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그르기 - 유정
어제는 하루 종일 바람이 바다로 떨어지고 오늘은 빗방울이 쓰러진 이파리들을 다복다복 쓰다듬지
춥고 설운 겨울을 뚫고 봄볕이 깨어날 무렵이면 노랑의 이름들이 바다로 내려와 목이 터져라 떠나가 버린 사랑을 부르곤 하지 꽃잎아, 이파리야, 바람아, 수백 개의 떠돌던 아픔들아,
탱탱해진 볕살이 상처가 깊은 사람들 눈빛에 닿으면 풋잠 들었다 눈을 뜬 아기 새 노래처럼 새살이 돋고 기억의 창에 걸어 둔 꽃의 발자국들 지워버릴 수 있을까 벚나무 꽃잎처럼 한 겹씩 환해질 수 있을까
누군가 그랬지 상처는 꽃을 덧대면 아물게 된다고 느닷없이 휘몰아친 이별이 하염없어 눈물이 나면 피는 꽃 지는 꽃을 꿰어 공그르기* 했지 사월의 꽃그늘을 떠다가 아픔을 바느질 했지
없었던 것처럼 꿰맨다고 바다로 침잠한 이름이 돌아오지 않아 슬픔은 양파 같아서 시간을 벗겨 낼수록 눈물이 흐르거든 흉터들 고여 있다 누군가 건드리면 툭 터져버리지 느닷없이 불어온 바람에 와르르 떨어진 사월의 꽃잎처럼
* 바늘땀이 겉에 보이지 않도로 속으로 떠서 꿰매는 것
ㅡ계간 《시마》(2024, 여름호) *********************************************************************************************** 겉으로는 멀쩡해보여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남모를 아픔을 간직한 채로 살고 있습니다 덧대어 감춘 흔적이 보일 수도 있고 감쪽같을 수도 있겠지만.... 어른들의 '라때'란 이야기 속에, '어디서 배운 짓이야?'라는 꾸짖음 속에 보이지 않는 아픔 말입니다 '내로남불'을 의식하지 못하고 살고 있는 이들이 많아 보일 때 우리는 우울해집니다 의무보다 권리를 앞에 둔 사람들 때문에 세상사가 비틀리고 꼬여가는 것이 보이지 않나요? 제 아무리 꽃을 덧대어봐도 깊은 상처는 아물지 않으니 여의도가 흔들리나 봅니다 결국 바느질 마무리는 우리 국민들이 해야 하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