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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복음 15장 11절 은혜와 진리의 가치3-기쁨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은혜와 진리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아들로 다시 태어나게 하며, 또한 새 생명을 준다는 사실을 통해 그 가치가 얼마나 놀랍고 대단한 것인지를 여러분들은 2주에 걸쳐서 말씀을 들으셨고, 또 확인하셨습니다. 이제 오늘은 세 번째로 은혜와 진리가 기쁨을 줌으로써 그 가치를 드러낸다는 사실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주신 은혜와 진리는 여러분들에게 하늘에 속한 기쁨을 가져다줍니다. 오늘 본문인 요한복음 15장 11절 말씀을 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이 하나님의 은혜의 증거요, 진리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만나 거듭나서 새 사람이 된 사람들은 그로 인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또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새 생명의 삶을 살게 됩니다.
이런 복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하늘의 기쁨으로 충만하게 하십니다. 여러분도 예수님이 주신 하늘의 기쁨으로 충만하십니까? 그 기쁨은 예수님이 여러분 안에 임하시면서 다른 성령의 열매들과 같이 함께 주어지는 하늘의 은혜요 선물입니다.
사람들은 모두가 다 기뻐하면서 살기를 원합니다. 슬퍼하면서 살기를 원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육신에 머물러 있을 때는 육신의 것을 통하여 기쁨을 찾고,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사람은 영적인 일을 통하여 기쁨을 찾습니다. 다시 말해서 육신의 사람은 땅의 것을 통해 얻는 기쁨을 구하고, 영의 사람은 하늘의 것을 통해 얻는 기쁨을 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육체의 사람과 영적인 사람의 기쁨은 서로 다르며, 서로 다른 것, 그리고 다른 곳에서 찾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육체를 통하여 기쁨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은 자기가 좋다고 생각하며 바라던 일이 자기에게 일어나면 잠시나마 기쁨을 얻습니다. 물론 자기가 좋다고 하는 일이 물질에 있는 사람은 물질을 통해 기쁨을 얻습니다. 또 사람이면 그 사람을 통해 얻어지는 것으로 기쁨을 얻습니다.
땅에 속한 사람들은 돈이 많이 들어오면 좋아합니다. 농사가 잘되면 좋아합니다. 젊은 남자들은 예쁜 여자를 아내로 얻었다고 좋아합니다. 젊은 여자들은 돈을 잘 벌고 유모어가 있는 능력있는 있는 남자를 만나면 좋아합니다. 아픈 사람은 병이 나으면 좋아합니다. 몸매를 가꾸려고 하는 여인들은 몸매가 좋아졌다는 말을 들으면 좋아합니다. 운동을 통하여 근육을 키우는 남자는 몸이 좋아졌다고 하면 좋아합니다. 공부를 하는 학생은 성적이 올라가면 좋아합니다.
기업을 하는 사람은 새로운 거래처가 생기고 많은 주문을 받으면 좋아합니다. 돈을 많이 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목회를 하는 목회자는 성도 한 명이 교회에 새롭게 오면 좋아합니다. 물론 많이 오면 더 좋아합니다. 아이를 기다리는 젊은 부부는 임신했다는 의사의 말을 들으면 날아갈 듯이 기뻐합니다. 음식을 탐하는 사람들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기뻐합니다. 이 세상을 보면 땅에서 얻는 기쁨의 종류는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이러한 기쁨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것을 통해 기쁨을 얻는 것이 죄는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그런 것들을 통해 기쁨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전도서 3장 13절이 그것을 증거합니다.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그리고 전도서 5장 18절에서도 “사람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에서 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보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그것이 그의 몫이로다”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불신자들과 그리스도인이 같은 것을 보면서 즐거워하고 낙을 누릴 지라도 그 기쁨의 종류는 다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누리라고 주신 것을 통해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기뻐합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하셔서 주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땅의 것에서 기쁨을 찾는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육체적인 욕구를 잠시나마 해소하면 기뻐합니다. 그리고 행복해합니다. 하지만 잠깐의 순간이 지나면 더 좋은 것을 찾습니다. 그렇게 되면 예전에 기뻐했던 것을 가지고는 예전과 똑같이 기뻐할 수가 없습니다. 더 좋은 것을 얻어야 기뻐합니다. 그렇게 자기에게 좋은 것을 계속 쫓아가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나이는 들어가고, 그 좋아하는 것에 중독이 되고, 주변 사람에게 많은 상처를 주면서도 그것조차 알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점점 이기적으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욕심과 이기심은 동전의 양면처럼 나눌 수 없는 하나입니다.
이 이기심과 욕심으로 인해 자기는 기뻐하지만, 그 기뻐하는 것 때문에 가족들은 굉장히 힘들어 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칭찬을 받고 인정을 받는 남자가 회사에 충실하면 할수록 가정은 소홀히 여겨서 가족들은 이 남자에 대하여 많은 불만을 가지며 불행해 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가정을 둔 여자들이 직장 생활에 올인하여 밤낮없이 뛰어다녀서 직장에서 인정도 받고, 진급도 하고, 돈도 벌고, 존경을 받을 수도 있지만 아이들은 엄마의 사랑을 그리워하면서 애정결핍이 생겨 사랑을 받지 못한 것으로 인해 게임에 중독될 수도 있고, 많은 정서적인 장애를 겪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일은 인간세계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납니다. 자기의 기쁨과 행복을 추구하는 일이 때로 주변 사람을 아프고 힘들게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자기에게 소중하게 여기던 것들, 그리고 자기의 기쁨의 원천이 되었던 것들이 세월이 지나면서 자기에게 더이상 기쁨을 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일평생 그것만을 얻기를 바라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다른 것을 하는 법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거기다가 인생의 종착역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이제까지 자기에게 기쁨을 주었던 모든 것들이 자기가 이전에 냉정하게 대했던 것처럼 이제는 자기를 냉정하게 버리고 떠나가는 것을 알게 됩니다. 결국 인생은 홀로 남게 되는 것입니다. 이전에 누렸던 기쁨은 과거의 회한이 될 뿐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혼의 기쁨을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찾는 사람의 생애는 달라집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영원하시고 여러분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 역시 영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얻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은 기쁨으로 충만합니다. 그들에게는 예수님을 얻은 기쁨만큼 큰 기쁨은 어디에도 없었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그들은 또한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큰 기쁨이 됩니다.
그래서 이 기쁨을 알았던 사도 바울은 로마서 15장 13절을 통해 말씀합니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소망의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평안을 동시에 충만하게 받게 된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덕분에 염려가 점점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은 이렇게 기쁨과 평안을 충만케 하는 영원한 나라의 소망을 넘치게 주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믿음 안에서 주십니다. 여러분들이 가진 믿음 안에서 예수님이 주시는 은혜와 진리로 충만해질 때 여러분들 안에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산 소망이 넘치게 되고 위로부터 오는 기쁨과 평안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러분들에게 자신 안에 있는 기쁨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하늘에 속한 것이며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기쁨입니다. 앞에서 읽으셨던 오늘 본문의 요한복음 15장 11절을 다시 읽어드리겠습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믿으실 때 예수님은 자신과 함께 자신 안에 있는 기쁨을 여러분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기쁨이 여러분 안에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씀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예수님과 하나된 것에서부터 나오는 충만한 기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충만하다는 것은 넘쳐흐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과 하나될 때 여러분 안에는 넘쳐흐르는 기쁨이 주어집니다.
그리스도인은 은혜와 진리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면서 죄로부터 구원받을 때 크게 기뻐하게 됩니다. 이 기쁨은 기쁨의 근원을 바꾸어 놓습니다. 그래서 거듭나기 전 육체에 속해 있을 때 기뻐하던 기쁨들은 이제 더이상 큰 기쁨에 들어가지는 않게 됩니다. 물론 그런 것에서 기쁨을 얻기를 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그런 것들이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육체적인 기쁨 역시 하나님이 주신 복에 들어가는 것들도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기쁜 것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알아가면서 생기는 기쁨입니다. 이 기쁨은 매우 큽니다. 그리고 이 기쁨이 너무 크고 오묘하고 깊어서 다른 어떤 것과도 바꾸기를 거부합니다.
거듭난 사람이 갖는 이 기쁨은 그 이전에 경험했던 그 어떤 기쁨들보다도 더 뛰어나서 그 기쁨들로는 비교할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기쁨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기쁨의 근원을 예수님과 붙어 있는 것으로부터 오는 것으로 설명하고 계십니다. 바로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로 말씀하신 연합입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그의 생애를 이 땅에서는 도저히 얻지도 못했고 누리지도 못했던 그 기쁨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에서 에수님 안에서 사는 열매인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를 설명할 때도 희락이라는 단어로 기쁨을 표현하고 있고, 또 로마서에서처럼 하나님 나라의 실제를 설명할 때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는 표현으로 기쁨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 은혜와 진리로 인해 기쁨을 받은 사람은 예수님을 처음 믿을 때도 기쁩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면서도 기쁨니다. 예수님을 알아갈수록 기쁩니다.
그래서 아가서는 이런 기쁨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아기서 1장 4절을 보면 “왕이 나를 그의 방으로 이끌어 들이시니 너는 나를 인도하라 우리가 너를 따라 달려가리라 우리가 너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더 진함이라 처녀들이 너를 사랑함이 마땅하니라” 왕의 사랑을 받는 기쁨과 그 사랑을 받는 신부를 보면서 함께 기뻐하는 친구들의 기쁨입니다. 그리고 아가서 2장 3절을 보면 “남자들 중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 같구나 내가 그 그늘에 앉아서 심히 기뻐하였고 그 열매는 내 입에 달았도다”하면서 자신의 남자를 알아가면서 알게 되는 기쁨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기쁨이 너무나 커서 심히 기뻐하였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쁨의 근원이 무엇입니까?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은 서로에게 기쁨을 주기도 하지만 서로로 인하여 기뻐하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은 예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예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면서 기뻐합니다. 마치 엄마가 아이를 위해 도시락을 싸주면서 아이가 맛있게 먹을 것을 상상하면서 기뻐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인 여러분들은 예수님이 여러분들로 인해 기뻐하시는 것을 상상하면서 예수님이 기뻐하실 일에 마음을 쏟고 행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은혜와 진리가 바로 이 사랑의 관계를 깊고 돈독하며 지속적으로 이끌어줍니다. 이렇듯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받는 사람의 마음에 큰 기쁨을 가져다 줍니다.
포도나무 비유처럼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붙어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새 계명인 서로 사랑하면 산다는 것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기쁨의 근원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주시는 영원한 기쁨의 근원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영원한 사랑이 그 사랑을 받는 모든 자에게 큰 기쁨이 됩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주시는 은혜와 진리가 크고 영원한 기쁨이 되는 이유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육체적인 세상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의 표적으로 삼습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괴롭힙니다.
역사적으로보면 초대교회에서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예수님으로부터 은혜와 진리를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많은 박해를 받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초대교회가 받았던 박해에 대하여 사도행전 8장 1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그 뒤로 스데반 집사님은 복음을 전하다가 붙잡혀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 순교의 현장에서 사람들의 옷을 맡았던 증인이 되었던 사울을 예수님께서 만나주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9장 4-5절을 보면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예수님과의 첫 만남을 가진 사도 바울은 사도로서의 삶을 살아가는데 다른 사도들이 대체로 유대땅에 한정된 사역을 하는 반면에 사도 바울은 이방 땅에 복음을 전하는 일에 집중했습니다. 그런 그 역시도 박해를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유대인인 자신이 유대인인 스데반을 박해했듯이 사도 바울을 박해한 사람들 역시 유대인들이 거의 대부분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3장 50절을 보면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시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게 하여 그 지역에서 쫓아내니” 이런 박해들이 사도 바울의 사역 내내 일어났습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던 사도 바울의 마음은 그 박해에 대하여 어떤 자세를 취했을까요? 고린도전서 12장 10절을 보면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기뻐했다고 고백합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도 기뻐하고, 능욕을 당하는 것도 기뻐하고, 박해를 받는 것도 기뻐하고, 곤고를 겪는 것도 역시 기뻐한다” 사도 바울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도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도행전 5장 41절을 보면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육체적으로 좋은 일이 일어났을 때만이 아니라 극심한 박해를 받을 때도 역시 기뻐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알게 되자 그들은 기뻐했습니다. 사람에게 인정을 받는 것이 기뻤던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는 능욕을 받아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자신들을 신앙의 수준을 높이 인정하고 계신다는 사실로 인해 그들은 크게 기뻐했습니다. 이렇듯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와 진리로 인해 이 세상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박해가 오히려 기쁨의 이유가 됩니다. 성령께서 그 박해 속에 담겨진 하나님의 뜻과 받게될 상에 대한 확신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한복음 16장 22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지금은 너희를 떠나 아버지께로 가지만 대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쁘게 될 것이다. 그때 너희가 받는 그 기쁨은 그 누구도 빼앗을 자가 없을 것이다.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영으로 여러분들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성령은 예수님을 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원한 하늘의 기쁨을 주십니다. 여러분들이 이 시대에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와 진리로부터 오는 영원한 기쁨을 얻고자 하신다면 그 기쁨을 가지셨고 또 여러분들에게 주실 수 있는 예수님을 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와 진리를 가지고 오셔서 여러분들에게 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들은 예수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4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빌립보교회에 편지를 보내는 마지막에 가서 말합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여러분의 기쁨은 주님 안에 있으며 그 기쁨은 은혜와 진리를 믿음으로 받아들였을 때 주어지는 것입니다. 은혜와 진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여러분에게 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갖는 기쁨을 은혜와 진리 안에서 갖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은혜와 진리의 가치는 여러분들이 이 땅에 살면서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시는 영원한 기쁨과 평화를 누리면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를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하는데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기쁘십니까? 그렇다면 감사함으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시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진리를 받아 기쁨을 충만하게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기쁜 소식을, 그리고 그 은혜와 진리를 죄 가운데 억눌려 하나님의 진노의 날을 맞이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들 역시도 예수님 안에서 죄사함으로 인한 구원을 받아 영원한 천국의 기쁨을 항상 누리면서 살게 될 것입니다. 이 축복이 여러분들에게 항상 머물기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