정의한 대로, 극단적인 빈곤이란 ...상황을 의미한다. 2008년 세계은행의 계산에 따르면, 이를 위해 미국에서 하루 약 1.25달러에 해당하는 구매력에 상응하는 수입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외환 교환 시 미국 돈 1.25달러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부유한 나라에서 빈곤한 나라로 여행해 본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것처럼, 부유한 나라의 돈은 종종 빈곤한 나라에서는 훨씬 큰 구매력을 가지기 때문이다. 세계은행의 정의는 그러한 차이를 고려하였다. 빈곤한 사람은 미국에서 1.25달러로 살 수 있는 양의 필수품을 자기 나라 돈으로 살 만큼만 벌면 된다. 세계은행은 14억의 사람들(가난한 나라의 절대적 빈곤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이보다 적은 수입을 올린다고 평가한다.”(같은 책, p.338)
“미국에서 4인 가족의 연간 수입이 2만 2천 달러 이하이면 공식적으로 빈곤한 사람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의 삶을 의미 있게 개선하려면 수천 달러가 들 것이 명확하다. 반면에, 개발도상국에서, 빈곤과 관련된 질병으로 그렇지 않으면 죽을 아이의 목숨을 구하는 데는 1000달러도 들지 않는다. ...모든 사람의 자원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가장 혜택을 크게 낼 수 있는(사회적 유용성이 가장 큰) 곳에서 그것을 사용하는 것이 타당하다(가난한 나라의 절대 빈곤층을 돕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같은 책, p.359)
이것을 이해하려면 싱어가 ‘공리주의자’라는 사실을 감안해야 합니다. 같은 10만 원을 갖고 부유한 나라의 절대적 빈곤층(싱어는 부유한 나라에는 이런 절대적 빈곤층이 사실상 없다고 봅니다만)을 도울 것인지, 아니면 가난한 나라의 절대적 빈곤층을 도울 것인지는, 그 10만 원이 어떤 경우에 ‘더 많은 사회적 효용을 가져오는지’만 계산하면 됩니다. 같은 액수라면 당연히 가난한 나라에서 구매력이 더 크기 때문에(같은 10만 원을 가지고 미국에서 구매할 수 있는 재화보다 예컨대 방글라데시에서 구매할 수 있는 재화의 양이 훨씬 많다는 뜻입니다), 당연히 가난한 나라의 절대적 빈곤층을 도울 의무가 발생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방글라데시의 부자가 자기 나라의 절대적 빈곤층을 도외시하고 미국의 절대적 빈곤층(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지만)을 원조할 일은 ‘절대’ 발생하지 않습니다. 한국인인 우리 역시 방글라데시의 절대적 빈곤층보다 미국의 절대적 빈곤층을 도울 일은 절대 발생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미국의 절대적 빈곤층(사실상 없지만)은 누가 돕나? 이것은 미국 정부가 ‘복지정책’을 통해서 할 일입니다. 이것이 싱어가 말하는 ‘국가의 의무’이고, 싱어는 이러한 ‘국가(정부)의 의무’를 당연하게 인정합니다. 미국 정부는 미국에 있을지 모를 절대적 빈곤층은 물론, 상대적 빈곤층을 도울 ‘국가적(법적) 의무’가 있습니다. 이것은 당연히 싱어가 강력하게 주장하는 ‘해외원조 의무’에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넷째, 그렇다면 부유한 나라의 부유한 시민이 같은 나라의 빈곤한 사람을 돕는 것을 싱어가 부정할까요?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가족들이나 지역사회가 그들의 빈곤한 구성원들을 돌볼 때, 애정의 유대와 개인적 관계가 그렇지 않으면 거대한 비개인적인 기관이 해야 할 목표를 달성해준다. 그래서 지금부터 우리 모두 세계의 모든 이의 복지에 똑같은 책임을 갖는다고 제안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원조의 책무에 찬성하는 논변이 그러한 것을 제안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는 어떤 사람이 절대빈곤에 처해 있고 다른 사람이 그것에 상당하는 도덕적 의미를 가진 것을 희생함이 없이 도울 수 있을 때에만 적용된다. 자신의 친척이 절대빈곤에 빠지도록 버려두는 것은 동일한 중요성을 가지는 것을 희생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적당한 정도의 선호(자신과 가까운 친척을 돕는 것)는 현존하는 부와 재산의 격차(부유한 나라의 가난한 나라의 부의 격차)를 고려할 경우 결정적으로 그 비중이 약해진다.”(같은 책, p.360)
공리주의적 계산은, 자신과 가까운 관계인지 여부는 고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신과 가까운 사람이 당장 절대적 빈곤에 빠지는 것을 보면서도 공리주의적 계산만 우선하여 누구를 도울지 공정하게 판단해야만 한다면 너무 가혹할 것입니다. 그래서 싱어도, ‘가까운 사람’이 절대빈곤에 빠진다면, 우선하여 도울 수 있다고 합니다(의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실제 부유한 나라의 사람이 절대적 빈곤에 빠진다는 일은 사실상 없을 것이기 때문에, ‘현존하는 부와 재산의 격차’를 고려할 경우, 이런 사례의 비중은 ‘약해진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럼 이 대목에서 사람들은, ‘아니 비중이 약해진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자신과 가까운 사람을 우선적으로 돕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네’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해외원조’는 아니죠(더욱이 ‘의무’도 아니죠). 혹시 평가원이 4번 선지에서만 ‘원조’를 자국 내 사람들을 돕는 것도 포함한다고 우기지는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 교육과정에서도 항상 ‘해외원조’만 다루지, 자국 내 가난한 사람들 돕는 문제는, 적어도 해외원조 문제에서는 다루지 않습니다.
이제 ④번 선지를 다시 써봅시다.
④ 을: 부유한 국가의 모든 시민들은 원조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을은 싱어)
이 선지가 왜 오답일까요? 싱어의 논리는 일관되게, ‘부유한 국가의 모든 시민은 해외원조 대상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이 논리의 어디에 예외가 있을까요? 평가원이 대답할 수 있을까요? 절대로 대답 못합니다.
이 선지는 2018학년도 수능 생윤 18번에도 제시되었던 것입니다. 당시에는 ③번 선지(<③ 을: 자원이 부족한 국가만을 원조 대상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을은 롤스)>)가 ‘국어적인 오류’를 저질러서 정말 많은 학생들이(고학력 학생들이) 틀렸습니다. 그러자 이 선지를 고른 학생들(대체로 어정쩡한 학생들)이 혹시 백분위가 떨어질까봐(혹은 수시 최저에서 다른 학생들이 떨어지길 바라는 기대에서), “(국어적인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③번 선지가 아닌 다른 어떤 선지를 정답으로 고를 수 있냐?”라는 식으로 비아냥댔죠. 그래서 당시 저는 ③번 선지에 국어적인 오류가 있다는 것을 지적함과 동시에, ②번 선지(<② 갑: 풍요한 사회의 시민들은 원조 대상에서 모두 제외되어야 한다.(갑은 싱어)>) 역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지적했죠.
(다음 링크 클릭)
http://cafe.daum.net/moraltc/MS9O/476
이번에 평가원은 당시 ③번 선지가 크게 논란이 됐다는 사실만 인지하고, 같은 내용의 선지(④번 선지)를 제시한 듯합니다.
평가원에 싱어 이론을 제대로 이해하는 인간이 단 한 명이라도 있을까요? 없다고 봅니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닙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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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0.07.01 15: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