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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행제육(善行第六)17
他日에 太子가 讓允曰 吾欲為卿脫死이어늘而卿
타일 태자 양윤왈 오욕위겅 탈사 이경
이 不從은 何也 允이 曰 臣이 與崔浩로 實同史事
부종 하야 윤 왈 신 여최호 실동사사
호니 死生榮辱에 義無獨殊이니
사생영욕 의무독수
나중에 태자가 고윤을 꾸짖어 말하기를 "내가 경을 위해 죽음에서 벗어나게 해주고자 하였는데, 경이 따르지 않은 것은 어째서인가?"라고 하자 고윤이 말하기를 "제가 최호와 함께 실제로 국사 편찬의 일을 함께 하였으니, 삶과 죽음, 영광과 치욕에 대해서 의리상 혼자만 다를 수가 없습니다.
誠荷殿下再造之慈이어니와 違心苟免은 非臣所
성하전하 재조지자 위심구면 비신소
願也이니이다 太子가 動容稱嘆하더라 允이
원야 태자 동용칭탄 윤
退謂人日 我가 不奉東宮指導者는 恐負翟黑子
퇴위인왈 아 불봉동궁 지도자 공부적흑자
故也이니라
고야
참으로 전하께서 다시 살려주신 은혜를 입었지만, 마음을 어기고 구차히 죄를 면하는 것은 제가 바라는 바가 아닙니다"라고 하니 태자가 감동한 표정으로 칭찬하며 감탄하였다. 고윤이 물러나와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동궁께서 이끄는 대로 따르지 않았던 것은 적흑자를 저버릴까봐 염려가 되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22.李君行先生의 名은 潛이니 虔州人이라 入京
이군행선생 명 잠 건주인 입경
師할새 至泗州하여 留止러니 其子弟가 請先往
사 지사주 유지 기자제 청선왕
이어늘 君行이 問其故한대 日 科場이近하니欲先
군행 문기고 왈 과장 근 욕선
至京師하여 貫開封戶籍하여 取應하노이다
지경사 관개봉호적 취응
이군행 선생의 이름은 잠이니, 본관이 건주이다. 경사에 들어갈 적에 사주에 이르러 한참을 머물러 있 었더니 그의 자제들이 먼저 가기를 청하였다. 이군행이 그 이유를 묻자 대답하기를 "과거시험장이 가까 워졌으니 먼저 경사에 가서 개봉부에 호적을 만들어 시험에 응하려고 합니다”라고 하였다.
君行이 不許曰 汝가虔州人而貫開封戶籍하면
군행 불허왈 여 건주인이 관개봉호적
欲求事君而先欺君이니 可乎아 寧遲緩數年
욕구사 군이선기군 가호 영지완수년
어언정 不可行也이니라
불가행야
이군행이 허락해주지 않으며 말하기를 "너희가 건주 사람이면서 개봉부에 호적을 만든다면, 임금을 위해 일하겠다고 하면서 먼저 임금을 속이는 것이니. 그래서야 되겠느냐? 차라리 몇년 늦어질지언정 가서는 안 된다"라고 하였다.
선행제육(善行第六)18
23.崔玄暲의 母盧氏가 嘗誠玄暲曰 吾見妓兄屯
최현위 모노씨 상게현위왈 오견이형둔
田郎中辛玄取하니 日 兒子從宦者를 有人이來云
전랑중신 현어 왈 아자종환자 유인 내운
貧乏不能存이라하면此는是好消息이어니와若聞
빈핍불능존 차 시호소식 약문
貲貨가 充足하며 衣馬가 輕肥라하면 此는惡消息
자화 충족 의마 경비 차 오소식
이라하니 吾가 嘗以為確論이라하노라
오 상이위확론
최현위의 어머니 노씨가 일찍이 최현위를 타일러 말하기를 "내가 이종오빠인 둔전남중 신현어를 만났 더니 하는 말이 '벼슬살이 하는 자식을 두고 어떤 사람이 와서 일러주기를 가난하고 아무 것도 없어서 생 존할 수가 없다고 한다면 이것은 좋은 소식이지만, 만약 알려주기를 재물과 살림살이가 풍족하며 의복 이 가볍고 말이 살쪘다고 한다면 이것은 나쁜 소식이 다'라고 하였으니. 나는 이것을 틀림없는 의견이라고 생각한다.
比見親表中에 仕宦者가 將錢物하여 上其父母
비견친표중 사환자 장전물 상기부모
이어든父母가但知喜悅하고竟不問此物이從何
부모 단지희열 경불문차물 종하
而來하나니必是祿俸餘資인댄誠亦善事이어니와
이래 필시록봉여자 성역선사
如其非理所得이면 此가 與盜賊何別이리오 縱無
여기비리소득 차 여도적하별 종무
大咎이나 獨不內愧於心가한대 玄暐가 遵奉教誠
대구 독부내괴어심 현위 준봉교계
하여 以清謹으로 見稱하니라
이청근 견칭
요즘에 보면 친가와 외가 식구들 중에 벼슬을 하는 사람이 돈과 물자를 가져와서 그 부모에게 드리면, 부모가 단지 기뻐할 줄만 알고 끝내 이 물건 들이 어디서 왔는지 묻지를 않으니, 분명히 이것이 녹봉의 남은 재물이라면 참으로 또한 좋은 일이지만. 만약에 그것이 그릇된 도리로 얻은 것이라면 이것이 도적과 무엇이 다르겠느냐? 비록 큰 죄가 될 것은 없겠지만 혼자 속으로는 마음에 부끄럽지 않겠느냐?" 라고 하자. 최현위가 가르침과 타이름을 따르고 받들어서 청렴함과 근엄함으로 칭찬받았다.
선행제육(善行第六)19
24.劉器之待制가 初登科하여與二同年으로謁張
유기지대제 초등과 여이동년 알장
觀參政이러니 三人이 同起身하여 請教한대 張이
관참정 삼인 동기신 청교 장
日 某가 自守官以來로 常持四字하노니勤謹和緩
왈 모 자수관이래 상지사자 근근화완
이니라 中間一後生이 應聲曰勤謹和는旣聞命矣.
중간일후생 응성왈근근화 기문명의
어니와 緩之一字는 某所未聞이로소이다
완지일자 모소미문
대제 유기지가 처음 과거에 급제하여 함께 급제한 두 사람과 함께 참정 장관에게 인사하러 갔다. 세 사 람이 절을 하고 동시에 몸을 일으키며 가르침을 청 하자. 장관이 말하기를 "내가 관직을 맡은 이래로 늘 네 글자를 지켜왔으니, '부지런하기', '삼가기', '조화롭기', '느긋하기'이다"라고 하였는데, 도중에 한 급제자가 그 말을 받아 말하기를 "'부지런하기'. '삼가기', '조화롭기'는 이미 알려진 말이지만, '느긋하기'라는 말은 제가 아직 들어보지 못했습니다”라고 하였다.
張이 正色作氣曰 何嘗教賢緩不及事이리오 且道
장 정색작기왈 하상교 현완불 급사 차도
世間甚事가 不因忙後錯了오
세간심사 불인 망후착료
장관은 정색하고 목소리를 가다듬어 말하기를 “어찌 그대들로 하여금 천천히 하게 하여 일을 마치지 못하게 하겠는가? 또 세상에 무슨 일을 바쁘게 하지 않아 나중에 잘못되어버리도록 이끌겠는가?"라고 하였다.
25.伊川先生 曰 安定之門人이 往往에 知稽古愛
윤이선생 왈 안정지문인 왕왕 지계고애
民矣니 則於為政也에 何有이리오
민의 즉어위저야 하유
이천 선생이 말하였다. "안정 선생의 제자가 이따금씩 옛일을 되돌아보고 백성을 아낄 줄을 알았으니. 정치를 함에 있어서 무슨 어려움이 있었겠는가?"
26.呂滎公이 自少로 官守處에 未嘗千人舉薦
여형공 자소 관수처 미상간인거천
하더니 其子舜從이 守官會稽에 人이 或譏其不
기자순종 수관회계 인 혹기기불
求知者이어늘 舜從이 對曰 勤於職事하고 其他를
구지자 순종 대왈 근어직사 기타
不敢不慎하노니 乃所以求知也니라
불감불신 내소이구지야
여형공이 젊을 때부터 관직을 맡고 있는 곳에서 남 들에게 천거해줄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의 아들 순종이 회계에서 관직을 맡고 있을 적에 사람들이 이따금씩 그가 남들에게 자기를 알아주기를 구하지 않 는다고 비웃자, 순종이 대답하기를 "맡은 일을 부지 런히 하고, 그 밖의 일을 감히 조심하지 않은 적이 없으니, 그것이 바로 알아주기를 구하는 것이다"라 고 하였다.
선행제육(善行第六)20
27.漢陳孝婦가 年十六而嫁하여 未有子이러니
한진효부 년십육이기 미유자
其夫가 當行戍하여 且行時에 屬孝婦曰我生死를
기부 당행수 차행시 촉효부왈 아생시
未可知니 幸有老母이오 無他兄弟備養하니 吾가
미가지 행유노모 무타형제 비양 오
不還이라도 汝가 肯養吾母乎아 婦가 應曰 諾다
불환 여 궁양오모호 부 응왈 락
한나라 진주의 효부가 나이 16세에 시집을 가서 아 직 자식이 없었다. 그 남편이 변방을 지키러 가게되 어막 떠나려 할 때에 효부에게 부탁하며 말하기를 “내가 살는지 죽을는지 알 수가 없소. 다행히도 늙은 어머니만 계시고 다른 보살필 형제들이 없으니, 내가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당신이 기꺼이 우리 어머니를 봉양하겠소?"라고 하자, 효부가 대답하기를 "예"라고 하였다.
夫가 果死不還이어늘 婦가 養姑不衰하여 慈愛
부 과사불환 부 양고불쇠 자애
愈固하여 紡績織紝하여 以為家業하고 終無嫁意
유고 방적직임 이위가업 종무가의
하더라 居喪三年하여늘 其父母가 哀其少無子而
거상삼년 기부모 애기소무자이
早寡也하여 將取嫁之하더니 孝婦가 曰 夫가
조과야 장취가지 효부 왈 부
去時에 屬妾以供養老母이어늘 妾이 旣許諾之
거시 촉첩이 공양노모 첩 기허락지
호니
남편이 결국 죽어서 돌아오지 못했는데, 효부가 시어머니 모시기를 소홀히 하지 않아서 사랑 하고 아껴주기를 더욱 굳게 하였으며, 길쌈하고 베를 짜서 그것을 가업으로 삼고 끝내 시집갈 생각이 없었다. 3년간 상을 치렀는데, 그녀의 부모가 젊어서 자식도 없이 일찍 과부가 된 그녀를 불쌍하게 여겨 장차 데려다가 시집을 보내려고 하였더니. 효부가 말하 기를 "남편이 떠날 때에 저에게 노모를 봉양해달라고 부탁하였는데 제가 이미 그것을 허락했으니,
夫養人老 母而不能卒하며 許人以諾而不能信
부양노인 모이불능졸 허인 이락이 불능신
하면 將何以立於世리오하고 欲自殺한대 其父母
장하이립어세 욕자살 기부모
懼而不敢嫁也하여 遂使養其姑하니
구이불 감가야 수사양기고
남의 늙은 어머니를 봉양하면서 다 마치지를 못하며, 남에게 '예'라고 승낙하였으면서 믿음을 지키지 못한다면 장차 어떻게 세상 앞에 똑바로 서겠습니까?"라고 하고는 자살을 하려고 하자. 그 부모가 두려워하며 감히 시집을 보내지 못하고 결국 그 시어머니를 봉양하게 하였다.
선행제육(善行第六)21
二十八年에 姑가 八十餘이라 以天年으로 終커늘
이십파년 고 팔십여 이천년 종
盡賣其田宅財物하여 以葬之하 終奉祭祀하니라
진매기전 택재물 이장지 종봉제사
淮陽太守가 以聞한대 使使者하여 賜黃金四十斤
회양태수 이문 사사자 사황금 사십근
하시고 復之하여 終身無所與하니 號曰 孝婦이라
복지 종신무소여 호왈 효부
하니라
28년 뒤에 시어머니가 80여 세가 되어 천수를 누리고 생을 마치자, 그 밭과 집과 재물을 모두 팔아 장사지내고 끝까지 제사를 받들었다. 회가 이 사연을 조정에 알리자 관원을 보내 황금 40근 을 하사하고, 부역을 면제하여 종신토록 부역에 참여 하지 않게 하니. 세상에서 그를 '효부'라고 일컬었다.
28.漢鮑宣의 妻桓氏의 字는 少君이라 宣이 嘗就
한포선 처한씨 자 소군 선 상취
小君父學하더니 父가 奇其淸苦하여 故로 以女
소군부학 부 기기청고 고 이녀
妻之하니 裝送資賄가 甚盛이어를 宣이 不悅하여
처지 장송자회 심성 선 불열
謂妻曰 少君이 生富驕하여 習美飾하니 而吾가
위처왈 소군 생부교 습미식 이오
實貧賤이라 不敢當禮로다
실빈천 불감당례
한나라 포선의 아내 환씨의 자는 소군이다. 포선이 일찍이 소군의 아버지에게 가서 배웠으니, 그녀의 아버지가 그의 청고함을 기특하게 여겼기 때문에 딸을 그에게 시집보냈는데, 꾸며서 보낸 재물과 예물이 매우 풍성하였다. 포선이 좋아하지 않으며 아내에게 말하기를 "소군이 부유하고 사랑을 많이 받아 아름답 게 꾸미는 데에 익숙하니, 내가 사실 가난하고 보잘 것 없어서 예물을 감당할 수가 없소"라고 하자.
妻가 曰 大人이 以先生이 修德守約故로 使賤妾
처 왈 대인 이선생 수덕수약고 사천첩
으로 侍執巾櫛하시니 旣奉承君子이란대 惟命是
시집건즐 기봉승군자 유명시
從호리이다 宣이 笑曰 能如是면 是吾志也이로다
종 선 소왈 능여시 시오지야
아내가 말하기를 "아버지는 당신이 덕을 닦고 검약함을 지키기 때문에 저로 하여금 곁에서 수건과 빗을 들고 모시게 하셨으니, 이미 당신을 받들기로한 이상 다만 명하시면 이에 따르겠습니다”라고 하였다. 포선이 웃으면서 말하기를 "이와 같이 할 수 있다면 이것이 내가 뜻하던 것이오"라고 하니.
妻가 乃悉歸侍御服飾하고 更著短布裳하여 與宣
처 내실귀시 어복식 경착단포상 여선
으로 共挽鹿車하여 歸鄉里하여 拜姑禮畢하고
공만록거 귀향리 배고예필
提甕出汲하여 修行婦道하니 鄉邦이 稱之하더라
제옹출급 수행부도 향방 칭지
아내가 이에 따라 온 하인들과 의복과 장신구를 모두 돌려보낸 뒤에 짧로 돌아왔다. 시어머니께 절을 하고 예를 마치자 물동이를 들고 나가 물을 길어오고, 부인의 도리를 익 혀서 행하니 마을과 나라가 그녀를 칭찬하였다.
선행제육(善行第六)22
29 曹爽의 從弟文叔의 妻는 譙郡夏侯文寧之女
조상 종제문숙 처 초근하 후문녕지녀
이니 名은 令女이라 文叔이 番死커늘 服関하고
명 영녀 문숙 조사 복결
自以年少無子하니 恐家가 必嫁己하여
자이년소무자 공가 필가기
乃斷髮為信이러니
내단발위신
조상의 종제 문숙의 아내는 초군 하후 문녕의 딸이 니. 이름이 영녀이다. 문숙이 일찍 죽었는데, 상례를 마치고 나서 스스로 나이가 적은데다가 자식이 없으 니 친정에서 반드시 자기를 시집보낼 것이라 생각하 여 바로 머리카락을 잘라 신표로 삼았다.
其後에 家가 果欲嫁之어늘 令女가 聞하고 即復
기후 가 과욕가지 영녀 문 즉부
以刀로 戳兩耳하고 居止를 常依爽하더니 及爽이
이도 절양이 거지 상의상 급상
被誅하여 曹氏盡死커늘 令女叔父가 上書하여
피주 조씨진사 영녀슥부 상서
與曹氏絕婚하고 彊迎令女歸하니라
여조씨절혼 강영영녀귀
그런 뒤에 친정에서 과연 그녀를 시집보내려고 하였는데, 영녀가 그 소식을 듣고는 곧바로 다시 칼로 양쪽 귀를 베어내고 거처하기를 항상 조상에게 의지하였는데, 조상이 처형을 당함에 이르러 조씨들이 다 죽고 없어지자, 영녀의 숙부가 임금에게 글을 올려 조씨와의 혼인관계를 끊고 억지로 영녀를 데리고 돌아갔다.
時에 文寧이 為梁相이러니 憐其少執義하고 又曹
시 문녕 위양상 연기소집의 우조
氏無遺類이라 冀其意阻하여 乃微使人風之한대
씨무유류 기기의조 내미사 인풍지
令女가水且泣曰吾亦惟之니許之是也이라하여늘
영녀 수차읍왈 오역유지 허지시야
그 당시에 하후 문녕이 양나라의 재상이 되더니 그녀가 젊은 나이에 절개를 지키고 있는 것을 가엾게 여긴 데다, 또 조씨가 남아 있는 자손이 없었기 때문에 그녀의 뜻이 막힐 것을 기대하여, 이에 몰래 사람을 시켜 그녀에게 바람을 넣게 하자 영녀가 탄식하고 울면서 말하기를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그 일을 허락함이 옳은 일이다"라고 하였다.
家가 以爲信하여 防之少懈한대 令女가 於是에
가 이위신 방지소해 영녀 어시
竊入寢室하여 以刀斷鼻하고 蒙被而臥하여 其母
절입침실 이도단비 몽피이와 기모
가 呼與語호대 不應이어늘 發被視之하니 血流滿
호여어 불응 발피시지 혈류만
床席이어늘 舉家가 驚惶하여 往視之하고
상석 거가 경황 왕시지
莫不酸鼻하더라
막불산비
친정에서 그 말을 믿을 만하다고 생각하여 지키고 있기를 조금 게을리 하자. 영녀가 이에 몰래 침실로 들어가 칼로 코를 잘라내고 이불을 덮고 누워서 그 어머니가 불러서 같이 이야기를 하려 해도 응하지를 않았는데, 이불을 들추어 보았더니 피가 흘러 침상과 자리에 가득 하였다. 온 집안이 놀라고 어쩔 줄을 몰라 가서 그녀 를 보고는 콧등이 시큰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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