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문화탐방을 하면서도 왜성에 대하여는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다가
2018년 기장 죽성리왜성 답사를 계기로 왜성 답사에도 흥미를 붙이게 되었다
아프고 부끄러운 역사지만 우리가 안고 가야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왜성 답사를 기록해 보면
2018. 3.30 기장 죽성리왜성
2019. 8.15 물금 증산리왜성
2022. 3. 3 범일동 증산왜성
2024. 7. 4 구포왜성
2024. 7.28 김해 죽도왜성
2026. 7. 7 진해 안골왜성
2026. 7.21 진해 웅천왜성을 얼마전 답사를 다녀왔고
오늘 이 서생포왜성을 마지막으로 부산 인근의 왜성 답사를 종료하려고 한다
서생포왜성(西生浦倭城)은 임진왜란 때 왜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울주군 서생면 서생리에 쌓은 왜성이다
이곳은 회야강과 포구를 접하고 있어 물자와 인력의 수송이 용이하여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기간 중 왜군의 중요 거점으로 사용되었으며
1594년(선조 27) 사명대사(四溟大師)가 4차례에 걸쳐 가토 기요마사와 강화 회담을 한 곳으로 유명하다
일본군이 물러간 뒤에 경상 좌수영 소속 서생포진성으로 사용되었다
남해안 각지에 산재하는 왜성 가운데 비교적 규모가 큰 왜성으로
16세기 말기의 일본 성곽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는 곳이다
동해선 남창역에서 내려 온양읍행정복지센터 앞에서 버스를 탄다
울산 415, 515, 715, 735번 버스들이 진하해수욕장 주변의 서생포왜성으로 간다
서생포왜성 정류장 하차
진입로를 따라 조금 올라가면 성문 밖 왼쪽에
임진왜란, 정유재란 이후에 조국인 명에 귀국하지 않고 조선에 귀화하여 여생을 보낸
명나라 편갈송(片碣頌)장군의 후손들이 편장군의 공적을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이제 바깥문인 동문(東門)을 시작으로 옛 서생포왜성 구역으로 진입하는데
주변은 주택과 밭으로 옛 왜성의 흔적은 사라져 버렸다
원래 서생포왜성은 산성과 평지성의 성격을 함께 갖춘 평산성(平山城)인데
평지성은 유구한 세월의 흐름에 따라 훼손되어 없어졌고 지금 남은 것은 저기 보이는 산성 쪽 뿐이다
산 기슭에 보이는 건물은 창표사(蒼表祠) 사당이다
문화관광 해설사의 집과 화장실이 있는 왜성 입구
복원된 창표사(蒼表祠)는 외성 서쪽편에 있다
임진왜란 후인 1599년(선조 32)에
왜군과 싸우다 순절한 53명의 임란 공신들의 위패를 모신 창표당(蒼表堂)이 있었던 자리에
지금의 창표사(蒼表祠)를 복원하였다
정문은 잠겨져 있어 옆문으로 들어가야 한다
창표사 내부에는 임란 공신들과 명나라 마귀 제독, 편갈송 장군 등 모두 56위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옛 창표당(蒼表堂)에는 53분 임란 공신들의 위패를 모셨으나
복원된 창표사(蒼表祠)에는 3분의 위패가 더 늘었다
창표사를 나와 성 안으로 들어간다 / 외성(外城) 경사면의 성벽
이제부터 본성(本城)인 내성(內城)이 시작된다
서생포왜성은 입지상으로 평산성(平山城)에 해당되는데
해발 133m 일원에 동서 870m, 남북 370m 정도의 규모이다
공간 배치상 산지의 중심 공간인 내성과 중성, 외성의 3단 공간으로 나눌 수 있으며
크게 산지의 내성(內城)과 평지의 외성(外城) 공간으로도 나눌 수 있다
내성(內城) 주 출입문
동제당(東祭堂)
동제당(東祭堂)은 울산왜성과 서생포왜성 전투에서 공을 세운 명나라 장군 마귀(麻貴)의 위패를 모시고
매년 11월 19일 마을의 주관으로 제사를 올리고 있다
11월 19일은 조.명 연합군의 명장 마귀 제독이 서생포왜성으로 입성한 날이다
성 위에서 온전히 내려다 보이는 서생포와 진하 앞바다
서생포왜성은 지금껏 내가 다녀온 왜성 중 보존상태가 가장 양호한 곳이다
그러니까 16세기 말기의 일본 성곽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을만 하다
산정부(山頂部) 소곽(曲輪)
내성에 있는 나무들은 대부분 벚나무로
벚꽃이 활짝피는 봄철에는 꽃구경 관광지로도 유명하여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산정부(山頂部) 소곽(曲輪)
저기가 천수각 자리다
천수각으로 올라가는 돌계단
천수각 성벽
천수각(天守閣)
천수각터는 본환(내성)의 서쪽에 치우쳐 있는데 남북 18m, 동서 17m, 높이 5m 정도의 규모로
초석 등은 남아 있지 않지만 3층 규모의 천수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사명대사(四溟大師)와 가토 기요마사(가등청정)와의 강화 회담도 이곳에서 하였을 것이다
왜성답게 어긋나게 서 있는 출입문
출격용 소곽(小郭)
배후의 주곽(主郭)을 방어하고 군대의 출진시 그 움직임을 은폐하고 보호하기 위한 시설이다
성 내에 우물이 있었던 자리인데 그 흔적은 찾아볼 수 없지만
성 내에는 곳곳에 이런 우물터들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왜군이 철수하면서 서생포왜성을 쌓을 때 동원된 조선인을 일본으로 데리고 가서
쿠마모토성(熊本城)을 쌓는 데 동원하였다고 한다
그때 포로로 잡혀간 조선인 후손들 가운데
'서생'이라는 성씨로 구마모토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서생포왜성을 내려와 이제는 진하로 가는 도로변에 있다는
편장군승첩동마애비(片將軍勝捷洞磨崖碑)를 보러 가는데
마애비를 알리는 표식이 훼손되거나 떨어져 나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것이라던
서생포왜성의 해설사 말대로 주변에는 아무런 안내판이 없다
지도상의 지번 인근에 있는, 훼손된 듯한 저 표식 안쪽으로 사람의 발기척을 탄 듯 맨땅이 드러난 곳이 보여
조금 들어가보니 쓰레기와 오물로 뒤덮힌 조그만 공지 안쪽에 제법 큰 바위가 있다
그러나, 홀로 우뚝 서 있는 이 바위와 그 오른쪽의 바위 어디에도 각자(刻字)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처음의 그 곳을 나와 조금 더 왼쪽의 수풀을 헤집고 들어가니 이런 바위군들이 나타난다
그렇지만 여기의 바위면 어디에도 각자의 흔적은 없다
분명히 이 근처는 맞는데.....
살인적인 더위에 정신이 혼미해져서 그런지
아무리 두 눈을 부릅뜨고 살펴보아도 내 눈에는 당췌 띄지 않는다
해서, 여기저기 바위면들을 하나씩 일단 찍어놓고
나중에 인터넷을 뒤져 실제의 마애바위와 비교해 보기로 한다
자료를 정리하며 비교 검색해 보니 처음의 그 바위가 맞는 것 같기도 하다
하는수 없어 아래에 있는 남의 사진을 빌린다~
<참고사진 ▲▼> 편장군승첩동마애비(片將軍勝捷洞磨崖碑)
편장군승첩동마애비(片將軍勝捷洞磨崖碑)는
임진왜란 때 이여송 장군 휘하에서 유격장으로 크게 활약하였고
정유재란 때 마귀제독과 함께 울산왜성과 서생포왜성을 탈환하는데 큰 공을 세운
편갈송(片碣頌) 장군을 기리기 위하여 글자를 새겼다
그 곁에는 1892년 후손인 편영기(片永基)가 이곳을 방문하여 새긴
'십일대손 전운랑 영기 하마(十一代孫 轉運郞 永基 下馬)'라는 각자도 있다
편갈송은 조선에 귀화한 명(明)의 장군으로, 절강 편씨(浙江片氏)의 시조이다
이제 지도상의 편장군마애비 옆의 '서생포성'이라는 곳을 찾아가 보는데
서생포왜성의 그 해설사는 이곳을 모르고 있었다
자기도 검색을 해 보더니 네이버 지도에는 나오지를 않는다네
골목길 저 끝에서 오른쪽으로 틀어서 가니
반쯤 허물어진 성벽이 나오고 안내판도 서 있는데 남문(南門)이란다
여기가 남문이라면 평산성인 서생포왜성의 규모를 가늠해 볼 수 있겠다
이곳이 서생포왜성의 남문터인데
다음지도에는 단순히 '서생포성'으로 표기되어 있다
주택가 뒷쪽으로 서생포왜성이 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제 남은 목적지는 서생포 만호진성 뿐이다
만호진성은 진하에서 남창 방향 화정리에 있기에 나가면서 답사를 하기로 하고
일단 콩국수로 점심을 먹고 진하해수욕장을 찾았다
진하(鎭下)해변과 명선도(明仙島)
하늘에서 신선이 내려와 놀던 섬이라고 하여 명선도(明仙島)다
예전에는 물이 빠지면 하루에 두 번 건너갈 수 있었으나
지금은 부교가 설치되어 있어 언제든지 섬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진하해변 안쪽의 소나무 숲
이곳 진하는 젊었던 시절의 추억들이 쌓여있는 가슴아린 곳이다
지금은 든솔공원이라는 이름도 붙었네
진하해변에서 도보로 약 30여 분... 이제 저기 서생포 만호진성이 있는 산자락이 보인다
화정마을회관 뒷산이다
고갯마루의 성황당과 노송 / 수령 약 300년 된 노거수 곰솔이다
그 뒤에 만호진성 안내판이 있다
서생포 만호진성(西生浦 萬戶鎭城)은
군도확장과 경작지의 개발로 인하여 상당히 많은 부분이 훼손되었지만
야산일대에 성의 잔존물이 남아 있어 어느 정도 윤곽을 알 수 있다
입구에서 100여 m 걸어 들어가자 옛 축성의 흔적들이 나온다
허물어진 성터와 안내판
진성(鎭城)이란 국경 및 해안지대 등 국방상 중요한 곳에 쌓은 군사적 성격의 성을 가리키는데
조선시대 전기 울산에는 서생포 만호진성, 염포진성, 개운포진성 등 세 곳의 수군진성(水軍鎭城)이 있었다
만호(萬戶)는 3품이며 병선 20척, 군졸 767명이 성에 상주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 왜군에 의해 함락되어 폐성되었다가
정유재란이 이후에는 서생포왜성으로 진을 옮겨(서생포진성)
1895년까지 수군(水軍)의 동첨절제사영(同僉節制使營)으로 유지되었다
서생포 만호진성은 북쪽으로는 회야강이 동쪽으로 흘러 바다와 합류되고 있어
수군(水軍)이 활동하기 유리한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성은 구릉의 말단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구릉의 경사면과 평지를 연결하여 축조한 포곡식(包谷式) 산성으로
평지에 해당되는 부분은 성곽이 멸실되어 아무것도 남아 있는 것이 없다
남아있는 성벽의 길이가 약 440m 정도라고 하는데
구릉의 경사면을 따라 좀 더 윗쪽으로 올라가면서 성의 흔적을 찾아보고 싶지만
칡넝쿨과 잡풀로 뒤덮힌 한여름의 수풀은 사람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아 발걸음을 돌린다
옛 남창역
옛 남창역 앞의 전통시장인 '남창 옹기종기시장'
3.8 오일장으로 장날이 아닌 날은 텅텅 비어있다
남창시장은 옛날부터 국밥으로 유명하였는데
예전에 몇 번 갔었던 국밥집을 찾아도 보이지를 않네~
저기 저 큰 나무 옆이었던 것 같은데 없다... 폐업하였나...
<참고사진> 5년 전 6월의 장터선지국밥 집
대신, 입구쪽의 이 남창국밥 식당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舊 남창역과 新 남창역
효율성도 좋지만 새로 지은 역사들은 하나같이 성냥갑이다
좀 더 예술성이 가미된 그런 아름다운 역사로도 효율성이나 경제성을 갖출 수는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