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따라 골목따라]
구덕령 꽃마을 '시락국집' 골목
자연과 속세 어우러진 경계

5월의 산은 한창 찍어 바른 총천연색 유화 물감이다.
울긋불긋 등산객의 옷들이,화려한 나비의 군무를 보는 것 같다.
특히 구덕령을 끼고 있는 구덕산,엄광산은 부산 전체를 아우르는 빼어난 조망으로,
등산객으로부터 꾸준하게 사랑을 받아왔다.
그래서 휴일이면 산행기점인 구덕령,일명 꽃마을은 인산인해를 이룬다.
자연히 등산객을 상대로 7일장(?)도 열린다.
산중턱 밭에서 키운 상추어린잎,쑥갓,열무들과 취나물,돌미나리,고사리 등 산나물을 파는 나물전이 열리고
파전,도토리묵에 막걸리 한 잔의 먹거리전도 들어선다.
그리고 예쁜 꽃들과 분재를 파는 할아버지,형형색색의 등산복을 파는 아주머니 등
난전 규모가,웬만한 장터 수준이다.
그래서 동네잔치처럼 흥겹고 기분이 좋아진다.
특히 이 곳에 오면 결코 뿌리칠 수 없는 즐거운 유혹이 있다.
등산객이라면 자기도 모르게 이끌려 들어가는 곳. 꽃마을의 명물,시락국집이다.
꽃마을은 예로부터 산행의 들머리이자 날머리가 되는 고개마루다.
그러므로 산을 오르는 사람이나,산에서 내려오는 사람이나 꽃마을의 시락국집에서 잠시 쉬어 가게 마련이다.
이 시락국집들이 등산객을 위한 주막 역할을 해온 것이다.
이 곳에서 막걸리 한잔의 기운으로 산을 오르고,시락국밥 한그릇으로 산행의 마무리를 하는 것이다.
시락국집 골목은 한 15년 전쯤 두어 집이,
공터에서 천막 치고 가마솥 걸어 등산객들을 맞이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그 시절 온 골목을 진동하는 시락국 냄새가 너무도 구수해,
하산하던 등산객들이 그냥은 지나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지금은 20여 곳으로 늘어나 한 골목을 이루고 가게도 현대화 되었지만,
그 시절의 장터국밥집 같은 분위기는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시락국집 중 예천집으로 들어간다.
사장님의 깊숙한 인사가 마음에 드는 집이다.
넓은 평상에 윗도리와 양말 벗어 놓고 앉으니,온갖 세상 시름이 사라지는 것 같다.
시락국 정식과 손두부에 막걸리 한 되를 시킨다.
음식이 나오기 전 뜨끈한 숭늉으로 입맛을 살린다.
구수하다.
곧이어 음식이 한 상 나온다.
고등어조림에 취나물 무침,열무 물김치,무생채무침과 청국장이 입맛을 자극한다.
시락국에 산초가루를 넣어 한입 떠먹는다.
산초향이 살짝 코끝을 스친다.
상추에 밥 한 술 얹고,멸치육젓에 고등어조림과 땡초를 올려,볼이 터지도록 입에 우겨넣는다.
입 안의 즐거운 포만감.
이어 막걸리 한 잔을 가득 따라 단숨에 들이킨다.
목을 타고 흐르는 냉기가 가슴까지 시원하다.
다시 손두부에 봄동 생채무침을 얹어 입에 넣는다.
상큼하고 고소한 맛이 어우러져 자연의 싱싱함이 묻어난다.
정신없이 자연을 만끽한다.
부른 배를 쓰다듬으며 녹차 한 잔으로 입가심을 한다.
입으로 대자연이 들어오는 느낌.
그리하여 몸에서 파릇파릇 새 순이 돋아 오르는 것 같다.
그리고 언뜻 생각해 본다.
자연과 벗하며 토속 먹을거리를 먹는 이 작은 여유가,요즘 유행하는 웰빙의 기본이 아닐까?
이처럼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은,
산을 탄 후 시락국 한 그릇으로 자연과 합일하고,
막걸리 한 잔으로 기운을 차려 세상 속으로 돌아간다.
다시 말해 이 꽃마을 시락국집들은 세상과 자연의 경계지역이다.
시락국집을 통해 자연으로 나가고,시락국집을 통해 세상으로 복귀하는 것이다.
최원준·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