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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다의 유까딴 견문록" 한서 대조본 전문/머리말
란다의 유까딴 견문록
저자: Fray Diego de Landa
번역과 주석: 송영복
16세기 서양과 아메리카의 만남 직후 정복자들과 함께 마야의 땅에 십자가를 전파하러 온 에스빠냐의 가톨릭 신부 디에고 데 란다(Diego de Landa). 그는 유까딴반도 마야문명의 역사와 지리, 문화에 관하여 모든 것을 기록하였다.
머리말
역사는 인간을 발견하는 것이다. 과거의 이야기를 통해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하고 같이 울고 웃으며 공감을 하고, 또 배움을 청하며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이 역사가 가진 최고의 가치이자 매력이다.
‘란다의 마야문명이야기(Relació́n de las Cosas de Yucatá́n)’에는 인류 최대의 애절한 역사가 담겨있다.
누구에게나 잊을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 끊임없이 다시 되새겨지거나 말은 하지 않아도 죽는 그날까지 오롯이 짊어지고 가야할 고통과 즐거움이 어느 민족에게나 뿌리박혀있다. 평생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사연이 있고 가슴 깊숙한 곳에 온전히 가지고 살아가야하는, 그래서 항상 그 속에서 허우적대야하는 운명이 있다. 마야의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라틴아메리카의 사람들에게도 바로 그런 기구한 이야깃거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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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직까지도 ‘콜럼버스의 신대륙발견’이라고 배우고 있는 사건을 통하여 이전까지는 잘 먹고 잘 살던 마야의 원주민들이 무고한 목숨을 빼앗기고 모든 것을 강탈당하였다. 이것도 모자라 서양의 침략자들은 마야 원주민들의 머릿속에 내재된 모든 것을 지워버리고자 했고, 원주민들의 생각과 철학이나 종교를 모두 쓰레기라고 규정지으며 이들의 뇌를 서양문화와 기독교로 모두 씻어 내려했다. 오죽했으면 이곳 원주민들을 인간이 아닌 ‘말하는 동물(Animal que habla)’이라고까지 불렀겠는가.
그런데 이러한 역사는 오늘날까지도 큰 뒤바뀜 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것이 현실이다 보니 마야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이야기로 꼽히는 것이 1492년의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멕시코와 과테말라 그리고 주변 마야 국가들의 역사와 문화, 그들의 삶과 정치·경제·사회에서 어쩔 수 없이 지겹게 반복될 수밖에 없는 이야기가 바로 유럽 사람들에 의한 정복의 그날이다. 그리고 그 당시 죽음과 고통에 젖은 애절한 사연, 정나미 뚝뚝 떨어지는 현실, 사실의 기록, 악랄함과 사랑이 이 책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래서 ‘란다의 마야문명이야기(Relació́n de las Cosas de Yucatá́n)’를 읽다보면 주먹이 불끈 쥐어지기도 하고 얄밉기도 하다가 또 재미있고 신기해지도 한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그 이야기 하나하나를 따지고 으깨고 잘근잘근 씹어서 온전히 소화를 시켜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란다의 마야문명이야기(Relació́n de las Cosas de Yucatá́n)’에는 마야 역사와 아메리카 역사, 나아가 세계 역사의 가장 극적인 순간들이 오롯이 녹아있다. 마치 영원히 잊을 수 없을 우리네 어머니의 그 한 많은 사연처럼 말이다. 또한 이 역사에는 첫 키스의 짜릿함과 이어지는 배신의 광란이 있다. ‘란다의 마야문명이야기(Relació́n de las Cosas de Yucatá́n)’는 그들의 역사에서 결코 지울 수 없는 가장 큰 흉터이자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의 생생한 증언인 셈이다.
‘란다의 마야문명이야기(Relació́n de las Cosas de Yucatá́n)’는 이런 책이다.
란다의 마야문명이야기(Relació́n de las Cosas de Yucatá́n)’는 아메리카 대륙의 식민지 초기인 16세기에 에스빠냐 신부의 자격으로 아메리카 대륙에 건너가 마야 원주민들에게 선교 사업을 펼쳤던 디에고 데 란다(Fray Diego de Landa)가 마야문명 정복의 역사와 주변의 지리, 원주민들의 문화, 생활, 환경 등을 상세히 다룬 기록이다. 이 기록은 오늘날 우리가 중남미를 이해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사료중의 하나로 꼽힌다. 이것은 이 사료 번역의 역사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 책은 이미 19세기부터 세계 각국어로 번역되기 시작하여 마야 지역을 여행하는 관광객에서부터 학자와 문인에 이르기까지 실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역사자료로 혹은 하나의 문학작품으로 폭넓게 읽혀왔다. 굳이 우리나라의 경우와 비교한다면 사료로 잘 알려진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를 합쳐놓은 정도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미 유럽열강의 침략과 식민지화로 인하여 송두리째 잘려나간 고대 마야 원주민들의 문화를 일반이 새롭게 인식하고 그 가치를 찾는다는 교양의 의미에서 그리고 마야문명에 대한 학문적인 접근의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동반되는 사료라는 점에서 이 작품의 중요성을 제삼 제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 마야문명에 대한 연구에서 ‘란다의 마야문명이야기(Relació́n de las Cosas de Yucatá́n)’를 빼놓을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책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는 이유는 그 희소성에서도 기인한다. 아즈텍이라고 불리는 메시까(Mexica, Azteca)와 남아메리카의 잉까(Inca) 문명에는 상대적으로 더욱 많은 사료와 기록들이 남아있다. 반면에 마야를 연구하기 위한 식민지 초기의 종합적인 1차 사료는 여기에 소개하고 있는 ‘란다의 마야문명이야기(Relació́n de las Cosas de Yucatá́n)’가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유일한 작품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야문명에 대한 진지한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 책을 가장 먼저 찾게 된다.
이 작품이 지닌 또 다른 중요한 의의로는 그 기록의 정확성과 종합성을 들 수 있다. 아메리카대륙에서 최초의 정복 전쟁이 끝나고 식민지화가 막 시작되던 시기를 살면서 마야 사람들과 이들의 정치·경제·사회·문화·자연 등에 대하여 세밀하게 기록하였다는 점에서 이 책이 가지는 학술적인 의의는 실로 무한하다. 이 책의 저자인 란다는 젊은 나이에 이곳으로 건너와 자신이 직접 보고 느낀 그들의 생활을 하나하나 세밀하고도 사실적으로 기록하였다. 물론 기록의 내용에 그의 개인적인 생각과 감정, 주관적인 세계관과 종교관이 상당부분 포함된 것은 사실이지만 바로 이러한 점이 마야 인디오들에 대한 필자의 애증으로 나타나면서 단순한 보고서나 역사적인 기록과는 차이가 있는 문학적인 가치 또한 더해주고 있다.
한편 일반 사료의 난해함과 딱딱함에 비한다면 ‘란다의 마야문명이야기(Relació́n de las Cosas de Yucatá́n)’는 기행문과 감상문의 성격을 두루 가지고 있어서 읽는 이들에게 흥미와 관심을 준다. 건조하게 사실을 차분히 서술하다가도 강조의 부분에서는 감성의 높낮이가 격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러한 점에서 이 책은 감상문과 기행문, 조사보고서의 형식을 두루 갖추고 있으며 16세기에 쓰인 아메리카 대륙 최초의 작품들 중에서도 백미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언어학적인 측면에서는 16세기 에스빠냐어와 마야어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이용된다.
‘란다의 마야문명이야기(Relació́n de las Cosas de Yucatá́n)’의 내용과 저술동기
이 작품을 쓴 디에고 데 란다(Diego de Landa)는 16세기 아메리카 대륙에서 활동한 에스빠냐의 신부로 초기 식민지시대에 멕시코로 건너간 후 평생을 바쳐 마야 원주민들의 포교와 그들에 대한 저술활동에 힘 쏟은 사람이다. 그는 1524년 에스빠냐의 씨푸엔떼스(Cifuentes) 마을에서 태어나 17세의 나이에 프란시스코 수도회에 입문하였다. 그 뒤로 줄곧 신부의 길을 걷다가 1549년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가게 되었다. 이때 마야 지역은 이미 몬떼호(Montejo) 장군에 의하여 1520년대 이후부터 정복이 이루어지고 있었고, 40년대 이후로는 많은 지역이 에스빠냐의 복속아래 놓이게 되었다. 따라서 란다가 이곳에 도착했을 시기에는 본격적으로 성당이 세워지고 수도사들에 의한 포교활동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 일환으로 란다 역시 유까딴(Yucatá́n) 지역에 도착하여 1552년 유까딴(Yucatá́n) 잇사말(Itzamal) 지역의 과르디안(Guardí́an, 주임신부)으로의 부임을 시작으로 마야 원주민들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리고 1573년 당시 유까딴(Yucatá́n) 지역 가톨릭의 최고지도자라고 할 수 있는 메리다(Mé́rida)의 오비스뽀(Obispo, 주교)로 임명되었다.
이제 막 새롭게 접한 원주민들의 포교를 위하여 신부들을 비롯한 종교계 사람들은 그들의 언어와 관습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란다도 종교적인 필요에 의하여 그들의 생활과 언어를 공부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현지생활을 바탕으로 한 경험과 학문적인 호기심이 결합하여 ‘란다의 마야문명이야기(Relació́n de las cosas de Yucatán)’라는 대작이 탄생하기에 이른다.
책의 내용을 보면 앞부분에서는 멕시코 마야 원주민들이 사는 이 땅의 자연환경에 대한 기술을 시작으로 에스빠냐 사람들이 이곳을 어떻게 발견하고 정복하였는지에 대하여 말하고 있으며 지명의 유래가 무엇인지에 대하여도 서술하였다. 책의 중간부분에서는 건축과 종교, 음식, 문자, 산업, 공예, 관습, 역사, 생활 등에 대하여 구체적이고 광범위하게 다루었다. 이러한 내용은 한자 한자가 에스빠냐 정복 이전과 정복 당시 마야 사람들의 문화에 대한 이해를 가능하게해주는 가장 중요한 사료로 인정될 만큼 학문적인 비중이 크다. 그중에서도 시간과 달력에 대한 부분은 그가 언급한 내용이 유일무이한 것으로 오늘날 마야문자 이해의 실마리가 되었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과 가치가 높이 평가되고 있다. 책의 뒷부분에서는 이곳의 동식물에 관하여 서술하였고, 마지막 부분에서는 에스빠냐 사람들이 이 땅을 정복한 것이 원주민들에게 더 없이 좋고 은혜로운 일임을 강조하며 결론을 맺는다.
이러한 내용들은 란다가 유까딴(Yucatá́n)에서 직접 보고 느낀 것들을 토대로 원주민 지도자인 나치 꼬꼼(Nachi Cocom)이나 가스빠르 안또니오 치(Gaspar Antonio Chi)와 같은 현지인들과의 문답을 통해서 자료를 정리하며 집필을 완성해나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필자인 란다의 경험과 느낌이 책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특히 이곳에서 오랜 기간 머무르는 동안에 그가 관찰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동식물과 자연환경에 대한 기록은 그 세밀함에 매우 놀라울 따름이다. 란다는 그의 생애가운데 30년에 가까운 시간을 마야 원주민들과 함께하였다. 그들의 언어인 마야 유까떼꼬어(Maya yucateco)도 구사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실제로 그는 인디오들의 언어로 교리를 기록하였다고 스스로 편지에서 밝힌바있다. 이러한 그의 지식과 경험은 이 책의 저술에 많은 도움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정확한 집필 시기는 알 수 없지만 대략 1566년부터 수년의 기간이 걸린 것으로 보인다. 여러 복합적인 이유에서 집필이 이루어졌는데, 가장 직접적인 이유로는 에스빠냐 정부에 본인의 입장을 알리기 위한 목적을 들 수 있다. 아메리카대륙 정복의 초기였던 당시에는 새로운 땅에 대한 정복과 이권에 얽힌 다양한 이해관계가 대립되고 있었다. 원주민들을 대하는 에스빠냐 사람들과 각 행정관청의 입장도 차이를 보였다. 따라서 많은 분쟁이 생겨났고, 이 과정에서 란다도 분쟁의 한가운데에 휘말리게 된다. 원주민들을 탄압하였다는 이유로 문제가 제기되자 이를 해명하기 위하여 그가 직접 에스빠냐로 건너가게 되었다. 그리고는 왕과 식민지 행정을 관할하던 꼰세호 데 라스 인디아스(Consejo de las Indias, 인디아스 자문위원회)에 설명하기 위한 목적으로 그 시기에 맞추어 이 책의 집필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책의 내용을 살펴보면 원주민들이 우상숭배를 하고 기독교를 받아들이지 않으며, 행실이 좋지 않고 에스빠냐 사람들이 그들을 문명화시켜준 것에 대하여 크게 가치를 두지 못하기 때문에 만일 강경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다시 원래의 생활방식대로 돌아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즉 원주민들에 대한 탄압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점을 주장하기위하여 이 책을 저술하였다고 볼 수 있다.
다른 많은 정복자들과 신부들의 저술과 마찬가지로 지역과 지역주민에 대한 정보를 정리하는 데에도 집필의 목적을 둔 것으로 보인다. 원주민들의 정복과 교화를 위하여 그 지역의 환경과 주민들의 관습 등을 정리하여 정보를 제공하고자하는 성격을 띠고 있다. 이 사료의 원제에 등장하는 ‘Relació́n de las Cosas de Yucatá́n ...’에서 ‘Relació́n’이라는 용어는 일반적으로 식민지시대에 지방행정관들이나 사제들이 중앙정부에 제출하기 위하여 작성한 ‘보고서’를 뜻한다. 보통 수십 가지의 설문항목이 있고 이에 대하여 답하는 형식으로 한 지역을 관할하던 지방행정의 수장들이 작성하였으며 항목은 그 지역의 지명과 지리적인 위치, 자연환경, 풍습, 특산물 등을 다양하게 아우른다. 즉 식민지 지배를 위한 종합 자료구축에 목적을 두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란다의 마야문명이야기(Relació́n de las cosas de Yucatán)’는 보고서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그러나 본 란다의 저술은 ‘렐라씨온(Relación, 보고서)’의 형식을 그대로 취하지도 않을뿐더러 -렐라씨온(Relación, 보고서)은 설문지처럼 문답의 형식을 갖는다- 그 내용 또한 저자의 주된 관심분야를 자유롭게 기술하였다는 점에서 순수한 ‘렐라씨온(Relación, 보고서)’이라고는 볼 수 없다. 오히려 시간의 개념을 가지고 원주민들의 기원과 그들의 조상 그리고 오늘날에 이르게 된 과정에 대하여 역사적인 시각을 바탕으로 관찰하고 기록하였다는 점에서 역사서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보았을 때 ‘란다의 마야문명이야기(Relació́n de las cosas de Yucatán)’는 ‘청원서’와 ‘보고서’ 그리고 ‘역사서’의 성격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집필이나 행적에서 볼 수 있는 란다의 입장은 원주민들을 철저히 이교도로 규정하고 그들의 우주관과 세계관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는 많은 원주민들을 직접 화형에 처하는 등 그들을 죽이고 고문하는 데에 누구보다도 앞장섰던 사람이다. 결국 그러한 잔혹한 탄압으로 인하여 에스빠냐 사람들에게 고발을 당하였고, 본국인 에스빠냐로 출두하여 직접 해명을 해야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는 ‘란다의 마야문명이야기(Relació́n de las cosas de Yucatán)’라는 귀중한 사료를 제작한 동시에 원주민들의 책을 우상숭배의 도구로 규정하여 수많은 마야의 책을 불사른 장본인이기도 하다. 따라서 현재 남아있는 마야의 책들은 유일하게 세권이 전부인데, -꼬디쎄 마드리드(Códice Madrid), 꼬디쎄 드레스데(Códice Dresde), 꼬디쎄 빠리스(Códice Paris)- 이마저 자료의 부족과 마야 문자의 불완전한 해독으로 이해의 한계가 크다. 결국 마야 원주민들을 탄압한 장본인의 책이 고대 마야를 이해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사료가 되었다는 아이러니를 가진다. 란다의 종교적인 강경함과 원주민들에 대한 시각이 책의 전반을 통하여 강조와 왜곡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점에서 그의 저술 내용을 곧이곧대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불행히도 이 책의 원본은 현재까지 남아있지 않다. 한국어 번역본의 번역원본은 최초원본을 읽고 요약하여 복사한 것으로 이것마저 1616년의 필사본만이 전해지고 있다. 이 최초원본의 제목은 ‘Relación de las Cosas de Yucatán’으로 이를 직역하면 ‘유까딴(Yucatán)의 문물에 관한 보고서’ 혹은 ‘유까딴(Yucatán)의 문물에 대한 이야기’ 정도가 된다. 한국어본의 번역원본이자 현재 전해지고 있는 요약본의 제목은 ‘Relación de las Cosas de Yucatán, sacada de lo que escribió el padre fray Diego de Landa, de la orden de San Francisco(산 프란시스코 교파 소속의 디에고 데 란다 신부가 쓴 유까딴의 문물에 관한 보고서의 발췌본)’로 이 책이 발췌본 혹은 요약본이라는 사실이 제목의 뒷부분에 명시되어있다.
이 책은 그 중요성으로 인하여 식민지시대의 여러 사료들에 언급되었다. 식민지시대의 저자인 산체스 데 아길라르(Sánchez de Aguilar), 로뻬스 데 고마라(López de Gómara), 바르똘로메 데 라스 까사스(Bartolomé de las Casas)와 같은 사람들의 기록에서 란다의 최초원본에 대한 언급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란다가 활동했던 메리다(Mé́rida)의 산 프란시스코(San Francisco) 성당에 보관되어있었으나 현재는 그 흔적을 찾을 길이 없다. 불행 중 다행히도 프랑스의 사학자인 브라쉐르(Brasseur de Bourbourg)에 의하여 마드리드 역사박물관(Biblioteca de la Academia de la Historia de Madrid)에서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란다의 마야문명이야기(Relació́n de las cosas de Yucatán)’의 번역원본인 최초저술의 요약 필사본이 처음으로 발견되었고, 1864년 대중에게 발간되기에 이르렀다. 번역원본은 16세기 에스빠냐어로 작성되었으며, 현재 영어, 불어, 독어, 이탈리아어, 일본어 등 세계 각국어로 번역되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1864년 브라쉐르(Brasseur de Bourbourg)에 의한 최초의 필사본 원본소개와 불어로의 번역을 필두로 1881년 레온 로스니(Leon Losny)의 에스빠냐어본이 출간되었고, 1937년 윌리암 게이트(William Gates)의 영어본에 이어 1938년 알프레도 바레라 바스께스(Alfredo Barrera Vásquez)의 에스빠냐어로 된 멕시코본이 출간되었다. 1941년 알프레드 토설(Alfred M. Tozzer)에 의하여 다양한 주석과 해설이 곁들여진 영어본이 새롭게 출간되었으며, 이후 실바누스 몰리(Sylvanus G. Morley)와 같은 많은 학자들이 번역원본보다 더 많은 양의 주석과 설명을 덧붙여 새로운 번역본을 출간하였다. 가까운 일본에서도 이미 1982년 코이께 유우지(小池佑二)와 모리야 나가요시(林屋永吉)에 의하여 일본어 번역본이 출간되었다. 본 한국어본은 1959년 앙헬 마리아 가리바이(Angel María Garibay K.)에 의하여 멕시코에서 출간된 Garibay본을 기초로 번역되었다.
란다와 그의 저술관련 중요연대
-- 1524년 11월 12일(?) 에스빠냐 중부고원지방인 과달라하라(Guadalajara)의 씨푸엔떼스(Cifuentes)에서 출생.
-- 1541년 17세의 나이에 똘레도(Toledo)의 산 후안 데 로스 레예스(San Juan de los Reyes) 프란시스코 수도회에 입문하여 신부가 되다.
-- 1547년 니꼴라스 데 알발라떼(Nicolás de Albalate)를 따라 다른 다섯 명의 신부들과 함께 아메리카 대륙의 유까딴(Yucatá́n) 반도로 건너가다.
-- 1549년 25세에 유까딴(Yucatán)의 잇사말(Itzamal)에 정착하여 성직보조 일을 맡다.
-- 1552년 28세에 잇사말(Itzamal)의 과르디안(Guardí́an, 주임신부)으로 임명되다.
-- 1552년 28세에 이 지역 프란시스코 수도회 신부들의 거주지를 대체하기 위하여 새로운 수도원 건축임무를 맡다.
-- 1556년 32세에 유까딴(Yucatá́n) 지역 수도회의 꾸스또디오(Custodio, 감독관)로 임명되다.
-- 1560년 36세에 메리다(Mé́rida)의 과르디안(Guardí́an, 주임신부)으로 임명되다. 이때부터 마야원주민들에 대한 저술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 1561년 37세에 유까딴(Yucatá́n)의 쁘로빈씨알(Provincial, 주관구장)로 임명되다. 에스빠냐 농장주들이 바야돌릳(Valladolid)의 종교시설에 두 차례나 불을 지르는 사건이 발생한다. 종교인들과 농장주들 간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하여 또마스 로뻬스 메델(Tomás López Medel)이 1562년 유까딴(Yucatá́n)의 마니(Maní)에 종교재판소를 세우고 공식적으로 종교재판을 담당하게 된다.
-- 1562년 7월 12일 원주민들의 우상숭배를 중단시키기 위하여 대대적인 종교재판을 열어 수많은 원주민을 고문하고 화형에 처하다. 이러한 행동에 대한 항의가 제기되고 또랄(Toral) 신부가 당시 국왕인 펠리뻬 2세(Felipe II)에게 공식적인 항의서한을 보낸다. 란다는 이에 대한 해명을 목적으로 에스빠냐로 떠나게 된다.
-- 1563년 39세에 에스빠냐로 건너가다. 유까딴의 첫 번째 대주교(Primer Obispo de Yucatán)의 자리에 또랄(Toral) 신부가 부임하다. 란다는 에스빠냐의 바르셀로나(Barcelona)에서 프란시스코 수도회에 정황을 설명한다. 그리고 본인이 종교집행관의 허가를 소지하고 있다는 서류를 보여주는 등의 적극적인 대처를 통하여 문제를 해결한다. 에스빠냐에 체류하는 동안에 산 후안 데 디오스(San Juan de Dios) 수도사의 자격으로 과달라하라(Guadalajara)와 똘레도(Toledo) 등지를 방문한다.
-- 1566년 에스빠냐에 체류하던 중에 본 저서의 저술을 시작하다. 원주민들을 탄압한다는 비판에 대응하기 위한 변호자료로 본 저술의 일부를 집필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에 유까딴(Yucatán) 대주교의 직이 또랄(Toral) 신부에서 란다 신부로 바뀌게 된다. 즉 란다가 정쟁에서 승리하여 새로운 대주교로 임명된다.
-- 1572년 48세에 세비야(Sevilla)에서 다시 배를 타고 유까딴(Yucatán)으로 건너가다. 이때 저술의 원본은 에스빠냐에 두고 한권의 필사본만 들고 여행을 떠난 것으로 보인다. 유까딴 대주교(Obispo de Yucatán)로의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 1575년 멕시코(México)에서 마야어로 된 설교문집이 출간되다.
-- 1579년 4월 29일 유까딴(Yucatán)의 메리다(Mérida)에서 55세의 나이로 사망하다. 시신은 메리다(Mé́rida) 성당에 안치되었으나 150년 후에 그의 고향인 씨푸엔떼스(Cifuentes)로 돌아가게 된다.
-- 1862년 정확히 알 수 없는 과정을 거쳐서 란다의 요약본이 프랑스 사람인 브라쉐르(Charles Etienne Brasseur de Bourbourg)에 의하여 마드리드 역사박물관(Academia de la Historia de Madrid)에서 발견되다.
-- 1864년 ‘Relation des Choses de Yucatán de Diego de Landa’라는 제목으로 스페인어-프랑스어 최초의 대조번역본이 브라쉐르(Brasseur de Bourbourg)에 의하여 출간되다.
-- 1881년 마드리드(Madrid)에서 ‘Relación de las Cosas de Yucatán’이라는 제목으로 최초의 스페인어본이 출간되다.
-- 1890년 마드리드 역사 아카데미에서 또 다른 에스빠냐어 버전이 출간되다.
-- 1928-29년 ‘Relation de des Choses de Yucatá́n’ 스페인어-프랑스어 번역본이 출간되다(전체번역본이 아닌 일부 텍스트 번역본이다).
-- 1936년 씨푸엔떼스(Cifuentes)에 안치되어있던 란다의 시신이 에스빠냐내전 중에 훼손되다.
-- 1937년 ‘Yucatan before and after the Conquest by Diego de Landa, Willian Gates, Baltimore’라는 제목으로 최초의 영어번역본이 출간되다.
-- 1938년 알프레도 바레라 바스께스(Alfredo Barrera Vazquez)에 의하여 1981년 프랑스어번역본이 출간되다.
-- 1938년 엑또르 뻬레스(Hector Perez)에 의하여 란다가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서간문이 출간되다.
-- 1941년 란다의 출생지인 씨푸엔떼스(Cifuentes)의 성당에 보관되어있던 요약본이 어느 날 갑자기 행방불명되다. 이후 알 수 없는 과정을 거쳐서 미국 하버드 대학교(Harvard University)의 피바디 박물관(Peabody Museum)이 최종적으로 구매하여 소장하게 된다. 이 요약본은 알프레드 토설(Alfred M. Tozzer)에 의하여 번역되어 출간된다.
-- 1959년 본 한국어 번역본의 원본으로 삼은 Garibay본이 앙헬 마리아 가리바이(Angel María Garibay K.)에 의하여 출간되다.
이런저런 일러두
이 책의 번역을 위하여 번역의 원본으로 삼은 책은 1959년 앙헬 마리아 가리바이 K.(Angel María Garibay K.)가 편집한 뽀루아(Porrú́a) 출판사의 책이다. 이 책의 원본은 17세기에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 본 역자는 Garibay본으로 한국어 번역본의 초고원고를 작성하였고, 그 후로 마리아 델 까르멘 레온 까사레스(María del Carmen León Cázares)가 편집하고 1994년 멕시코 문화예술원(Consejo Nacional para la Cultura y las Artes)에서 출판한 León본과의 대조작업을 하였다. 또한 내용을 확인하고 이해를 돕기 위하여 영어 번역본인 Gates본을 참고하였으며, 또 다른 영어 번역본인 Tozzer본과의 대조작업을 하였다. 에스빠냐어를 옮기는 과정에서 FAMSI(Foundation for the Advancement of Mesoamerican Studies. INC)본 역시 중요하게 다루었다. 이렇듯 각양각색의 본을 일일이 확인하고 참조한 이유는 500여 년 전에 원본이 최초로 작성되었고, 그 후로 요약본만이 남아있는 현실을 제일먼저 꼽을 수 있다. 또한 요약본도 고어로 작성되었기 때문에 원본의 상태에 따라서 그리고 각 글자의 모호함으로 인하여 읽어나가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는 점도 한 몫 한다. 각 본에 따라 차이가 나기도하는데, 그것이 크건 작건 간에 의미상에 커다란 변화를 줄 수 있으므로 이러한 부분을 일일이 확인하여 그 다름을 최대한 밝히고자 하였다. 그리고 문장의 뜻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거나 그 밖의 필요한 경우에는 그에 따른 번역의 차이도 주석을 붙여 설명하였다.
작품의 특수한 성격상 올바른 이해를 돕기 위하여 당시의 역사적인 상황과 전후좌우의 맥락을 이해해야할 때가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역자의 의견과 설명을 보태어 서술하였다. 또한 이 책이 여러 사람들에 의한 필사와 요약을 거쳤다보니 수많은 필사과정에서 각 필사를 한 사람들에 의하여 첨삭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왜곡과 첨삭의 가능성이 있는 부분들은 최대한 가려서 이해할 필요가 있기에 또 다른 주석이 붙게 되었다. 한편 역사적인 사실과 정황 그리고 자연과학적인 정보들에 있어서 란다의 글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많은 부가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따라서 이 역시 수많은 주를 넣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된다. 역자는 이와 관련하여 여러 자료들을 종합하고 편집하여 서술하였고, 필요한 경우에는 그 출처를 밝혀두었다. 그중 가장 많이 이용된 자료는 토설(Tozzer)의 연구이다. 토설(Tozzer)은 스페인어본을 영어본으로 번역하였을 뿐만 아니라 비록 그의 연구가 오래된 것이기는 하나 방대한 양의 주석을 달아 란다 저술의 연구에 필요한 정보들을 가장 충실히 제공하였다. 필요에 따라 그의 자료를 바탕으로 역자의 설명을 더하는 방식으로 본 번역본에 참고하였다.
이 책은 여러 목적으로 번역되었지만 기본적으로는 사료의 가치가 중요시된다. 따라서 의역이 갖는 정보의 왜곡을 방지하기 위하여 상당히 어색한 한국어 표현임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직역을 한 부분이 많다. 의역을 하여 깔끔한 한국어 표현을 하고 의미를 확실하게 하는 한편 독자들에게 독서의 편안함을 안겨주고 싶은 마음이 왜 없었겠는가.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써 생기는 오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이 책이 가지는 의미를 최대한 살리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물론 역자의 능력부족으로 번역이 완벽하지 못한 부분에 있어서는 역자의 무식함에 대한 용서를 구할 뿐이다.
문장구조에서도 가능한 한 원문의 어순을 그대로 지키고자 노력하였다. 에스빠냐어와 한국어는 분명한 어순의 차이를 갖는다. 그러다보니 에스빠냐어의 어순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애당초 무리이기도하다. 그렇지만 특히 긴 문장에서 내용을 끊어야할 경우를 비롯하여 한국어가 다소 어색하거나 중복되는 경우가 있더라도 최대한 원문의 순서에 준하려고 노력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이해가 힘든 상황이나 오해가 있을 수 있는 경우에는 그리고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경우에는 괄호를 이용하여 번역문의 뜻을 보다 명확하게 하거나 각주를 이용하여 보충설명을 하였다. 괄호는 일반괄호(***)와 꺾쇠괄호[***]가 있는데, 일반괄호는 역자의 설명이고 꺾쇠괄호는 원본을 읽고 편집한 가리바이(Garibay)의 설명이다.
최초의 사료원문에는 쉼표나 마침표와 같은 문장부호가 없었다. 이것은 수백 년 전에 쓰인 에스빠냐어 문장의 일반적인 특징이다. 여기에 붙은 문장부호는 원문을 해독하고 편집한 학자들이 편의를 위하여 임의로 붙인 것이다. 당연히 마침표나 쉼표의 위치에 따라 문장의 의미가 완전히 변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따라서 문장부호와 관련하여 이해를 할 때에는 이러한 점에 주의해야할 것이다. 전반적으로 에스빠냐어의 문장부호가 그 뜻에 맞추어 표기되어있기 때문에 문장부호의 위치를 최대한 존중하여 번역문에서도 대체적으로 같은 위치에 놓일 수 있도록 문장을 쉬거나 나누어놓았다. 그러나 문장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역자의 임의대로 원문과 다른 문장부호를 표시한 경우도 있다. 마침표의 경우에는 예외 없이 에스빠냐어로 된 번역원문을 그대로 따랐다. 문장나누기에서는 한 문장이 끝나면 줄을 바꾸었고, 한 단락이 끝나면 줄을 바꾸고 난 후 다시 한 줄을 띄었다. 고문의 특징 중의 하나가 만연체라는 점인데, 이 책의 원본도 예외가 아니다. 따라서 문장을 최대한 분리하여 이해를 돕고자하였다. 가독성을 높이고 각 문장을 구분하기 위하여 원문의 행이 바뀌는 경우에는 번역문에서 한 줄의 공간을 두었고, 행을 달리하지 않고 마침표 다음에 다른 문장이 시작되는 경우에는 번역문에서 행을 바꾸어 다른 줄에서 시작하였다. 원문에서는 문장이 끝나지 않았으나 만연체인 점을 고려하여 문장의 이해를 돕고자 임의로 문장을 나누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경우에는 번역본상 마침표가 아닌 쉼표로 표기하였다. 한편 학술적인 활용도를 높이고 각 문장의 구분을 쉽게 하기 위하여 마침표로 구분된 문장에 각 장의 번호와 일련번호를 붙여서 고유한 구분을 하였다(예 40장의 3번째 문장: 40-3).
이 책을 만들기 위하여 잘라낸 나무에게 보내는 궁핍한 변명
이 책을 만들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나무들이 잘려서 종이가 되었는가를 떠올려보면 어김없이 식은땀이 흐른다. 쓰레기 같은 책을 내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 인류와 이 세상에 중대한 죄를 범하는 것이리라. 최소한 이 책이 그보다는 더 나은 가치를 가지고 있기를 바란다.
- 본문
란다의 유까딴 견문록
란다의 마야문명이야기
RELACIÓ́N DE LAS COSAS DE YUCATÁ́N
I 유까딴(YUCATÁ́N)에 대한 묘사. - 다양한 계절에 대하여.
I DESCRIPCÍÓN DE YUCATÁ́N. - VARIEDAD DE LAS ESTACIONES.
1-1 유까딴(Yucatán)은 일부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섬도 아니고 바다로 향해있는 곶(岬)도 아니다, 이곳은 육지인데 꼬또츠(Cotoch) 곶(岬)의 골포 둘세(Golfo Dulce) 앞 바다로 난 아쎈씨온 만(Bahía de la Ascensión, 승천灣)을 통해서 바닷물이 들어오기 때문에 외형적으로만 그렇게 보일뿐이다, 또한 다른 방면인 멕시코(México) 쪽으로 깜뻬체(Campeche)에 이르기 전까지 데스꼬노씨다(Desconocida)라고 (불리는) 지역이 형성하는 곶(岬)으로 인하여, 혹은 뿌에르또 레알(Puerto Real)과 도스 보까스(Dos Bocas) 쪽으로 호수가 펼쳐지면서 바다가 이어지기 때문에 (유까딴(Yucatán)이 마치 섬이나 곶(岬)처럼 보일뿐이다).
Que Yucatán no es isla ni punta que entra en el mar como algunos pensaron, sino tierra firme y que se engañaron por la punta de Cotoch que hace el mar entrando por la bahía de la Ascensión hacia Golfo Dulce, y por la punta que por esta otra parte, hacia México, hace la Desconocida antes de llegar a Campeche, o por el extendimiento de las lagunas que hace el mar entrando por Puerto Real y Dos Bocas.
1-2 이곳은 산지가 없는 매우 평평한 땅이다, 그렇기 때문에 [해안가에] 아주 가까이 가기 전까지 선상에서 (이 땅을) 발견하기란 쉽지가 않다, 그렇지만 예외적으로 깜뻬체(Campeche)와 참뽀똔(Champotón) 사이에는 낮은 언덕들이 보이며 그중에는 모로 데 로스 디아블로스(Morro de los diablos)라고 불리는 작은 봉우리가 있다.
Que es tierra muy llana y limpia de sierras, y que por esto no se descubre desde los navíos [sino] hasta muy cerca [de la costa], salvo entre Campeche y Champotón donde se miran unas serrezetas y un Morro de ellas que llaman de los diablos.
1-3 [유까딴(Yucatán)]은 베라끄루스(Veracruz)에서 까또체(Catoche) 곶(岬) 쪽으로 (각도 상) 20도 미만의 지점에 위치하고, 뿌에르또 레알(Puerto Real)의 강어귀 쪽으로는 23도가 조금 넘는 지점에 위치한다, 이 땅의 끝과 끝 지점을 연결하는 직선거리[는] 130레구아(legua) 정도 된다.
Que viniendo de Veracruz por parte de la punta de Catoche [Yucatán], está en menos de 20 grados, y por la boca de Puerto Real en más de 23, y que bien tiene de un cabo al otro 130 leguas de largo [en] camino derecho.
1-4 이곳의 해안은 (수심이) 낮기 때문에 규모가 큰 선박들은 육지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항해한다.
Que su costa es baja, y por esto los navíos grandes van algo apartados de tierra.
1-5 해변은 굉장히 지저분하고 암초와 거친 돌들로 가득해서 선박의 줄을 많이 상하게 한다, 그러나 진흙이 많기 때문에 해안에서 배가 좌초된다고 하더라도 인명의 손실이 적다.
Que la costa es muy sucia y está llena de peñas y pizarrales ásperos que gastan mucho los cables de los navíos, y que tiene mucha lama, por lo cual aunque los navíos zozobren en la costa, se pierde poca gente.
1-6 이곳은 조수간만의 차가 매우 크다, 특히 깜뻬체만(Bahía de Campeche)이 더욱 그러해서 많은 경우에 반 레구아(legua) 정도가 물에 잠기지 않는 곳들도 있다.
Que es tan grande la menguante del mar, en especial en la bahía de Campeche, que muchas veces queda media legua en seco por algunas partes.
1-7 이러한 커다란 조수간만의 차로 갯벌과 해초 그리고 웅덩이에는 작은 물고기들이 많이 살고 있다, 그리고 이를 이용하여 많은 사람들이 살아간다.
Que con estas grandes menguantes se quedan en el légamo, y lamas y charcos, muchos pescados pequeños de que se mantiene mucha gente.
1-8 유까딴(Yucatán) 반도를 횡단하는 조그마한 산맥이 있는데, 이 산맥은 참뽀똔(Champotón) 근처에서 시작해서 참뽀똔(Champotón)의 반대편 끝 지점에 위치한 살라망까(Salamanca) 마을에까지 이른다.
Que atraviesa a Yucatán de esquina a esquina una sierra pequeña que comienza cerca de Champotón y va hasta la villa de Salamanca que es el cornijal contrario al de Champotón.
1-9 이 산맥은 유까딴(Yucatán)을 (남북의) 두 지역으로 갈라놓는다, 남쪽의 라깐돈(Lacandón)과 따이사(Taiza) 방면으로는 비가 올 때만 물을 구할 수 있기 때문에 물 부족으로 인하여 사람들이 살지 않는다.
Que esta sierra divide a Yucatán en dos partes, y que la parte de mediodía, hacia Lacandón y Taiza, está despoblada por falta de agua, que no la hay sino cuando llueve.
다른 북쪽방면으로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La otra que es al norte, está poblada.
1-10 이 땅에는 태양이 타는 듯한 더위가 계속되지만 산들바람이나 동풍과 같은 시원한 바람이 항상 많이 불고, 오후에는 바닷바람이 불어온다.
Que esta tierra es muy caliente y el sol quema mucho aunque no faltan aires frescos como brisa o solano que allí reina mucho, y por las tardes la virazón de la mar.
1-11 이곳 사람들은 장수(長壽)를 하는데, 140세에 이르는 노인도 있었다.
Que en esta tierra vive mucho la gente, y que se ha hallado hombre de ciento cuarenta años.
1-12 겨울은 프란치스코 성인(San Francisco)의 축일에서부터 시작되어 3월 말경까지 계속된다, 이 시기에는 북풍이 불어오며 사람들의 복장이 형편없기 때문에 심한 감기와 열병에 걸리게 된다.
Que comienza el invierno desde San Francisco y dura hasta fines de marzo, porque en este tiempo corren los nortes y causan catarros recios y calenturas por estar la gente mal vestida.
1-13 1월말부터 2월 사이에는 태양이 작열하는 짧은 여름과 같은 기간이 있다, 이때는 비가 내리지 않지만 초승달이 뜨는 무렵부터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Que por fines de enero y febrero hay un veranillo de recios soles y no llueve en ese tiempo sino a las entradas de las lunas.
1-14 우기는 4월에 시작해서 9월까지 이어지고 이 시기에 모든 농작물의 파종이 이루어진다, 이렇게 우기가 계속되는 동안에도 농작물들은 결실을 맺는다; 프란치스코 성인(San Francisco)의 축일을 전후하여 특정한 종류의 조생종 옥수수를 파종한다.
Que las aguas comienzan desde abril y duran hasta septiembre, y que en este tiempo siembran todas sus cosas y vienen a maduración aunque siempre llueva; y que siembran cierto género de maíz por San Francisco que se coge brevemente.
II 이 지역 이름의 유래와 이곳의 사정.
II ETIMOLOGÍ́A DEL NOMBRE DE ESTA PROVINCIA. - SITUACIÓN DE ELLA.
2-1 이 지방은 인디오들 말로 칠면조와 사슴의 땅이라는 뜻의 울루우밀 꾸츠 예뗄 쎄(Uluumil cutz yetel ceh)라고 불린다, 또한 앞서 이야기하였듯이 만(灣)과 강어귀로 인하여 사람들이 착각을 하는 바람에 섬이라는 뜻의 뻬뗀(Petén)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Que esta provincia se llama en lengua de los indios Uluumil cutz yetel ceh que quiere decir tierra de pavos y venados, y que también la llamaron Petén que quiere decir isla, engañados por las ensenadas y bahías dichas.
2-2 프란씨스꼬 에르난데스 데 꼬르도바(Francisco Hernández de Córdoba)는 그가 이 땅에 도착해서 내린 곶(岬)을 꼬또츠(Cotoch) 곶(岬)이라고 불렀고, 그곳에서 만난 몇 명의 인디오 어부들에게 여기가 어디냐고 물었다, 그들이 대답하기를 우리들의 집과 우리들의 조국이라는 뜻의 꼬또츠(Cotoch)라고 하였는데, 이를 계기로 이 곶(岬)의 이름은 꼬또츠(Cotoch)라고 불리게 되었다, 계속해서 손짓발짓으로 당신들의 땅이 어떠냐고 물어보니 그들은 그렇게 말한다라는 뜻의 씨우딴(Ciuthan)이라고 대답하였다; 에스빠냐 사람들은 이 땅을 유까딴(Yucatán)이라고 불렀고, 이러한 이야기는 처음으로 총독과 함께 했던 블라스 에르난데스(Blas Hernández)라는 어느 늙은 정복자에 의해 전해지게 되었다.
Que cuando Francisco Hernández de Córdoba llegó a esta tierra saltando en la punta que él llamó cabo de Cotoch, halló ciertos pescadores indios y les preguntó qué tierra era aquella, y que le respondieron cotoch, que quiere decir nuestras casas y nuestra patria, y que por esto se puso este nombre a aquella punta, y que preguntándoles más por señas que cómo era suya aquella tierra, respondieron ciuthan que quiere decir, dícenlo; y que los españoles la llamaron Yucatán, y que esto se entendió de uno de los conquistadores viejos llamado Blas Hernández que fue con el adelantado la primera vez.
2-3 유까딴(Yucatán)의 남쪽에는 따이사(Taiza) 강들과 라깐돈(Lacandón) 산맥들이 있고, 남쪽과 서쪽사이에는 치아빠[스](Chiapa[s]) 지역이 자리한다, 이 지역을 지나려면 산에서 내려오는 네 개의 강을 가로질러야 하는데, 이 네 개의 강은 다른 강들과 합류하여 그리할바(Grijalva)가 따바스꼬(Tabasco)에서 발견한 산 뻬드로 산 빠블로(San Pedro y San Pablo) [강을] 이룬다; 서쪽에는 시깔랑고(Xicalango)와 따바스꼬(Tabasco)가 있는데, 이 둘은 같은 지역이다.
Que Yucatán, a la parte del mediodía, tiene los ríos de Taiza y las sierras de Lacandón, y que entre mediodía y poniente cae la provincia de Chiapa[s], y que para pasar a ella se habían de atravesar los cuatro ríos que descienden de las sierras que con otros se viene a hacer [el de] San Pedro y San Pablo, río que descubrió en Tabasco Grijalva; que al poniente está Xicalango y Tabasco, que son una misma provincia.
2-4 따바스꼬(Tabasco)와 유까딴(Yucatán) 사이에는 바다와 만나는 두 개의 강 하구가 있다, 그중 큰 것은 폭이 1레구아(legua)이고, 다른 하나는 그렇게 크지 않다.
Que entre esta provincia de Tabasco y Yucatán están las dos bocas que rompe el mar, y que la mayor de éstas tiene una legua grande de abertura, y que la otra no es muy grande.
2-5 이러한 강 하구들을 통하여 바닷물이 세차게 들어와 커다란 호수를 이루는데, 이곳에는 온갖 종류의 물고기가 많이 살고 있다, 또한 작은 섬들이 빼곡하게 들어차있기 때문에 인디오들은 나무들에 표시를 해놓아 유까딴(Yucatán)과 따바스꼬(Tabasco)를 오고가는 배들의 이정표로 삼는다; 이 섬들과 해변 그리고 백사장에는 수많은 종류의 바닷새가 있다, 새들은 탄성이 절로 나올 만큼 굉장히 아름다우며; (이곳에서) 돼지, 사슴, 토끼와 같은 이 지방 특유의 동물들과 유까딴(Yucatán)에는 없는 원숭이들을 마음껏 사냥할 수 있다.
Que entra el mar por estas bocas con tanta furia que se hace una gran laguna abundante de todos pescados y tan llena de isletas, que los indios ponen señales en los árboles para acertar el camino para ir o venir navegando de Tabasco a Yucatán; y que estas islas y sus playas y arenales están llenos de tanta diversidad de aves marinas que es cosa de admiración y hermosura; y que también hay infinita caza de venados, conejos, puercos de los de aquella tierra, y monos, que no los hay en Yucatán.
2-6 놀라울 정도로 많은 이구아나를 볼 수 있다, [작은 섬들] 중에는 띡스첼(Tixchel)이라고 불리는 마을이 있다.
Que hay muchas iguanas que espanta, y en una de [las isletas] está un pueblo que llaman Tixchel.
2-7 (유까딴(Yucatán)의) 북쪽에는 쿠바(Cuba) 섬이 있고, 바로 맞은편으로 60레구아(legua)쯤 떨어진 곳에는 아바나(Habana)가 있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삐노스(Pinos)라고 하는 쿠바(Cuba)에 속한 작은 섬이 나온다.
Que al norte tiene la isla de Cuba, y a 60 leguas muy enfrente la Habana, y algo adelante una islilla de Cuba que dicen de Pinos.
2-8 (유까딴(Yucatán)의) 동쪽으로는 온두라스(Honduras)가 있고, 온두라스(Honduras)와 유까딴(Yucatán) 사이에는 그리할바(Grijalva)가 아쎈씨온 만(Bahía de la Ascensión, 승천灣)이라고 이름붙인 아주 커다란 강어귀가 있다, 그곳에는 조그만 섬들이 아주 많아서 배들이 침몰하기 쉬운데, 특히 온두라스(Honduras)와 유까딴(Yucatán)을 오가며 무역을 하던 배들이 (많은 피해를 입었다); 약 15년 전에 옷과 많은 사람들을 실은 배 한 척이 침몰한 적이 있다, 그때 마후엘라스(Majuelas)와 네 명을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들이 익사하였다, (마후엘라스(Majuelas)와 네 명의 사람들은) 나무로 된 커다란 배 조각을 부둥켜안고 표류하며 삼사일동안 작은 섬에조차 닿지 못한 채 그저 헤매기를 반복하였다, (결국) 다른 네 명은 모두 힘이 빠져 익사하였고, 마후엘라스(Majuelas)만 초죽음 상태가 되어 가까스로 (물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는 조개와 소라를 먹으며 점차 의식을 회복했고; 있는 힘을 다해 나뭇가지로 뗏목을 만들어 작은 섬에서 육지로 건너가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육지에 도달한 후 해안가에서 먹을 것을 찾던 중에 바닷게한테 물려 엄지손가락의 첫 번째 관절까지 잘리는 아주 큰 고통을 맛보았다.
Que al oriente tiene a Honduras y que entre Honduras y Yucatán se hace una muy gran ensenada de mar [a] la cual llamó Grijalva Bahía de la Ascensión, y que está tan llena de isletas y que se pierden en ellas [los] navíos, principalmente los de la contratación de Yucatán a Honduras; y que hará 15 años que se perdió una barca con mucha gente y ropa, y al zozobrar el navío se ahogaron todos salvo un [tal] Majuelas y otros cuatro que se abrazaron a un gran pedazo de árbol del navío y anduvieron así tres o cuatro días sin poder llegar a ninguna de las islillas, y que se ahogaron faltándoles las fuerzas, menos Majuelas que salió medio muerto y tornó en sí comiendo caracolejos y almejas; y que desde la islilla pasó a tierra en una balsa que hizo de ramas como mejor pudo; y pasado a tierra firme, buscando de comer por la ribera, topó con un cangrejo que le cortó el dedo pulgar por la primera coyuntura con gravísimo dolor.
(갖가지 불운으로) 조심스러워진 마후엘라스(Majuelas)는 살라망까(Salamanca) 마을 쪽의 험준한 숲으로 향하였다, 날이 저물자 나무 위로 올라갔는데, 거기서 커다란 호랑이 한 마리가 암사슴의 뒤를 슬그머니 쫒아가 잡아먹는 것을 보았다, [다음날] 아침 그는 남겨진 (고기를) 먹었다.
Y tomó a tiento la derrota por un áspero monte para la villa de Salamanca, y que anochecido se subió a un árbol y que desde allí vio un gran tigre que se puso en acechanza de una cierva, y se la vio matar y que la mañana [siguiente] él comió de lo que había quedado.
2-9 유까딴(Yucatán) 아래쪽의 꼬또츠(Cotoch) 곶(岬) 맞은편에는 꾸스밀(Cuzmil)이 있다, 바다로 인하여 형성된 5레구아(legua)의 상당히 빠른 해협이 (꾸스밀(Cuzmil) 섬과 꼬또츠(Cotoch) 곶(岬)) 사이를 (관통한다).
Que Yucatán tiene algo más abajo y enfrente de la punta de Cotoch a Cuzmil, [a] 5 leguas de una canal de muy grande corriente, que hace el mar entre ella y la isla.
2-10 꾸스밀(Cuzmil)은 길이 15레구아(legua), 폭 5레구아(legua)인 섬으로 유까딴(Yucatán)의 언어와 풍습을 지닌 적은 수의 인디오들이 살고 있다, 또한 이 섬은 적도로부터 20도 가량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다.
Que Cuzmil es isla de quince leguas de largo y cinco de ancho, en que hay pocos indios y son de la lengua y costumbres de los de Yucatán, y está en 20 grados a esta parte de la equinoccial.
2-11 여인들의 섬(Isla de las Mujeres)은 꼬또츠(Cotoch) 곶(岬)으로부터 13레구아(legua) 정도 아래쪽에 위치하며, 에깝(Ekab) 맞은편으로는 육지에서부터 2레구아(legua) 정도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다.
Que la isla de las Mujeres está a trece leguas abajo de la punta de Cotoch y a dos leguas de tierra enfrente de Ekab.
III 헤로니모 데 아길라르(GERÓ́NIMO DE AGUILAR)의 포로생활. - 에르난데스 데 꼬르도바(HERNÁ́NDEZ DE CÓ́RDOBA)와 그리할바(GRIJALVA)의 유까딴(YUCATÁ́N) 탐험.
III CAUTIVERIO DE GERÓ́NIMO DE AGUILAR. ‐ EXPEDICIONES DE HERNÁ́NDEZ DE CÓ́RDOBA Y GRIJALVA A YUCATÁ́N.
3-1 사람들이 말하기를 유까딴(Yucatán)에 최초로 도착한 에스빠냐 사람들은 에씨하(Ecija) 출신의 헤로니모 데 아길라르(Gerónimo de Aguilar)와 그의 동료들이라고 한다, 그들은 1511년 디에고 데 니꾸에사(Diego de Nicuesa)와 바스꼬 누녜스 데 발보아(Vasco Núñez de Balboa)의 불화로 인하여 다리엔(Darién)이 혼란에 빠지자 해군제독과 사령관에게 그곳의 상황을 전하는 한편 왕의 20,000두까도(ducado)를 운반할 목적으로 범선을 타고 산또 도밍고(Santo Domingo)로 향하던 발디비아(Valdivia)를 따라 항해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하마이까(Jamaica)에 도착할 무렵 비보라스(V́íboras)라는 곳에서 범선이 침몰하여 스무 명의 사람들만이 살아남게 되었다, 그들은 발디비아(Valdivia)와 함께 돛도 없이 겨우 형편없는 노만 몇 개 있는 작은 배로 옮겨 탔다, 그리고는 13일 동안 식량도 없이 바다를 헤매게 되었다.
Que los primeros españoles que llegaron a Yucatán, según se dice, fueron Gerónimo de Aguilar, natural de Ecija, y sus compañeros, los cuales, el año de 1511, en el desbarato del Darien por las revueltas entre Diego de Nicuesa y Vasco Núñez de Balboa, siguieron a Valdivia que venía en una carabela a Santo Domingo, a dar cuenta al Almirante y al Gobernador de lo que pasaba, y a traer 20 mil ducados del rey; y que esta carabela, llegando a Jamaica, dio en los bajos que llaman de Vívoras donde se perdió, no escapando sino 20 hombres que con Valdivia entraron en un batel sin velas y con unos ruines remos y sin mantenimiento alguno anduvieron trece días por el mar.
굶주림으로 거의 절반 정도가 목숨을 잃고 난 후에야 그들은 유까딴(Yucatán) 해변의 마야(Maya)라는 이름을 가진 마을에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이곳이 마야(Maya)라고 불렸기 때문에 유까딴(Yucatán)의 언어 역시 마야의 언어(言語, Lengua de maya)라는 뜻의 마야딴(Mayathan)으로 불리게 되었다.
Después de muertos de hambre casi la mitad, llegaron a la costa de Yucatán, a una provincia que llaman de la Maya, de la cual la lengua de Yucatán se llama mayathan, que quiere decir lengua de maya.
3-2 이 불쌍한 사람들은 어느 나쁜 까씨께(Cacique, 촌장)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그 까씨께는(Cacique, 촌장)는) 발디비아(Valdivia)와 다른 네 명의 동료들을 그들의 우상들에게 제물로 바쳤다, 그리고는 (제물로 바쳐진 사람들의) [인육으로] 사람들에게 축제를 열었고, 더욱 살을 찌우기 위하여 아길라르(Aguilar)와 게레로(Guerrero) 그리고 다른 대여섯 명의 동료들을 가두어 놓았다, 그러나 그들은 감옥을 뚫고나와 숲으로 도망을 쳤다. Que esta pobre gente vino a manos de un mal cacique, el cual sacrificó a Valdivia y a otros cuatro a sus ídolos y después hizo banquetes [con la carne] de ellos a la gente, y que dejó para engordar a Aguilar y a Guerrero y a otros cinco o seis, los cuales quebrantaron la prisión y huyeron por unos montes.
그들은 (도망쳐 나온) 촌장과 적대관계에 있던 더욱 자비로운 촌장을 만나게 되었고 그의 노예로 받아들여졌다; 촌장의 후계자 역시 그들에게 좋은 대우를 해주었다, 그러나 결국 헤로니모 데 아길라르(Gerónimo de Aguilar)와 곤살로 게레로(Gonzalo Guerrero)를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들은 병에 걸려 목숨을 잃었다, 그중 독실한 기독교인이던 아길라르(Aguilar)는 몇 권의 기도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의례가 있는 날을 알 수 있었다.
Y que aportaron a otro señor enemigo del primero y más piadoso, el cual se sirvió de ellos como de esclavos; y que el que sucedió a este señor los trató con buena gracia, pero que ellos, de dolencia, murieron quedando solos Gerónimo de Aguilar y Gonzalo Guerrero, de los cuales Aguilar era buen cristiano y tení́a unas horas por las cuales sabí́a las fiestas.
(헤로니모 데 아길라르(Gerónimo de Aguilar)는) 1519년 에르난도 꼬르떼스(Hernando Cortés) 후작이 (이곳에) 도착함으로써 구조될 수 있었다, (인디오들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었던 게레로(Guerrero)는 유까딴(Yucatán)의 살라망까(Salamanca)인 첵떼말(Chectemal)로 가서 나찬깐(Nachancán)이라고 불리는 촌장의 무관(武官)이 되었다, 그리고 몇 차례에 걸친 적들과의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는 인디오들에게 요새와 보루를 짓는 법을 보여주었고, 싸우는 기술을 전수해주었다, 이 모든 업적으로 인하여, 그리고 그 스스로가 원주민들의 (문화를) 받아들임으로써 (인디오들로부터) 명성을 얻을 수 있었고, 인디오들은 그를 높은 귀족집안의 여자와 혼인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렇게 게레로(Guerrero)는 어느 인디오여자와의 사이에서 자식들을 두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아길라르(Aguilar)처럼 그곳을 빠져나올 생각을 하기보다 몸에 문신을 새기고 머리를 길렀으며 인디오들처럼 귀걸이를 하기위하여 귀에 구멍을 뚫었다, 또한 그가 인디오들처럼 우상숭배를 했을 것으로도 생각된다.
Y que éste se salvó con la ida del marqués Hernando Cortés, el año de 1519, y que Guerrero, como entendía la lengua, se fue a Chectemal, que es la Salamanca de Yucatán, y que allí le recibió un señor llamado Nachancán, el cual le dio a cargo las cosas de la guerra en que [est]uvo muy bien, venciendo muchas veces a los enemigos de su señor, y que enseñó a los indios pelear mostrándoles [la manera de] hacer fuertes y bastiones, y que con esto y con tratarse como indio, ganó mucha reputación y le casaron con una muy principal mujer en que hubo hijos; y que por esto nunca procuró salvarse como hizo Aguilar, antes bien labraba su cuerpo, criaba cabello y harpaba las orejas para traer zarcillos como los indios y es creíble que fuese idólatra como ellos.
3-3 쿠바(Cuba)의 (노동)인구가 점차 줄어들자 프란씨스꼬 에르난데스 데 꼬르도바(Francisco Hernández de Córdoba)는 광산에서 일할 노예들을 구하기 위하여 1517년 사순절에 세 척의 배를 이끌고 쿠바(Cuba)의 산띠아고(Santiago)를 출발했다.
Que el año de 1517, por cuaresma, salió de Santiago de Cuba Francisco Hernández de Córdoba con tres navíos a rescatar esclavos para las minas, ya que en Cuba se iba apocando la gente.
어떤 이들은 그가 육지탐험을 위하여 떠난 것이라고도 이야기한다, 그는 알라미노스(Alaminos)를 항해사로 동행시켰다, 그리고는 여인들의 섬(Isla de Mujeres)에 도착하였는데, 그곳에서 여자인디오들처럼 허리 아래에 옷을 걸치고 가슴가리개를 하고 있던 아익스첼(Aixchel), 익스체벨리악스(Ixchebeliax), 익스부닉(Ixbunic), 익스부니에따(Ixbunieta)와 같은 그 지방의 토착여신들을 발견하였다, 이러한 까닭에 이 섬을 (여인들의 섬(Isla de Mujeres)이라고) 이름 붙이게 되었다; 그들은 이곳에서 돌로 지어진 건축물을 보고는 무척이나 놀랐다, 그리고 금으로 된 물건들을 발견하자 그것들을 취하였다.
Otros dicen que salió a descubrir tierra y que llevó por piloto a Alaminos y que llegó a la Isla de Mujeres, [a la] que él puso este nombre por los ídolos que allí halló de las diosas de aquella tierra como Aixchel, Ixchebeliax, Ixbunic, Ixbunieta, y que estaban vestidas de la cintura abajo y cubiertos los pechos como usan las indias; y que el edificio era de piedra, de que se espantaron, y que hallaron algunas cosas de oro y las tomaron.
(그 후) 그들은 꼬또츠(Cotoch) 곶(岬)에 도착하였다, 그곳에서 다시 방향을 바꾸어 (항해를 계속하다가) 라사로의 일요일(Domingo de Lázaro)에 깜뻬체만(Bahí́a de Campeche)에 상륙하였는데, 이러한 이유로 이곳을 라사로(Lázaro)라고 부르게 되었다.
Y que llegaron a la punta de Cotoch y que de allí dieron vuelta hasta la bahía de Campeche donde desembarcaron [el] domingo de Lázaro, y que por esto la llamaron Lázaro.
(이곳의) 촌장은 그들을 무척 환대해주었다, 에스빠냐 사람들을 보자 놀란 인디오들은 (신기해서) 그들의 수염과 몸을 만져보았다.
Y que fueron bien recibidos por el señor, y que los indios se espantaban de ver [a] los españoles y les tocaban las barbas y personas.
3-4 그들은 깜뻬체(Campeche)에서 육지와 가까운 바다에 세워진 건축물 한 채를 발견하였다, 네모진 건축물의 모든 면에는 계단이 있었고, 그 윗부분에는 어떤 우상과 우상의 옆구리를 파먹고 있는 두 마리의 맹수들이 있었다, 또한 사자를 삼키고 있는 돌로 된 길고 굵은 뱀도 있었다; 이 동물들은 인신공양의 피로 범벅되어있었다.
Que en Campeche hallaron un edificio dentro del mar, cerca de tierra, cuadrado y gradado todo, y que en lo alto estaba un ídolo con dos fieros animales que le comían las ijadas, y una sierpe larga y gorda de piedra que se tragaba un león; y que los animales estaban llenos de sangre de los sacrificios.
3-5 그들은 깜뻬체(Campeche) 근처에 참뽀똔(Champotón)이라는 큰 마을이 하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곳에 도착하자 모츠꼬우오(Mochcouoh)라고 불리는 어느 호전적인 촌장과 마주치게 되었는데, 그 촌장은 사람들을 보내어 에스빠냐 사람들을 공격하였다, 이로 인하여 곤궁에 처하게 된 프란씨스꼬 에르난데스(Francisco Hernández)는 어떻게든 이 상황을 중단시켜야한다고 판단하였다; 인디오들에게 자신들의 사기가 죽은 것을 내비치지 않기 위하여 그는 병사들로 하여금 배에서 대포를 발사할 것을 명령하였다; 인디오들은 대포소리와 연기 그리고 불꽃을 처음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함성을 지르며 덤벼들기를 멈추지 않았다; 에스빠냐 사람들도 많은 (인디오들을) 죽이고 심각한 부상을 입히며 맹렬히 저항하였다.
Que desde Campeche entendieron que había cerca un pueblo grande que era Champotón, donde llegados hallaron que el señor se llamaba Mochcouoh, hombre belicoso que lanzó a su gente contras los españoles, lo cual pesó a Francisco Hernández viendo en lo que había de parar; y que por no mostrar poco ánimo, puso también su gente en orden e hizo soltar artillería de los navíos; y que aunque a los indios les fue nuevo el sonido, humo y fuego de los tiros, no dejaron de acometer con gran alarido; y los españoles resistieron dando muy fieras heridas y matando a muchos.
그러나 촌장이 [인디오들을] 매우 독려하자 결국 에스빠냐 사람들이 물러나게 되었다, (이번 전투로 인하여) 에스빠냐 사람들 중에 20명이 목숨을 잃고, 50명의 부상자가 생겼으며, 두 명은 포로로 잡혀가 인신공양을 당하였다.
Pero que el señor animó tanto [a los indios] que hicieron retirar a los españoles y que mataron a veinte, hirieron a cincuenta y prendieron dos vivos que después sacrificaron.
33곳에 부상을 입은 프란씨스꼬 에르난데스(Francisco Hernández)는 침울하게 쿠바(Cuba)로 되돌아갔다, 그리고는 여인들의 섬(Isla de Mujeres)에서 금이 발견되었다고 하였으며 그 땅은 매우 기름지고 부유하다고 보고하였다.
Y que Francisco Hernández salió con treinta y tres heridas y que así volvió triste a Cuba, donde publicó que la tierra era muy buena y rica por el oro que halló en la Isla de Mujeres.
3-6 이러한 소식에 쿠바(Cuba)의 총독 디에고 벨라스께스(Diego Velázquez)와 여러 사람들의 마음이 동하게 되었다, (디에고 벨라스께스(Diego Velázquez)는) 네 척의 배와 200명의 사람들과 함께 자신의 조카인 후안 데 그리할바(Juán de Grijalva)를 (그곳으로) 파견하였다; 또한 그중 배 한 척의 소유자였던 프란씨스꼬 데 몬떼호(Francisco de Montejo)도 그를 동행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1518년 5월 1일 (쿠바(Cuba)를) 출발하였다.
Que estas nuevas movieron a Diego Velázquez, gobernador de Cuba, y a otros muchos, y que envió a su sobrino Juan de Grijalva con cuatro navíos y doscientos hombres; y que fue con él Francisco de Montejo cuyo era uno de los navíos, y que partieron el primero de mayo de 1518.
3-7 이번에도 알라미노스(Alaminos)가 항해사로 동행하였다, 배가 꾸스밀(Cuzmil) 섬에 도착하자 항해사인 (알라미노스(Alaminos)가) 유까딴(Yucatán)을 보았다; 그리고 이곳이 섬인지 아닌지를 관측하기위하여 지난번 프란씨스꼬 에르난데스(Francisco Hernández)와 오른쪽으로 항해를 했던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왼쪽으로 만(灣)을 따라 항해를 계속하였다, 그들은 그날(Dí́a de la Ascensión: 예수의 승천일) 이곳에 도착했다는 이유로 (이 만(灣)을) 아쎈씨온 만(Bahía de la Ascensión, 승천灣)이라고 명명하였다; 그리고는 방향을 바꾸어 해변을 따라 항해를 계속하다가 다시 참뽀똔(Champotón)에 이르렀다, 그런데 그곳에서 물을 보충하던 중에 (인디오들의 공격으로) 한 명이 목숨을 잃고, 50명이 부상을 입게 되었다, 그리할바(Grijalva)도 두 개의 화살에 맞았으며 이빨 한 개 반이 부러지는 부상을 당하였다.
Que llevaron consigo al mismo piloto Alaminos, y llegaron a la isla de Cuzmil, desde la cual el piloto vio Yucatán; y como la otra vez, con Francisco Hernández, la había corrido a la mano derecha, quiso bojarla, [para comprobar] si fuere isla, y echó a mano izquierda siguiendo por la bahía que llamaron de la Ascención porque en tal día entraron en ella; y que dieron la vuelta a toda la costa hasta llegar otra vez a Champotón donde sobre tomar agua les mataron un hombre y les hirieron cincuenta, entre ellos a Grijalva, de dos flechas, y le quebraron diente y medio.
결국 그들은 이곳을 떠나게 되었고, 이 항구를 뿌에르또 데 라 말라 뻴레아(Puerto de la Mala Pelea: 끔찍한 전투의 항구)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번 항해를 통하여 누에바 에스빠냐(Nueva España)와 빠누꼬(Pánuco) 그리고 따바스꼬(Tabasco)를 발견하였는데, 그렇게 하기까지 5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또한 참뽀똔(Champotón)에서 육지로 상륙하고자 하였으나 인디오들이 워낙 호전적인 기세로 선박근처까지 카누를 타고와 활을 겨누었던 터라 돛을 올려 그곳을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Y que así se fueron y nombraron a este puerto el Puerto de la Mala Pelea; y en este viaje descubrieron la Nueva España, y Pánuco y Tabasco, y que con esto gastaron cinco meses, y quisieron saltar a tierra en Champotón, lo cual les estorbaron los indios con tanto coraje que en sus canoas entraban hasta cerca de las carabelas a flecharlos, y que así se hicieron a la vela y los dejaron.
3-8 그리할바(Grijalva)가 새로운 발견을 마치고 따바스꼬(Tabasco)와 울루아(Ulúa)를 탈환하여 돌아왔을 때 쿠바(Cuba)에는 에르난도 꼬르떼스(Hernando Cortés)라는 훌륭한 대장이 있었다, 드넓은 땅과 엄청난 부유함에 대한 소식을 접하자 그는 그곳을 (직접) 보고 싶어 했으며, (더 나아가) 신을 위하여, 왕을 위하여, 그리고 그 자신과 친구들을 위하여 그곳을 정복하고자했다.
Que cuando Grijalva tornó a su descubrimiento y rescate de Tabasco y Ulúa, estaba en Cuba el gran capitán Hernando Cortés, y que oyendo la nueva de tanta tierra y tantas riquezas deseó verlas y aun ganarlas para Dios y para su rey, para sí y para sus amigos.
IV 꼬르떼스(CORTÉ́S)의 꾸스밀(CUZMIL) 탐험. - 아길라르(AGUILAR)와 그의 동료들에게 보내는 편지.
IV EXPEDICIÓ́N DE CORTÉ́S A CUZMIL. - CARTA A AGUILAR Y SUS COMPAÑEROS.
4-1 에르난도 꼬르떼스(Hernando Corté́s)는 11척의 배를 이끌고 쿠바(Cuba)를 출발하였다, 그중에서 가장 큰 배의 무게는 100톤에 달하였다, 그는 각 배에 선장을 한 명씩 두며 본인도 그중의 한 척을 맡았다; (이 탐험에는) 500명의 인원이 동원되었고, 배에는 몇 필의 말과 교역 물품들이 함께 실렸다, 또한 프란씨스꼬 데 몬떼호(Francisco de Montejo)도 (이 탐험에) 참여하였으며, 전에 이야기한 적이 있는 알라미노스(Alaminos)가 함대의 1등 지휘권을 맡았다; 함대사령관의 배에는 하얗고 파란 불꽃 무늬의 마리아를 기리는 깃발을 걸어놓았는데, (인디오들의) 우상을 치워버린 자리에는 언제나 십자가와 함께 마리아의 형상이 올려졌다; 깃발에는 붉은색의 십자가 주변으로 다음의 문구가 적혀있었다: amici sequamur crucem, & si nos habuerimus fidem in hoc signo vincemus(충심으로 십자가를 따르고 그에 대한 믿음으로 승리하리라).
Que Hernando Cortés salió de Cuba con once navíos de los cuales el mayor era de cien toneladas, y que puso en ellos once capitanes siendo él uno de ellos; y que llevaba quinientos hombres y algunos caballos, y mercancías para rescatar, y a Francisco de Montejo y al dicho piloto Alaminos, piloto mayor de la armada; y que puso en su nao capitana una bandera de fuegos blancos y azules en reverencia a Nuestra Señora, cuya imagen, con la cruz, ponía siempre donde quitaba ídolos; y que en la bandera había una cruz colorada con un letrero en torno que decía: amici sequamur crucem, & si nos habuerimus fidem in hoc signo vincemus.
4-2 이 함대는 그 밖의 다른 장비들을 더 이상 실지 않고 출발하였다, 그리고 (11척의 배들 중에서) 10척의 배가 꾸스밀(Cuzmil)에 도착하였다, 이것은 도중에 폭풍우로 인하여 배 한척이 길을 잃었기 때문인데 그 배와는 해안가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Que con esta flota y no más aparato partió y que llegó a Cuzmil con diez navíos porque el otro se le apartó con una tormenta, y que después le recobró en la costa.
그가 도착한 곳은 꾸스밀(Cuzmil)의 북쪽지역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우상들을 위한 훌륭한 석조 건축물들과 좋은 마을 한 곳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이곳의) 주민들은 많은 배와 병사들이 육지에 내리는 것을 보자 모두 숲속으로 도망쳐버렸다.
Que la llegada a Cuzmil fue por la parte del norte y halló buenos edificios de piedra para los ídolos y un buen pueblo, y que la gente viendo tanto navío y salir los soldados a tierra, huyó a los montes.
4-3 도착하자마자 (에스빠냐 사람들은) 마을을 약탈하였고, 그곳에 머무르게 되었다, 숲속에서 사람들을 찾아다니던 중에 촌장의 부인과 그의 자식들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프란씨스꼬 에르난데스(Francisco Hernández)와 그리할바(Grijalva)의 통역관으로 그들을 동행했던 적이 있는 멜초르(Melchor)라는 인디오를 통하여 그녀가 촌장의 부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꼬르떼스(Corté́s)는 그들에게 많은 선물을 주며 촌장을 데려오도록 하였다, 그리고 촌장이 돌아오자 그에게 아주 좋은 대우와 함께 조금의 선물을 주며 그의 부인과 자식들을 돌려보내주었다, 또한 그들이 이 마을에서 약탈한 모든 것들을 되돌려주었다; 그리고는 촌장에게 (도망친) 인디오들이 다시 그들의 집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권고하였으며, 인디오들이 돌아오자 (자신들이 빼앗은 것들을) 원래의 주인들에게 되돌려주었다; 그렇게 인디오들을 모두 안심시킨 후에야 그는 우상들의 허구성에 대하여 설교하기 시작하였고, 십자가를 숭배하도록 설득하였으며, (인디오들의) 사원에 성모 마리아상과 함께 십자가를 두었다, 그리하여 인디오들은 그 후로 더 이상 공개적인 우상숭배행위를 하지 않게 되었다.
Que llegados los españoles al pueblo lo saquearon y se aposentaron en él, y que buscando gente por el monte toparon con la mujer del señor y con sus hijos, de los cuales, con Melchor, intérprete indio que había ido con Francisco Hernández y con Grijalva, supieron que era la mujer del señor, a la cual y a sus hijos regaló mucho Cortés e hizo enviasen a llamar al señor, al cual venido trató muy bien y le dió algunos dones y le entregó su mujer e hijos y todas las cosas que por el pueblo se habían tomado; y que le rogó que hiciese venir a los indios a sus casas, y que venidos les hizo restituir a cada uno lo que era suyo; y que después de asegurados les predicó la vanidad de los ídolos y les persuadió que adorasen la cruz, y que la puso en sus templos con una imagen de Nuestra Señora, y que con esto terminaba la idolatría pública.
4-4 꼬르떼스(Corté́s)는 그곳에서 6일정도 걸리는 거리에 턱수염이 난 남자들이 어떤 촌장의 수하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인디오들을 설득하여 그들을 부르러가도록 하였는데; 비록 (그렇게 할) 인디오를 (결국) 구하기는 하였으나 턱수염이 난 남자들과 함께 있는 촌장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으므로) 애를 먹어야만했다.
Que Cortés supo allí que unos hombres barbados estaban caminos de seis soles en poder de un señor y que persuadió a los indios que los fuesen a llamar; y que halló quien fuese, aunque con dificultades, porque tenían miedo al señor de los barbados.
그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Y escribióles esta carta:
“존경하는 여러분: 나는 11척의 함대와 500명의 에스빠냐 사람들을 이끌고 쿠바(Cuba)를 떠난 후 이곳 꾸스밀(Cuzmil)에 도착했소, 그리고 이곳에서 당신들에게 편지를 보내는 바요. 이 섬의 주민들은 내게 우리들과 생김새가 매우 비슷한 대여섯 명의 턱수염을 가진 사람들이 이 땅에 더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소. 더 이상의 특별한 증거는 없지만 내가 들은 것을 통해 추측하건데 당신들이 에스빠냐 사람들이라고 확신하는 바요. 이곳의 땅들을 발견하고 정착하기 위하여 함께 온 다른 귀족들과 내가 당신들께 간청하기를 이 편지를 받고나서 6일 이내로 어떠한 변명이나 지체함도 없이 이리로 오도록 하시오. 만일 돌아온다면 이 함대가 얻게 될 업적을 우리 모두가 인정받아 당신들도 보상받게 될 것이오. 여러분들이 타고 올 수 있도록 범선 한 척과 안전을 위한 두 척의 배를 보내도록 하겠소.”
“Nobles señores: yo partí de Cuba con once navíos de armada y quinientos españoles, y llegué aquí, a Cuzmil, desde donde os escribo esta carta. Los de esta isla me han certificado que hay en esa tierra cinco o seis hombres barbados y en todo a nosotros muy semejables. No me saben decir otras señas, mas por éstas conjeturo y tengo por cierto que sois españoles. Yo y estos hidalgos que conmigo vienen a poblar y descubrir estas tierras, os rogamos mucho que dentro de seis días que recibiereis esta, os vengáis para nosotros sin poner otra dilación ni excusa. Si viniereis, conoceremos y gratificaremos la buena obra que de vosotros recibirá esta armada. Un bergantín envío para que vengais en él, y dos naos para seguridad.”
4-5 인디오들은 이 편지를 머리카락사이에 말아가지고 간 후 아길라르(Aguilar)에게 건네주었다, 그런데 인디오들이 처음에 예상했던 것보다 시간을 많이 지체했기 때문에 배(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그들이 죽었을 거라고 생각하고는 다시 꾸스밀(Cuzmil) 항구로 돌아왔다; 꼬르떼스(Corté́s)는 인디오들과 턱수염이 난 사람들이 모두 돌아오지 않자 다음날 돛을 올렸다.
Que los indios llevaron esta carta envuelta en el cabello y la dieron a Aguilar, y que los navíos, porque tardaban los indios más del tiempo del plazo, creyeron que los habrían muerto y se volvieron al puerto de Cuzmil; y que Cortés, sabiendo que ni los indios ni los barbados tornaban, se hizo al otro día a la vela.
그런데 바로 그날 배 한척에 이상이 생기는 바람에 그들은 다시 항구로 돌아와야만 했다; 그리고 (배를) 정비하는 사이에 편지를 받은 아길라르(Aguilar)가 카누를 타고 유까딴(Yucatán)과 꾸스밀(Cuzmil) 사이의 해협을 건너왔다, 함대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그를 발견하자 신원을 확인하기위하여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자 아길라르(Aguilar)는 그들에게 기독교인이냐고 물었고, 에스빠냐 사람들은 그렇다고 대답하였다, 아길라르(Aguilar)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땅에 무릎을 꿇고 주님께 감사를 드렸다, 그리고는 에스빠냐 사람들에게 오늘이 수요일이냐고 물었다.
Mas aquel día se les abrió un navío y les fue necesario tornar al puerto; y que estando aderezando [el navío], Aguilar, recibida la carta, atravesó en una canoa el canal entre Yucatán y Cuzmil y que viéndole los de la armada fueron a ver quién era; y que Aguilar les preguntó si eran cristianos y respondiéndole que sí, y españoles, lloró de placer y puestas las rodillas en tierra dió gracias a Dios y preguntó a los españoles si era miércoles.
4-6 에스빠냐 사람들은 (아길라르(Aguilar)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의 벌거벗은 모습 그대로 그를 꼬르떼스(Corté́s)에게 데리고 갔다, 그러자 꼬르떼스(Corté́s)는 그에게 옷을 주며 무척이나 반겨주었고; 아길라르(Aguilar)는 난파되었던 일에서부터 고된 생활과 동료들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가 겪은 일들을)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80레구아(legua)보다 더 떨어진 곳에 있던 (다른 에스빠냐 사람인) 게레로(Guerrero)에게는 이 짧은 시간 내에 소식을 알리는 것이 불가능했다고 하였다.
Que los españoles lo llevaron a Cortés así desnudo como venía, el cual le vistió y mostró mucho amor; y que Aguilar contó allí su pérdida y trabajos y la muerte de sus compañeros y cómo fue imposible avisar a Guerrero en tan poco tiempo por estar [a] más de ochenta leguas de allí.
4-7 꼬르떼스(Corté́s)는 훌륭한 통역사인 아길라르(Aguilar)와 함께 (인디오들에게) 십자가를 숭배하도록 다시금 설교하는 한편 (그들의) 사원에 놓여있던 우상들을 치워버렸다, 사람들이 이야기하기를 꾸스밀(Cuzmil)의 주민들이 꼬르떼스(Corté́s)의 설교에 매우 감동한 나머지 해변으로 나가 그곳을 지나가던 에스빠냐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외쳤다고 한다: 마리아(María), 마리아(María); 꼬르떼스(Corté́s), 꼬르떼스(Corté́s).
Que con este Aguilar que era muy buen intérprete, tornó Cortés a predicar la adoración de la cruz y quitó los ídolos de los templos, y dicen que hizo esta predicación de Cortés tanta impresión en los de Cuzmil, que salían a la playa diciendo a los españoles que por allí pasaban: María, María; Cortés, Cortés.
4-8 꼬르떼스(Corté́s)는 이곳을 출발하여 잠시 깜뻬체(Campeche)에 들른 후에 다른 곳을 더는 거치지 않고 따바스꼬(Tabasco)까지 (항해하였다), 따바스꼬(Tabasco) 사람들은 그에게 여러 물건들과 여자인디오들을 주었는데, 그중에는 훗날 마리나(Marina)로 불리게 된 여자인디오도 있었다, 그녀는 원래 할리스꼬(Xalisco) 지방 사람으로 상류층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어려서 (포로로) 잡힌 후 이곳 따바스꼬(Tabasco)까지 팔려오게 되었다; (그 후) 다시 시깔랑고(Xicalango)와 참뽀똔(Champotó́n)으로 팔려간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유까딴(Yucatán)의 언어를 익힐 수 있었고, 이러한 이유로 아길라르(Aguilar)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렇듯 주님께서는 훌륭하고도 충실한 통역사들을 꼬르떼스(Corté́s)의 곁에 두셨다, 꼬르떼스(Corté́s)는 이들을 통하여 멕시코(México)에 대한 소식과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더군다나 마리나(Marina)는 (멕시코에 대하여) 매일같이 이야기하던 인디오 상인들이나 귀족들과 빈번히 접촉하였기 때문에 멕시코(México)를 침공하는 데에 필요한 많은 지식들을 가지고 있었다.
Que partío Cortés de allí y que tocó de paso en Campeche y no paró hasta Tabasco, donde entre otras cosas e indias que le presentaron los de Tabasco, le dieron una india que después se llamó Marina, la cual era de Xalisco, hija de padres nobles y hurtada de pequeña y vendida en Tabasco; y que de ahí la vendieron también en Xicalango y Champotón donde aprendió la lengua de Yucatán, con la cual se vino a entender Aguilar, y que así proveyó Dios a Cortés de buenos y fieles intérpretes, por donde vino a tener noticia y entrada en las cosas de México, de las cuales la Marina sabía mucho por haber tratado con mercaderes indios y gente principal que hablaban de esto cada día.
V 유까딴(YUCATÁ́N). - 중요한 옛 건축물들.
V PROVINCIAS DE YUCATÁ́N. - LOS PRINCIPALES EDIFICIOS ANTIGUOS.
5-1 주님께서 열두 개의 바닷길을 열어서 해방을 시켜준 사람들이 동쪽으로부터 들어와 이 땅에 정착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유까딴(Yucatá́n)의 노인들이 선조들로부터 전해 들었다고 한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곳 인디아스(Indias)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유태인의 후손이라는 말이다, 과거 (유태인들은) 마젤란 해협을 건너 오늘날 에스빠냐가 통치하고 있는 땅으로부터 2,000레구아(legua)보다 더 멀리 뻗어나갔기 때문이다.
Que algunos viejos de Yucatán dicen haber oído a sus [ante]pasados que pobló aquella tierra cierta gente que entró por levante, a la cual había Dios librado abriéndoles doce caminos por el mar, lo cual, si fuese verdad, era necesario que viniesen [de] judí́os todos los de las Indias, porque pasado el estrecho de Magallanes se habí́an de ir extendiendo má́s de dos mil leguas de tierra que hoy gobierna España.
5-2 이 땅의 언어가 모두 하나라는 점은 (인디오들을) 개종시키는 데에 많은 이점이 되었다, 그러나 해안 지역에서는 다른 용어들이 사용되는가하면 억양의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해안 쪽 사람들의 풍습이나 언어는 (내륙 쪽보다) 훨씬 더 잘 다듬어져있는데; (예를 들면) 해안 쪽 여자들은 가슴을 가리고 다니지만 내륙 쪽 여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Que la lengua de esta tierra es toda una, y que esto aprovechó mucho para su conversión aunque en las costas hay alguna diferencia en vocablos y en el tono de hablar; y que así los de la costa son más pulidos en su trato y lengua; y que las mujeres cubren los pechos, y las de más adentro no.
5-3 이 땅은 에스빠냐에 소속된 각 지역들로 나누어져있다.
Que esta tierra está partida en provincias sujetas a los pueblos de españoles.
첵떼말(Chectemal)과 바찰랄(Bachalal) 지역은 살라망까(Salamanca)에 속해있고; 에깝(Ecab), 꼬추아(Cochuah), 꾸뿔(Kupul) 지역은 바야돌릳(Valladolid)에 속해있으며; 아 낀 첼(Ah Kin Chel), 이사말(Izamal), 소뚜따(Zotuta), 호까바이 후문(Hocabai Humun), 뚜뚜시우(Tutuxiú), 쎄뻬츠(Cehpech), 차깐(Chakan) 지역은 메리다(Mérida)시에 속해있다; 까몰(Camol), 깜뻬츠(Campech), 참뿌뚠(Champutun), 띡스첼(Tixchel) 지역은 산 프란씨스꼬 데 깜뻬체(San Francisco de Campeche)에 속해있다.
Que la provincia de Chectemal y Bachalal, está sujeta a Salamanca; las provincias de Ekab y Cochuah y la de Kupul, están sujetas a Valladolid, la de Ah Kin Chel e Izamal, la de Zotuta, la de Hocabai Humun, la de Tutuxiú, la de Cehpech y la de Chakan, están sujetas a la ciudad de Mérida ; la de Camol, Campech, Champutun y Tixchel, acuden a San Francisco de Campeche.
5-4 유까딴(Yucatá́n)에는 무척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많이 있다, (이러한 건축물들은) 인디아스(Indias)에서 발견된 것들 중에서도 가장 으뜸가는 것들이다, 금속으로 된 연장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모든 건축물들은 가공된 석재로 매우 훌륭하게 지어졌다. Que en Yucatán hay muchos edificios de gran hermosura que es la cosa más señalada que se ha descubierto en las Indias, todos de cantería muy bien labrada sin haber ningún género de metal en ella con que se pudiesen labrar.
5-5 이러한 건축물들은 신전들로 아주 가까이에서 서로 이웃하여 지어져있는데, 이렇게나 많은 (신전들이) 지어진 까닭은 (이곳 사람들이) 상당히 잦은 이주를 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 땅에 풍부한 돌과 석회 그리고 건물을 짓는 데에 안성맞춤인 질 좋은 흰색 흙을 가지고 각 마을에 하나씩 신전을 화려하게 지었다.
Que están estos edificios muy cerca unos de otros y que son templos, y que la razón de haber tantos es por mudarse las poblaciones muchas veces; y que en cada pueblo labraban un templo por el gran aparejo que hay de piedra y cal y cierta tierra blanca excelente para edificios.
이러한 건축물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아닌 (바로 이곳의) 인디오들에 의하여 지어졌다, (건축물에 있는) 벌거벗은 석조인물상들이 그들 말로 엑스(ex)라고 불리는 긴 띠를 (둘러서 중요한 부위를 가린 모습으로) 정숙하게 만들어져있다는 점과 인디오들이 사용하는 장신구들을 (착용하고 있다는 점을) 통해서 (이곳 인디오들이 이러한 건축물들을 직접 지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Que estos edificios no son hechos por otras naciones sino por indios, lo cual se vé por hombres de piedra desnudos y honestados de unos largos listones que llaman en su lengua ex y de otras divisas que los indios traen.
5-6 이 책의 필자가 사제로서 이 땅에 머물고 있던 중에 허물어진 어느 건축물 안에서 세 개의 손잡이가 달린 커다란 항아리가 발견되었다, 항아리의 겉면에는 은색의 불꽃(무늬가) 그려져 있었고, 그 속에는 주검을 태우고 남은 유골(遺骨)과 놀라울 정도로 굵은 팔다리뼈 그리고 인디오들이 화폐로 사용하던 세 개의 아름다운 구슬이 들어있었다.
Que estando este religioso, autor de esta obra, en aquella tierra, se halló en un edificio que desbarataron, un cántaro grande con tres asas, pintado de unos fuegos plateados por de fuera, y dentro ceniza de cuerpo quemado y algunos huesos de los brazos y piernas, muy gruesos a maravilla, y tres cuentas de piedra buenas de las que usaban los indios por moneda.
5-7 이곳 이사말(Yzamal)에는 모두 11개에서 12개정도의 건축물들이 있다, 누가 지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중 한 건축물에는 인디오들의 요청으로 1549년 산 안또니오(San Antonio)라는 수도원이 세워지게 되었다.
Que estos edificios de Yzamal eran once o doce por todos sin haber memoria de los fundadores; y que en uno de ellos, a instancia de los indios, se pobló un monasterio el año de 1549, que se llamó San Antonio.
5-8 두 번째로 중요한 건축물들은 띠꼬츠(Tikoch)와 치첸이사(Chichenizá)에 있는데, 이것들에 대해서는 좀 더 나중에 설명하겠다.
Que los segundos edificios más principales son los de Tikoch y Chichenizá, los cuales se pintarán después.
5-9 치첸이사(Chichenizá)는 이사말(Izamal)에서 10레구아(legua)정도 떨어져있고, 바야돌릳(Valladolid)에서 11레구아(legua)정도 떨어져있는 아주 좋은 장소이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서쪽에서 온 세 명의 형제 촌장들이 그곳을 다스렸다고 하는데, 신앙심이 매우 두터웠던 그들은 대단히 아름다운 신전들을 지었다.
Que Chichenizá es un asiento muy bueno a diez leguas de Izamal y once de Valladolid, donde dicen que reinaron tres señores hermanos que vinieron a aquella tierra de la parte poniente, los cuales eran muy religiosos y que así edificaron muy lindos templos.
그들은 여자들도 없이 매우 청렴한 삶을 살았다, 그들 중 한 명이 세상을 떠나자 혹은 (다른 곳으로) 가버리자 나머지 (두 명이) 서로 갈라서게 되었고, 그 훌륭함도 사라지게 되었다, 결국 그들은 (사람들에 의하여) 목숨을 잃었다.
Y que vivieron sin mujeres muy honestamente, y que el uno de éstos se murió o se fue, por lo cual los otros se hicieron parciales y deshonestos, y que por ello los mataron.
5-10 가장 큰 건축물의 칠 (장식)에 대해서는 이후에 설명하겠다, 또한 산 사람을 인신공양하고 귀중한 물건들을 바치던 연못에 대해서도 나중에 이야기하겠다.
La pintura del edificio mayor pintaremos después, y [d]escribiremos la manera del pozo donde echaban hombres vivos en sacrificio y otras cosas preciosas.
[그 연못은] 수면에 이르기까지 7에스따도(estado)의 깊이를 가지고 있으며 (폭은) 100피트보다 훨씬 더 넓다, 깎아지른 바위에 생긴 둥그런 모습이 매우 신기하고 물은 녹색을 띠고 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물이 녹색으로 보이는 까닭은) 근처의 나무들 때문이라고 한다.
[El pozo] tiene más de siete estados de hondo hasta el agua y mucho más de cien pies, hecho redondo en una peña tajada que es maravilla y el agua parece verde: dicen que lo causa la arboleda de que está cercado.
VI 꾸꿀깐(KUKULCÁ́N). - 마야빤(MAYAPÁ́N)의 건립.
VI KUKULCÁ́N. - FUNDACIÓ́N DE MAYAPÁ́N.
6-1 인디오들이 말하기를 꾸꿀깐(Cuculcán)이라는 위대한 촌장이 치첸이사(Chichenizá)에 살고 있던 이사족 사람들(los Yzaes)과 함께 (이 땅을) 다스렸다고 한다, 이곳의 가장 중요한 건축물이 꾸꿀깐(Cuculcán)이라고 불리는 것을 보면 이것이 사실임을 알 수 있다; 또한 그가 서쪽에서 왔다고들 하는데, 그가 들어온 시기가 이사족 사람들(los Yzaes)보다 이전인지 이후인지 아니면 그들과 함께인지에 대해서는 인디오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그는 풍채가 무척 좋았고, 부인이 없었으며, 슬하에 자식이 없었다고 한다; 그가 떠난 후에 멕시코(México)에서 그는 쎄살꾸아띠(Cezalcuati)로 불리며 그곳의 신들 중 한명으로 추앙받았고, 위대한 정치가였던 이유로 유까딴(Yucatá́n)에서도 신으로 받들어졌다고 한다, 이곳의 촌장들이 죽고 난 후에 그 죽음으로 인하여 야기된 혼란을 수습하기 위하여 그가 유까딴(Yucatá́n) (정국)을 안정시킨 것에서 (그가 위대한 정치가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Que es opinión entre los indios que con los Yzaes que poblaron Chichenizá, reinó un gran señor llamado Cuculcán, y que muestra ser esto verdad el edificio principal que se llama Cuculcán; y dicen que entró por la parte de poniente y que difieren en si entró antes o después de los Yzaes o con ellos, y dicen que fue bien dispuesto y que no tenía mujer ni hijos; y que después de su vuelta fue tenido en México por uno de sus dioses y llamado Cezalcuati y que en Yucatán también lo tuvieron por dios por ser gran republicano, y que esto se vio en el asiento que puso en Yucatán después de la muerte de los señores para mitigar la disensión que sus muertes causaron en la tierra.
6-2 꾸꿀깐(Cuculcán)은 이 땅의 현지 촌장들과 상의하여 또 다른 도시를 만들었다, 그리하여 그를 포함한 사람들은 기존의 모든 삶의 터전을 [새로운 정착지로] 옮겨가게 되었다; 이러한 목적으로 아주 좋은 터가 정해졌는데, 그곳은 현재 메리다(Mé́rida)에서 내륙 쪽으로 8레구아(legua)정도 떨어져있고, 바다로부터 15-16레구아(legua)정도 떨어진 곳이다; 그들은 이곳에 마른 돌을 가지고 1/8레구아(legua) 정도의 길이로 아주 두꺼운 외벽을 쌓았다, 그리고 여기에 두 개의 좁은 문을 터놓았는데, 벽의 높이는 그리 높지 않았다, 외벽 (내부의) 중앙에는 신전들을 지었고; 그중 가장 큰 신전은 치첸이사(Chichenizá)에서처럼 꾸꿀깐(Cuculcán)이라고 불렀다; 네 개의 문이 달린 둥그런 신전도 지었는데, 이 신전은 이 땅에 지어진 여느 신전들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밖에도 서로 이웃하게끔 (주변을) 둥글게 하여 신전들을 지었다; 외벽 안쪽으로는 촌장들의 집들을 지었으며, 가계(家系)의 전통과 사람의 됨됨이를 고려하여 그에 준한 땅과 마을을 그들 사이에서만 분배하였다.
Que este Cuculcán tornó a poblar otra ciudad tratando con los señores naturales de la tierra que él y ellos viniesen [a la ciudad] y que allí viniesen todas las cosas y negocios; y que para esto eligieron un asiento muy bueno a ocho leguas más adentro en la tierra que donde ahora está Mérida, y quince o dieciséis del mar; y que allí cercaron de una muy ancha pared de piedra seca como medio cuarto de legua dejando sólo dos puertas angostas y la pared no muy alta, y en el medio de esta cerca hicieron sus templos; y que el mayor, que es como el de Chichenizá, llamaron Cuculcán; y que hicieron otro redondo y con cuatro puertas, diferente a cuantos hay en aquella tierra, y otros a la redonda, juntos unos de otros; y que dentro de este cercado hicieron casas para los señores, entre los cuales solamente repartieron la tierra dando pueblos a cada uno conforme a la antigüedad de su linaje y ser de su persona.
아이사족 사람들(los Aizaes)은 (그들의 도시에) 아이사족 사람들의 연못(pozo de los aizaes)이라는 뜻의 치첸이사(Chichenizá)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꾸꿀깐(Cuculcán)은 (이) 도시에 자신의 이름이 아닌 마야의 깃발(el pendó́n de la Maya)이라는 뜻의 마야빤(Mayapán)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왜냐하면 이 땅의 언어가 마야(maya)라고 불렸기 때문이다; 인디오들은 [이 도시를] 울타리 안(dentro de las cercas)이라는 뜻의 이츠빠(Ychpa)라고 불렀다.
Y que Cuculcán puso nombre a la ciudad, no el suyo, como hicieron los Ahizaes en Chichenizá, que quiere decir pozo de los aizaes, mas llamóla Mayanpán que quiere decir el pendón de la Maya, porque a la lengua de la tierra llaman maya; y los indios llaman Ychpa [a la ciudad], que quiere decir dentro de las cercas.
6-3 꾸꿀깐(Cuculcán)은 이 도시에서 촌장들과 함께 평화와 우정을 구가하며 몇 년간을 지내다가 (처음에) 왔던 길을 통하여 다시 멕시코(México)로 되돌아갔다, 도중에 참뽀똔(Champotón)에 들러 스스로를 기리는 한편 자신이 떠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치첸이사(Chichenizá)의 건축물과 같은 형태로 아주 훌륭한 건축물을 해안과 가까이에 있는 바다에 지어놓았다, 그리하여 꾸꿀깐(Cuculcán)은 자신의 영원한 기념물을 유까딴(Yucatá́n)에 남겨두게 되었다.
Que este Cuculcán vivió con los señores algunos años en aquella ciudad y que dejándolos en mucha paz y amistad se tornó por el mismo camino a México, y que de pasada se detuvo en Champotón, y que para memoria suya y de su partida, hizo dentro del mar un buen edificio al modo del de Chichenizá, a un gran tiro de piedra de la ribera, y que así dejó Cuculcán perpetua memoria en Yucatán.
VII 유까딴(YUCATÁ́N)의 정부, 제사장, 과학, 문자와 책.
VII GOBIERNO, SACERDOCIO, CIENCIAS, LETRAS Y LIBROS DE YUCATÁ́N.
7-1 꾸꿀깐(Cuculcá́n)이 떠나자 이곳의 촌장들은 국가가 계속해서 유지될 수 있도록 꼬꼼족(los Cocomes)의 가문이 최고통치권을 갖는 데에 합의하였다, 왜냐하면 이 가문이 가장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가장 부유했기 때문이며, 당시 이 가문의 통치자가 가장 훌륭한 사람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 후 외벽의 안쪽으로만 촌장들과 높은 제사장의 집과 신전들이 있는 것을 (보완하기 위하여) 외벽 바깥쪽으로도 몇 채의 집을 짓도록 지시하였다, 이곳에 일하는 사람들을 몇 명 둘 수 있도록 하였고, 교역을 목적으로 도시를 방문하는 사람들도 이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게다가 집집마다 관리인을 두었는데, 이들은 자신들을 상징하는 짧고 굵은 막대기를 들고 다녔으며, 깔루악(Caluac)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이들 관리인들은 마을과 (마을의) 지도자들을 살피는 동시에 새, 옥수수, 꿀, 소금, 생선, 사냥감, 옷 등 여러 품목에 걸쳐서 촌장의 집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리는 역할을 하였다; 깔루악(Caluac)의 집은 마치 촌장의 집무실과 같았기 때문에 언제나 촌장의 집을 방문하여 무엇이 필요한지를 확인한 후에 이를 공급해주었다.
Que partido Cuculcán, acordaron los señores, para que la república durase, que el mando principal lo tuviese la casa de los Cocomes por ser la más antigua y más rica y por ser el que la regía entonces hombre de más valor; y que hecho esto ordenaron que pues en el cercado no había sino templos y casas para los señores y gran sacerdote, que se hiciesen casas fuera de la cerca donde cada uno de ellos pusiese alguna gente de servicio y donde los de sus pueblos acudiesen cuando viniesen a la ciudad con negocios; y que en estas casas puso cada uno su mayordomo, el cual traí́a por señal una vara gorda y corta y que le llamaban Caluac y que este mayordomo tenía cuenta de los pueblos y de quiénes los regían y que ellos se enviaban aviso de lo que era menester en casa del señor, como aves, maíz, miel, sal, pesca, caza, ropas y otras cosas, y que el Caluac acudía siempre a la casa del señor y veía lo que era menester en ella y lo proveía luego, porque su casa era como oficina de su señor.
7-2 손이나 팔이 없는 마을의 불구자들과 장님들을 찾아가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었다.
Que acostumbraban buscar en los pueblos [a] los mancos y ciegos y les daban lo necesario.
7-3 촌장들은 [마을 사람들에게] 통치자들을 정해주었는데, 만일 그들의 자식들이 그에 걸맞은 능력을 갖추었을 경우에는 (자식들에게도) 그러한 임무를 주었으며; 마을 사람들을 잘 대해줄 것과 마을의 평화를 지킬 것 그리고 그들 자신과 촌장들을 보필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동할 것을 당부하였다.
Que los señores proveí́an [a los pueblos] de gobernadores y si les eran adeptos confirmaban en sus hijos los oficios; y que les encomendaban el buen tratamiento de la gente menuda y la paz del pueblo y el ocuparse en trabajar para que se sustentasen ellos y los señores.
7-4 모든 촌장들은 꼬꼼(Cocom)을 수행하며 (그를 위한) 축하의 자리를 마련하였다, 그리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그를 찾아가는 (등) 그를 존중하고, 방문하며, 즐겁게 해주는 데에 늘 신경을 썼다, 이렇듯 그들은 함께 춤을 추고, 축제를 열고, 사냥을 하며 무척 평화롭게 살았다.
Que todos los señores tenían cuenta con respetar, visitar y alegrar a Cocom acompañándole y festejándole y acudiendo a él con los negocios arduos, y que entre sí vivían muy en paz y en mucho pasatiempo como ellos lo usan, en bailes, convites y caza.
7-5 유까딴(Yucatá́n) 사람들은 정치와 종교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곳에는 [위대한] 제사장 마이(el [gran] sacerdote May)라는 뜻을 가진 아 낀 마이(Ah Kin May)라는 높은 제사장이 한 명 있었다, 그는 아하우 깐 마이(Ahau Can May)라고도 불렸다, 촌장들로부터 많은 존경을 받았고, 몇 명의 인디오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촌장들은 그에게 제물 외에도 선물을 바쳤으며, 마을의 모든 제사장들도 (그에게 이와 같은 것들을) 바쳤다; (제사장의) 직책은 자식들이나 가장 가까운 친척들에게 승계되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오직 그들 내에서만 제사장의) 지식이 공유될 수 있었고, 그들이 가장 전념하던 것 역시 (이와 관련된 일이었다), (제사장들은) 촌장들에게 조언을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해주었으며, 매우 중요한 의례나 특별한 일이 있을 때에만 아주 가끔씩 인신공양을 행하였다; 또한 그들은 마을에 제사장이 필요한 경우에 지식적인 면과 종교적인 면을 고려하여 제사장을 선출하고 지정해주기도 하였다, (새롭게 임명된 제사장들에게) 자신들의 업무를 부과하는 한편 타의모범이 될 것을 당부하였고, 그들이 가지고 있던 책들을 건네주었다; [그밖에도] 신전을 관장하는 일을 맡았으며, 과학을 가르치고, 이에 대한 책을 집필하는 일에 종사하였다.
Que los de Yucatán fueron tan curiosos en las cosas de la religión como en las del gobierno y que tenían un gran sacerdote que llamaron Ah Kin May, y por nombre Ahau Can May, que quiere decir el [gran] sacerdote May, que era muy reverenciado de los señores, el cual tenía repartimiento de indios y que además de las ofrendas, los señores le hacían presentes y que todos los sacerdotes de los pueblos le contribuían; y que a éste le sucedían en la dignidad sus hijos o parientes más cercanos, y que en esto estaba la llave de sus ciencias, y que en éstas trataban lo más, y que daban consejo a los señores y respuestas a sus preguntas, y que [las] cosas de los sacrificios pocas veces las trataban si no [era] en fiestas muy principales o en negocios muy importantes; y que éstos proveían de sacerdotes a los pueblos cuando faltaban, examinándolos en sus ciencias y ceremonias y que les encargaban de las cosas de sus oficios y el buen ejemplo del pueblo, y proveían de sus libros; [además] atendían al servicio de los templos y a enseñar sus ciencias y escribir libros de ellas.
7-6 만일 다른 제사장들의 아이들과 촌장들의 차남들이 이러한 (제사장의) 일에 관심을 보이면 어릴 때부터 그들을 데려다가 교육을 시켰다.
Que enseñaban a los hijos de los otros sacerdotes y a los hijos segundos de los señores que les llevaban para esto desde niños, si veían que se inclinaban a este oficio.
7-7 그들이 가르쳤던 지식은 해(年)와 달(月)과 날(日)을 계산하는 법, 의례와 종교행사, 종교행정에 관한 것이었으며, 악운이 있는 날과 그 기간을 계산하는 법, 미래를 예측하는 법, 병을 치료하는 법, 옛것, 그림과 같은 형태의 글자와 문자를 읽고 쓰는 법이었다.
Que las ciencias que enseñaban eran la cuenta de los años, meses y días, las fiestas y ceremonias, la administración de sus sacramentos, los días y tiempos fatales, sus maneras de adivinar, remedios para los males, las antigüedades, leer y escribir con sus letras y caracteres en los cuales escribían con figuras que representaban las escrituras.
7-8 (또한) 주름을 잡아 접는 한 장의 긴 종이로 된 책을 썼는데, 이것은 양쪽 면으로 덮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매우 아름다운 책으로 주름이 잡힌 부분에 세로로 글자를 써내려가는 식이었다; 이 (책의) 종이는 어떤 나무의 뿌리로 제작되었고, 흰 광택을 주어서 글자가 잘 써지도록 하였다, 몇 명의 높은 촌장들은 호기심으로 이러한 기술에 대하여 알고 있었는데, 비록 모든 사람들 앞에서 행하지는 않았지만 (알고 있다는 사실로) 인하여 더욱 많은 존경을 받았다.
Que escribían sus libros en una hoja larga doblada con pliegues que se venía a cerrar toda entre dos tablas que hacían muy galanas, y que escribían de una parte y de otra a columnas, según eran los pliegues; y que este papel lo hacían de las raíces de un árbol y que le daban un lustre blanco en que se podía escribir bien, y que algunos señores principales sabían de estas ciencias por curiosidad, y que por esto eran más estimados aunque no las usaban en público.
VIII 뚜뚤-시우족 사람들(LOS TUTUL-XIU)의 도착과 이들이 마야빤(MAYAPÁ́N)의 촌장들과 맺은 동맹. - 꼬꼼(COCOM)의 폭정과 몰락 그리고 마야빤(MAYAPÁ́N)의 쇠퇴.
VIII LLEGADA DE LOS TUTUL-XIU Y ALIANZA QUE HICIERON CON LOS SÉ́ÑORES DE MAYAPÁ́N. - TIRANÍ́AS DE COCOM, RUINA DE SU PODER Y DE LA CIUDAD DE MAYAPÁ́N.
8-1 인디오들이 이야기하기를 남쪽으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촌장들과 함께 유까딴(Yucatá́n)에 왔다고 한다, 그들이 치아빠스(Chiapas)에서 온 것으로 보이지만 인디오들도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치아빠스(Chiapas)와 유까딴(Yucatá́n) 지역의 많은 어휘들과 동사의 구성이 같은 형태를 띠고; 치아빠스(Chiapas)의 지역들에서 (주민들이) 마을을 버리고 떠난 흔적들이 크게 발견되기 때문에 (이 책의) 저자는 (그들이 치아빠스(Chiapas)에서 왔다고) 짐작하고 있다; 그들은 오로지 빗물에만 의지하며 물도 없고 사람도 살지 않는 유까딴(Yucatá́n)의 지역들을 40년 동안 헤매고 다녔다; 그러다가 마침내 마야빤(Mayapán) 도시 맞은편의 10레구아(legua)정도 떨어진 구릉지에 도착한 후 정착해서 살기 시작하였고, 여러 곳에 매우 훌륭한 건축물들을 지었다; 마야빤(Mayapán) 사람들은 이들과 우호관계를 맺었으며, 마치 현지인들처럼 땅을 경작하는 것을 (보면서) 매우 기뻐하였다, 이렇듯 뚜뚜 시우(Tutu Xiú) 사람들은 마야빤(Mayapán)의 법을 준수하면서 그들과 친척관계를 맺었다; 그리고 뚜뚜 시우족 사람들(los Tutu Xiues)의 촌장인 시우(Xiú)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Que cuentan los indios que de la parte del mediodía vinieron a Yucatán muchas gentes con sus señores, y que parecen haber venido de Chiapas aunque los indios no lo saben; mas este autor lo conjetura porque muchos vocablos y composiciones de verbos son los mismos en Chiapas que en Yucatán; y hay grandes señales en la parte de Chiapas de lugares que han sido despoblados; y dicen que estas gentes anduvieron cuarenta años por los despoblados de Yucatán sin haber en ellos agua sino la que llueve; y que al fin de este tiempo aportaron a las sierras que caen algo enfrente de la ciudad de Mayapán, a diez leguas de ella, y que allí comenzaron a poblar y hacer muy buenos edificios en muchas partes; y que los de Mayapán tomaron mucha amistad con ellos y holgaron de que labrasen la tierra como naturales y que así estos Tutu Xiú se sujetaron a las leyes de Mayapán y emparentaron unos con otros; y que como el señor Xiú, de los Tutu Xiues, era tal, vino a ser muy estimado de todos.
8-2 이들은 어떠한 분쟁도 없이 매우 평화롭게 살았다, 무기를 만들지도 않았고, 사냥을 위한 활조차 사용하지 않았다, 비록 지금은 아주 훌륭한 궁수들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단지 밧줄과 덫만을 가지고 많은 사냥을 하였다; 제사장들은 굵은 막대로 작대기를 던지는 기술을 지니고 있었는데, (이 막대는) 손가락 세 개정도의 굵기를 가지고 있었고, 1/3 지점에 구멍이 나있었으며, 길이는 대략 여섯 뼘 정도 되었다, 이들은 이 막대와 몇 개의 끈을 사용하여 세고 정확하게 (작대기를) 던졌다.
Que estas gentes vivieron tan quiet.amente que no había pleito ninguno, ni usaban armas ni arcos aun para la caza, siendo ahora excelentes flecheros, y que sólo usaban lazos y trampas con los que tomaban mucha caza; y que los sacerdotes tenían cierto arte de tirar varas con un palo grueso como de tres dedos agujerado hacia la tercera parte y de seis palmos de largo y que con él y unos cordeles tiraban fuerte y certeramente.
8-3 죄인들을 다스리는 법이 있었는데, 이러한 법에 따라 많은 처벌이 이루어졌다, 간통죄의 경우 (간통을 저지른 죄인이 남자일 때) 모욕을 당한 사람에게 죄인을 인도하여 높은 곳에서 죄인의 머리위로 커다란 돌을 떨어뜨려 사형에 처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만일 (모욕을 당한 사람이) 원하지 않을 때에는 (그의 뜻에 따라) 죄를 사하여주었다; (반면에) 간통을 저지른 죄인이 여자일 때에는 불명예외에는 다른 어떠한 처벌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불명예 자체가) 매우 심각한 것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그밖에도 처녀를 겁탈한 사람은 돌팔매질에 의한 사형에 처해졌다; 하나의 사건을 예로 들면: 뚜뚜-시우족(los Tutu-xiues) 촌장의 형제가 이러한 죄로 고발되자 (촌장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형제를) 돌로 쳐 (죽인) 후 그 위에 커다란 돌무더기를 쌓도록 하였다; 이 도시가 설립되기 이전에도 간통을 저지른 사람의 배꼽으로 내장을 꺼내던 것과 같은 또 다른 형태의 법이 존재하였다.
Que tenían leyes contra los delincuentes y las aplicaban mucho, como contra el adúltero a quien entregaban al ofendido para que le matase soltándole una piedra grande desde lo alto sobre la cabeza, o lo perdonase si quería; y que a las adúlteras no daban otra pena más que la infamia, que entre ellos era cosa muy grave; y al que forzase doncella lo mataban a pedradas; y cuentan un caso: que el señor de los Tutu-xiues tenía un hermano que fue acusado de este crimen, y le hizo apedrear y después cubrir de un gran montón de piedras; y tenían otra ley antes de la población de esta ciudad, que mandaba sacar las tripas por el ombligo a los adúlteros.
8-4 통치자인 꼬꼼(Cocom)이 부(富)에 욕심을 내기 시작하였다, 이로 인하여 그는 따바스꼬(Tabasco)와 시깔랑고(Xicalango)에 주둔해있던 멕시코(México) 왕들의 군대에게 도시를 넘겨주겠다는 약속을 하였고, 멕시코(México) 사람들을 마야빤(Mayapán)으로 데리고 왔다, 그리고는 힘없는 사람들을 억압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노예로 만들었다; 만일 멕시코(México)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면 이곳 촌장들은 (꼬꼼(Cocom)을) 처단하였을 것이다.
Que el gobernador Cocom entró en codicia de riquezas, y que para esto trató con la gente de guarnición que los reyes de México tenían en Tabasco y Xicalango prometiéndoles entregarles la ciudad, y que así trajo gente mexicana a Mayapán y oprimió a los pobres e hizo muchos esclavos; y los señores le hubieran matado si no hubiesen tenido miedo a los mexicanos.
뚜뚜시우족(los Tutuxiues)의 촌장은 이러한 상황을 용납할 수 없었다, 유까딴(Yucatá́n) 사람들 역시 자신들이 이렇게 [억압받는 것을] 보면서 멕시코 사람들의 무기사용법을 배우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들은 활과 화살, 창, 도끼, 방패, 솜과 소금으로 만든 튼튼한 (마치 갑옷과 같은) 외투 그리고 그 밖의 다른 군장비들을 능수능란하게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 후로는 멕시코 사람들을 우러러보지도 무서워하지도 않게 되었으며, 더 이상 그들에 대하여 많은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다.
Que el señor de los Tutuxiues nunca consintió en esto y que viéndose [oprimidos] los de Yucatán, aprendieron de los mexicanos el arte de las armas y así salieron maestros del arco y flecha y de la lanza y hachuela, y sus rodelas y sacos fuertes de sal y algodón y de otros pertrechos de guerra, y que ya no se admiraban de los mexicanos ni los temían, antes [bien] hacían poca cuenta de ellos.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Y que en esto pasaron algunos años.
8-5 처음으로 노예를 만든 사람은 꼬꼼(Cocom)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의 악덕함으로 인하여 모두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서 계속해서 무기를 사용하였다, 이를 통하여 그들은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게 되었다.
Que aquel Cocom fue el primero que hizo esclavos, pero que de este mal [se] siguió usar las armas con que se defendieron para que no fuesen esclavos todos.
8-6 꼬꼼(Cocom) 가문의 계승자들 중에는 꼬꼼(Cocom)처럼 굉장히 거만했던 사람이 있었다, 그 역시 따바스꼬(Tabasco) 사람들과 동맹을 맺은 후에 더 많은 멕시코 사람들을 이 도시로 끌어들였다, 그가 폭정을 일삼고 사람들을 노예로 전락시키자 촌장들은 조상들만큼이나 위대한 정치인이었던 뚜뚜 시우(Tutu Xiú) 아래로 한데 모이게 되었다, 이들은 꼬꼼(Cocom)을 죽이자는 데에 의견을 모았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 그리고는 부재해있던 (꼬꼼(Cocom)의) 아들 한 명을 제외한 다른 모든 자식들을 처단하는 한편 그들의 집을 약탈하였다, 카카오와 그 밖의 다른 과일의 경작지도 빼앗았는데, 이들이 말하기를 이로써 (꼬꼼(Cocom)이) 과거에 자신들로부터 빼앗아간 것들을 다시 되돌려 받는 것이라고 하였다; —자신들이 부당하게 추방되었다고 이야기하는— 꼬꼼족 사람들(los Cocomes)과 시우족 사람들(los Xiues) 간의 갈등은 오래도록 지속되었다, 그러나 500년 이상 이 도시를 터전삼아 생활하던 사람들은 이곳을 떠나 각자 자신들의 땅으로 되돌아갔다.
Que entre los sucesores de la casa de Cocom hubo uno muy orgulloso e imitador de Cocom, y éste hizo otra liga con los de Tabasco y metió más mexicanos dentro de la ciudad y comenzó a tiranizar y a hacer esclavos a la gente menuda y que por esto se juntaron los señores en el bando de Tutu Xiú, que era gran republicano como sus [ante]pasados, y se concertaron para matar a Cocom y así lo hicieron, matando a todos sus hijos sin dejar más que uno que estaba ausente, y saquearon sus casas y tomaron las heredades que tenía en cacao y otras frutas, diciendo que con ellas se pagaban de lo que les había robado; y que duraron tanto los bandos entre los Cocomes —que decían ser echados injustamente—, y los Xiues que después de haber estado en aquella ciudad más de 500 años la desampararon y despoblaron, yéndose cada uno a su tierra.
IX 마야빤(MAYAPÁ́N)의 연대기적 기념물. - 소뚜따(ZOTUTA) 왕조의 건립. - 첼족(LOS CHELES)의 기원. - 유까딴(YUCATÁ́N)의 3대 주요 왕조.
IX MONUMENTOS CRONOLÓ́GICOS DE MAYAPÁ́N. - FUNDACIÓ́N DEL REINO DE ZOTUTA. - ORIGEN DE LOS CHELES. - LOS TRES REINOS PRINCIPALES DE YUCATÁ́N.
9-1 인디오들의 계산에 의하면 마야빤(Mayapán)에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게 된지 120년 정도 지났다고 볼 수 있다, 이 도시의 광장에는 길이가 10피트(feet)정도 되고 한쪽이 둥글며 잘 가공된 일곱 여덟 개의 돌들이 있다, (이 돌들에는 인디오들이) 사용하는 문자들이 몇 개 새겨져있으나 이미 빗물에 닳아 없어졌기 때문에 그 뜻을 알아보기가 힘들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것을 이 도시의 흥망성쇠에 대한 기록이라고 믿는다.
Que conforme a la cuenta de los indios, hará 120 años que se despobló Mayapán, y que se hallan en la plaza de aquella ciudad siete u ocho piedras de a diez pies de largo cada una, redondas por una parte, bien labradas, y que tienen algunos caracteres que ellos usan y que, desgastados por el agua, no se pueden leer; mas piensan que es memoria de la fundación y destrucción de aquella ciudad.
해안가 마을인 실란(Zilán)에도 키가 더 크기는 하지만 이와 유사한 돌들이 있다, 이것들이 다 무엇이냐는 질문에 원주민들이 대답하기를 20년마다 하나씩 이러한 돌들을 세우곤 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 20이라는) 숫자는 (이곳 사람들이) 연대를 세어나가는 단위이다.
Otras semejantes están en Zilán, pueblo de la costa, aunque más altas, y preguntados los naturales qué cosa eran, respondieron que acostumbraban erigir de 20 en 20 años, que es el número que tienen de contar de edades, una piedra de aquellas.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바른 대답 같지가 않다, 왜냐하면 만일 그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보다 더 많은 (돌들이) 있어야하며, 무엇보다도 마야빤(Mayapán)과 실란(Zilán)을 제외한 다른 마을들에서도 (이러한 돌들이) 발견되어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Mas parece [que esta explicación] no lleva camino, porque según esto habrían muchas más, principalmente que no las hay en otros pueblos sino en Mayapán y Zilán.
9-2 이들 촌장들이 마야빤(Mayapán)을 떠나 그들의 땅으로 되돌아갔을 때에 가장 중요시 여기며 가지고 간 것은 과학에 관한 책들이었다, 이것은 이들이 언제나 제사장들의 조언에 무척 충실했기 때문인데, 바로 이러한 까닭에 이 지역에는 그렇게나 많은 신전들이 지어져있다.
Que lo principal que [se] llevaron a sus tierras estos señores que desampararon Mayapán fueron los libros de sus ciencias porque siempre fueron muy sujetos a los consejos de sus sacerdotes, y que por esto hay tantos templos en aquellas provincias.
9-3 살라망까(Salamanca)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울루아(Ulúa)에서의 상업계약으로 인하여 (잠시) 마을을 떠나있던 까닭에 죽음을 면할 수 있었던 꼬꼼(Cocom)의 아들은 도시가 파괴되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하자 황급히 (집으로) 달려갔다, 그는 친척들과 하인들을 이끌고 어느 한 장소에 정착하였는데, 우리들은 배신을 당했다(jugados fuimos)라는 뜻의 띠불론(Tibulón)이라고 이 마을을 명명하였다; 꼬꼼족(los Cocomes)의 여러 가족들은 [그곳에] 한데 모여 살며 숲속에 다른 많은 마을들을 이루었다.
Que el hijo de Cocom que escapó de la muerte por estar ausente en sus contrataciones en tierra de Ulúa, que es adelante de la villa de Salamanca, al saber la muerte de su padre y el desbarato de la ciudad, vino muy presto y se juntó con los parientes y vasallos y pobló un lugar que llamó Tibulón, que quiere decir jugados fuimos; y que edificaron otros muchos pueblos en aquellos montes reuniéndose [allí] muchas familias de estos Cocomes.
이 촌장이 지배하는 지역은 수뚜따(Zututa)라고 불린다.
La provincia donde manda este señor se llama Zututa.
9-4 마야빤(Mayapán)의 촌장들은 꼬꼼(Caocom)을 도와준 멕시코 사람들에게 보복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 땅의 통치자에 의하여 설득을 당한 것뿐이고, 그들이 외지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촌장들은 멕시코 사람들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그들끼리만 마을을 이루어 살거나 혹은 이 땅을 떠나되 (마야빤(Mayapán)) 사람들과의 결혼을 금지하는 한편 그들 내에서만 결혼할 수 있도록 하였다.
Que estos señores de Mayapán no tomaron venganza de los mexicanos que ayudaron a Cocom porque fueron persuadidos por el gobernador de la tierra y porque eran extranjeros; y que así los dejaron dándoles facultades para que poblasen un pueblo apartado, para sí solos, o se fuesen de la tierra no pudiéndose casar con las naturales de ella, sino entre ellos.
(멕시코 사람들은) 따바스꼬(Tabasco)의 호수나 (그곳의) 모기들에게 돌아가는 대신에 유까딴(Yucatá́n)에 남아있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는 에스빠냐 사람들과의 두 번째 전쟁이 있기 전까지 (마야빤(Mayapán) 사람들이) 정해준 까눌(Canul)이라는 곳에 정착해서 살았다.
Y que escogieran quedarse en Yucatán y no volver a las lagunas y mosquitos de Tabasco, y poblaron la provincia de Canul que les fue señalada y que allí duraron hasta las segundas guerras de los españoles.
9-5 사람들이 말하기를 마야빤(Mayapán)의 12명의 제사장들 중에는 현자가 한명 있었다고 한다, 그는 그의 외동딸을 아 첼(Ah Chel)이라는 어느 귀족의 아들과 결혼시켰고, 그가 자식들을 낳자 이 지역의 관습에 따라 그의 자식들에게도 (아 첼(Ah Chel)이라는 아버지의) 이름을 물려주었다; (현자인) 제사장은 자신의 사위인 (아 첼(Ah Chel)에게) 도시의 멸망을 예언하였고,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 있도록 (사위의) 왼팔에 매우 중요한 문구들을 새겨 넣었다, 그리하여 사위는 장인이 알고 있던 과학지식을 전수받을 수 있었다; 덕분에 (아 첼(Ah Chel)은) 어느 해안가 마을에 정착하였고, 그 후 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띠꼬츠(Tikoch)에 자리 잡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곳은) 유명한 첼족(los Cheles)의 마을이 되었으며, 이들이 유까딴(Yucatá́n)에서 가장 유명한 지역을 이루게 되었다, 또한 오늘날의 잇사말(Ytzamal)에 해당되는 이 지역은 (아 첼(Ah Chel)이라는) 이름으로 인하여 아 낀 첼(Ah Kin Chel)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렇게 첼족 사람들(los Cheles)은 몬떼호(Montejo) 총독이 들어오기 전까지 이곳에 정착하여 대대손손 유까딴(Yucatá́n)에 자손들을 퍼뜨렸다.
Dicen que entre los doce sacerdotes de Mayapán hubo uno muy sabio que tuvo una sola hija a quien casó con un mancebo noble llamado Ah Chel, el cual hubo hijos que se llamaron como el padre conforme a la usanza de esta tierra; y dicen que este sacerdote avisó a su yerno de la destrucción de aquella ciudad y que éste supo mucho en las ciencias de su suegro, el cual, dicen, le escribió ciertas letras en la tabla del brazo izquierdo, de gran importancia para ser estimado; y con esta gracia pobló en la costa hasta que vino a hacer asiento en Tikoch siguiéndole gran número de gentes, y que así fue muy insigne población aquella de los Cheles, y poblaron la más insigne provincia de Yucatán, a la cual llamaron, por aquel nombre, la provincia de Ah Kin Chel, y es la de Ytzamal, donde residieron estos Cheles y se multiplicaron en Yucatán hasta la entrada del adelantado Montejo.
9-6 (유까딴(Yucatán)에는) 꼬꼼(Cocomes), 시우(Xiues), 첼(Cheles)이라고 불리는 세 개의 주요 가문이 있었다, 이들은 파벌을 형성하며 서로에게 적개심을 품었는데, (이러한 현상은) 기독교인이 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Que entre las tres casas de señores principales, que eran los Cocomes, Xiues, y Cheles, hubo grandes bandos y enemistades y hoy en día, con ser cristianos, aún las hay.
꼬꼼족 사람들(los Cocomes)은 시우족 사람들(los Xiues)을 가리켜서 그들의 땅을 훔치고 촌장을 살해한 외부의 배신자들이라고 말하였다.
Los Cocomes decían a los Xiues que eran extranjeros y traidores al matar a su señor principal robándole su hacienda.
시우족 사람들(los Xiues)은 자신들도 그들 못지않게 훌륭하고 오래된 왕족이라고 하였고, 자신들은 배신자들이 아니라 폭군을 죽이고 이 땅을 구한 사람들이라고 하였다.
Los Xiues se decían tan buenos como ellos, tan antiguos y tan señores, y que no fueron traidores sino libertadores de la patria matando al tirano.
첼(Chel)은 자신이 마야빤(Mayapán)에서 가장 추앙받던 제사장의 손자로 그들 못지않게 훌륭한 가문의 출신이라고 하였다, 또한 그들만큼이나 훌륭한 촌장의 자리에 스스로 오를 수 있었으니 자신은 그들보다 더욱 뛰어난 사람이라고 하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해안가에 살고 있던 첼족(Chel)은 꼬꼼족(Cocom)에게 생선과 소금을 주지 않았고, 이를 구하려면 멀리 돌아가도록 하였으며, 꼬꼼족(Cocom)도 첼족(Chel)에게 사냥을 하거나 열매를 채취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서로의 음식을 무미건조하게 만드는 결과를 야기하였다.
El Chel decía que era tan bueno como ellos en linaje, por ser nieto de un sacerdote, el más estimado de Mayapán, y que por su persona era mejor que ellos pues había sabido hacerse tan señor como ellos, y que con esto se hacían desabrimiento en los mantenimientos porque el Chel, que estaba en la costa, no quería dar pescado ni sal al Cocom, haciéndole ir lejos por ello, y el Cocom no dejaba sacar caza ni frutas al Chel.
X 정복 이전 유까딴(YUCATÁ́N)에서 발생한 많은 재난들: 태풍, 역병, 전쟁 등.
X VARIAS CALAMIDADES SUFRIDAS EN YUCATÁ́N EN EL SIGLO ANTERIOR A LA CONQUISTA: HURACANES, PESTILENCIAS, GUERRAS, ETC.
10-1 이곳 사람들은 20년이 넘도록 건강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리며 수많은 자손들을 번창시켰다, 그리하여 이 땅 전체는 마치 하나의 마을처럼 보였고; 오늘날 사방에서 볼 수 있을 정도로 무척이나 많은 신전들을 지어놓았다, 또한 숲으로 나가보면 수풀사이로 집터와 훌륭한 건축물들을 발견할 수 있다.
Que estas gentes tuvieron más de 20 años de abundancia y de salud y se multiplicaron tanto que toda la tierra parecía un pueblo; y que entonces se labraron los templos en tanta muchedumbre como se ve hoy en día por todas partes, y que atravesando los montes se ven entre la arboleda asientos de casas y edificios labrados a maravilla.
10-2 그렇게 행복했던 시간이 지나고, 어느 겨울날 오후 6시경에 바람이 불기 시작하였다, 바람이 (점점) 거세지더니 어느덧 네 개의 바람을 거느린 태풍으로 돌변하였다, 이 태풍은 자라던 모든 나무들을 쓰러뜨리며 동물들의 목숨을 대량으로 앗아갔다, 또한 높은 집들까지도 무너뜨렸는데, 짚으로 된 지붕과 추위를 피하려고 집안에 피워놓았던 불로 인하여 집에 불이 붙게 되었고, 그 결과 수많은 사람들이 화염 속에서 목숨을 잃었다; 간신히 도망쳐 나온 사람들마저 나뭇조각에 맞아 온몸이 산산조각 났다; 태풍은 다음날 정오까지 계속되었다, 작은 집에 살던 사람들은 (이 참변을) 피해갈 수 있었는데, 이들 중에는 지역의 관습에 따라 처음 몇 년 동안을 부모님 댁이나 장인장모 댁 앞에 작은 집을 짓고 살아가던 갓 결혼한 젊은이들도 있었다; (이 태풍으로 인하여) 이 땅은 줄곧 불리던 사슴과 칠면조의 땅(de los venados y de los pavos)이라는 이름을 잃게 되었다, 살아남은 나무도 그 수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현재 심어진 나무들은 마치 동일한 시기에 심어진 것처럼 모두 키가 똑같을 뿐만 아니라 높은 곳에서 보면 꼭 가위로 잘라놓은 것처럼 보인다.
Que después de esta felicidad, una noche, por invierno, vino un aire como a las seis de la tarde y fue creciendo, y haciéndose huracán de cuatro vientos, y que este aire derribó todos los árboles crecidos, lo cual hizo gran matanza en todo género de caza y derribó las casas altas las cuales, como son de paja y tenían lumbre dentro por el frío, se incendiaron y abrasaron a gran parte de la gente; y si algunos escapaban quedaban hechos pedazos de los golpes de la madera; y que duró este huracán hasta el otro día a las doce en que se vio que habían escapado quienes moraban en casas pequeñas, entre ellos los mozos recién casados que allá acostumbraban hacer unas casillas enfrente de las de sus padres o suegros donde moran los primeros años; y que así perdió la tierra el nombre a la que solían llamar de los venados y de los pavos, y tan sin árboles quedó, que los que ahora hay parece que se plantaron juntos según están nacidos a la igual, pues mirando la tierra desde algunas partes altas, parece que toda está cortada con una tijera.
10-3 살아남은 사람들은 다시 힘을 내어서 건축물들을 짓고 땅을 경작하였으며 많은 자손들을 번창시켰다, 그렇게 이곳 사람들은 좋은 기후 속에서 16년 동안 건강한 삶을 누렸다, 특히 마지막 해는 그 어느 해보다 더욱 풍요로운 해였다; 그런데 열매를 막 수확하려고 할 즈음에 전염성 열병이 창궐하였다, (이 열병은) 24시간 동안 지속되었고, 역병이 돌고 난 후로 [병에 걸린 사람들의] 몸이 퉁퉁 붓기 시작하였다, 사방에서는 구더기가 들끓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역병으로 인하여 목숨을 잃었으며, 대부분의 열매는 수확되지 못한 채 남아있게 되었다.
Que quienes escaparon se animaron a edificar y cultivar la tierra y se multiplicaron mucho viniéndoles 16 años de salud y buenos temporales y que el último fue el más fértil de todos; y que queriendo comenzar a coger los frutos sobrevinieron por toda la tierra unas calenturas pestilenciales que duraban 24 horas, y después de cesadas se hinchaban [los enfermos] y reventaban llenos de gusanos, y que con esta pestilencia murió mucha gente y gran parte de los frutos quedó sin coger.
10-4 역병이 지나간 후로 16년간 다시 좋은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광기와 분쟁이 되살아나면서 십오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전쟁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후 정국이 가라앉고 20년 동안 평화가 지속되었으나 (곰보와 같은) 커다란 자국이 생기는 역병이 발생하였다, 이로 인하여 심한 악취와 함께 사람의 몸뚱이가 썩어문드러지고 삼사 일만에 (몸에서) 팔다리가 떨어져나갔다.
Que después de cesada la peste tuvieron otros 16 años buenos en los cuales se renovaron las pasiones y bandos, de manera que murieron en batallas ciento cincuenta mil hombres y que con esta matanza se sosegaron e hicieron la paz y descansaron por 20 años, después de los cuales les dio una peste de grandes granos que les pudría el cuerpo con gran hedor, de manera que se les caían los miembros a pedazos en tres o cuatro días.
지금은 역병이 있은 후로 50여년이 흘렀다, (가장 최근의) 역병이 창궐하기 20년 전에는 전쟁으로 인한 대참사가 있었고, 그 전쟁이 발발하기 16년 전에는 몸이 퉁퉁 붓고 구더기가 들끓는 역병이 있었다, 또한 그 역병이 있기 16년 전에는 태풍으로 인한 재난이 있었는데, 이렇게 태풍이 불어 닥친 해는 마야빤(Mayapán) 도시가 멸망한 이후로 22년 혹은 23년이 지나고 난 후의 일이다.
Que habrá que pasó esta última plaga más de 50 años y que la mortandad de la guerra fue 20 años antes y la peste de la hinchazón y gusanos sería 16 años antes de las guerras y el huracán otros 16 antes que ésta y 22 ó 23 después de la destrucción de la ciudad de Mayapán.
이러한 계산에 의하면 (마야빤(Mayapán)) [도시]가 멸망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125년 전의 일이며, 그 사이에는 앞서 이야기한 불행한 일들과 에스빠냐 사람들이 이곳에 들어온 이후로 발생한 전쟁 및 주님께서 내리신 다른 많은 벌들에 의한 불행한 일들이 이 땅에 있어왔다; 비록 그 숫자가 많지는 않지만 (이곳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은 매우 경이로운 일이다.
Que según esta cuenta, hace 125 años que se desbarató [la ciudad], dentro de los cuales años los de esta tierra han pasado las dichas miserias y otras muchas que comenzaron al entrar en ella los españoles, así por guerras como por otros castigos que Dios envía; de manera que es maravilla haber la gente que hay, aunque no es mucha.
XI 에스빠냐 사람들의 도착에 대한 예언들. - 유까딴(YUCATÁ́N) 최초의 총독인 프란씨스꼬 데 몬떼호(FRANCISCO DE MONTEJO)의 전기(傳記).
XI PROFECÍ́AS DE LA LLEGADA DE LOS ESPAÑOLES. - BIOGRAFÍ́A DE FRANCISCO DE MONTEJO, PRIMER ADELANTADO DE YUCATÁ́N.
11-1 멕시코 사람들이 에스빠냐 사람들의 도착과 자신들의 권력 및 종교의 종말에 대한 징후와 예언을 가지고 있었듯이, 유까딴(Yucatá́n) 사람들도 몬떼호(Montejo) 총독이 그들을 정복하기 몇 년 전부터 이러한 것들을 가지고 있었다; 뚜뚜 시우(Tutu Xiu) 지방에 위치한 마니(Maní)의 구릉지에는 칠람(Chilám)의 임무를 수행하며 악마의 계시를 전달하는 아 깜발(Ah Cambal)이라는 인디오가 살고 있었다, 그가 사람들에게 공표하기를 머지않아 외지인들이 자신들을 지배할 것이요, 유일한 신과 나무 막대기의 덕(德)을 전도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 나무 막대기는 그들 말로 바몬체(Vamonché)라고 불리는데, 이 말인즉슨 악마들에 대항하여 높이 세워진 커다란 덕(德)의 막대기(palo enhiesto de gran virtud contra los demonios)라는 뜻이다.
Que como la gente mexicana tuvo señales y profecías de la venida de los españoles y de la cesación de su mando y religión, también las tuvieron los de Yucatán algunos años antes que el adelantado Montejo los conquistase; y que en las sierras de Maní, que es en la provincia de Tutu Xiu, un indio llamado Ah Cambal, de oficio Chilám, que es el que tiene a su cargo dar las respuestas del demonio, les dijo públicamente que pronto serían señoreados por gente extranjera, y que les predicarían un Dios y la virtud de un palo que en su lengua llaman Vamonché, que quiere decir palo enhiesto de gran virtud contra los demonios.
11-2 세례를 받은 후에 돈 후안 꼬꼼(Don Juan Cocom)이라고 불리게 된 꼬꼼족 사람들(los Cocomes)의 후계자가 있었다, 그는 커다란 명성을 지니고 있었고, 여러모로 박식하였으며, 굉장히 영리했고, 자연의 섭리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이 책의 저자인 디에고 데 란다 신부(Fray Diego de Landa)와도 매우 친하게 지냈으며 그에게 많은 옛일들을 들려주었다, 또한 그의 할아버지는 마야빤(Mayapán)에서 목숨을 빼앗긴 꼬꼼(Cocom)의 아들이었는데, 그가 (란다 신부에게) 보여준 할아버지의 책에는 한 마리의 사슴이 그려져 있었다; 옛날 그의 할아버지는 손자에게 이 땅에 소라고 불리는 커다란 사슴들이 들어오면 신들을 향한 종교의식이 중단될 것이라고 이야기하였다; (그런데) 에스빠냐 사람들이 커다란 소들을 데리고 왔으므로 (그의 말이) 실현된 셈이다.
Que el sucesor de los Cocomes, llamado don Juan Cocom, después de bautizado, fue hombre de gran reputación y muy sabio en sus cosas y bien sagaz y entendido en las naturales; y fue muy familiar del autor de este libro, fray Diego de Landa, y le contó muchas antigüedades y le mostró un libro que fue de su abuelo, hijo del Cocom que mataron en Mayapán, y en él estaba pintado un venado; y que aquel su abuelo le había dicho que cuando en aquella tierra entrasen venados grandes, que así llamaban a las vacas, cesaría el culto de los Dioses; y que se había cumplido porque los españoles trajeron vacas grandes.
11-3 프란씨스꼬 데 몬떼호(Francisco de Montejo) 총독은 살라망까(Salamanca) 출신으로 산또 도밍고(Santo Domingo)와 에스빠뇰라 섬(Isla Española)에 도시를 건설한 후 인디아스(Indias)로 건너갔다, 처음 얼마간은 세비야(Sevilla)에 머물면서 아들을 한명 두었다; 그 후 쿠바(Cuba)의 도시로 건너가 그곳에서 일을 하였고, 좋은 조건으로 인하여 많은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다, 그중에는 섬의 총독이었던 디에고 벨라스께스(Diego Velázquez)와 에르난도 꼬르떼스(Hernando Cortés)도 있었다; (당시) 총독은 프란씨스꼬 에르난데스 데 꼬르도바(Francisco Hernández de Có́rdoba)가 처음 유까딴(Yucatá́n)을 발견하고 돌아와서 그곳이 매우 풍요로운 땅이라는 보고를 하자 유까딴(Yucatá́n) 지역을 정복하고 보다 많은 땅들을 발견하기 위하여 자신의 조카인 후안 데 그리할바(Juan de Grijalva)를 파견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몬떼호(Montejo)에게는 그리할바(Grijalva)와 함께 가라는 지시를 내렸다.
Que el adelantado Francisco de Montejo fue natural de Salamanca y que pasó a las Indias después de poblada la ciudad de Santo Domingo y la Isla Española, habiendo estado primero algún tiempo en Sevilla donde dejó un hijo niño que allí hubo; y que vino a la ciudad de Cuba donde ganó de comer y tuvo muchos amigos por su buena condición y entre ellos fueron Diego Velázquez, gobernador de la Isla, y Hernando Cortés; y que como el gobernador determinó enviar a Juan de Grijalva, su sobrino, a rescatar a tierras de Yucatán y a descubrir más tierra después de la nueva que Francisco Hernández de Córdoba trajo cuando la descubrió, diciendo que era tierra rica, determinó que Montejo fuese con Grijalva.
부유했던 [몬떼호(Montejo)는] 한 척의 선박과 다른 많은 물자들을 제공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유까딴(Yucatá́n)을 두 번째로 발견한 에스빠냐 사람들 중 한명이 될 수 있었다.
[Montejo] como era rico, puso uno de los navíos y muchos bastimentos y fue así de los segundos españoles que descubrieron a Yucatán.
그는 유까딴(Yucatá́n)의 해변을 바라보며 이곳에서 쿠바(Cuba)에서보다 더 큰 부자가 되고 싶다는 욕망을 품었다, 그리고는 에르난도 꼬르떼스(Hernando Corté́s)의 결단력을 보자 자신의 재산과 사람을 동원하여 그를 따라나섰다, 꼬르떼스(Corté́s)는 그를 선장으로 임명하여 그의 지휘 하에 배 한척을 맡기도록 하였다.
Y que vista la costa de Yucatán tuvo deseos de enriquecerse allí antes que en Cuba, y vista la determinación de Hernando Cortés, le siguió con su hacienda y persona y Cortés le dió un navío a su cargo haciéndole capitán de él.
그들은 유까딴(Yucatá́n)에서 헤로니모 데 아길라르(Gerónimo de Aguilar)를 만났다, 몬떼호(Montejo)는 그를 통하여 이곳의 언어와 관습을 이해할 수 있었다, 꼬르떼스(Cortés)는 누에바 에스빠냐(Nueva España)에 도착하자마자 마을을 형성하였다, 그리고 그가 가진 문장(紋章)을 따서 처음으로 정착한 마을에 베라-끄루스(Vera-cruz)라는 지명을 붙였다; 몬떼호(Montejo)는 이곳에서 알깔데 델 레이(Alcalde del Rey, 왕의 도지사)로 임명되었고, 그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훗날 주변지역의 항해를 마치고 돌아온 꼬르떼스(Corté́s)에 의하여 공표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꼬르떼스(Corté́s)는 에스빠냐의) 왕에게 바치는 세금을 운송하고 그들이 발견한 땅과 이곳에서 시행하려는 일들에 대한 렐라씨온(Relación, 보고서)을 전달하기 위하여 몬떼호(Montejo)를 누에바 에스빠냐(Nueva España)의 행정관중 한명으로 에스빠냐에 파견하였다.
Que en Yucatán recogieron a Gerónimo de Aguilar de quien Montejo entendió la lengua de aquella tierra y sus cosas, y que llegado Cortés a la Nueva España comenzó a poblar y al primer pueblo llamó la Vera-cruz conforme al blasón de su bandera; y que en este pueblo fue Montejo nombrado Alcalde del Rey, cargo en que se mantuvo discretamente y así lo publicó por tal Cortés cuando tomó por allí después del camino que hizo navegando la tierra a la redonda, y que por esto lo envió a España como uno de los procuradores de la Nueva España y para que llevase el quinto del rey con una relación de la tierra descubierta y de las cosas que comenzaban a hacerse en ella.
11-4 프란씨스꼬 데 몬떼호(Francisco de Montejo)가 까스띠야(Castilla)의 법정에 도착했을 때 꼰세호 데 인디아스(Consejo de Indias, 인디아스 자문위원회)의 장관은 부르고스(Burgos)의 오비스뽀(Obispo, 주교)인 후안 로드리게스 데 폰세까(Juan Rodríguez de Fonseca)였다, 그는 누에바 에스빠냐(Nueva España)에 야심을 품고 있던 쿠바(Cuba)의 총독 디에고 벨라스께스(Diego Velázquez)에 의하여 꼬르떼스(Corté́s)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던 차였다; 꼰세호(Consejo, 자문위원회)의 다른 대부분의 관료들도 그가 왕에게 돈을 보내지는 않으면서 요구만하고, 황제가 플란데스(Flandes)에 있는 것을 알면서도 일을 잘 처리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하였다], 이처럼 그들도 꼬르떼스(Corté́s)가 하는 일들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생각하였다.
Que cuando Francisco de Montejo llegó a la corte de Castilla, era Presidente del Consejo de Indias Juan Rodríguez de Fonseca, obispo de Burgos, quien estaba mal informado contra Cortés por parte de Diego Velázquez, gobernador de Cuba, que pretendía también lo de Nueva España; y que estaban los más del Consejo contra los negocios de Cortés [diciendo] que parecía que no enviaba dineros al Rey sino que se los pedía y que sabiendo que el Emperador estaba en Flandes, por eso se negociaba mal.
[몬떼호(Montejo)]는 1519년 인디아스(Indias)를 떠나 (15)26년 (다시) 배를 타고 (누에바 에스빠냐(Nueva España)로 돌아가기 전까지) 7년을 참고 견뎠다, 이러한 근성으로 (꼰세호(Consejo, 자문위원회)의) 장관과 [왕국]을 지배하던 교황 아드리아노(Adriano)를 설득할 수 있었다, 또한 황제와 대화를 나누기도 하였는데, (그와의 대화는 일을 성사시키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이로써 당연히 그래야하듯이 꼬르떼스(Corté́s)의 일은 잘 마무리되었다.
[Montejo] perseveró siete años desde que salió de las Indias, que fue en 1519, hasta que se embarcó, que fue en 26, y que con esta perseverancia recusó al Presidente y al Papa Adriano que era gobernador [del Reyno] y habló al emperador, lo cual aprovechó mucho, pues se despachó lo de Cortés como era de razón.
XII 몬떼호(MONTEJO)가 유까딴(YUCATÁ́N)을 항해하고 정복하다. - 첼족 사람들(LOS CHELES)이 치첸 이차(CHICHÉN ITZA)를 내어주다. - 인디오들은 자신들을 가만히 내버려둘 것을 요구하다.
XII MONTEJO NAVEGA A YUCATÁ́N Y TOMA POSESIÓ́N DE LA TIERRA. - LOS CHELES LE CONCEDEN EL ASIENTO DE CHICHÉN ITZÁ́́́. - LOS INDIOS LE OBLIGAN A QUE LOS DEJE.
12-1 몬떼호(Montejo)는 (까스띠야(Castilla)의) 법정에 있는 동안 다른 것들을 협상하는 대신에 자신을 위하여 유까딴(Yucatá́n) 정복에 대한 협상을 하였다; (에스빠냐 정부로부터) 총독의 직위를 수여받은 후에 그는 자신과 이름이 같은 13살짜리 조카를 데리고 세비야(Sevilla)로 향하였고, 세비야(Sevilla)에서 28살의 청년이 된 아들을 찾아 함께 데리고 떠났다.
Que en este tiempo que Montejo estuvo en la corte negoció para sí la conquista de Yucatán aunque pudo haber negociado otras cosas; le dieron el título de adelantado y se vino a Sevilla llevando a un sobrino suyo de trece años de edad y de su mismo nombre, y en Sevilla halló a su hijo de 28 años a quien llevó consigo.
또한 세비야(Sevilla)의 돈 많은 과부와 구두(口頭)로 결혼을 함으로써 500명의 사람들을 모을 수 있었는데, 그렇게 그들을 모두 세 척의 배에 (나누어) 태웠다.
Trató palabras de casamiento con una señora de Sevilla, viuda rica, y así pudo juntar 500 hombres a quienes embarcó en tres navíos.
계속된 여행 끝에 그는 유까딴(Yucatá́n)의 섬인 꾸스밀(Cuzmil)에 도착하였다, 그곳의 인디오들은 꼬르떼스(Corté́s)와 함께 온 에스빠냐 사람들에게 이미 익숙해져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보고서도 놀라지 않았다, 몬떼호(Montejo)는 인디오들과 소통하기 위하여 인디오들의 어휘를 배우려고 많은 노력을 하였다, 그는 다시 유까딴(Yucatá́n)으로 항해하여 그곳을 점령하였는데, 그의 부하는 손에 깃발을 든 채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주님과 까스띠야(Castilla)의 왕을 위하여 주님의 이름으로 이 땅을 정복하노라”.
Siguió su viaje y aportó a Cuzmil, isla de Yucatán, donde los indios no se alteraron porque estaban domesticados con los españoles de Cortés, y que allí procuró saber muchos vocablos de los indios para entenderse con ellos, y que de allí navegó a Yucatán y tomó posesión diciendo un alferez suyo con la bandera en la mano: “en nombre de Dios tomo la posesión de esta tierra por Dios y por el rey de Castilla”.
12-2 이러한 방법으로 그는 제법 사람이 많이 살고 있던 아래쪽 해안을 따라서 꼬닐(Conil)이라는 해안가 마을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인디오들은 수많은 말(馬)과 사람들을 보고는 무척 놀란 나머지 온 마을 사람들에게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하여 알렸다, 그들은 에스빠냐 사람들이 무슨 목적으로 (이곳에 왔는지를) [궁금해 하였다].
Que de esta manera se fue costa abajo, que estaba bien poblada, hasta llegar a Conil, pueblo de aquella costa, y que los indios se espantaban de ver tantos caballos y gente, y que dieron aviso a toda la gente de lo que pasaba, y esperaban [ver] el fin que tenían los españoles.
12-3 치까까(Chicaca) 지방의 인디오 촌장들은 평화적인 목적으로 총독을 방문하였고, (그로부터) 좋은 대우를 받았다; 이들 중에는 무척 힘이 센 남자가 한 명 있었는데, 그는 주인 뒤를 따라가고 있던 검은 하인에게서 칼을 빼앗아 총독을 죽이려는 시도를 하였다, (총독은) 에스빠냐 사람들이 달려올[때까지] (그를 잘) 막아내었다, 그러나 (에스빠냐 사람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늘 경계를 늦추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Que los indios señores de la provincia de Chicaca vinieron al adelantado, a visitarle en son de paz y fueron bien recibidos; entre ellos había un hombre de grandes fuerzas, quien quitó un alfange a un negrillo que lo llevaba detrás de su amo y quiso matar con él al adelantado quien se defendió [hasta que] se llegaron los españoles y comprendieron que era menester andar sobre aviso.
12-4 총독은 사람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지역이 어디인지를 알고자하였다, 그리고 (그곳이) 첼족(los Cheles)의 촌장들이 살고 있는 떼꼬츠(Tekoch)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떼꼬츠(Tekoch)는) 에스빠냐 사람들이 향하고 있던 길의 아래쪽 해안가에 위치해있었다; 인디오들은 (에스빠냐 사람들이) 이 땅을 떠나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동요를 하거나 훼방을 놓지 않았다, 그리하여 (에스빠냐 사람들은) 떼꼬츠(Tekoch)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그곳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크고 훌륭한 마을이었다.
Que el adelantado procuró saber cuál era la mayor población y supo que la de Tekoch en donde eran señores los Cheles, la cual estaba en la costa tierra abajo por el camino que los españoles llevaban; y que los indios, pensando que caminaban para salirse de la tierra, no se alteraban ni les estorbaban el camino y de esta manera llegaron a Tekoch al que hallaron pueblo mayor y mejor de lo que habían pensado.
[총독은] 첼족 사람들(los Cheles)보다 훨씬 더 저항이 심했던 참뽀똔(Champotón)의 꼬우오족 사람들(los Couohes)이 이 땅을 지배하고 있지 않은 것을 기쁘게 생각하였다, (첼족 사람들(los Cheles)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그들의 종교제도에 대하여 다른 (족들)만큼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총독이 (에스빠냐) 사람들을 위한 마을을 만들 수 있도록 그곳에서 7레구아(legua) 정도 떨어진 참으로 훌륭한 장소인 치첸이사(Chichenizá)를 내어주었다, (그리하여 에스빠냐 사람들은) 그곳에서부터 땅을 정복해나가기 시작하였는데, 아 낀 첼(Ah Kin Chel)족 사람들이 그들에게 저항을 하지 않았고, 뚜뚜 시우(Tutu Xiu)족 사람들이 도움을 주었기 때문에 일을 쉽게 진행할 수 있었다; 또한 이러한 이유로 다른 족들도 크게 저항하지 않았다.
[Y el adelantado] fue dichoso de que no fuesen señores de aquella tierra los Couohes de Champotón, que siempre fueron de más coraje que los Cheles, quienes con el sacerdocio que les dura hasta hoy no son tan orgullosos como otros y por ello concedieron al adelantado que pudiese hacer un pueblo para su gente y les dieron para ello el asiento de Chichenizá, a siete leguas de allí, que es muy excelente, y que desde allí fue conquistando la tierra lo cual hizo fácilmente porque los de Ah Kin Chel no le resistieron y los de Tutu Xiu le ayudaron; y con esto, los demás hicieron poca resistencia.
12-5 총독은 사람들을 시켜서 치첸이사(Chichenizá)[에] 건축물을 짓도록 하였다, 또한 인디오들처럼 나무로 집을 짓고, 기다란 짚과 야자수 잎으로 지붕을 얹어서 단시간 내에 마을 하나를 만들 수 있었다.
Que de esta manera pidió el adelantado gente para edificar [en] Chichenizá y en breve edificó un pueblo haciendo las casas de madera y la cobertura de ciertas palmas y paja larga, al uso de los indios.
인디오들도 큰 어려움 없이 일을 잘해나가는 듯이 보였다.
Y se fue viendo que los indios servían sin pesadumbre.
그가 이 땅에 있는 사람들을 세어보니 그 수가 굉장히 많았다, (그리하여) 마을 사람들을 에스빠냐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는데, 사람들이 말하기를 가장 적게 배당받은 사람의 경우만 하더라도 2,000-3,000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 후 총독은) 인디오들에게 이 도시를 위하여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명령을 내리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인디오들의 불만을 자아내었지만 그들은 (본심을) 감추며 이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Contó la gente de la tierra, que era mucha, y repartió los pueblos entre los españoles y, según dicen, a quien menos cabía alcanzaban dos o tres mil indios de repartimiento; y así comenzó a dar orden a los naturales de cómo habían de servir a aquella ciudad, [cosa] que no agradó mucho a los indios, aunque disimularon por entonces.
XIII 몬떼호(MONTEJO)가 사람들과 함께 유까딴(YUCATÁ́N)을 떠나 멕시코(MÉ́́XICO)로 향하다. - 그 후 그의 아들 프란씨스꼬 데 몬떼호(FRANCISCO DE MONTEJO)가 이 땅을 평정하다.
XIII MONTEJO DEJA YUCATÁ́N CON SU GENTE Y VA A MÉ́́XICO. - SU HIJO FRANCISCO DE MONTEJO, PACIFICA DESPUÉ́S LA TIERRA.
13-1 몬떼호(Montejo) 총독은 의도적으로 적들이 있는 곳을 점령하지 않기로 하였다, 왜냐하면 멕시코(México)로 나갔다 들어오고 에스빠냐의 일들을 (처리하기에는) 바다와 너무 멀리 떨어져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자신들이 촌장으로 있는 곳에서 외지인들에게 노역을 하는 것에 큰 불만을 느낀 인디오들이 도처에서 공격을 해오기 시작하였다; (총독은 에스빠냐) 사람들과 함께 말을 (타고) 스스로를 방어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그러나 인디오들은 나날이 강해졌고, 결국 (에스빠냐 사람들에게는) 식량이 부족해졌다.
Que el adelantado Montejo no pobló a propósito de quien tiene enemigos porque estaba muy lejos del mar para tener entrada y salida a México y para las cosas de España; y que a los indios, pareciéndoles cosa dura servir a extranjeros [allí] donde ellos eran señores, comenzaron a ofenderle por todas partes; y aunque él se defendía con sus caballos y gente, y les mataba muchos, los indios se reforzaban cada día de manera que les vino a faltar la comida.
그리하여 어느 날 밤 (에스빠냐 사람들은) 개 한 마리를 종의 추에 묶어서 (개가) 닿지 못할 정도의 거리에 약간의 빵을 두고는 도시를 떠나버렸다, 그날 (에스빠냐 사람들은 인디오들이) 자신들을 쫓아오지 못하게 하려는 생각으로 (미리) 소규모 전투를 벌여 인디오들을 지치게 만든 상태였다, 개는 빵을 먹기 위하여 종을 울렸고, (이 소리를 들은) 인디오들은 (에스빠냐 사람들이) 자신들을 공격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무척이나 놀랐다; 그러나 이후 자신들이 속았다는 것을 알아채자 에스빠냐 사람들을 뒤쫓기 시작하였는데, 어디로 갔는지를 몰랐기 때문에 사방팔방으로 (찾아다녔다).
Que al fin una noche dejaron la ciudad poniendo a un perro atado al badajo de la campana y un poco de pan apartado para que no lo pudiese alcanzar, y el mismo día cansaron a los indios con escaramuzas para que no los siguiesen y el perro repicaba la campana para alcanzar el pan lo cual maravilló mucho a los indios pensando que querían salir por ellos; mas después de sabido quedaron corridos de la burla y acordaron seguir a los españoles por muchas partes porque no sabían el camino que llevaban.
(바른) 길로 쫓아간 사람들은 에스빠냐 사람들을 발견하자 그들이 마치 도망자들인 양 함성을 지르며 덤벼들었다, (에스빠냐 사람들 중에서) 말을 타고 있던 여섯 명은 트인 곳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많은 인디오들을 창으로 공격하였다.
La gente que fue por aquel camino alcanzó a los españoles dá́ndoles mucha grita, como a gente que huí́a, por lo cual seis de a caballo los esperaron en un raso y alancearon a muchos de ellos.
어떤 인디오는 말의 다리를 붙잡고 마치 양을 (쓰러뜨리듯이) 말을 쓰러뜨렸다.
Uno de los indios asió́ a un caballo por la pierna y le derribó como si fuese un carnero.
에스빠냐 사람들은 실란(Zilán)이라는 굉장히 아름다운 마을에 도착하였다, 이곳의 촌장은 첼족(los Cheles)의 젊은이였는데, 가톨릭신자이자 에스빠냐 사람들의 친구였던 그는 (에스빠냐 사람들을) 무척 환대해주었다.
Los españoles llegaron a Zilán que era muy hermoso pueblo cuyo señor era un mancebo de los Cheles, ya cristiano y amigo de los españoles, quien los trató muy bien.
실란(Zilán)은 띠꼬끄(Ticokh)와 매우 가까이에 있었고, 이곳의 다른 모든 해안가 마을처럼 첼족 사람들(los Cheles)의 [영역 하에]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에스빠냐 사람들은 이곳에서) 몇 개월 동안을 안전하게 보낼 수 있었다.
Zilán estaba muy cerca de Ticokh la que, con todos los pueblos de aquella costa, estaba [sometida] a la obediencia de los Cheles; y así les dejaron estar seguros algunos meses.
13-2 총독이 판단하기를 이곳에서는 누에바 에스빠냐(Nueva España)의 보급품들을 받을 수도 없고, 만일 인디오들이 공격을 해오면 자신들이 패배할 것 같았기 때문에 유까딴(Yucatá́n)에 그의 사람들을 남겨두지 않은 채 [그곳으로부터] 깜뻬체(Campeche)를 거쳐 멕시코(México)로 떠나기로 결정하였다.
Que el adelantado viendo que desde allí no se podía socorrer de las cosas de Nueva España, y que si los indios les atacaban serían perdidos, acordó irse a Campeche y [de allí] a México, dejando a Yucatán sin gente.
실란(Zilá́n)으로부터 48레구아(legua)정도 떨어져있는 깜뻬체(Campeche)에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Había desde Zilán a Campeche cuarenta y ocho leguas muy pobladas de gente.
(에스빠냐 사람들이) 실란(Zilá́n)의 촌장인 바묵스 첼(Vamux Chel)에게 (이에 대하여) 이야기하자 그는 그들이 길을 무사히 떠날 수 있도록 함께 동행하기로 하였다.
Dieron parte a Vamux Chel, señor de Zilán, y él se ofreció a asegurarles el camino y acompañarlos.
총독은 (이 촌장의) 삼촌인 요바인(Yobain)의 촌장과도 이야기를 하였고, 그 (역시) 준비가 잘 된 두 명의 자식들을 (총독과) 동행시켰다, 그리하여 사촌형제지간인 세 명의 젊은이들 중에서 두 명은 말의 고삐를 붙잡고 실란(Zilá́n)의 (촌장은) 말을 타고서 (길을 떠나게 되었다), 그들은 깜뻬체(Campeche)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으며, 그곳에서 평화적인 대접을 받았다.
El adelantado trató con el tío de éste, que era señor de Yobain, que le diese dos hijos bien dispuestos que tenía para que le acompañasen, de manera que con tres mancebos primos hermanos, dos en colleras y el de Zilán a caballo, llegaron seguros a Campeche donde fueron recibidos en paz.
(그러나) 작별을 한 후에 자기마을로 돌아가던 첼족 사람들(los Cheles) 중에서 실란(Zilá́n)의 (촌장이) 목숨을 잃었다.
Los Cheles se despidieron y volviendo a sus pueblos cayó muerto el de Zilán.
(에스빠냐 사람들은) 그곳에서 다시 멕시코(México)를 향하여 길을 떠났다, 비록 (꼬르떼스(Corté́s)는 그곳에 없었지만 (몬떼호(Montejo)) 총독에게 배당되는 인디오들을 이미 명시해놓은 상태였다.
Desde allí partieron para México donde Cortés había señalado repartimiento de indios al adelantado, aunque estaba ausente.
13-3 총독이 그의 아들과 조카를 데리고 멕시코(México)에 도착하자 그의 부인인 도냐 베아뜨리스 데 에레라(Doña Beatriz de Herrera)도 그를 찾기 위하여 까딸리나 데 몬떼호(Catalina de Montejo)라고 불리는 딸을 데리고 (멕시코(México)에) 도착하였다.
Que llegado el adelantado a México con su hijo y sobrino, llegó luego en busca suya doña Beatriz de Herrera, su mujer, y una hija que en ella tenía llamada doña Catalina de Montejo.
총독은 과거 세비야(Sevilla)에서 도냐 베아뜨리스 데 에레라(Doña Beatriz de Herrera)와 비밀리에 결혼하였다, 어떤 이들은 (그가) 그녀를 부인(否認)했다고도 이야기하지만 누에바 에스빠냐(Nueva España)의 부왕인 돈 안또니오 데 멘도사(Don Antonio de Mendoza)가 중재에 나서 (결국) 그는 그녀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러고 난 후 부왕은 그를 온두라스(Honduras)의 총독으로 임명하여 파견하였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의 딸을 아우디엔시아 데 로스 꼰피네스(Audiencia de los Confines)의 의장인 알론소 말도나도(Alonso Maldonado)와 혼인시켰다; 몇 년이 지난 후에 그는 다시 치아빠스(Chiapas)로 보내어졌다, 그곳에서 그의 아들에게 자신의 권한을 부여하여 유까딴(Yucatá́n)에 파견하였다, (그리하여 그의 아들은 유까딴(Yucatá́n)을) 정복하고 평정하였다.
El adelantado se había casado clandestinamente en Sevilla con doña Beatriz de Herrera y dicen algunos que la negaba, pero don Antonio de Mendoza, Virrey de la Nueva España, se puso de por medio y así la recibió y a él lo envió el mismo Virrey por gobernador de Honduras donde casó a su hija con el licenciado Alonso Maldonado, presidente de la Audiencia de los Confines; y que después de algunos años le pasaron a Chiapas desde donde envió a su hijo a Yucatán, con poderes, y lo conquistó y pacificó.
13-4 총독의 아들인 돈 프란씨스꼬(Don Francisco)는 가톨릭왕의 궁정에서 자랐다, 그의 부친은 유까딴(Yucatá́n) 정복을 위하여 인디아스(Indias)로 돌아올 때 그를 함께 데리고 왔다, 그곳에서 멕시코(México)로 떠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부왕인 돈 안또니오(Don Antonio)와 돈 에르난도 꼬르떼스(Don Hernando Corté́s) 후작은 그를 무척 아껴주었다, (그리하여 그는) 후작의 깔리포르니아(California) 정복사업에 동참할 수 있었다.
Que este don Francisco, hijo del adelantado, se crió en la corte del rey católico y le trajo su padre cuando volvió a las Indias, a la conquista de Yucatán, y de allí fue con él a México; y que el Virrey don Antonio y el marqués don Hernando Cortés le quisieron bien y fue con el marqués a la jornada de California.
그가 돌아오자 부왕은 그에게 따바스꼬(Tabasco) 지역의 통치를 맡겼다, (그 후) 그는 친척들과 함께 멕시코(México)에서 처녀시절을 보낸 도냐 안드레아 델 까스띠요(Doña Andrea del Castillo)와 결혼을 하였다.
Y que tornado, le proveyó el Virrey para regir Tabasco y se desposó con una señora llamada doña Andrea del Castillo, que había pasado doncella a México con parientes suyos.
XIV 에스빠냐 사람들이 떠나고 난 후 유까딴(YUCATÁ́N)의 상황. - 총독의 아들 돈 프란씨스꼬(DON FRANCISCO)가 유까딴(YUCATÁ́N)에 에스빠냐 정부를 다시 세우다.
XIV ESTADO DE YUCATÁ́N DESPUÉ́S DE LA SALIDA DE LOS ESPAÑOLES. - DON FRANCISCO, HIJO DEL ADELANTADO, RESTABLECE EL GOBIERNO ESPAÑOL EN YUCATÁ́N.
14-1 에스빠냐 사람들이 유까딴(Yucatá́n)을 떠나고 난 후에 이 땅에는 물이 부족하게 되었다, 또한 에스빠냐 사람들과의 전쟁으로 인하여 옥수수를 무분별하게 소비하였기 때문에 기아가 닥쳐왔다; (이러한 기아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어서 나무껍질을 먹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특히 꿈체(Cumché)라고 불리는 속이 부드럽고 무른 (나무의 껍질을 먹었다).
Que salidos los españoles de Yucatán faltó el agua en la tierra y que por haber gastado sin orden su maíz en las guerras de los españoles, les sobrevino gran hambre; tanta, que vinieron a comer cortezas de árboles, en especial uno que llaman cumché, que es fofo y blando por dentro.
기아로 인하여 마니(Maní) 지방의 촌장들인 시우족 사람들(los Xiues)은 치첸이사(Chichenizá)라고 불리는 연못에서 남녀노예 몇 명을 우상들에게 바치는 신성한 의식을 행하기로 하였다.
Que por esta hambre, los Xiues, que son los señores de Maní́, acordaron hacer un sacrificio solemne a los ídolos llevando ciertos esclavos y esclavas a echar en el pozo de Chichenizá.
그러나 (치첸이사(Chichenizá) 연못에 가기 위해서는) 최대의 적이었던 꼬꼼족(los Cocomes) 촌장들의 마을을 지나가야만 했고, 예전과 같은 적대심이 되살아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시우족 사람들(los Xiues)은) 자신들이 그들의 땅을 무사히 지나갈 수 있도록 간청하기 위하여 (그곳으로 사람들을) 파견하였다.
Mas como habían de pasar por el pueblo de los señores Cocomes, sus capitales enemigos, y pensando que en tal tiempo se renovarían las viejas pasiones, les enviaron a rogar que los dejasen pasar por su tierra.
꼬꼼족 사람들(los Cocomes)은 그럴싸한 대답으로 (시우족 사람들(los Xiues)을) 속였으며, 모든 사람들이 함께 묵을 수 있는 커다란 집을 내어주었다, 그리고는 그곳에 불을 질러서 도망가는 사람들까지도 죽였는데; 이를 계기로 하여 (그들 사이에는) 커다란 전쟁들이 벌어졌다.
Los Cocomes los engañaron con buena respuesta y dándoles posada a todos juntos en una gran casa les pegaron fuego y mataron a los que escapaban; y por esto hubo grandes guerras.
[더욱이] 5년에 걸쳐 메뚜기 떼가 창궐하면서 초록색을 띠고 있는 모든 것들을 죄다 휩쓸어버렸다; (이로 인하여) 심각한 기아가 찾아왔고, 길거리에는 시체들이 나뒹굴게 되었다, 에스빠냐 사람들이 다시 이곳을 찾았을 때는 메뚜기 떼가 (창궐한) 해로부터 4년이라는 시간을 별 탈 없이 지내고난 후여서 (상황이) 조금은 나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이 땅을 온전히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Además] se les recreció la langosta por espacio de cinco años, que no les dejaba cosa verde; y vinieron a tanta hambre que se caían muertos por los caminos, de manera que cuando los españoles volvieron no conocían la tierra aunque con otros cuatro años buenos después de la langosta, se había mejorado algo.
14-2 돈 프란씨스꼬(Don Francisco)는 따바스꼬(Tabasco)의 강들을 거쳐서 유까딴(Yucatá́n)으로 향하였고, 도스 보까스(Dos Bocas)의 호수들로 들어갔다, 그가 처음으로 도착한 마을은 참뽀똔(Champotón)이었는데, 이 마을의 촌장은 과거 프란씨스꼬 에르난데스(Francisco Hernández)와 그리할바(Grijalva)에게 적대적이었던 모츠 꼬보(Moch kovoh)라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난 후였고, 더 이상의 저항은 없었다, (오히려) 마을의 주민들이 돈 프란씨스꼬(Don Francisco)와 그의 부하들을 2년 동안 지원해주었는데, 이 기간 동안에 (다른 지역 인디오들의) 저항이 매우 거세었기 때문에 더 이상은 전진할 수 없었다.
Que este don Francisco se partió para Yucatán por los ríos de Tabasco y entró por las lagunas de Dos Bocas y que el primer pueblo que tocó fue Champotón con cuyo señor, llamado Moch Kovoh les fue mal a Francisco Hernández y a Grijalva; mas por ser ya muerto no hubo allí resistencia, antes bien, los de este pueblo sustentaron a don Francisco y su gente dos años en cuyo tiempo no pudo pasar adelante por la mucha resistencia que hallaba.
그 후 (돈 프란씨스꼬(Don Francisco)는) 깜뻬체(Campeche)로 향하였고, 마을 사람들과 우호관계를 맺었다.
Que después pasó a Campeche y vino a tener mucha amistad con los de aquel pueblo.
그리하여 그는 이곳 사람들과 참뽀똔(Champotón) 사람들의 지원에 힘입어 마침내 정복을 끝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깊은 충성심은 왕으로부터 보상받게 될 것이라는 약속을 하였으나 그 약속은 아직까지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De manera que con su ayuda y la de los de Champotón acabó la conquista prometiéndoles que serían remunerados por el rey por su mucha fidelidad aunque hasta ahora el rey no lo ha cumplido.
14-3 저항이 그렇게 크지 않았으므로 돈 프란씨스꼬(Don Francisco)는 군대를 이끌고 띠호(Tihó)까지 진입하여 그곳에 메리다(Mérida) 시를 세울 수 있었다; 그렇게 메리다(Mérida)에 진을 치고 여러 지역들로 대장들을 파견하여 정복을 계속해나갔다.
Que la resistencia no fue bastante para que don Francisco dejase de llegar con su ejército a Tihó donde se pobló la ciudad de Mérida; y que dejando el bagaje en Mérida prosiguieron la conquista enviando capitanes a diversas partes.
돈 프란씨스꼬(Don Francisco)는 사촌인 프란씨스꼬 데 몬떼호(Francisco de Montejo)를 바야돌릳(Valladolid)에 보내어 반역의 기미가 보이는 마을들을 평정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마을들을 이루도록 하였다.
Don Francisco envió a su primo Francisco de Montejo a la villa de Valladolid para pacificar los pueblos que estaban algo rebeldes y para poblar aquella villa como ahora está.
그는 첵떼말(Chectemal)에 살라망까(Salamanca) 마을을 만들었는데, 깜뻬체(Campeche)에는 이미 마을이 조성되어있던 상태였다.
Pobló en Chectemal la villa de Salamanca y ya tenía poblado Campeche.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아버지인 총독이 통치를 위하여 치아빠스(Chiapas) 지역에서부터 부인과 집안 (살림을) 이끌고 (이곳에) 도착하기 전까지 인디오들을 관리하며 에스빠냐 사람들을 통치하였다; 그는 깜뻬체(Campeche) 지역에서 환대를 받았고, 자신의 이름을 따서 이 마을을 산 프란씨스꼬(San Francisco)라고 명명하였다.
[Entonces] dio orden para el servicio de los indios y el gobierno de los españoles hasta que el adelantado, su padre, vino a gobernar desde Chiapas con su mujer y casa; y fue bien recibido en Campeche llamando a esa villa de San Francisco por su nombre.
그리고는 메리다(Mérida)시로 건너갔다.
Después pasó a la ciudad de Mérida.
XV 원주민들에 대한 에스빠냐 사람들의 잔인함. - 그들은 (그 잔인함을) 어떻게 변명하였는가.
XV CRUELDADES DE LOS ESPAÑOLES CON LOS NATURALES. - CÓ́MO SE DISCULPABAN.
15-1 인디오들이 고통스러운 노역의 속박을 짊어졌던 반면에 에스빠냐 사람들은 땅과 인디오들을 배당받았다, 비록 인디오들 중에서 반기를 들려고 한 사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하면 매우 잔인한 형벌을 받았고, 그로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Que los indios recibían pesadamente el yugo de la servidumbre, mas los españoles tenían bien repartidos los pueblos que abrazaban la tierra, aunque no faltaba entre los indios quien los alterase, sobre lo cual se hicieron castigos muy crueles que fueron causa de que apocase la gente.
꾸뿔(Cupul) 지역의 몇몇 (인디오) 지도자들은 산 채로 불태워졌으며, 어떤 사람들은 교수형에 처해졌다.
Quemaron vivos a algunos principales de la provincia de Cupul y ahorcaron a otros.
(에스빠냐 사람들은) 첼족 사람들(los Cheles)의 마을인 요바인(Yobain)에서 반역정보를 입수하자 그곳의 지도자들을 체포하여 족쇄를 채운 채 그들을 한 집에 몰아넣었다, 그리고는 집에 불을 질러서 산채로 불태워 죽이는 세상에서 가장 비인간적인 행위를 자행하였다, (필자인) 디에고 데 란다(Diego de Landa)는 (에스빠냐) 지휘관이 마을근처에 있는 커다란 나뭇가지에 수많은 여자인디오들을 목매달아 죽이는 것을 목격하였는데, 그녀들의 발에는 어린자식들이 (매달려있었다).
Hízose información contra los de Yobain, pueblo de los Cheles, y prendieron a la gente principal y, en cepos, la metieron en una casa a la que prendieron fuego abrasándola viva con la mayor inhumanidad del mundo, y dice este Diego de Landa que él vio un gran árbol cerca del pueblo en el cual un capitán ahorcó muchas mujeres indias en sus ramas y de los pies de ellas a los niños, sus hijos.
이 마을과 이 마을에서 2레구아(legua)정도 떨어진 베레이(Verey)라는 곳에서는 두 명의 여자인디오들을 목매달아 죽였다, 그중 한명은 처녀였고 다른 한명은 갓 결혼한 여자였다, 그녀들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었으나 에스빠냐 사람들은 너무나 아름다운 여인들로 인하여 그들의 군사진영에 소동이 일어날 것을 두려워해서, 그리고 그들이 여자들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을 인디오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이와 같은 만행을 저지르게 되었다); 두 여인의 빼어난 미모와 (그녀들을) 처단한 잔인함으로 인하여 인디오들과 에스빠냐 사람들 사이에는 그녀들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전해져오고 있다.
Y en este mismo pueblo y en otro que se dice Verey, a dos leguas de él, ahorcaron a dos indias, una doncella y la otra recién casada, no porque tuvieran culpa sino porque eran muy hermosas y temían que se revolviera el real de los españoles sobre ellas y para que mirasen los indios que a los españoles no les importaban las mujeres; de estas dos hay mucha memoria entre indios y españoles por su gran hermosura y por la crueldad con que las mataron.
15-2 꼬추아(Cochua) 지방과 첵떼말(Chectemal) 지방의 인디오들이 동요를 하자 에스빠냐 사람들이 그들을 평정하고 나섰다, 이로 인하여 사람이 가장 많이 살고 있던 두 지방은 이 땅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불행한 지역이 되었다.
Que se alteraron los indios de la provincia de Cochua y Chectemal y los españoles los apaciguaron de tal manera que, siendo esas dos provincias las más pobladas y llenas de gente, quedaron las más desventuradas de toda aquella tierra.
(에스빠냐 사람들은) [인디오들에게] 전대미문의 잔혹한 행위를 벌였다, 코와 팔다리를 베어내는가하면 여자인디오들의 유방을 도려내었고, 발에 호박을 묶은 채로 깊은 호수에 빠뜨리기도 하였다; 엄마들처럼 잘 걷지 못한다는 이유로 어린 아이들을 창으로 찔렀으며, 목쇄를 질러서 인디오들을 이동시키는 도중에 누군가 병이 들거나 다른 사람들처럼 잘 걷지 못하면 (전체행렬을) 멈추고는 (그 사람만) 풀어놓아야 하는 (수고로움을 피하기 위하여) 목을 베기도 하였다.
Hicieron [en los indios] crueldades inauditas [pues les] cortaron narices, brazos y piernas, y a las mujeres los pechos y las echaban en lagunas hondas con calabazas atadas a los pies; daban estocadas a los niños porque no andaban tanto como las madres, y si los llevaban en colleras y enfermaban, o no andaban tanto como los otros, cortábanles las cabezas por no pararse a soltarlos.
그들은 노동을 시킬 목적으로 수많은 남녀포로들을 이와 같은 방법으로 데리고 왔다.
Y trajeron gran número de mujeres y hombres cautivos para su servicio con semejantes tratamientos.
(그러나) 확신하건데 돈 프란씨스꼬 데 몬떼호(Don Francisco de Montejo)는 그러한 잔혹한 행위들을 전혀 한 적이 없으며, 그러한 현장에 있었던 적도 없다, 오히려 그는 (그러한 행위들을) 매우 좋지 않게 여겼는데, [이를 멈추게 하지는] 못하였다.
Se afirma que don Francisco de Montejo no hizo ninguna de estas crueldades ni se halló́ en ellas, antes bien le parecieron muy mal, pero que no pudo [evitarlas].
15-3 에스빠냐 사람들은 (자신들의 인원이) 적기 때문에 이렇게 무서운 형벌로 (인디오들을) 겁주지 않고서는 그 많은 사람들을 도저히 복종시킬 수 없었다고 변명하였다, 그 예로 히브리인들이 약속의 땅에서 주님의 명령에 따라 지극히 잔인한 행동을 [했던] 과거의 역사를 이야기하였다; 한편 인디오들 입장에서는 자유를 지키기 위하여 아주 용감한 대장들을 믿고 (따르며) 에스빠냐 사람들에게 저항하려고 한 것이므로 (그들의 행동은) 당연한 것이었다.
Que los españoles se disculpaban con decir que siendo pocos no podían sujetar tanta gente sin meterles miedo con castigos terribles, y traen a ejemplo la pasada historia de los hebreos a la tierra de promisión [en que se cometieron] grandes crueldades por mandato de Dios; y por otra parte tenían razón los indios al defender su libertad y confiar en los capitanes muy valientes que tenían para entre ellos y pensaban que así serían contra los españoles.
15-4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던 어느 에스빠냐 석궁수와 인디오 활잡이가 서로를 죽이려고 하였다, 누구하나 허점을 보이지 않자; 에스빠냐 석궁수가 땅에 한쪽 무릎을 꿇으며 거짓으로 허점을 드러내었다, 그러자 인디오 활잡이가 그의 손을 향하여 활을 쏘았고, 화살은 팔위까지 파고들어 뼈를 갈라놓았다; 그러나 그 순간 에스빠냐 사람도 석궁을 쏘아 인디오의 가슴을 맞추었다, 인디오는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에스빠냐 사람에게 목숨을 잃었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길이는 훨씬 더 길지만 버들처럼 생긴 덩굴 풀을 꺾어서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스스로 목을 매었다.
Que cuentan de un ballestero español y de un flechero indio que por ser muy diestros el uno y el otro se procuraban matar y no podían cogerse descuidados; el español fingió descuidarse puesta una rodilla en tierra y el indio le dió un flechazo en la mano que le subió brazo arriba y le apartó las canillas una de otra; pero al mismo tiempo soltó el español la ballesta y dió al indio por el pecho y sintiéndose herido de muerte, porque no dijesen que un español le había muerto, cortó un bejuco, que es como mimbre aunque mucho más largo, y se ahorcó con él a la vista de todos.
이러한 용맹스러움의 본보기가 아주 많이 있다.
De estas valentías hay muchos ejemplos.
XVI 정복 이전의 나라 상태. - 반란. - 인디오들을 위한 왕의 칙령. - 총독의 죽음. - 그의 후손들.
XVI ESTADO DEL PAÍ́S ANTES DE LA CONQUISTA. - UNA SUBLEVACIÓ́N. - CÉ́DULA REAL EN FAVOR DE LOS INDIOS. - MUERTE DEL ADELANTADO. - SUS DESCENDIENTES.
16-1 에스빠냐 사람들이 이 땅을 차지하기 전에 원주민들은 (여러) 마을에 함께 모여 살고 있었다, 행정이 원활하게 이루어졌고, 땅은 깨끗했으며, 잡목들이 잘 관리되어있었고, 좋은 나무들도 많이 심어져있었다; 그들의 주거지는 다음과 같은 형태로 구성되어있었다: 마을의 한복판에는 아름다운 광장과 신전들이 있었고, 그 주변으로는 촌장들과 제사장들의 집이 있었다, 그 다음으로는 (마을의 중요한) 어르신들의 집이 있었으며, 다시 그 주변으로는 가장 부자들이나 가장 많은 존경을 받는 사람들의 집이 있었다, 그리고 마을의 끝자락에는 하층민들의 집이 있었다.
Que antes [de] que los españoles ganasen aquella tierra vivían los naturales juntos en pueblos, con mucha policía, y tenían la tierra muy limpia y desmontada de malas plantas y puestos muy buenos árboles; y que su habitación era de esta manera: en medio del pueblo estaban los templos con hermosas plazas y en torno de los templos estaban las casas de los señores y de los sacerdotes, y luego la gente más principal, y así iban los más ricos y estimados más cercanos a éstas y a los fines del pueblo estaban las casas de la gente más baja.
우물이 흔하지 않은 곳에서는 그 근처로 촌장들의 집이 있었다, 경작지에는 포도주용 나무가 심어져있었고, 목화와 후추, 옥수수가 재배되었다, 그들은 적들의 포로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이렇듯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으나 에스빠냐 사람들과의 전쟁으로 인하여 숲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Los pozos, donde había pocos, estaban cerca de las casas de los señores y que tenían sus heredades plantadas de los árboles de vino y sembraban algodón, pimienta y maíz, y vivían en estas congregaciones por miedo de sus enemigos que los cautivaban, y que por las guerras de los españoles se desaparecieron por los montes.
16-2 바야돌릳(Valladolid)의 인디오들은 그들의 나쁜 관습 때문이지 아니면 에스빠냐 사람들의 횡포 때문인지 공물을 걷기 위하여 흩어져있는 에스빠냐 사람들을 죽이기로 결의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루 만에 17명의 에스빠냐 사람들과 400명의 하인들을 죽였는데, (이중에는) 죽은 에스빠냐 사람들의 (하인도) 있었고, 살아남은 에스빠냐 사람들의 (하인도) 있었다; 그 후 (인디오들은 다른 마을의) 봉기를 도모하기 위하여 자신들이 벌인 일의 증표로 (죽은 사람들의) 팔다리를 전 지역으로 보냈다, 그러나 다른 (마을의 인디오들은) 그렇게 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이로써 총독은 바야돌릳(Valladolid)에 머물고 있던 에스빠냐 사람들을 구하는 동시에 인디오들은 처벌할 수 있었다.
Que los indios de Valladolid por sus malas costumbres o por el mal tratamiento de los españoles, se conjuraron para matar a los españoles cuando se dividían a cobrar sus tributos; y que en un día mataron diecisiete españoles y cuatrocientos criados de los muertos y de los que quedaron vivos; y luego enviaron algunos brazos y pies por toda la tierra en señal de lo que habían hecho, para que se alzasen, mas no lo quisieron hacer y con esto pudo el adelantado socorrer a los españoles de Valladolid y castigar a los indios.
16-3 총독은 메리다(Mérida)에 있는 [에스빠냐 사람들] 때문에도 초조해하였지만 황제의 칙서로 인하여 더욱 초조해하였다, 왜냐하면 그가 이 칙서를 가지고 모든 사령관들로부터 인디오들을 빼앗았기 때문이다; (결국) 어느 행정관이 유까딴(Yucatá́n)에 와서 총독의 인디오들을 모두 빼앗은 후에 (이들을 다시) 왕의 이름으로 되돌려놓았다, 그리고 아우디엔시아 레알 데 멕시코(Audiencia Real de México)에서 그를 상벌위원회에 회부하여 에스빠냐에 있는 꼰세호 레알 데 인디아스(Consejo Real de Indias, 인디아스 자문위원회)에 출두하도록 하였다, (그렇게) 총독은 에스빠냐에서 고생스럽게 일만 하다가 나이가 들어 생을 마쳤다, (그리하여) 그보다 더욱 부자였던 그의 부인 도냐 베아뜨리스(Doña Beatriz)와 유까딴(Yucatá́n)에서 결혼을 한 그의 아들 돈 프란씨스꼬 데 몬떼호(Don Francisco de Montejo), 에스빠뇰라 섬(Isla Española)의 온두라스와 산또 도밍고의 아우디엔시아(las Audiencias de Honduras y Santo Domingo)의 의장인 알론소 말도나도(Alonso Maldonado)와 결혼을 한 그의 딸 까딸리나(Catalina), 에스빠냐 사람인 돈 후안 몬떼호(Don Juan Montejo) 그리고 그와 어느 여자인디오 사이에서 태어난 돈 디에고(Don Diego)를 유까딴(Yucatán)에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다.
Que el adelantado tuvo desasosiegos con los [españoles] de Mérida y mucho mayores con la cédula del emperador con la cual privó de indios a todos los gobernadores; y fue un receptor a Yucatán y quitó al adelantado los indios y los puso en cabeza del rey, y que tras esto, la Audiencia Real de México le tomó residencia, remitiéndolo al Consejo Real de Indias, en España, donde murió lleno de días y trabajos, y dejó en Yucatán a su mujer doña Beatriz más rica que él murió, y a don Francisco de Montejo, su hijo, casado en Yucatán y a su hija doña Catalina, casada con el licenciado Alonso Maldonado, Presidente de las Audiencias de Honduras y Santo Domingo, de la Isla Española, y a don Juan Montejo, español, y a don Diego, mestizo que hubo en una india.
16-4 돈 프란씨스꼬(Don Francisco)는 자신의 아버지인 총독에게 통치권을 내어준 후에 공직차원이 아닌 개인적인 자격으로 그의 집에 거주하였다, 그는 이 땅을 정복하였을 뿐만 아니라 땅을 분할하고 통치하였기 때문에 모두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Que este don Francisco después de que dejó el gobierno a su padre el adelantado, vivió en su casa como un vecino particular en cuanto al gobierno, aunque muy respetado de todos por haber conquistado, repartido y regido aquella tierra.
(그 후) 그는 과테말라(Guatemala)의 상벌위원회에 갔다가 그의 집으로 되돌아왔다.
Fue a Guatemala con su residencia y tornó a su casa.
슬하에 몇 명의 자식들을 두었는데, 돈 후안 데 몬떼호(Don Juan de Montejo)는 도냐 이사벨(Doña Isabel)이라는 살라망까(Salamanca) 출신의 여자와 결혼을 하였고; 도냐 베아뜨리스 데 몬떼호(Doña Beatriz de Montejo)는 아버지의 사촌 형제이자 그녀의 삼촌과 결혼을 하였으며; 도냐 프란씨스까 데 몬떼호(Doña Francisca de Montejo)는 과달라하라(Guadalajara) 출신인 돈 까를로스 데 아레야노(Don Carlos de Arellano)와 결혼을 하였다; 이렇듯 그는 모든 자식들의 출가를 지켜본 후에야 오랜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Tuvo por hijos a don Juan de Montejo, que casó con doña Isabel, natural de Salamanca; a doña Beatriz de Montejo, [con] su tío, primo hermano de su padre; y a doña Francisca de Montejo, que casó con don Carlos de Arellano, natural de Guadalajara; murió de larga enfermedad después de haberlos visto a todos casados.
XVII 에스빠냐 프란시스코 파 신부들의 유까딴(YUCATÁ́N) 도착. - 인디오 보호조치의 실시. - 엔꼬멘데로(Encomendero, 대농장주)들과의 분쟁.
XVII LLEGADA DE LOS FRAILES FRANCISCANOS ESPAÑOLES A YUCATÁ́N. - PROTECCIÓ́N QUE DISPENSARON A LOS INDÍ́GENAS. - SUS LUCHAS CON LOS ENCOMENDEROS.
17-1 프란시스코 파의 하꼬보 데 떼스떼라 신부(Fray Jacobo de Testera)는 유까딴(Yucatá́n)으로 건너가 인디오들의 자녀들을 대상으로 선교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에스빠냐 병사들이 젊은이들을 너무 많이 부려먹으려고 하다 보니 가르침을 위한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게다가 인디오들에 대한 부당한 처사로 인하여 신부들이 그들을 비난하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에, 하꼬보 신부(Fray Jacobo)는 멕시코(México)로 되돌아가 그곳에서 여생을 마치게 되었다.
Que fray Jacobo de Testera, franciscano, pasó a Yucatán y comenzó la adoctrinación de los hijos de los indios, y que los soldados españoles querían servirse tanto de los mozos que no les quedaba tiempo para aprender la doctrina; y que por otra parte disgustaban a los frailes cuando los reprendían del mal que les hacían a los indios y que por esto, fray Jacobo se tornó a México donde muri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