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향화 너머 (외 1편)
김명은
날씨가 나빠도 꽃 피는 건 당연해요
남향은 내 창가 북쪽은 오래된 방향
목련 꽃봉오리가 일제히 찬바람을 향해 있어요
나를 오롯이 벗어놓고 싶은 바닥을
발바닥을 조금만 더 내밀고
희읍스름한 바람 받은 돛폭은 누렇게 말라가요
한 사람과 한 사람은 바꿀 수 없어요
한 사람이 없으면 한 사람은 무엇이든 없는 거와 같고
한 사람이 어린 이마를 숙여요 미안해
사랑해 한 사람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아요
다른 길이 없다는 것은 돌아갈 수도 없다는 말
활짝 떨어진 꽃의 슬픔은 생일처럼 돌아오죠
생크림은 보드랍고 달콤하게 생생한 손가락들
참혹하거나 끝끝내 숭고하게
옷깃 여민 나는 한 사람을 가졌어요
—《열린시학》2017년 여름호
빛나거나 어둡거나
처음 불안은 패랭이꽃처럼 가벼웠다 가슴이 뛰었고 유쾌했다 잠이 덜 깼는데 설렘이라니
저녁이 나가고 아침이 들어오는, 문 없는 양방향
꽃이나 사막이나 마구잡이로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사막에서 별을 가지고 온 사람은 곧 어두워졌다
치욕을 견디면 절망에 익숙해진다 너 어쩌려고 그래
살아 있는 느낌이 없어도 좋아, 패랭이의 첫 꽃잎에서 마지막 꽃잎까지 마른 꽃대
나는 안전하지 않다 아직은 무사하다 원칙대로 되는 일은 없고 열거할 수 없는 기억들 감각을 깨우면 상상과 표상이 오간다
간밤의 꿈에서 달아났던 나는 꿈에서 나와 꿈으로 들어가 나를 뒤집는 불안의 연속
거울의 담론은 그럴싸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극단으로 몰아봐 나만 미친개라고 생각되면 네 목덜미를 물어뜯을까 핥을까
살아야 하므로 꽃이 핀다 나 같은 당신들의 아우성
햇살에 눌리든지 조약돌을 쥐고 있든지 손을 내민 채 굳어 있는 기억이 손에 잡힐 듯 말 듯 꽃소식, 모든 불안이 한꺼번에 핀다
—계간 시 전문지《포지션》2017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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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은 / 전남 해남 출생. 2008년《시와시학》으로 등단. 시집 『사이프러스의 긴 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