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넷째 주 그룹큐티나눔
패역한 자녀에게
이사야 30:1-17
마음 열고, 찬양과 나눔
•돌아와 돌아와(찬송 525장, 구 315장)
•지난 한 주 어떻게 지냈는지 서로의 근황을 나눠 봅시다.
고집과 소신은 비슷한 것 같지만, 본질이 전혀 다릅니다. 고집이 자신의 허물을 감추려는 비겁한 자기 확신이라면, 소신은 하나님의 뜻을 위해 내 자존심마저 기꺼이 내려놓는 거룩한 용기입니다. 과거 유다 백성은 국가적 위기 앞에서 하나님께 묻기보다 애굽에 기대는 치명적인 ‘고집’을 부렸습니다. 오늘날 주님은 여전히 고집스런 우리를 향해 얄팍한 자구책을 버리고 주님의 품으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진리의 말씀 앞에서 고집을 꺾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살 유일한 길입니다.
마음 다해, 말씀과 나눔
1. 유다는 강대국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세상 권력의 그늘을 택합니다(1-11절).
1) 하나님이 유다를 ‘패역한 자식들’이라고 꾸짖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1-2절)
여호와께 묻지 않고 자기 계교(계획)를 베풀며,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지 않고 애굽과 언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예언이 주어진 시기는 앗수르가 아스돗을 점령한 주전 711년과 예루살렘 포위가 이뤄진 주전 701년 사이로 볼 수 있다. 이때 선지자의 예언은 유다가 앗수르 군대를 막으려고 함부로 애굽과 동맹을 맺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군사적 안전보장을 추구하기 위해 애굽으로 내려가는 유다의 외교 사절단이 있었다. 이들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 사람의 계획에 따라 행동하는 패역한 자들이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강대국을 의존하며 동맹을 맺으려는 것을 강력하게 규탄하신다.
2) 애굽을 의지한 유다가 얻게 될 결과는 무엇입니까? (3-5절)
애굽으로부터 도움은커녕 도리어 수치만 당할 것이다.
4절의 고관들과 사신들은 예루살렘에서 파송된 외교 사절단을 의미한다. 이들은 앗수르의 공격에 맞서기 위해서는 애굽의 도움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하며 군사적 도움을 요청하려고 애굽에 내려갔다. 하지만 이들의 바람과는 달리, 믿었던 애굽으로부터 수치와 모욕만 당한다. 사실 애굽은 유다를 도울 만한 힘이 없었다. 애굽은 이미 상한 갈대와 같아서 누구를 도울 처지가 못 되었다. 그럼에도 유다는 하나님은 의지하지 않으면서, 도울 힘이 없는 세상 권력 집단을 의지하려 한다.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세상의 권력자를 의지할 때 세상으로부터 도움은커녕 오히려 버림받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은 어렵고 힘들 때일수록 세상이 아닌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해야 한다.
3) 패역한 백성이 선견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10-11절)
바른 것을 보이지 말고 부드러운 말을 하라, 거짓된 것을 보이라, 하나님을 우리 앞에서 떠나시게 하라고 요구한다.
자기 꾀에 빠져 사는 이들은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정작 세상의 작은 위협은 몹시 두려워한다. 그래서 선지자가 이런 패역한 백성의 불신앙을 바로잡으려 하는데 정작 백성은 선지자에게 말씀을 전하지 말라고 강짜를 부린다. 그들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진실을 정직하게 마주할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눈앞에 보이는 어려움을 피하려다 정작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거부하고 만다. 하지만 선지자를 위협하며 예언하지 말라고 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도 멈추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의사와 상관없이 엄위하게 선포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씀 앞에서 성도는 자기 입맛에 맞는 말씀을 선택하려는 자세가 아니라 어떤 말씀이든 “아멘!” 하고 순종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나눔 1 유다는 눈앞의 위협(앗수르)을 피하려고 또 다른 세상의 힘(애굽)을 의지했다가 더 큰 수치를 당했습니다. 하나님보다 나를 안전하게 지켜 줄 것 같아 마음에 의지가 되는 ‘나의 애굽’은 무엇인지 나눠 봅시다.
나눔 2 내 생각과 반대되는 말씀을 들으면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최근 말씀을 듣거나 묵상할 때, 내 굳은 신념을 건드려 마음이 몹시 아프고 불편했지만, 돌아보면 결국 내 영혼을 살린 ‘진리의 말씀’이 있다면 나눠 봅시다.
2. 말씀을 의지하지 않고 애굽을 의지한 유다가 쇠락의 길을 걷습니다(12-17절).
1) 토기장이가 그릇을 깨듯이 하나님이 유다를 심판하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12-14절)
유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배척하고 애굽을 의지하며, 허망한(패역한) 생각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유다의 권력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세상의 허망한 걸 붙잡고 의지하려 한다. 이 죄로 인해 그들은 순식간에 무너지고 말 것이다. 마치 잘못 쌓아 불쑥 튀어나온 담벼락이 장마철에 습기가 차서 갑자기 무너지듯이 유다 왕국도 그렇게 한순간에 패망할 것이다. 이것은 엄위한 하나님의 심판이다. 마치 토기장이가 잘못 빚어진 토기를 깨뜨리듯이 하나님께서 유다 왕국을 철저히 심판하실 것이다. 다시 복구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유다는 완전히 파괴될 것이다. 하나님이 유다를 이처럼 심판하려는 이유는 그들이 세상의 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2) ‘회개하여야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말씀을 거부한 유다의 결국은 무엇입니까?(15-17절)
도망자 신세로 전락하여 쇠락의 길을 걷는다.
여호와께서 유다 백성이 하나님께 돌아오기를(슈브, 회개) 촉구했지만, 유다 백성은 이 말씀을 거부한다. 그들은 잠잠히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느니 애굽과 연대해서라도 앗수르와 싸울 거라며, 빠른 말을 타고 도망갈지언정 앗수르에게 무릎 꿇지 않겠다고 객기를 부린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준마를 타고 도망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아무리 빠른 말을 타고 도망할지라도 쫓는 자가 더 빨라서 결국 따라잡히고 말 것이다. 17절의 유다의 모습은 참으로 비참하다. 한 사람이 꾸짖은즉 천 사람이 도망하고, 다섯 사람이 꾸짖은즉 모든 사람이 다 도망하여서, 예루살렘에 사람은 없고 깃대만 남게 될 것이다.
나눔 3 하나님은 우리가 분주히 움직이며 허망한 것을 의지하기를 멈추고, 주 안에서 ‘잠잠히 신뢰하기’를 기다리십니다. 이번 한 주간, 내 힘으로 해결하려던 분주함을 내려놓고 주께 맡김으로 평안을 누려야 할 영역은 무엇인지 나눠 봅시다.
마음 모아, 함께 기도
삶 _ 내 계획이 말씀에 비추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을 때 즉시 돌이키게 하소서.
공동체 _ 세상의 힘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신뢰하며, 잠잠히 기다리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출처 : http://www.su.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