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일 설교 내용 요약
제 목 : 성경적 실천의 현장과 클레로스(295) – 사도들의 실천과 클레로스(274) – 고린도전서 강론(18)
고린도전서 강론(18) – 12장
12장은 은사가 주제인 것으로 대부분 알고 있으나 은사가 주제가 아니고, 은사는 한 몸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서 각 사람에게 필요한 은사를 주시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한 몸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 각 사람에게 은사를 주시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형제들이 영적인 일들에 대하여 무지하기를 원치 않는다고 하면서 부르심을 받기 전에 이방인이었을 때 형제들이 살고 있었던 영적인 일들을 먼저 설명하고 있다.
그대들이 이방인들이었을 때는 소리 없는 우상에게로 이끌릴 때마다 끌려 갔는데 그것은 실제로 아무 것도 작용하지 않는 무의미한 우상이었다는 것이다. 인간의 본능이 이끄는 대로 초월적인 무언가를 찾아서 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빠져나갈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그래서 어느 문화에나 종교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그러던 형제들에게 어떤 영적인 일들이 일어났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부르심을 받은 후 일어난 극적인 전환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성령의 인도를 받았다는 것이다.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저주 받은 예수라고 말하지 않으며 주님이신 예수라고 고백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런 고백이 하나님의 영에 의한 고백인지 인간의 결단에 의한 고백인지를 구분하지 않고 있다. 수신자들은 성령의 역사 속으로 들어온 사람이기 때문에 그 구분을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들은 성령의 역사가 현실인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은사로 설명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은사가 주제는 아니다.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 은사를 주신 것이라고 설명하기 위해서 은사를 말하는 것이다. 성령의 일로 은사를 먼저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은사는 다양하지만 주시는 그분은 성령이시고, 봉사와 직무들은 다양하지만 명하시는 그분은 주님이시며, 능력들은 다양하지만 모든 사람 안에서 모든 일을 행하시는 그분은 하나님이시라고 선언하고 있다. 즉 삶의 현장에서 진행되는 일들은 다양하지만 그 모든 일을 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이렇게 각 사람에게 성령을 보내신 것은 함께 좋은 결과를 맺게 하시기 위해서라고 설명하고 있다. 함께 나아가면 결과가 좋다는 것이다. 즉 성령을 주신 것은 함께 나아가면서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좋은 결과를 맺게 하시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은사의 여러 가지 종류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지식의 말씀을 주신다는 것이다. 지혜와 지식이 어떻게 다른 가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종교 이야기가 아니라 삶의 이야기다. 인간의 인지 체계의 한계를 초월하는 사고와 결론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 됨이다. 진리의 내용이 지식이라면 현실에서 그 지식이 구현되는 것이 지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밖의 사람에게는 성령에 의해 피스티스를, 다른 사람에게는 치유의 카리스마를 주시며, 다른 사람에게는 뒤나미스의 에네르게를(능력의 작동을), 다른 사람에게는 예언을, 다른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을, 그 밖의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들을, 다른 사람에게는 방언들의 통역을 주신다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영들의 분별이란 우상에게 끌려가는 잡신들이 있고 성령이 있는데 그 분별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방언에는 외국어가 있고 천사의 말이 있다.)
이 모든 것들은 한 분이신 그분 성령께서 의도대로 각자에게 분리하여 행하신다는 것이다. 각자에게 다르게 구분하여 행하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들이 있고 그 몸의 모든 지체들이 하나인 것과 똑같이 그리스도도 그렇다고 설명하고 있다. 즉 형제 자매들이 다양한 역할을 맡고 있고 거기에 꼭 맞는 은사를 주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유대인이든 헬라인이든 종들이든 자유인들이든 모두 한 성령에 의해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모두 한 성령을 받아 마시도록 공급받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행1:5) 고린도 형제들은 한 몸이 되기 시작한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몸은 하나의 지체가 아니고 수많은 지체들로 되어 있기 때문인데, 하나가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 각자가 다양한 카리스마를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한 몸 공동체를 몸에 대한 비유로 설명하고 있다. 만약 발이 "나는 손이 아니기 때문에 몸으로부터 비롯되지 않았다"고 말해도 그로 인해 그 몸으로부터 비롯되지 않은 것이 아니며, 또 만약 귀가 "나는 눈이 아니니 몸으로부터 비롯되지 않았다"고 말해도 그로 인해 그 몸으로부터 비롯되지 않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클레로노모스가 한 몸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령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만약 몸 전체가 눈이라면 듣는 곳은 어디며, 몸 전체가 귀라면 냄새 맞는 곳은 어디냐고 하면서,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는 원하시는 대로 그 몸 안에 각각의 지체들을 배치하셨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새 언약의 시대가 열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한 몸 공동체가 생겼다는 것이다. 각자는 각 재능을 받아서 한 몸을 이루고 하나로 살아가는 삶이 시작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만약 모두가 한 가지 지체이면 몸은 어디냐고 질문하면서 지금은 지체들이 참으로 많고 몸은 하나라고 설명하고 있다. 다양한 소명을 받은 형제자매들은 많으나 몸은 하나라는 것이다. 그리고 눈이 손에게 "나는 너를 쓸 곳이 없다" 할 수 없고, 또는 머리가 발에게 "나는 너를 쓸 곳이 없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양한 역할이 전부 소중하다는 것이다.
그 뿐 아니라 몸에서 병들고 약한 지체가 오히려 없어서는 안 될 지체라는 것이다. 약해진 지체가 주인공이 된다는 것이다. 전체가 약하고 병든 지체를 위해 동원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몸에서 거추장스러워진 신체 기관들에게 귀한 것을 더욱 풍성하게 공급하고, 보기에 아름답지 못한 신체 기관들을 더욱 단정하게 꾸민다는 것이다. 약점과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모두가 달라붙는다는 것이다.
반면에 우리의 빼어난 신체 기관들에는 결핍된 것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부족한 지체에게 더욱 귀한 것을 풍성하게 주셔서 몸을 조화롭게 짜 맞추심으로써 몸 가운데 틈이 생기지 않게 하시고, 오직 지체들이 서로를 위하여 염려하게 만드셨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한 지체가 고통을 겪으면 모든 지체들이 함께 고통을 겪고, 한 지체가 영광을 차지하면 모든 지체들이 함께 기뻐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그대들은 그리스도의 몸이며 그 몸의 각 부분으로부터 비롯된 신체 기관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각자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과 사명에 충실하다는 의미로 하나님께서는 성회 안에 어떤 사람들을 배치하셨으니 첫째는 사도들이요, 둘째는 선지자들이요, 셋째는 교사들이요, 그 다음은 능력들이요, 이어서 치유의 은사자들과 도움과 관리와 각종 방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모두가 다 사도들이 아니며, 모두 다 선지자들이 아니며, 모두 다 교사들이 아니며, 모두 다 능력자들이 아니며, 모두 다 치유의 카리스마를 가진 것이 아니며, 모두 다 방언을 하는 자들이 아니며, 모두 다 통역자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각자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과 사명에 충실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더 강한 카리스마들을 열망하고 있다고 하면서 형제들에게 가장 뛰어난 길을 13장에서 설명하려고 한다. 우리들이 가야 할 방향 중에서 가장 뛰어난 길에 대해 설명하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점점 더 뜨겁게 서로 사랑하는 길이라는 것을 13장에서 설명하고 있다. 각자 자기에게 맞는 능력을 받고 하나님의 집을 이루어 가는데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이어서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의 관심은 오직 하나 됨이다. 하나 됨을 향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은혜나 능력을 받을수록 큰일이 난다. 하나님의 은혜가 깊어질 수록 우리에게 남은 문제가 점점 더 심각하다는 것이 보인다. 그래서 회개하고 간구하면서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로 진보하는 것이다.
2.공지사항
다음 주 기도는 엄숙 자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