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둘러보기/靑石 전성훈
봄이 무르익어가니 하루가 다르게 온 산이 파란 물감에 젖은 듯한 모습으로 변해간다. 생명이 넘치는 대지를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도 새 생명의 활력을 받아 기운이 나고 기쁨이 충만해진다. 육순을 맞이하며 동갑끼리 약속한 우리 산하 둘러보기에 나선 지, 벌써 십몇 년이 훌쩍 넘는다. 함께하던 친구 중에는 돌아올 수 없는 먼 곳으로 먼저 떠난 이도, 개인 사정으로 또는 건강이 좋지 못하여 동행하지 못한 친구도 있다. 몸과 마음이 허락하는 한, 함께하지 못하는 친구 몫까지 챙겨서 자연을 만나며 따듯한 인정을 가슴에 활짝 껴안아 보고 싶다. 이번에는 그동안 가보지 못한 곳을 중심으로 자연 풍광과 세상살이 모습을 만나보려 한다.
첫날(5월 19일), 친구들이 다 모이자, 아침 7시 조금 넘어 창동역에서 출발한다. 가는 길이 장날이라고, 왜 그렇게 길이 막히는지 모른다. 노원구 원자력병원 앞을 지나 신내동 방향으로 갈 때까지 거의 1시간이나 걸린다. 아무리 출근길과 겹쳤다고 해도 너무한다. 어렵게 포천/ 세종 고속도로에 올라서 잠시 달리던 자동차는 가다 서다 멈추기를 엿장수 엿 자르듯이 한다. 겨우겨우 하남시에서 안성을 거쳐서, 경부고속도로에 들어선다. 망향휴게소에 들러서 오전 10경에 늦은 아침으로 유부우동을 먹는다. 따뜻한 국물을 들이켜니 뱃속도 반갑다는 듯이 꾸르륵 소리를 낸다. 첫 목적지는 전라남도 영암군 왕인박사 유적지이다. 공주로 가는 고속도로도 길이 막히지만 마음은 편안하다. 길을 나서면 순리에 맡기고 가는 게 여행의 법칙이리라. 도로에는 방음벽 설치 또는 파손된 길을 보수하는 작업이 짬짬이 이루어지고 있다. 오후 1시가 지나서 드디어 왕인박사 유적지에 도착한다. 백제의 문물을 일본에 전해준 왕인박사,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유적지를 찾았는데 우리 이외에는 찾는 이가 없고 그다지 볼 만한 게 없다. 왕인박사 출생지라고 알려진 성기동에는 왕인박사 출생 설화가 전해온다. 생가터를 왼쪽으로 오르면 산골짜기에 흐르는 물이 있는데 여기에 성천(聖川)과 구유 바위라는 뜻의 조암(槽岩)이라는 글자가 음각된 바위가 두 개 있다. 3월 3일 이곳에서 물을 마시고 목욕을 하면 왕인박사와 같은 성인을 낳는다는 전설이다. 유적지에서 특이하게 보이는 게, 많은 서예가를 포함하여 한 사람이 한 글자씩 써서 새긴 천자문 비석이다. 또한 가수 하춘화가 부른 영암아리랑, ‘달이 뜬다 달이 뜬다 영암 고을에 둥근 달이 있다....’라는 노래비가 보인다. 두 번째로 찾은 곳은 서울에서 찾아가는 게 쉽지 않은 월출산 도갑사(月出山 道岬寺)이다. 도갑사는 통일신라 헌강왕 6년(880년)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1992년 대웅전 뒤편 건물지 발굴 조사에서 백제시대 기와 파편이 출토되어 통일신라 시대 이전에 이미 사찰이 있었음을 추정하고 있다고 한다. 해탈문을 지나서 절 경내로 들어서니 공기가 다르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도갑사에는 구경하는 사람을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스님과 여성 불자 두 분 모습이 보인다. 대웅전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고, ‘석조여래좌상’을 보려고 미륵전이 있는 숲속으로 들어선다. 소리를 내며 흐르는 냇가를 건너 숲길을 걸으니, 마음을 치유해 주는 듯하다. 늦가을 단풍이 물들었을 때 이곳을 찾으면 고즈넉한 모습에 정신을 빼앗길 것 같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그 유명한 화순적벽(和順赤壁)이다. 영암에서 화순으로 가는 길, 무등산 편백나무 숲길을 바라보며 자동차로 지나가는 길은 빼어난 드라이브 코스이다. 자동차 창문을 여니 향긋한 피톤치드 냄새가 들어온다. 길거리에는 사람의 모습을 거의 찾을 수 없고, 시내에서나 볼 수 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스치듯이 자동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화순적벽을 보는 것은 정말 아쉬움이 크다. 현지에서 운영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적벽을 보는 것도 일정이 맞지 않아서 유감이다. 안내문에 의하면, “동복천 상류인 창랑천에는 약 7km에 걸쳐 크고 작은 수려한 적벽이 장관을 이룬다. 장항(노루목)적벽, 보산적벽, 창랑적벽, 몰염적벽이 유명하다. 조선 중종 때 기묘사화로 동복현에 유배를 왔던 신재 최산두(1483~1536)가 적벽이라는 이름을 붙였으며, 그 후 많은 시인과 묵객이 기행문과 시를 남겼다.”고 한다. 50년 전인 보병학교 시절 비 맞으며 유격훈련 받던 곳이 동복천이다. 산천을 떠돌던 김삿갓이 고단한 삶을 마무리했던 곳도 이곳 화순적벽이라 한다. 그야말로 주마간산 격으로 화순적벽을 지나쳐 숙소인 금호화순리조트를 찾아간다. 숙소는 비용도 저렴하고 깨끗하다. 근처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는데 친구들이 이구동성으로 음식맛이 별로라고 한다. 영암에서 점심으로 먹은 갈비김치찌개도 맛이 시원찮았는데 저녁 식사도 그렇다. 맛있는 음식점도 그렇지 못한 음식점도 있는 법이거늘,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내 입맛을 탓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
둘째 날(5월 20일), 날씨가 화창하다. 아침 식사는 간단히 햇반에 라면을 끓여 먹고 호남 최고의 절집이라는 송광사(松廣寺)를 찾아간다. 내비게이션에 무심코 송광사를 찍으면 완주 송광사가 나온다. 목적지의 정확한 지명을 확인하고 출발해야 한다. 숙소에서 순천 송광사로 가는 길도 환상적인 드라이브 코스이다. 아침이라서 맑은 하늘에 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달린다. 50년도 더 넘은 대학 시절 어느 해 가을 답사, 그 당시 승주군 송광사에서 조계산을 넘어 선암사로 갈 때, 정상 부근의 억새밭이 가을바람에 휘어져 군무를 추던 광경을 잊을 수 없다. 송광사 연혁을 살펴보니, 조계산 서쪽 기슭에 자리 잡은 송광사는 신라 말기 혜린 선사가 창건하였으며 당시에는 길상사라는 작은 절이었다. 고려 중기 보조국사 지눌(智訥)스님이 불교 쇄신으로 정혜결사(定慧結社)운동의 중심지로 삼으면서 조계종의 근본 도량이 되었다고 한다. 조계총림 송광사는 승보종찰 송광사로 불린다. 총림(叢林)이란 많은 스님과 속인이 화합하여 함께 배우기 위해 모인 것을 나무가 우거진 수풀에 비유한 것이다. 지금은 스님의 참선 수행 도량인 선원(禪院), 계율 교육기관인 율원(律院), 경전 교육기관인 강원(講院)을 모두 갖춘 사찰을 총림이라 부른다. 우리나라에는 8대 총림이 있다. 조계총림 송광사, 해인총림 해인사, 영축총림 통도사, 덕숭총림 수덕사, 고불총림 백양사, 팔공총림 동화사, 쌍계총림 쌍계사, 금정총림 범어사이다. 불교에서는 귀하고 값진 세 가지 보물인 불(佛), 법(法), 승(僧)을 삼보(三寶)라고 한다. 삼보를 상징하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는 불보사찰인 양산 통도사, 팔만대장경 경판을 모시고 있는 법보사찰인 합천 해인사, 한국 불교의 승맥(僧脈)을 잇고 있는 순천 송광사를 승보종찰이라 부른다. 그런 연유로 송광사에는 눈이 푸른 운수납자의 수행처이기도 하다. 절에 들어가 먼저 불교박물관인 성보박물관을 둘러본다. 국보인 목조삼존불감(佛龕: 휴대용 법당)과 경전을 보관하기 위해 대나무로 만든 일종의 보자기로 보물인 경질(經帙)이 있다. 경내를 둘러보면 송광사 3대 명물인 수령 8백여 년 향나무인 쌍향수, 절에서 큰 재(大齋)를 모실 때 대중을 위해 밥을 짓는 데 사용한 대형용기인 ‘비사리구시’, 법당에 공양물을 올릴 때 사용하던 접시인 능견난사(能見難思, 능히 볼 수는 있으나 생각하기는 어렵다)를 볼 수 있다. 무소유를 실천했던 법정 스님이 계시던 불일암까지는 올라가지 않고 이정표만 바라보다가, 뱀 한 마리가 눈에 띄어 재빠르게 사진을 찍는다. 절을 내려와 송광사 입구에 있는 길상다원에서 뜨거운 쌍화탕 한 잔으로 잠시 여독을 푼다. 송광사를 벗어나 낙안읍성으로 간다. 여러 차례 찾았던 낙안읍성, 검붉은 꽃을 피운 작약 모습에서 황홀함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낙안읍성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이 아름다운 빈길등에서 사진을 찍는다. 낙안읍성을 처음 축조한 김빈길 장군의 이름을 따 빈길등(빈기등)이라 부른다고 한다. 모처럼 햇볕이 따갑다. 더위를 피하고 허기진 배를 달래려고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이자, 주먹 자랑하지 말라는 고을인 벌교로 간다. 벌교 꼬막거리에서 꼬막정식 맛을 본다. 꼬막무침, 꼬막데침, 꼬막부침개, 짱뚱어탕과 호박 된장찌개,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서대를 안주로 막걸리 한 잔 나눈다. 포만감을 느끼며 순천국가정원을 찾아가니, 노인이라 무료입장이다. 한동안 정원을 산책하고 숙소로 향한다. 돼지고기를 사다가 요리 솜씨 좋은 친구가 수육을 만든다. 술을 곁들어 왁자지껄 떠들면서 이야기꽃을 피우니 둘째 날은 이렇게 저문다.
셋째 날(5월 21일), 미국 CNN방송이 한국에서 가봐야 할 아름다운 50곳으로 선정하였다는 기사 때문에 이른 아침에 곡성 기차마을로 향한다. 기차마을에 도착하니 장미꽃 축제 중이다. 기차마을이란 이름 때문에 추억어린 옛날 기차를 타고 섬진강 간이역을 돌면서 시골의 향수를 젖어보리라 생각했는데 전혀 엉뚱한 그림이다. 여건이 허락되어 증기기관차를 타고 둘러보면 기분이 어떨지 모르지만, 여하튼 ‘폭삭 속았수다’라는 기분이 든다. 할인된 입장료를 내고 온갖 종류의 장미꽃을 구경하며 인생 사진 한 장 찍고 구례 화엄사를 찾아간다. 화엄사(華嚴寺)는 1977년 여름 제대하고 친구와 단둘이서 지리산 등정한 이후 처음이다. 백제 성왕 때 인도에서 온 연기조사가 화엄경의 두 글자를 따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절 입구에서 경내로 들어가면서 보니 가람 배치가 다른 절과는 상당히 다른 느낌이 든다. 일주문, 금강문, 천왕문을 지나 보제루 앞마당에 들어서니, 높이 쌓아 올린 석단을 중심으로 아래는 승방과 강원 등 수행 공간이, 위로는 대웅전, 각황전을 비롯한 예불 공간이 배치되어 있다. 대웅전에서도, 각황전에서도, 명부전에서도 낭랑한 목소리로 독경하는 스님 뒷모습을 볼 수 있어서 정말로 절에 들어와 있다는 느낌이 든다. 절집 뒤로 웅장한 자태를 드러낸 지리산 모습이 그야말로 한 폭의 산수화 같다. 경내로 들어가는 길에 보이는 법구경 말씀이 마음에 와닿는다. 불견(不見, 남의 잘못을 보려 힘 쓰지 말고, 남이 행하고 행하지 않음을 보려 하지 말라, 항상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옳고 그름을 살펴야 한다), 불문(不聞, 산 위의 큰 바위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듯이, 지혜로운 사람은 비방과 칭찬의 소리에도 평정을 잃지 않는다), 불언(不言, 나쁜 말을 하지 말라, 험한 말은 필경 나에게로 돌아오는 것, 악담은 돌고 돌아 고통을 몰고 끝내는 나에게로 돌아오니 항상 옳은 말을 익혀야 한다). 화엄사를 떠나서 남원으로 향한다. 남원에 도착하니, 공교롭게 방송국에서 촬영 중이라서 춘향과 이도령의 로맨스가 이루어진 광한루원을 멀찍이 떨어져서 둘러보고, 현지인 맛집인 황토추어탕 집을 찾아간다. 이 집 메뉴는 추어탕 한 가지이다. 통추어탕은 물론 하다못해 추어튀김조차 없다. 그런데 추어탕에 넣은 시래기 맛이 일품이다. 게다가 젊은 주인의 손님을 대하는 서비스 정신이 좋다. 맛있게 추어탕을 배불리 먹고 서울로 향한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여행이 끝나고 집으로 향할 때는 피로감이 몰려든다. 더하여 자동차만 타면 졸음에 쫓기는 내 모습에 친구들이 어이없어하면서도 이해해 준다. 다음에는 언제 떠날지, 올가을에 다시 갈지, 아니면 내년을 기약할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다시 떠날 날만 고대한다. (2025년 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