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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의 삼성’ ‘경운기 업계의 현대’….
국내 농기계 1위 기업 ‘대동’에 따라붙는 별명이다. 농기계 시장에서 대동은 대기업 그 이상의 영향력을 지녔다. ‘대동의 역사가 곧 한국 근대 농업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국내 업체 최초로 경운기(1962년)를 생산 보급한 것을 비롯해 트랙터(1968년)·콤바인(1971년)·이앙기(1973년)까지, 농기계 시장에서 ‘최초’라는 타이틀은 모두 대동이 보유하고 있다. 국내 트랙터 점유율은 30%가 훌쩍 넘는다.
최근 대동에 새로운 별명 하나가 더 생겼다. 바로 ‘농업계의 테슬라’다. 지금까지 주력해온 농기계 생산을 넘어 자율주행, 스마트 모빌리티 등 신사업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대동의 변신을 이끈 것은 현 대표이사인 김준식 회장(56)이다. 창업주 故 김삼만 회장, 부친인 창업 2세 故 김상수 회장에 이어 2004년부터 대동을 진두지휘해오고 있다. 내수·농기계 중심이었던 대동의 사업 전략을 해외·신사업으로 180도 바꿔놨다는 평을 받는다.
1966년생/ 고려대 경영학과/ 1991년 대동(옛 대동공업) 입사/ 2004년 대동 공동대표 부사장/ 2017년 대동 대표이사 회장(현) |
▶‘스마트 농기계’로 내수 공략
▷업계 최초 매출 1조 클럽 확실시
“미래 농업 리딩기업으로 나아가겠다.”
2020년 김 회장이 새롭게 내놓은 비전이다. 자율주행 농기계, 스마트 농업 솔루션, 농업용 로봇 등을 도입해 IT를 기반으로 한 ‘정밀 농업’을 실현해내겠다는 포부다. 사명을 기존 ‘대동공업’에서 ‘대동’으로 바꾸고 CI 리뉴얼을 단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래 농업을 추진하는 데 있어 농기계 전통 제조업 이미지가 강한 기존 사명 ‘대동공업’이 기업 아이덴티티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결과다.
단순히 이름만 바꾼 것은 아니다. 최근 대동이 추진하고 있는 중점 사업을 살펴보면 김 회장 혁신의 의지가 고스란히 엿보인다.
우선 추진한 것이 ‘농기계의 스마트화’다. 대동의 핵심인 농기계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다. 대동은 2019년 자율주행 이앙기를, 2020년에는 자율주행 트랙터를 국내 최초로 선보였다. GPS 위치 보정 기술을 바탕으로 한 직진 자율주행 트랙터를 상용화한 데 이어 2021년에는 원하는 대로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자동선회 자율주행 트랙터 개발까지 마쳤다. 자율주행 농기계와 연동해 원격 관리와 점검이 가능한 모바일 앱 솔루션 ‘대동커넥트’를 내놨다. CES에서나 볼 수 있던 최신 IT가 농기계 시장에 접목되고 있는 셈이다.
최근 실적도 IT 기업 부럽지 않을 가파른 상승세를 보인다. 대동 매출(연결 기준)은 2018년 6548억원에서 2020년 8958억원까지 2년 만에 37% 증가했다. 2021년 매출은 3분기 만에 전년 매출에 육박하는 8932억원을 기록하며 업계 최초 ‘1조 클럽’ 가입이 확실시되고 있다. 증권가는 대동의 2021년 매출이 전년보다 19% 늘어난 1조677억원, 같은 기간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46%와 62% 늘어난 483억원과 298억원으로 예상한다.
대동 관계자는 “과거에는 기업 성향 자체가 도전을 기피하고 보수적인 면이 강했다. 75년 긴 업력에 농기계 시장 특유의 보수적인 문화가 더해지면서다. 하지만 김 회장이 끊임없이 혁신을 강조하고 최신 기술도 적극 도입하면서 임직원 사이에서도 ‘해보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이젠 스마트 모빌리티 기업”
▷골프카트 점유율 2위까지 ‘껑충’
그룹 차원에서 가장 중점을 두고 추진하는 미래 사업은 바로 ‘스마트 모빌리티’다. 농촌 인구 감소로 시장이 점차 축소되고 있는 만큼, 농기계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대동 스마트 모빌리티는 크게는 승용 잔디 깎기로 대표되는 ‘가드닝 모빌리티’, 전동 골프카트를 비롯한 ‘레저 모빌리티’, 스마트 로봇체어와 전동 바이크(E-바이크)를 생산하는 ‘퍼스널 모빌리티’ 등으로 나뉜다.
김 회장은 이미 10여년 전부터 차근차근 스마트 모빌리티 사업의 기반을 다져놨다. 2013년 전동 골프카트를 시작으로 2016년 다목적 전기운반차를 선보였다. 같은 해에는 르노삼성자동차, LG전자 등과 컨소시엄을 맺고 1t급 경상용 전기 트럭을 개발하기도 했다.
성과도 나타나는 중이다. 대동의 전동 골프카트는 현재 국내 시장점유율 25%로 2위권까지 치고 올라왔다. 해외 시장에서도 선전하고 있다. 대동의 수출 브랜드 ‘카이오티(KIOTI)’를 농장·주택의 관리 장비 브랜드로 확장했는데, 이게 대박이 났다. 대동이 2019년에 북미 수출을 시작한 가드닝 모빌리티 ‘승용 잔디 깎기’ 판매량은 2년 만에 420% 증가했다.
대규모 투자도 아끼지 않는 모습이다. 대구 달성군에 위치한 대구국가산업단지(대구시 달성군) 내 앵커 부지에 10만㎡(약 3만평) 규모 모빌리티 신공장을 올해 하반기까지 완공할 계획이다. 스마트 로봇체어와 전동 오토바이 생산을 담당할 공장이다. 대동은 2026년까지 2234억원을 투자해 총 800여명의 신규 일자리를 창출하고 모빌리티 제품 누적 생산을 18만대까지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
대동 관계자는 “모빌리티 사업에 대한 김 회장 의지와 관심은 최근 인재 영입과 조직 개편에서도 잘 나타난다. 2019년 KT에서 경영 전략 전문가인 원유현 대표를 영입한 데 이어, 미래 사업 투자 유치를 담당할 전략투자실을 신설하고 투자 전문가 이진혁 전 하나금융투자 S&T부문 대표를 수장으로 스카우트했다”고 설명했다.
▶해외 시장에서도 ‘활짝’
▷‘하비팜’ 계층 사로잡으며 판매 급증
현재 대동 전체 매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60%가 넘는다. 2011년 40%를 밑도는 수준에서 10년 만에 주력 시장으로 급성장했다. 현재는 세계 70여개국에 수출하는 글로벌 농기계 회사로 거듭났다.
대동이 해외 시장 공략에 적극 나서게 된 것도 김 회장의 공이 크다. 대표이사 취임 첫해인 2004년에 북미 법인 사옥을 준공했고 2007년 중국 법인, 2010년 유럽 법인, 2019년 캐나다 법인을 설립했다. 동남아시아·아프리카 같은 신흥 시장에도 적극 뛰어들었다. 2014년 미얀마 1억달러, 2018년 앙골라 1억달러 농기계 수출을 일궜다. 2019년에는 업계 최초로 독일 사무소를 개설해 영업망을 강화해나가고 있다.
그중에서도 세계 최대 농기계 시장인 북미에서의 선전이 눈에 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다른 글로벌 농기계 업체와 차별화되는 공격적인 영업·마케팅 활동으로 판매량을 확 끌어올렸다. 도심 외곽 주택이나 농장에서의 전원생활을 즐기는 ‘하비팜(hobby farm)’ 계층이 주로 사용하는 60마력 이하의 중소형 트랙터 현지 공급을 늘리고 공격적인 소비자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등 승부를 걸었다. 예상은 적중했다. 대동 북미 트랙터와 운반차 판매량은 2020년 1만6600대에서 2021년 2만2000대까지 33% 넘게 늘었다.
대동은 앞으로도 해외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대동 관계자는 “유럽, 호주 등 다른 지역에서도 트랙터 등 농기계 판매 호조가 이어지고 있다. 올해는 현지에서 스포츠 마케팅과 전시회, 딜러대회 등을 추진해 브랜드 경쟁력을 더욱 강화할 예정이다. 농기계 부문과 모빌리티 신사업 사이 시너지가 폭발한다면 글로벌 1위 존디어를 넘보는 것도 꿈만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나건웅 기자 / 일러스트 : 강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