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악마의 구멍을 가진 산치오의 흙의 무덤에서 로마를 가로지른 신비의 원소들이 펼쳐졌노라. 신성한 시험, 빛의 길이 놓여 있으니, 천사들이 너의 숭고한 원정길을 안내케 하라.”
댄 브라운의 소설 ‘천사와 악마’에서는 판테온(Pantheon)을 설명하기 위해 ‘실낙원’으로 유명한 17세기 영국 시인 존 밀턴의 시를 인용했다. 소설에서는 판테온이 살인 예고 장소로 추정되며 음습하고 등골이 오싹한 기분이 들게 만드는 곳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사실 판테온은 로마에서 가장 성스러운 공간 중의 하나다. ‘모든’을 뜻하는 ‘판(Pan)’과 ‘신’을 의미하는 ‘테온(Theon)’이 합쳐져 ‘모든 신들을 위한 신전’이란 뜻을 품은 이름에서도 느껴지듯 이곳에서는 세상의 모든 신들이 내려다보는 듯한 위압감과 경건함이 느껴진다.
지금의 판테온은 로마 제국 절정기인 하드리아누스 황제(재위 117~138) 때 건립됐다. 그러나 판테온은 이전에도 이미 두 차례 세워졌었다. 기원전 27년 아우구스투스의 사위인 아그리파에 의해 건축된 첫 번째 건물은 화재로 불탔고, 도미티아누스에 의해 재건된 두 번째 건물은 번개에 무너졌다. 그리고 약 2천 년 전에 건축된 세 번째 건물은 지금도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웅장함과 성스러움을 뽐내고 있다.
판테온은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의 기둥을 옮겨놓은 듯한 직사각형의 정면과 뒷면의 원형 건물이 합쳐진 구조이다. 돔형 건물의 천장 가운데에는 지름 8.3m의 구멍이 뚫려 있다. 이곳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모자이크 바닥을 비추며 장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원래 아그리파가 세운 판테온은 올림푸스의 신들을 기리기 위한 곳으로 내부에는 마르스, 베누스를 포함한 수많은 신들의 상(像)이 벽을 감싸듯이 장식돼 있었다고 한다. 물론 기독교가 널리 전파되며 판테온은 그리스 신전에서 기독교의 신전으로 탈바꿈됐다. 지금 그곳에서 그리스 신상은 찾아볼 수 없다. 대신 라파엘로와 이탈리아 통일에 힘쓴 에마누엘레 2세 등의 묘가 자리해 있다.
판테온은 로마에 있는 돔 양식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되고 보존이 잘 돼 있다. 물론 가장 아름다운 건물 중 하나이기도 하다. 미켈란젤로는 이곳을 ‘천사의 설계’라고 극찬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