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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관 혹은 사관이란 무엇입니까?
역사관 혹은 사관이란 무엇입니까? 역사에 대한 견해, 해석, 관념 사상 등의 의미를 갖고 있는데, '역사를 보는 눈'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관을 가지고 역사를 보느냐? 는 매우 중요합니다. 지금까지의 역사에서 보아왔듯이 사관이 한 국가의 방향을 결정하는데 실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제국주의 사관이 기반이 된 열강들의 침략과, 유물사관을 추종한 공산권국가, 모두 뿌리는 사관의 성질이 어떻게 다르냐에 있었다. 어떤 사관을 가지고 과거를 돌이켜 현재의 모습을 보고 현재를 평가하느냐에 따라 미래의 모습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 만큼 사관은 미래지향적 신념이라고 할 수 있다.
Academism적 역사관에는 역사주의사관, 실증주의사관, 유물사관, 상대주의사관, 문명사관, 식민주의사관 등이 있는데 이를 살펴보면서 기독교사관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1.역사주의(Historismus) 사관(歷史主義 史觀)
역사주의는 간단히 말해서 사물의 변화에 대한 가치이며 18세기 계몽사상의 일관된 흐름을 이었던 역사적 변화를 거부하는 자연법사상을 거부하는데서 출발된 사상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곧 다이나믹한 진화론적 역사관으로서 역사 과정 밑에 깔려있는 불변의 구조 내지 시간적으로 일정한 인간성이 존재한다는 가정을 전면적으로 부정한 사상이었습니다. 역사주의에 의하면 현실은 전적으로 역사적으로 결정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역사주의자들은 어떤 사물을 설명하거나, 그 가치를 평가하는 일, 그리고 사물의 본질을 규명하는 일, 이런 모든 것이 그 사물의 역사적 과정 속에서 발견 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현실 자체가 하나의 방대한 역사과정이며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본질은 역사발전 과정에 있다고 전제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역사주의사관은 극단적인 시간중심적(temporalistic)인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역사주의 평가 >
i) 인간관의 문제 : 인간이 오직 역사에 의해 평가된다고 함으로 인간의 항상성 배제
ii) 모든 문화가 역사에 의해 형성된다는 사상과 모든 집단의 관습과 관념은 그 집단의 경험의 산 물이라고 함으로 역사적 상대주의에 빠졌으며 자기 집단을 넘어선 다른 집단의 역사에 대해서 판단할 수 없게 됨.
iii) 항상성에 대한 대안으로 인간의 직관을 말함으로 스스로 객관성을 잃어버림.
2.실증주의 사관(實證主義 史觀)
실증주의(positivism)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것은 프랑스의 사회사상가 상 시몽(simon)이었습니다. 그는 이것을 과학적 방법 및 그 방법을 철학에 확대 적용시키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꽁트(comte)에 이르러 하나의 철학체계로 확립되어 19세기 후반과 20세기초의 유럽각국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친 커다란 지적운동으로 번지게 됩니다. 실증주의의 사상적 근원은 18세기 계몽사상과 영국의 경험철학에서 찾을 수 있는데, 그러나 그것을 가능케 만든 지적 풍토는 당시의 산업혁명과 산업기술의 성공이 초래한 낙관주의의 거대한 물결이었습니다. 실증주의는 산업혁명을 배경으로 한 계몽사상에 내포된 과학주의를 보다 철저하게 확대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실증주의를 사관으로서 기초를 이루게 한 인물이 꽁트인데 사회현상은 인간의 진보에 의해 지배되는 인간 사회의 불가피한 진화의 형태로 작용하는 엄격한 결정론에 예속되어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실증주의를 구체적으로 역사학에 도입한 인물은 버클이었습니다. 버클은 역사의 진보 과정이 일정규칙과 법칙에 의해 파악 될 수 있다고 확신하고 물리적 도덕적 지적 법칙 등을 내세웠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역사의 과정이 자연법칙과 같이 필연적인 인과관계에 의해 전개된다는 기계적인실론(機械的認識論) 또는 역사가 외부 현상과 환경으로부터 일정한 법칙에 따라 제약을 받고 있다는 결정론(決定論)에 토대를 둔 것입니다. 실증주의 사관을 내세운 학자들이 인간의 진보를 결정짓는 요인으로 자연환경과 물질적 조건이 중시하였다는 점에서 실증주의 사관은 물질적 원동력이 생산관계에 있다고 보는 유물론과 유사하나, 원칙적으로 다른 것은 그들이 역사에 일정한 법칙을 찾고 하나의 과학으로 확립시킬 수 있다는 신념적인 부분입니다.
3.마르크스의 유물사관(唯物史觀)
유물사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제창한 설로써 보통 사적 유물론이라 불리어지고 있는데 명확한 논리와 철학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프랑스의 경제사가( 經濟史家) 앙리세는 유물사관을 경제현상이 모든 역사사실을 결정하고 설명하는 이론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1359)'에 제시된 명제들은 유물사관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데 주요 골자는 '생산력', '생산조건과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 '사회혁명', '사적 변증법', '역사적 결정론'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유물사관은 역사이론으로 출발하여 거기에 그치지 않고 사회이론으로까지 발전한 하나의 사상체계인데, 즉 그것은 사관인 동시에 사회이론이요, 경제이론입니다. 마르크스는 잉여가치의 창조와 처분을 중심으로 한 자본가적 생산양식의 내부적 모순을 계급투쟁이라는 정치이론과 결부시켜 유물론적 변증법적 철학 체계에 묶어 부각시킴으로써 완성시켰습니다. 마르크스는 생산 수단의 소유 형태를 기초로 한 사회적 생산력과 생산 관계를 생산양식(mode of production)이라고 하는데 그에 따라 사회는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단계를 거치며 발달하여 왔다고 합니다.
원시공산제 사회(primitive community)-->노예제 사회(slavery)-->봉건제 사회(fendalism)--> 자본제 사회(capitalism)-->사회주의 사회(socialism)
< 유물사관 평가 >
i) 현실적 평가 - 공산주의의 붕괴는 이 사관이 잘못되었음을 보여줌.
ii) 인간관의 문제 : 인간은 단순히 노동하는 존재로만 봄
iii) 역사 법칙성 : 역사속에 하나님의 주권이나 개입을 전혀 고려하지 않음. 그러면서도 결정론 적인 역사관을 가짐. 결정론을 말하면서도 경제적 단일 원인에 의해 결정된다고 봄
4.상대주의적 사관(相對主義的 史觀)
역사인식의 객관성 문제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역사적 상대주의는(historical relativism) 순수 객관적 역사 인식이 궁극적으로 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상입니다. 상대주의의 기원은 개별성을 강조한 랑케 사학 자체에 있고 그것은 20세기 미국 사학계에 특이한 전개를 보게 됩니다. 특히 1930년대 미국의 주도적 사학자인 베커와 베어드를 중심으로 하여 상대주의 사관이 이름을 날리는데 이것이 미국 상대주의 사관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상대주의는 로빈슨의 '새로운 역사'라는 저서에서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1912년 이 저서에서 과거의 연구에 가해졌던 제한을 없애고 오늘의 요구에 응하도록 노력하여야 할 시기가 왔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미국의 역사적 상대주의는 베케와 베어드에 의해 명확한 주장을 갖게 되었으며 그들은 특히 역사 지식의 객관성 문제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베커는 역사적 사실의 객관성이 역사가의 개인적인 편견으로 왜곡되지 않을 수밖에 없는 필연성을 강조하여 결국 모든 사람은 각자가 나름대로의 역사가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사실이란 결국 역사가들이 역사를 이해하기 위하여 만들어낸 정신적 상상이나 영상에 지나지 않으며 자기가 만들어낸 그 역사적 사실에다 개인적 경험을 도입시킬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베커와 거의 같은 노선에 따라 베어드로 역사는 하나의 신념행위라고 보는 이른바 객관적인 역사를 한낱 고상한 꿈이라고 비웃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랑케의 사학이 전제한 기본 명제들을 독단이라고 단정하고 그 역사이론은 수세기 동안 철학사나 신학자들이 애써 해결하려고 노력한, 그러나 해결하지 못한 인간 정신의 문제들을 무시해 버렸다고 주장했습니다. 20세기의 상대주의 위험은 그것이 내포한 지적 양의성에 있으나, 타당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가치의 다양한 병립은 반드시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5.토인비의 문명사관(文明史觀)
토인비는 영국식의 경험주의적 방법으로 제문명(諸文明)을 비교 연구했습니다. 그는 문명을 크게 생성(生成)과 쇠망(衰亡)의 두 단계에서 비교하였다. 그러므로 모든 문명은 연대적으로 탄생하여 성장을 계속하는 창조적인 제 1막과 성장을 멈추고 쇠퇴하여 붕괴되어 가는 제 2막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제 1막의 기본적인 주제는 도전과 응전(callenge and response)입니다. 어떤 문명이건 간에 그 문명이 직면하는 도전에 대하여 성공적으로 응전을 계속하면 제 1막이 계속되고 만일 어느 하나의 응전에라도 실패하면 그 문명의 제 1막이 거기서 끝나고 제 2막으로 옮아간다는 것입니다. 한 문명의 역사에 있어서 이때가 가장 중요한 순간입니다. 제 2막은 제 1막보다 긴 것이 보통입니다. 그 이유는 한 문명이 성장을 멈추고 쇠망하기까지는 최소한 세 번의 새 기력을 만회하여 좀처럼 쉽게 멸망에 이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토인비는 문명의 탄생과 성장보다 쇠퇴와 해체에 훨씬 많은 연구를 했습니다. 문명의 발생은 수없이 많은 원시사회 가운데서 어떻게 특정 몇몇 문명이 발생할 수 있었느냐하는 문제를 토인비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문명을 발생케 한 자연 환경은 살기 좋은 환경이 아닌 나라, 살기 힘든 환경이라고 규정하였습니다. 살기 좋은 환경은 새로운 것을 창조할 만큼 충분히 자극적인 도전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연조건이 너무 가혹할 경우에는 그 도전에 직면한 인간들에게 지나친 정신적 육체적 긴장을 강요하여 문명이 잉태하더라도 결국 유산하고 맙니다. 그러므로 가장 성공적인 응전을 불러일으키는 자연환경은 너무 살기 좋은데도 아니고 너무 살기 어려운데도 아닌 중용적 도전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 인간집단으로 하여금 자연 환경의 도전에 대하여 문명을 탄생케 하고 잇달아 일어나는 외적 및 내적 도전에 대하여 그 사회를 계속 성장하게 하는 힘은 어디서 오는가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답하고 있습니다.
그 힘의 원천을 창조적 소수자(creative minority)로 보았습니다. 이 창조적 소수가 새 문제에 부딪칠 때마다 창조적 역량을 발휘하여 문제의 해결의 길을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회의 비창조적 대다수 그 해결의 길을 기꺼이 따라가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문제는 창조적 소수자가 어떻게 하여 비창조적인 다수와의 협력을 얻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토인비의 문명사관의 핵입니다. 토인비는 비창조적인 대중이 창조적 소수자와 깊이 접촉하는 문제의 해결을 미메시스(mimesis)라는 것에서 찾습니다. 미메시스는 일종의 사회적 훈련을 통한 모방입니다. 미메시스를 통하여 대중은 창조적 소수자를 모방합니다. 대중은 이 미메시스를 통하여 어떤 사회적인 재산, 기술, 정서, 사상 등을 획득하게 됩니다. 그러나 미메시스는 다분히 기계성을 가지고 있는 일종 의 지름길이기 때문에 거기에도 항상 실패의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민중이 창조적 소수를 모방하는 까닭은 창조적 소수자가 자기들의 사회의 잇달은 문제의 해결 방법을 창조적으로 제시하기 때문인데. 만일 언제라도 어떤 이유에서건 소수자가 그런 응전에 실패하기 되면 민중은 소수자에 대한 모방을 철회하고 소수자의 지도를 따르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태에 빠질 위험성이 성장하는 문명에는 항상 잠재되어 있습니다. 이 위험성이 실제로 나타나면 그 문명은 성장을 멈추게 됩니다. 이렇게 하여 성장을 멈추는 것을 토인비는 문명의 쇠퇴라고 봤습니다. 이 단계는 일종의 좌절과 정지의 상태입니다. 그러나 어떤 문명이건 창조적 소수자 의 창조성이 계속 발휘되어서 비창조적인 다수자가 미메시스를 철회하지 않는 한 그 문명은 얼마든지 성장을 계속합니다. 그리고 토인비는 문명의 쇠퇴의 가장 현저한 표지의 하나는 문명 전체를 하나로 통합하는 세계적국가(UNIVERSAL STATE)로 보았고, 외침 은 그 문명이 쇠망해 가는 결과로 일어나는 것이지 결코 문명의 멸망 원인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6. 식민주의 사관(植民主義 史觀)
우리나라의 학계에서는 물론 언론에서 흔히 쓰는 식민사관 또는 식민주의 사관이 자주 거론되고 있습니다. 당연히 이 말은 일본을 겨냥한 것으로 생각되긴 하지만 우리가 배우고 있는 역사관에서는 식민주의 사관의 참다운 뜻을 자세히 따진 분석은 별로 찾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식민주의 사관은 비단 우리와 일본과의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유럽 제국사 또는 미국사에 있어서도 깊은 역사적 관련이 있으며 일반적으로 민족주의(nationalism)나 제국주의(帝國主義)와 긴밀한 관계가 있는 세계적인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식민(植民)이라 한다면 멀리 고대 그리스시대까지 올라갑니다. 당시의 식민 운동은 현대의 식민주의와 달리 母市(metropolis)와 植民市(polis) 가 서로 정치적, 경제적인 지배, 예속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16세기 지리상 발견 시대에 있어서의 식민 운동만 해도 본국이 식민지에 대한 전체적 지배 또는 철저한 예속을 하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현대적 식민주의는 침략과 예속을 특징으로 하고 있으며, 16.7세기의 국가적 팽창과 연결되어 점차 노골적인 침략의 양상을 띠기 시작하였는데, 특히 19세기 자본주의의 발달, 제국주의 발전, 민족주의적 야망 등과 결합되어 식민주의는 적어도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세계사의 주요 특징을 이룹니다. 식민주의 사관은 이런 현대 세계사의 특정단계와 긴밀한 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식민주의 사관은 확연히 구분되지 않고 서로 중복이 되는 세 유형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인종적 식민주의 사관, 진화론적 식민주의 사관, 문화적 식민주의 사관인데, 인종적 식민주의 사관에 의하면 인종의 불평등은 선천적이며 그것은 생물학적 또는 지적 능력의 차이에서 유례하며, 따라서 우월한 인종이 열등한 인종을 지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예로, 뇌의 용적이 크면 지능이 높다는 설은 완전히 묵살되고 있는 설정인데 지구상의 인종 중 몽고족의 뇌 용적이 가장 크다고 합니다. 그러나 서구의 국력이 큰 힘을 발휘하는 현 실정상 이런 설은 학설에서 배제되고 묵살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이 있는 두 번째 진화론적 식민주의 사관은 적자생존(適者生存)의 원리 또는 자연도태설(自然淘汰說)에 입각하여 열등한 국가는 자연히 강대국에 의해 지배되는 것이고, 때로는 완전히 소멸(멸종)되기도 한다는 것인데 인류 전체의 역사를 이런 시각으로 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로 문화적 식민주의 사관의 주장자들은 과학기술과 크리스트교 문명을 가지고 팽창의 사상적 도구로 삼습니다. 월등한 그들의 문화를 전파시켜 인류의 발전을 꾀한다는 명목이 그 기반입니다. 오늘날 식민지의 존재가 형식적으로는 사라진 식민지 해체시대이긴 합니다. 그러나 국제정치의 현실이 강대국의 군사력과 경제력에 입각하고 있는 만큼 제국주의 혹은 식민주의 사관의 기만적인 논리와 그 위협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국제적인 자연론(自然論)에 입각한 강약대소(强弱大小)의 제국민(諸國民)의 평등한 공존의 시대는 아직도 멀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7.기독교 사관(基督敎 史觀)
20세기 저명한 역사가이자 Toynbee는 종교의 생명성은 그 종교가 얼마나 역사성에 충실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보았고 그 대표적인 예를 기독교라고 지적했습니다.
사실 구약성경이 모두 39권인데 역사서가 17권(창세기-에스더), 문학서 5권(욥기-아가), 대소예언서 17권(이사야-말라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문학서나 예언서도 모두 역사적인 내용과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한 4복음서와 사도들과 성령의 역사를 기록한 사도행전도 다 역사서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기독교는 역사와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본질적으로 역사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누구신가를 알리는데 역사적인 설명 방법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행동하셨는가를 보여줌으로써 자신이 누구신가를 사람들에게 알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하나님은 역사의 하나님, 역사의 신일 때만 가능합니다. 역사에 간여하지 않는 하나님은 이미 사망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또한 살아있는 하나님의 모습은 역사를 통해서 언제나 확인됩니다.
기독교적인 역사관이란 어떤 것입니까? 역사와 세계의 시작은 하나님의 천지창조로 봅니다. 크리스챤은 하나님은 우주의 창조주이며 이 우주의 모든 것--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넓이, 셀 수 없는 별들, 파악할 수 없는 원자의 미립자 세계와 인간이 물질 혹은 영혼이라고 부르는--을 다스리는 분이라고 믿습니다. 이 말은 곧 인간은 생존하고 있으며, 역사는 우주 속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모든 실체들은 하나님의 지배 아래에서 하나이며, 인간의 드라마는 하나님의 피조물인 보다 큰 통일 속의 일부라는 뜻입니다. 때문에 기독교적인 견해는 하나님의 궁극적으로 인간사에 대한 주권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기독교인들은 비록 인간이 신체적으로는 약하지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으며,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선언합니다. 이런 이유로 크리스챤은 인간은 하나이며, 역사는 모든 인류를 포용하며 따라서 우주적인 것이라고 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시면서, 그에게 어느 정도의 자유의지를 부여하셨습니다. 인간의 자유는 여러 가지 요인-유전 혹은 물리적 사회적 환경 등-에 의하여 제한되기는 하지만 여전히 자유는 실제적인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의 대부분은 비극이었으며 이 비극은 자유의 오욕으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인간은 자기가 피조물임을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인간은 억지로 자신에게 완전한 자율성을 부여하고는 하나님의 뜻을 찾기보다는 자기의 뜻을 쫓습니다. 인간은 자기 위에 하나님이 아닌 다른 권위를 올려놓고는 하나님께 돌려야할 충성을 그것에게 돌립니다. 이와 같이 인간은 자신을 사로잡은 안정, 기쁨, 가족, 어떤 사상, 국가 혹은 다른 어떤 실체를 하나님보다 위에 둡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놓은 우상을 심판하십니다. 대부분의 인간의 비극과 혼란은 이렇게 해서 생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이 회개하기를 원하시며, 인간이 집단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진심으로 뉘우치기만 하면 하나님은 그들을 용서하시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세워진 목적지로 그들이 올 수 있도록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십니다. 결국에 가서는 하나님께서 승리하실 것입니다. 역사는 절정을 향하여 치닫고 있습니다. 그것이 시간이내든 시간을 넘어서이건 하나님의 뜻은 완성될 것이며 그의 완전한 주권이 세상 끝까지 이를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내용에서 보면 우주와 역사에 대한 기독교적인 이해는 몇몇 비기독교적인 견해와 유사합니다. 지금까지 개관된 것들은 유대교와 거의 유사하며, 어느 정도까지는 이슬람교와도 비슷하며 부분적으로는 유신론적이거나 혹은 유신론과 가까운 중국, 페르시아 등의 사상 체계와 상통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기독교 역사관의 특징은 역사적인 한 사건에 중심을 두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중심은 어떤 사상체계가 아니라 한 인격입니다. 그 예수님은 하나님과 일체이며, 성육신하여 오신 것입니다. 크리스챤들은 성육신 하신 나사렛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이 단 한번 역사 속에 자신을 드러내시며 결정적인 행동을 하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예수님은 성육신 하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 자신인 영원한 말씀이 예수 안에서 육신을 입었습니다. 때문에 크리스챤은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참신한 방법으로 시작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성육을 통하여 하나님은 인성과 세계와 역사를 재확인해 준 것입니다. 이 사건이야말로 기독교 역사관의 기초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이것을 거부하면서, 관념적인 이론을 구성한 후 이것을 기독교적인 역사철학이라고 명명해 보아야 아무 쓸데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독교 역사관이란 단지 역사가 신의 섭리에 의하여 인도된다는 것만을 믿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역사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하나님께서 직접 인류의 삶 속에 개입하신다는 사살을 믿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중심 교리인 성육신 교리는 동시에 역사의 중심교리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속역사의 목적을 티베리우스 치하에서 사형 당한 어떤 시골 사람의 아들, 예수님을 통하여서 결국은 완성되었습니다, 이 사건이 인간 삶의 분기점이며 역사의 의미의 열쇠가 된다는 사실들은 참 믿기 어렵습니다 유대인들마저도 이 사건을 스캔들로 취급했고 헬라의 철학자들과 일반 역사가들은 단순한 바보짓으로 취급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음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명확하게 보여집니다. 비록 이 죽음은 약하고 어리석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최초의 크리스챤들이 선언했듯이 이 안에서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지혜가 나타난 것입니다. 지금까지 인정되었던 모든 판단의 기준이 전복되고 이 거대한 파라독스가 받아들여 질 때에만 비로소 인간의 삶과 역사의 의미가 이해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의 의미를 깨닫기 시작하여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자유롭게 받아들인 사람들의 생애 속에서 새롭게 능력이 흘러 나왔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십자가가 기독교 신앙의 상징이 되었으며, 자기의 내부와 주위의 죄악을 뚫고 승리의 길을 가는 수 백만의 사람들에게 확신과 영감을 주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 뒤에는 곧 부활이 따른니다. 때문에 크리스챤은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이 육체적 죽음은 모든 것의 끝이 아니라 역사 저편에서 이루어지는 영원한 생명의 발판이라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때에 영원한 생명이란 단순한 존재의 연장이 아니라 사랑이신 하나님과의 영원히 증가하는 교제의 시점이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적인 역사이해는 계속해서 십자가와 부활 이후에 하나님은 기독교인이 성령이라고 부르는 영을 통하여 계속 활동하셨다고 말합니다. 세상이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은 인간의 설득력 때문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 때문입니다. 성령을 통하여 인간은 재창조될 수 있으며,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하여 예비하신 빛나는 영생 속으로 들어 갈 수가 있습니다. 사회와 개인과 단체 속에서 기독교가 일으켰던 결과들은 기독교에서 성령이라고 부르는 존재에 의하여 일어났습니다. 기독교적인 역사이해는 역사 속에서 하나님은 성령--즉 하나님 자신인--을 통하여 계속 일하신다고 주장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인간의 의지를 존중하면서도 끊임없이 인간에게 자신의 사랑을 부어 주십니다. 크리스챤은 그리스도의 영향력이 성령을 통하여 수 세기를 통해 내려가면서 고갈된 것이 아니라 더욱 증가되었다고 믿습니다. 그 생명을 가진 사람들의 특징은 믿음, 소망, 특히 사랑입니다. 이들은 교제를 나누며 교회를 형성합니다. 그런데 이 교회는 역사 속에서 가시적인 형태를 취하기는 하지만 어떠한 역사적 산물과도 완전히 동일시 될 수 없으며, 또한 결코 역사를 넘어서 계속되는 것도 아닙니다. 역사의 과정이란 곧 하나님이 인간을 찾는 과정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존중하면서 성육신, 십자가, 그리고 성령을 통하여 인간과 만나려고 노력합니다. 그리스도에게 있어서는 바로 여기에 역사의 의미와 모든 것을 통일시키는 핵심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원래의 제자들에게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세례를 주라?,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의 제자들은 그가 죽음 가운데서 살아났다는 확고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 신앙의 힘에 의하여 그들은 세상을 정복하였습니다.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서 역사의 미친 그의 영향을 통하여 볼 때에 그리스도야말로 이 지구상에 생존했던 모든 사람들 중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삶을 살았음이 점점 분명해졌습니다. 그의 영향력은 갈수록 고조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의 영향력은 균일하게 증가되는 것이 아니라 진보, 후퇴, 진보의 파동에 의하여 증가합니다. 지난 450년 동안 그의 영향력은 전례 없이 급속한 성장을 보였습니다. 특히 지난 150년은 그 극치였습니다. 이제 조직된 단체로부터 기독교를 소개받지 못한 민족이나 부족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기독교의 역사관은 희망의 역사관인데, 이것을 종말론적 역사관이라고도 말합니다. 그것은 역사의 종말의 성취와 완성, 즉 종말적 구원의 시각으로 과거와 현재를 해석하고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이 종말의 성취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이 이미 이룩하신 구원의 최후적인 성취를 말하는 것입니다. 먼저 역사 또는 이 세계의 마지막 날에 예수 그리스도가 하늘에서 내려와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입니다.
예수님은 세상 역사의 종말, 즉 최후의 심판이 있기 이전에 ?먼저 복음이 만국에 전파되어야 하리라(And the gospel must first be preached to all nations). 이 말씀에서 저는 Must를 생각해 보았는데 세상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편에서 본다면 ?당위성?의 의미입니다. 당연히 하나님께서 세상 역사를 주관하시고 인생들을 섭리하시며 모든 족속에게 복음이 당연히 증거되도록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또한 선교학적인 입장에서 제자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지상명령으로서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증거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을 믿는 기독교 역사관은 하나님의 종말의 구원을 향해 가는 역사에 동참할 것을 요청합니다. 그것은 곧 인류의 화해와 평화와 일치를 지향하는 우리 기독교인들의 역사적 행위를 요청하는 것입니다.
역사의 저편에서 즉 시간의 피안에서 하나님은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신다. 하나님은 항상 주권적 이었으며, 십자가와 부활 속에서 그는 현저하게 승리하셨으며 역사의 저편에서 우리는 그의 주권을 완전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문1> 기독교적 역사관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문2> 상대주의적 역사관과 기독교적 역사관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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