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격한 영적 수행이 정확하게 뒤따른다면, '나'는 죽을까요?
예,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있다고 해서 장례식을 치러야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실상(Reality)에는 '내'가 있었던 적이 없으니까요,
그것은 줄곧 환상일 뿐이었습니다.
'내'가 죽으면 진짜 '내'가 앎 속으로 태어나는데,
이것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것(Unborn) ㅡ 의식과 존재의 근원입니다.
영적 실상이 그렇게 굉장한 것이라면
사람들이 다른 목표를 택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사람들은 그저 모르는 것입니다.
자신의 타고난 의식 수준이나 카르마로 귀결된 선택들은 보통의 기억이 닿지 않는 곳에 있습니다.
과거에 어떤 일이 었었든 간에 영적 작업의 기본적 본성은 동일합니다.
유일한 차이는 카르마에 대한 연구는 내용의 기원을 시간 차원에서 명시해 준다는 것이지요,
카르마적 전생 연구는 가치가 있습니까?
그러한 설명이 일정한 어려움을 보다 이해할 만하고
따라서 수용하기 쉽게 만들어 준다는 면에서 위로가 되는 점이 있습니다.
사람이 삶의 패턴을 과거까지 추적해 올라간다면,
지기 연민, 분개, 죄책감, 혹은 인생사가 불공평하다는 느낌에 탐닉할 가능성이 보다 적어집니다.
사람들은 의레 이번 생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과거에 타인에게 저질러진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카르마 연구는, 일정한 에너지가 가동되었다는 것과 그러한 에너지는
이번생에서 주워진 모든 우연한 통로를 통해 스스로를 표현할 것이라는 측면에서,
삶의 패턴은 '비개인적'인 경향을 갖는다는 사실을 드러내 줍니다.
과거에 남을 향한 이기심이나 잔인함 같은 성질이 있었다면
그것은 이번생에 자신을 향해 돌아올 수 있습니다.
카르마에 대한 앎이 없다면,
사람들은 부정과 자기 연민에 이르거나 혹은 수난자나 피해자의 역할에 탐닉할 수 있지요.
이런 부정적 삶의 패턴을 간파할 때 간절한 기도와 용서를 통해 그것을 해소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개인의 심령은 자기 공격, 죄책감, 자책, 우울이라는
무의식적인 내적 기제에 에너지를 불어넣게 될 것입니다.
카르마 연구는 영적 진보와 이해를 상당히 뒷받침하는 치유적 노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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