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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자가 되고 싶다면?
벧전 5:10
(10)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모두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지는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두를 사랑하시는 분이 맞지만
분명히 특별하게 사랑하시며 이끌어주시는 사람들이 따로 있는 것이 확실히 보이기에,
무엇보다 성경말씀을 읽어보면 확연하게 보이기에
이 부분에 대해서 반대의견을 가진 분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의 정의가 서로 다르면 관점도 다를 수밖에 없기에
우선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사람들의 특징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자의 공통적인 특징은
하는 일마다 잘 되어 부유하며, 잘못을 해도 크게 혼나지 않는 것 같고,
문제들이 없는 화목한 가정을 이루며, 누구에게나 인정과 존경과 사랑을 받는 게 아니라
정반대로 삶에 고난이 많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선 특별히 사랑하시는 자녀들에게
자기를 온전히 부인하기까지, 천국에 합당한 자의 모습이 되기까지
계속해서 훈계와 고난을 통한 깨달음을 주고 계시기에
하나님께선 우리 육신의 삶보다 영혼의 생명을 더 중요하게 보고 계신다는
이 부분에 대해선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뭇사람들로부터 늘 풍성한 위로와 사랑을 받고, 누구에게나 인정과 칭찬을 받으며,
유명해지고 부유하게 원하는 것들을 다 누리는 사람은 결코 자기를 온전히 부인할 수가 없고,
자신의 깊은 내면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 정확히 알 방법이 없으며,
또한 모든 사람은 고난이 없는 평안하고 부유한 기간이 길어질수록
점점 나태해지며 기도하기를 게을리 하거나
육신적인 것들을 요구하는 간구 위주로 기도하기 때문에,
혹은 아예 정반대로 자기 의로움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의롭게 여기는
영적 교만에 잠식된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잘못된 방법의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기 때문에 구원에 있어서 고난은 필수적입니다.
눅 6:26
(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저는 고난이 거의 없는 삶, 힘겨운 고난들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삶,
이 두 가지 삶을 다 살아보았기에 경험자로서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제 인생은 군입대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데
이전의 삶은 모두에게 인정과 사랑을 받으며, 친구들로부터도 부러움을 받고,
괴로운 일도 거의 없으며, 듣기 싫은 소리를 해주는 사람도 없이(어머니만 훈계해주심)
전도유망하게 제 마음대로 거의 다 되는 시간이었지만
입대 이후의 삶은 갈수록 점점 더 힘들어졌습니다.
이보다 더 내려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자마자 그 아래가 있었고,
이제는 최하층이라고 생각했지만 또 더 아래가 있다는 것을 연속해서 경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도 크게 다를 바 없을 것 같습니다.
고난이 거의 없는 삶에서는 깊은 생각을 할 수 없었습니다.
유치원생 때부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에 혼자서도 새벽기도를 가거나
어머니께서 구역예배나 부흥회에 가시면 다른 형제와는 달리 저는 항상 따라나섰고,
시종일관 무릎을 꿇은 채 조용히 예배를 드렸기에 어른들도 놀랐으며,
새 옷이 생기면 평일에는 입지 않고 주일예배를 드리러 갈 때 처음 입는 등
제가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잘 섬기니 특별한 사랑을 받아서
하는 일마다 잘 되며, 모두에게 사랑을 받는 거라고 크게 착각했지만
고난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삶에서는 깊은 생각을 시작하게 되었으며,
저의 육신적인 정체가 드러나고, 처리해야할 내면의 문제들을 마주하게 되면서
자기를 부인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사랑 중에
최고로 특별한 사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두 가지 경험의 경계는 마치 두껍고 딱딱한 알을 깨고
세상 밖으로 처음 나온 병아리 같은 느낌으로서
이제는 하는 일마다 잘 되던 예전의 삶이 흐릿한 꿈과 같이 느껴집니다.
고난들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그동안엔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힘든 일들이 연속하여 이어질 때,
다시 말해 그것들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마구 몰려올 때는 그저 한없이 괴롭기만 했고,
‘선배 목사님들이 말하던 목회자 훈련의 시간이 이렇게 힘든 것이구나.’하며
‘하나님께서 언젠가는 이 고통에서 나를 건져주시겠지...
이 기간이 다 지나고 나면 나도 다른 분들처럼 크게 사용해주시겠지...
그때까지만 잘 인내하자.‘하는 식의 기대를 품었었지만 이제는
‘아, 고난이 많은 이 인생이 바로 들어가고자 하나 못할 자가 많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좁은 문과 협착한 길, 바로 구원의 길이구나! 나는 지금껏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넘치도록 받고 있었구나! 내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사랑해주실까? 정말로 감사한 일이다.‘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이렇게 말씀해주셨습니다.
“네가 구원 받기에 가장 좋은 조건이란다.”
그 순간, 제가 중학생 때에 꽤 오랜 기간 매일 기도했던 내용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하나님, 제 멱살을 잡고서라도 끌고 가주셔서 하나님의 뜻대로 제 인생을 인도해주세요.
제 마음대로 하게 해주셔서 정신없이 신나게 살다가 어느 날 그대로 죽어서
결국 하나님과 관계없는 자가 된다면 그런 인생에는 어떤 의미도 없습니다.
구원의 길을 부디 저도 꼭 가게 해주세요.
그 과정이 괴롭다 해도 제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만 있다면 저는 다 괜찮습니다.”
차라리 죽는 것이 편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심히 힘들었던 어떤 날에는
‘아... 내가 왜 그런 무서운 기도를 했었지? 치기어린 녀석이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그렇게 기도를 했구나...‘하며 아주 잠깐 후회하는 마음이 들긴 했지만
지금은 그 기도를 했던 14세의 윤경훈에게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시 136:23
(23) 우리를 비천한 가운데에서도 기억해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감사할 수 없는 힘든 상황에서도 감사하는 것이 진짜 감사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이 말에 부연설명이 없다면
아쉽게도 고난과 영적성장에 대한 깊은 묵상이 부족한 말이 됩니다.
예를 들어 이 말을 하는 사람이 생각하는 의미가
‘고난은 절대로 감사를 할 수 없는 힘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감사하겠다.’라면
사실상 아직까진 기복주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사람의 말,
그리고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의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사람의 말이지만
고난은 확실히 영혼에 유익한 것이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진정한 복이자
특별한 사랑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은 힘겨운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저를 어찌나 이렇게 특별히 사랑해주시는지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저를 늘 깨어있게 해주시기 위해, 깨달아 회개하게 해주시기 위해,
저에게 숨겨져 있던 영적문제들을 수면 위로 드러나게 해주시기 위해,
구원의 좁은 문과 협착한 길을 통과하게 해주시기 위해,
하나님 앞에 서게 될 심판의 날에 저에게 부끄러움이 없게 해주시기 위해,
저를 하나님의 영원한 자녀로 삼아주시기 위해
이런 귀한 은혜의 고난을 제게 내려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감사할 수 없는 상황이란 없습니다.
인자하심이 영원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올립니다.“라고 자연스레 고백하게 됩니다.
‘고난은 그저 피해야 할 힘든 일이며, 저주다. 평안하고, 즐겁고, 건강하게
늘 행복한 일만 있는 사람이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를 악물고 참으며 고난 중에도 감사하여
최대한 빨리 이 고난에서 벗어나 다시 안락하고 행복한 삶으로 돌아가겠다.’라고 생각하는
낮은 수준의 신앙과 기복주의에서 완전히 벗어나
이제는 ‘힘겨운 고난이야말로 나를 구원으로 인도해주시는 진정한 복이며,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이라는 진리를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롬 10:10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방금 읽은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부터 진심으로 믿어,
믿기에 그 분의 말씀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기로 결단하는 진실한 회개와 더불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을 때에 하나님께로부터 의롭다 해주심을 받고,
또한 다른 사람들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을 받는다는 내용입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없는 거짓 회개와
‘나중에 또 죄를 범해도 다시 회개하면 되지 뭐.
오늘은 일단 안전하게 회개를 하고, 내일 또 죄를 지어야지.’하는
악한 회개는 사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는 이 말씀의 배경을 살펴보면
자신의 목숨을 걸고 하는 위험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도록 강요와 핍박을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순교자들에 대한 심문과 판결 과정을 법정 속기사들이 기록해 놓은 관청의 공식기록과
재판에 직접 참석하여 그 재판 과정을 전부 지켜본 그리스도인들의 증언을 기록한 문서를 보면
(역사적 진실성이 보장된 내용이라는 의미)
주후 120년부터 약 250년간 남자, 여자, 소년, 소녀, 구십이 넘은 노인,
귀족, 자유인, 노예, 학자, 농부, 상인, 군인, 감독, 장로, 세례 준비자 등등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지 않고,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시인한다는 이유로 각종 끔찍한 방법의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 분들은 방금 읽은 말씀에서처럼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 것입니다.
오늘날의 한국에서처럼 영접기도를 한 차례 따라하거나
교인등록카드를 작성한 후 오늘부터 예수님을 믿겠다고 쉽게 말하고 나서
이제 구원이 확정되었다며 좋아하다가
핍박이나 순교도 아닌 작은 고난을 겪을 때에도 매우 싫어하며
문제해결에만 몰두하고 있는 모습과는 애초에 차원이 다른 얘기라는 의미입니다.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이 적발되면 처형을 당하는 북한에서
예수님을 섬기고 있는 성도들은 약 40~60만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인 수는 약 500만~700만 정도라고 하지만
한국의 그리스도인의 수보다 북한의 그리스도인이 더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한의 성도들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전부 기복주의에 물든 채
2주전 설교내용에서처럼 자기 자신을 위한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
예수님을 닮아가지 않고 오히려 죄에 점점 무감각해지며
쾌락을 사랑하고 있는 자들이 수두룩하지만
북한의 성도들은 모두 위태함 가운데에서도
자신의 목숨과 재산을 비롯한 모든 것을 걸고 예수님을 따르는
진짜 그리스도인들로 추정되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교회를 옮겨 다니는 일이 너무나 흔해서 등록교인 중복이 매우 많지만
교회들은 홍보를 위해 실제 출석교인의 수를 언급하는 걸 최대한 피하고,
오로지 등록교인의 수와 헌금 액수만 얘기하면서 서로 자랑을 하고 있으며,
게다가 한국의 교회들에서 예수님을 점점 닮아가고 있는 진정한 그리스도인,
악한 영의 지배 아래에서 완전히 벗어나 영혼의 참 자유를 얻은 그리스도인을 찾기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와 다를 바 없는 상황이 되었기에
자신의 목숨까지 다 걸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북한의 성도들이
자연스레 더 많아 보이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인들을 보면 예수님과 함께 받는 고난은 지극히 싫어하며,
(말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대부분이) 은사주의/신비주의를 따르면서
가는 곳마다 악한 열매들을 맺고 있거나, 그저 돈과 쾌락에 빠져서
각각의 마음속에 욕심과 야망, 그리고 용서 못함과 증오를 품은 채 살아가고 있기에
악한 영들에게 사로잡힌 채 자신에게 있는 영적문제의 원인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그렇기에 자신에게 조금만 힘든 일이 생기면
자신이 죄를 지었거나 잘못한 일이 있다고만 생각하여 평소엔 안하던 기도를 시작하거나
기도의 능력이 있다는 사람들을 수소문하여 찾아가 기도를 부탁하는데
그 기도내용을 보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증거가 또 나타납니다.
“사업이 잘 되게 해주세요. 다시 건강하게 해주세요.
우리 자식 명문대학, 대기업 가게 해주세요. 돈 잘 버는 배우자 만나서 결혼하게 해주세요.
우리 남편이(아내가) 바람을 그만 피우게 해주세요.“ 등등 거의 다 삶의 문제해결을 위한 내용일 뿐
“저도 예수님을 닮고 싶습니다. 제 자신을 온전히 부인하고, 제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정말로 따라가고 싶습니다. 그런데 제 삶에는 귀한 고난이 별로 없어서
혹시 이미 버림을 받은 것이 아닌지 너무 두렵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지 알고, 온전히 순종하고 싶습니다.” 등의
진짜 기도제목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한국에(혹은 전세계에) 자신의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
예수 그리스도와 고난도 함께 받으며,
자기를 부인하면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고 있기에
고난이야말로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이라고 진심으로 고백하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너무나도 어려운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매번 하는 일마다 잘 안 되거나, 건강을 잃거나,
(성실해도) 가난하여 만나는 이들로부터 멸시와 조롱을 당하거나,
주변에 사람은 많지만 진정한 사랑과 위로를 주는 사람이 없어
인간적으론 마음 둘 곳 없이 홀로 너무나 외로울 수 있는 상황이라 해도,
또한 우리와는 달리 북한의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다가 적발되면
끔찍한 곳에 끌려가서 동물과 다를 바 없는 취급의 학대나 순교를 당하면서도
그 모든 고난 중에 “하나님 제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사랑해주시나요?
저를 당신의 영원한 가족으로 삼아주시려고, 저를 온전히 부인하게 해주시려고,
제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게 해주시려고 이렇게 큰 상을 베풀어주시네요.
제가 대체 뭐라고 이렇게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시켜 주십니까? 정말로 감사합니다.
이 모든 일들을 다 감당한 후 하나님의 나라에서 목청껏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그 날을 고대합니다.“라고 고백하는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이 과연 무엇인지 진실로 깨달은 사람입니다.
벧전 2:19-20
(19)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 부분에서 각별히 주의해야 할 것은
악한 마음, 무례한 인성, 일하기 싫어하는 나태함, 그리고 죄를 범한 이유로 고통을 받는 것은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악하기 때문에 받는
스스로 불러온 고난이라는 사실입니다.
잘못한 이유 없이, 혹은 선을 행함으로
예수님과 함께 고난을 받으며 영적으로 성장하는 것과
자신의 게으름과 악한 인성과 죄 등으로 인하여 받는 고통은 반드시 구별되어야 합니다.
삼하 9:8
(8) 그가 절하여 이르되 이 종이 무엇이기에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하니라
다윗은 자신의 진정한 친구였던 요나단을 기억하였기에
사울 왕가가 멸망한 이후에도 사울의 손자이자 요나단의 아들인
‘죽은 개 같은’ 므비보셋에게 왕자와 같은 대우를 하며 큰 은혜를 베풀었던 것처럼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전적인 은혜로 하나님께로부터 이렇게 큰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에는 고난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좋은 것들이 다 있지만
그 중에 가장 크고 특별한 사랑은 바로 고난을 통해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종국에는 하나님의 영원한 가족이 되는 것이라고 확언할 수 있습니다.
반면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인 고난의 참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깨닫기를 싫어하여
고난이 찾아왔을 때에 어떻게든 빨리 도망치려고만 하는 모습으로
그 고난을 통해 깨달은 것이 거의 없거나
일시적으로 깨달았다 해도 다시 금세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며,
자신의 내면에 숨겨진 처리해야 할 문제들을 발견도 하지 못하고,
또한 주변에 고난을 통해 영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자들을 보면 혀를 쯧쯧 차며
‘저 사람은 대체 무슨 큰 죄를 남몰래 지었기에 저렇게 큰 고난을 당할까?’,
“당신은 아주 사방이 꽉 막혀있지요? 쯧쯧...(불쌍하고 한심하네..)
(실제로 사방이 막혀있다 하더라도 하늘은 열려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함)”,
“돈이 없어요? 어휴~ 기도 많이 하셔야 겠네~” 등의 말로 조롱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조금도 깨닫지 못한 기복주의자들이며,
성경을 읽으면서도 그 내용을 알지 못하여
오로지 자신이 해석하고 싶은 대로만 해석하고 있는 교만과 미혹에 빠진 자들이고,
기도를 오직 문제해결과 이 땅에서의 복을 받는 용도로 잘못 생각하는
어리석고 안타까운 자들입니다.
다른 누군가를 판단할 필요 없이 거울을 보면
그 안에 그런 모습을 조금이라도 가진 사람이 있을 겁니다.
자기 자신의 정체를 겸손히 인정해야 다음 단계로 나아가 생명으로 향할 수 있습니다.
히 5:12-6:2
(12)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13)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14)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1)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2)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 진리의성령교회 가족 여러분
성경말씀에 등장하는 야곱, 요셉, 다윗 등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자들,
바로 그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했던 고난의 인생들을 생각해보면
오늘 주신 말씀에 대한 해답이 바로 나옵니다.
특별히 예수님의 일생을 생각해보면 더욱 명확하게 정의내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친을 여읜 채 어린 나이에 가장이 되어
힘들게 목수 일을 하시면서 모친과 동생들을 성실히 돌보셨을 것이고,
주변 사람들은 “야야, 목수 저 친구는 동생들과 아빠가 다르대!”,
“뭐?? 진짜야? 그럴 수가 있나? 설마!? 그럼 아주 죄 가운데에서 태어난 자인데? 완전 말세네...”,
“말도 마~ 확실하다니깐?”, “그래서 요셉이 그렇게 빨리 죽었나?
아! 그래서 저 친구도 십자가에서 극형을 받는 구만?”하고 수군수군 거렸을 것이며,
예수님의 동생들은 질풍노도의 사춘기시기를 겪으며 형을 힘들게 했을지도 모르고,
확실한 것은 예수님의 동생들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며,
(예수님께선 십자가 위에서 동생들이 아니라 제자 요한에게 어머니를 맡기심),
헤롯이 아기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서 예수님의 또래 아기들을 다 죽였기에
자녀를 잃은 부모들과 그 가족들은 질투심에 사로잡혀 예수님을 증오했을 것이고,
예수님께서 고향에서 설교하실 때에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을 배척했으며,
타지 사람들도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하면서 예수님을 무시했고,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무리들은 예수님을 존경하고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저 병 고침을 받고, 떡 먹고 배부르기 위함이었으며,
호산나를 외치며 예수님을 환영하던 수많은 군중들은
예수님께서 이 땅의 왕이 되셔서 자신들을 해방시켜주실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고,
예수님의 제자들마저 예수님께서 왕이 되시면 한 자리씩 차지해보려는 마음으로 따라다녔으며,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사명을 앞두시고 땀이 피가 되도록 기도하셨을 때에도
제자들은 함께 기도하지 않은 채 졸고 있었고,
예수님의 제자인 가룟 유다는 본전 생각에 예수님을 헐값에 팔아 넘겼으며,
가장 열정적이었던 제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게다가 저주까지 했으며,
극소수를 제외한 모든 유대인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광기에 찬 목소리로 외쳤기에
예수님의 일생은 객관적으로 많이 힘들고 외로운, 누구보다 큰 고난을 겪으신 인생이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 즉 구원 받을 모든 자,
저와 여러분들의 그 무거운 죄를 홀로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처참하게 죽어주신
그 정점의 고난은 우리가 생각할 때마다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고난을 충분히 상상해볼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 당신의 고난은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일을 당하는 것이 절대로 싫습니다.
저는 빼주세요. 그러니 저에게는 고난을 절대로 주지 마시고,
오로지 이 땅에서의 부와 명예와 건강만 주시길 기도합니다.
그래야 은혜 아닙니까? 우리의 허물을 위해 찔림을 당해주셨고,
우리의 죄악을 해결해주시기 위해 상함을 당해주셨다지요?
그러니 예수님은 채찍과 징계를 받으시고, 저에겐 평화와 나음만 주시는 게 맞다고 봅니다.
아참, 제일 중요한 거! 구원은 꼭 해주세요.“ 이런 대사를 직접 사용하진 않아도
예수님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지극히 싫어하면서 이 땅에서의 복만 내놓으라고 기도하고,
또한 육신적인 것들만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이 내용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또한 ‘평화와 나음의 의미’를 오로지 육신적인 의미로만 해석하고 있는 지극한 어리석음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인생에서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모습이 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없습니다.
예수님의 진정한 제자가 되어 하나님과 합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보다
이 세상에 속한 어떤 것들, 그리고 자기 자신의 기분과 인생의 처지가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면
그 사람은 애초에 그리스도인이 아니거나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섬기는 모습을 가진 ‘두 마음을 품은 자’, ‘양다리를 걸친 자’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던 목사들과 세상에서 성공/출세한 성도들이
돈 문제, 불륜, 권력, 성매수, 몰카, 성폭행 등으로 타락하여 지옥의 길을 걷는 모습은
오늘날 너무나 흔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고난 없이 그저 부와 명예와 권력의 자리에 있으면
아마도 상당수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타락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누구도 “나는 절대로 그런 죄를 범하지 않는다. 나는 저들과는 다르다.”라고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목사님은 자신이 자꾸만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아 유명해지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너무 두렵다고 겸손히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은혜는 이 땅에서 잘 되는 것이 전혀 아니라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가족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하는 모습으로 성장해가는 것이 확실합니다.
여러분들의 인생에 힘든 일들이 많다면, 그 일들을 통해 영적으로 점점 성장하고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은혜 안에 있다는 사실이므로
진심으로 감사함이 옳습니다.
여러분들 중에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
그 분의 특별한 사랑을 더 많이 받는 자가 되고 싶은 분이 계시다면
예수님과 함께 고난도 받고 싶다며 고난을 더 주시라고,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주시라고, 숨겨진 죄와 잘못된 가치관들을 밝히 비춰주시라고,
자신이 불순종을 하면 몽둥이로 때려서라도, 멱살을 잡고 질질 끌고서라도
좁은 문과 협착한 길, 그 구원의 길을 제발 통과하게 해주시라고,
완전히 부서져 마치 가루처럼 되어 자기를 온전히 부인하고 싶다고,
하나님 앞에 홀로 서게 될 그 날에 어떤 후회와 부끄러움도 없이 담대하게 서고 싶다고
진심으로 간구 드리시기를 축복합니다.
자신은 그럴 용기가 없다며 손사래를 친다면,
고난은 절대로 싫고 그저 평안하게 세상 쾌락을 즐기면서 건강하게 살다가
마지막에는 천국에도 가고 싶은 그런 두 마음이 있다면
안타깝지만 그 사람은 아직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 모습으로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가 될 수 없습니다.
분명히 영원한 지옥에 가게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을 부정하라고 겁박을 당하면
자기 육신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살아있어야 복음도 전한다는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즉시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까지 할 사람이기 때문이며,
또한 자기 인생의 첫 번째 소원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게 아니라
이 세상의 것을 가장 사랑하여 자신의 야망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마 25:26-30
(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마 25:44-46
(44)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45)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46)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눅 13:23-28
(23)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그들에게 이르시되
(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25)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26)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27) 그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 가라 하리라
(28)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밖에 쫓겨난 자들, 곧 지옥에 떨어진 자들은
슬피 울면서 이를 갈게 될 것이라고 말씀에 여러 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를 바득바득 간다는 행동의 의미에는 억울하고 원통하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방금 읽은 말씀에서 우리가 확인한 것처럼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김을 당한 자,
“너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나를 떠나 가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쫓겨난 자들은 전부 예수님을 모르던 자들이 아니라
한 달란트를 받아 사명을 맡았던 자,
“저희가 언제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않았습니까?”라며
억울함을 표현하는 자,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
라고 말하는 자들이기에 이들은 분명히 이 땅에 사는 동안 예수님을 알았고,
예수님께 배웠고, 무려 사명을 맡았던 자들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일평생 교회를 다니며, 헌신적으로 봉사도 하고, 헌금도 많이 했는데!
내가 내 꿈을 다 포기하고 오로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힘겹게 살았는데!
나를 모르신다고?’하는 억울함과 원망과 슬픔과 증오 때문에
이를 바득바득 갈게 되는 것입니다.
지옥에 가게 된 사람들 중 많은 수의 사람들이
이 땅에 살면서 교회에 다녔던 사람들일 것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이미 배웠기에 의심할 수 없는 내용은
모든 사람이 다 구원에 이르진 못할 것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옥에,
극소수의 사람들만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부디 예수님과 고난도 함께 받으며 즐겁게 따라가는 우리가 되십시다.
우리의 인생이 긴 것 같아도 시간은 활시위를 떠난 살과 같이 빠르게 지나가며,
따라서 오늘 본문 말씀에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우리의 고난도 천국에서의 영원한 인생에 비하면 잠깐 스치는 듯한 순간에 불과합니다.
또한 우리 자신보다 우리에 대해 더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고난만 허락하시며,
로뎀나무에서의 휴식과 같이 충분히 재충전할 시간도 주시며,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도 공급해주시는 자비가 풍성하신 분이기에
우리는 걱정할 것 없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지하고,
우리의 머리로 이해할 수 없을 때에도 항상 기뻐하며,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무섭기만 한 분이 아니라 넘치는 사랑과 은혜가 풍성한 분이시라는 이 사실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가신 그 길을 그대로 따라가기를 소망하는 자,
즉 좁은 문과 협착한 길을 어떻게든 피해보려고 노력하는 자가 아니라
들어가고자 하여 끝내 들어가는 자들만 구원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 길은 미리 말씀해주신 바 좁은 문과 협착한 길로서
육신적으로만 생각하면 매우 힘든 길이 맞습니다.
들어가고자 하나 못하는 자가 많을
육신적으론 매우 힘든 고난의 길,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인 우리 모두의 인생목표는 예수님을 끝까지 따라가는 것이고,
바로 나 때문에 예수님께서 당해주신 고난의 그 무게를 알게 되었기에
전에는 매우 힘들게만 느껴지던 이 길을 이제는 오히려 기쁨과 즐거움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심히 괴롭고 지쳐서 힘든 날에도
오히려 웃으면서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풍성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의 짧은 삶이 끝나고, 영원할 진짜 인생이 시작되는 그 날에는
우리가 예수님과 고난도 함께 받으면서 살아온 것에 진심으로 기뻐하며,
영원히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자기도 모르게 세상으로 향해버린 시선을
부디 다시 돌려 예수님을 바라보며,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며, 예수님을 따라가십시다.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 자, 자기를 부인한 겸손한 자,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과 고난도 함께 받은 자에게 주실
생명나무의 열매를 기대하며, 이 짧은 인생을 후회 없이 살아가십시다.
마지막으로 당부할 것은 SNS 등 스마트폰을 통해 접하는 모든 것들,
어떤 사람의 어떤 가치관이 담겨있을지 모를 각종 서적들,
드라마, 영화, 음악 등의 대중문화를 통해
고난을 싫어하고, 세상의 것들을 가장 사랑하며 부러워하는 마음,
하나님에 대한 불평과 원망의 마음으로 빠르게 오염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주의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분별을 하며 세상문화를 접한다는 사람들도 그런 매체를 통해
어느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부분적으로 오염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다만 이미 오염되어 있는 부분이 그런 매체를 통해 수면위로 드러나는 과정일 수도 있기에,
또한 하나님께서는 어떤 환경과 상황 속에서도 우리를 사랑으로 인도해주시는 분이기에
세상 문화를 통해서도 우리를 일깨워주실 때가 있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깊은 산속에 들어가서 모든 것을 차단해야 한다는
이상한 주장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각자 자신의 영적상태를 살피면서,
무엇보다 성령님께서 자신을 강권적으로 인도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며
겸손히 간구하는 자세를 가지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마음에서부터 우러난 진짜 순종으로 이 길을 나아가보십시다.
앞으로 이 세상이 영적으로 더욱 더럽게 오염된다 해도
그 속에서 빛나는 보석처럼 하나님께 속한 자들로 구별되십시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저와 여러분들이 마음에 깊이 새기고 오늘 즉시 삶에 적용함으로서
과연 오늘의 나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은 자로서
예수님을 믿을 뿐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고난도 받기를 원하며,
매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면서 점점 성장하고 있는 자인지,
아니면 고난은 지극히 싫어하여 오로지 육신적인 평안과 부와 건강만을 마음으로 바라는 모습으로
조금도 성장하지 못하다가 마지막에는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인생을 살고 있는 자인지,
그것도 아니면 자신의 악함과 게으름과 죄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면서도
그것이 예수님과 함께 당하는 고난이라고 착각하면서
악한 영에 사로잡힌 채 영적문제를 인지하지도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자인지
솔직하게 생각해봄으로서 늦어버리기 전에 부디 하나님 앞에 나아가 이 부분을 해결하고,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 즉 고난 가운데서도 늘 진심으로 감사하는 모습이 되어
마지막 그 날, 하나님의 영원한 가족으로 확정된 후
하나님께로부터 생명나무의 열매를 받게 되는 최고의 인생을 완성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빌 1:29-30
(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30) 너희에게도 그와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예수님의 사랑안에서 진리의성령교회 윤경훈 목사 올림
진리의성령교회 2024.08.18. 주일설교
감사와 다짐의 노래
504장 예수 영광 버리사
1. 예수 영광 버리사 사람 되신 것 보고 너도 고난 당하나 길이 참아라
2. 예수 친히 십자가 지고 가신 것 보고 너도 주의 십자가 지고 따라라
3. 예수 너를 위하여 죽으심을 본받아 너도 남을 위하여 몸을 바쳐라
4. 예수 부활하셔서 승리하신 것 보고 너도 승리할줄을 믿고 싸워라
5. 예수 승천하셔서 영광 받으심 보고 너도 영광 받을줄 믿고 섬겨라
6. 예수 다시 오셔서 상을 주실줄 믿고 너도 상을 얻도록 참고 참아라
첫댓글 누가 그 큰 사랑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욥이, 야곱이, 요셉이 살아낸 삶 속에 싸여진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헤아릴 수 있는 영안이 열리기까지 그리스도예수님의 마음만을 찾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아멘.
하나님의 특변한 사랑과 은혜인 고난 중에
감사하시며 더욱 장성하시는 최고의 복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계속해서 고난을 허락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예하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즐거이 감내하기를
원합니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예수님과 함께하는 고난을 싫어하며,
회개, 고난, 성화를 강조하는 교회들을 욕하면서 떠나
기복주의를 찾아가는 이 타락한 마지막 때에도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인 고난에 감사하면서 예수님을 점점 닮아가고 있는
성공의 인생을 살아가시는 에녹님에게
하나님께서 최고의 상급을 내려주시기를 하나님께 간구드리며,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