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롱초롱 박철홍의 고려사도 흐른다. 15
ㅡ 고려거란전쟁 4 ㅡ
(목종과 천추태후 그리고 김치양)
오늘부터 정리하는 글은 얼마 전 방영한 <고려거란전쟁>이라는 드라마에서 아주 자세히 펼쳐 졌다.
'고려거란전쟁' 1차는 '서희 외교 담판'으로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어쨌든 고려승리같이 끝났다.
거란침략 2, 3차에서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된다.
이 이야기는 다음 편들에서 정리하기로 한다.
오늘은 '고려거란전쟁 2차침략' 원인이 된 '목종'과 '천추태후'에 관해서 정리한다.
997년에 6대왕 '성종'이 붕어하고
성종 조카이자 5대 '경종 비'였던 '헌애왕후' 아들이 고려 제7대 왕 으로 즉위한다.
그가 바로 '목종'이다.
'헌애왕후'는 964년 태조 아들인 추존왕 대종 '왕욱'(왕건 8황자)과 '선의왕후' 류씨 딸로 태어났다.
'헌애왕후' 혈연관계를 보면 눈이 돌 정도로 복잡하다.
고려왕조 창업한 태조왕건 손녀, 고려 제5대 국왕 경종 3비,
고려 제6대국왕 성종 친여동생,
고려 제7대 국왕인 목종 모후, 고려 제8대 국왕 현종 이모이자
사촌누나이다.
모르것다. 고려왕실 족보는 파면 팔수록 골이 아파진다.
경종이 28살 나이에 일찍 죽자 헌애왕후는 이십대 젋은 나이에 과부가 되고 만다.
고려시대는 성에 대해서는 상당히 개방적이었다. 경종 3,4비이자 동시 자매 간이었던 , '헌애왕후'와 '헌정왕후', 둘 다 기가막힌 불륜 행각을 벌인다.
당시 '김치양'이라는 스님을 사칭 하고 다닌 사람이 있었다. 외모는 훤칠했다. 양기가 강해서 음경에 수레바퀴를 걸 수 있을 정도라는 요쌍한 소문도 돌았다.
헌애왕후가 그것때문인지 어쩐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어쩌다 둘은 눈이 딱 맞아 찰떡궁합이 되고 만다. 나이는 김치양이 열살 정도 많았다.
유교적 도덕성이 강했던 성종시절 에는 불륜을 안 성종이 노발대발 하여 김치양을 곤장쳐서 유배까지 보냈다.
어쨌든 성종이 38세로 죽었을 때 헌애왕후 아들 목종이 즉위한다.
당시 목종은 18세로 성인이 다 된 나이였다.
그럼에도 '헌애왕후'는 '천추전'에 거처하며 섭정을 행했다.
이에 세상 사람들은 헌애왕후를 '천추태후'(千秋太后)로 부르게 된다.
'천추태후'가 섭정을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한 일이 '김치양'을 불러 들여 '합문통사사인'(지금으로 따지면 7급정도 하급관직)을 하사한 것이었다. 그리고 김치양 은 불과 몇 년 사이에 '우복야' 겸 '삼사사'(지금으로 따지면 차관) 에까지 파격 승진된다.
몇 년만에 7급에서 차관까지....
역시 사랑의 힘은 컸다.
천추태후와 김치양 이들 불륜은 공공연하게 자행되었고, 이 둘은
권세가 대단해져 태후 지위를 이용해 죄없는 신하들을 많이 모함하고 멋대로 탄핵했다.
또한 김치양은 집 크기가 300여 칸에 이르렀고 매관매직 저지르며 자신 집과 호수공사에 백성들을 노임도 주지 않고 마음대로 동원 하여 부려먹는 행패도 저질렀다.
천추태후 아들인 목종은 당연히 김치양이 고까웠지만, 어머니에게 한없이 약했기 때문에 차마 김치양을 쳐내지는 못했는데, 그러다 보니 김치양 행동은 점점 도를 넘어선다.
'고려거란전쟁' 드라마에서는 천추태후와 김치양 횡포는 그저 배경설명으로만 다루고 있다.
천추태후와 함께 초반 현종을 위협하는 적이자 헛된 야망에 눈이 먼 전형적인 권신으로 묘사되었다.
그러나 이 드라마와 겹치는 시대를 다룬 2009년 KBS 대하 드라마 '천추태후'에서는 탤랜트 김석훈이 연기한 김치양은 신라 왕족 마지막 후손이라는 설정으로 연인인 천추태후와 더불어 미화로 많은 비판을 받은 바 있다.
급기야 천추태후와 김치양 사이에 사생아가 태어 난다. 아들이 생긴 이 둘 권력욕은 선을 넘는다.
그때까지 목종은 후사가 없었고 아주 복잡하게 태어난 제 1순위 후계자만 있었다.
이 둘은 목종에게 자식이 없는 것을 기회로 천추태후가 낳은 아들을 목종 후계자로 삼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기까지 한다.
사실 왕조교체를 기도한 셈이다.
그럼 여기서 목종후계자 혈통에 대해서도 간단히 짚어 보자.
'왕욱'(왕건 13황자, 8황자와 동명이인)이라는 고려태조 왕건 아들이 천추태후 '헌애왕후'와 친자매로 경종 4비 였고, 성종의 동복 여동생이었던 '헌정왕후'와 사통하여 그녀를 임신시켰다. 즉 '왕욱'이 왕건 손녀이자 동시 조카 며느리이기도 했던 헌정왕후와 불륜하여 아이를 낳았는데 그 사생아가 목종 후계자로 낙점되어 있었다.
여기서 나는 처음에 '왕욱'이라는 이름이 헌정왕후 아버지로 나왔는데 또 불륜상대로도 나와 설마 고려왕실 근친혼이 아무리 막장이라고해도 친아버지와 불륜 을 저질렀다고?
어렵게 찾아보니 다행히 아니였다 태조왕건 동명이인 황자이었다.
왜 황자 이름을 똑 같이 만들어 헷갈리게 하는지....
얼마나 왕건의 자손들인 황자들이 많았으면....
하여튼 고려황실 근친혼을 보면 꼭 혈통을 위한 전략결혼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본인 외조카 이면서 또한 친조카 며느리와 사통해 사생아를 낳을 정도면 당시 고려황실 성풍속 알만하다.
그 후계자 아버지 '왕욱'은 이 사실을 알게 된 성종이 격노하여 귀양보내 '사수현'이란 귀양지서 생을 마치게 된다. 근친상간이나 과부정절등 문제가 아니라 왕후 였던 여자와 사통한 것이 문제 였다.
목종 후계자 어머니 헌정왕후도 26세 젋은나이로 죽고 만다.
목종 후계자는 사생아로 태어 났지만 고려황실 혈통만은 훌륭했던 그는 김치양과 천추태후 타켓이 되고, 천애고아로서 절에 숨어지내야만 했다.
절에 숨어지내던 목종 후계자는 우여곡절 끝에 '강조의 정변'으로 왕위에 오르는데 그가 바로 <고려 거란전쟁 2, 3차 침략>을 막아낸 고려 제 8대왕 '현종'이다.
이 이야기는 '현종편'에서 좀 더 상세히 정리하겠다.
천추태후와 김치양은 현종을 없애야만 그 둘 사이 사생아가 왕이 될 수 있었기 때문에 현종 행적을 철저히 추적해 가며 죽이려 했던 것이다.
'고려거란전쟁' 드라마에서 이런 상황들이 아주 자세히 나온다.
'현종' 즉위는 우라나라 역사를 통 털어 사생아가 왕위에 오르는 기록을 남겼다
이 이야기들 더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상세히 정리하기로 하고 다시 '목종' 이야기로 들어 간다.
'목종'은 참 특이한 왕이었다.
목종은 한국사 통털어 동성애를 커밍아웃 한 왕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또 불행히도 '강조의 정변'으로 왕위에서 쫒겨나고, 살해까지 당하기도 한 왕이었다.
목종은 '김치양과 천추태후'가 나라의 모든 권력을 장악하여 전횡을 일삼는데 어머니에게 가로막혀 이를 저지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되려 젋은신하 '유행간' 등과 공공연하게 동성애를 하며 그를 지나치게 총애하여 더욱 정치를 어지럽게 만든 유약하고 무능한 군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목종이 즉위초기부터 의욕적이고 적극적인 국정운영 기록과 더불어, 기록을 연구해 보면 해볼수록 이를 의심케 하는 정황들이 많다.
그러한 예를 몆 가지 살펴보자.
1. 목종은 자신의 의지로 유행간과 유충정을 권신으로 만들고, 방해가 되는 이주정을 지체없이 서경으로 보내는 등 인사권을 마음대로 행사했다.
2. 목종은 '대량원군'(현종) 즉위 계획을 진행하면서 채충순, 최항, 황보유의, 김연경, 문연, 고적, 이성언, 강조등 상당한 수 신하를 자신 뜻대로 좌지우지 했다.
3. 998년, 중앙군을 정비하여 '2군 6위 '체제를 확립하였다.
2군: 친위 부대 (응양군, 용호군)
6위: 수도 방어 및 행정 실무
이 체제는 이후 고려군제의 기본 틀로 자리잡게 됩니다.
4. 목종 초기에는 거란과 관계가 긴장되었으나, 전면적인 충돌은 없었다. 성종 대 거란1차침략 때 서희외교담판으로 이어진 친거란 외교기조를 계승하여 일단 평화는 유지되었다.
목종의 이러한 치적들을 보면 목종이 천추태후 섭정에 놀아난 허수아비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목종은 외척정치의 폐해, 왕권 약화, 군제개편 시도, 그리고 정변에 의한 퇴위되고 살해까지 당하다 보니 목종에 대한 기록들이 상당히 왜곡되었을 가능성도 크다.
우리가 좀 더 세세히 살펴봐야 할 부분이다.
이어서 '강조의 정변' 편이 계속됩니다.
ㅡ 초롱박철홍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