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으로 기억될 이름 제72회 / 이헌 조미경
연우의 큰 아들은 캐나다에서 고교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외국인 전형에 당당하게 합격했다.
처음 캐나다로 떠났을 때는 아직 아이 티를 벗지 못해 수줍은 소년의 모습이었으나, 6년이 지난 지금은
얼굴에 불긋불긋 여드름 자국이 낯선 타인을 보는 듯하다. 목소리는 걸걸하니 쇳소리로 들려 얼굴을 마주 하고 있으면
다른 사람을 대하는 것처럼 어색하기만 하다. 모처럼 휴일이 되자 연우는 아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어느 소설에서 읽어본 대목이 그의 가슴에 콕 박혔던 일이다. 늙은 아버지가 아들과 함께 목욕탕에 앉아 서로의 등을 밀어주는 장면은 몇 해 전 돌아가신 아버지를 보는 것 같아, 자신도 모르게 꼭 한번 목욕탕에서 아들의 등을 밀어주면서 어색한 부자 관계를 회복하고 싶은 심리가 깔려 있었다. 아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지, 흔쾌하게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주삼주섬 옷을 챙겨 입고 나왔다.
겨울의 날씨는 매서웠다. 어서 탕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연우는 아들을 앞세우고 입장을 끊어 탕으로 들어갔다.
탕에는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지긋한 어른들과 젊은이들이 모여 앉아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샤워를 마친 아들이 탕 속으로 들어온다. 연우는 자신도 모르게 아들의 검게 그을린 숲으로 눈길이 쏠렸다.
어릴 때는 집안 욕조에 물을 채우고 함께 목욕하면서 물장구치면서 놀았는데, 언제 어른이 되었는지 알 수 조차 없다.
근육질의 다리에는 자신과 달리 거칠거칠한 털이 마치 한 마리 짐승처럼 보인다. 연우는 한참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다
저절로 한숨이 터져 나왔다. 외국어 공부를 시키기 위해 누나에게 보낸 세월이 아들과 함께 보내지 못했던 나날이 이렇게
길었나 싶을 만큼 시간은 저 멀리 뛰어와 있었다. 거뭇하게 수염이 솟아난 턱에 비누를 쓱쓱 문지르더니 면도기로 슬슬 민다.
아들의 동작 하나하나가 연우에게는 신비스럽다. 목욕을 마친 연우는 아들을 데리고 근처 해장국집으로 향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목욕을 마치면 연우에게 바나나 우유를 사주셨다. 달콤한 바나나 우유를 마시고 싶어 아직 잠에서 덜 깨어 졸린 눈을 비비며 아버지를 따라 목욕탕에 다녔다. 그때 연우를 데리고 목욕탕에 다니시던 아버지는 지금 곁에 없다. 아들과 마주 앉아 해장국을 후루룩 먹던 연우는 아들의 얼굴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았다. 강인한 어깨를 가진 아버지는 평생 연우 옆에 있을것 같았다., 그러나 건강을 자랑 하시던 아버지도 건강에 이상이 오자 더이상 아들과 함께 목욕타에 가지 못하고, 나중에는 걷는일 조차 힘들어 하셨다. 그렇게 연우는 아버지를 하늘로 떠나 보냈다.
아들이 SKY라는 서울의 명문 대학에 합격을 하자, 주위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그는 아들 대학 입학 턱을 내느라 같은 직장에 다니는 동료들에게 점심을 샀다. 그리고 저녁이면 동창들과 만나 아들 자랑에 침을 튀기며 일장 연설을 했다.
직장에서 연우 또래의 가장 들은 자식들의 대학 입학 문제로 속앓이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연우는 특별 전형으로 아들을 좋은 대학에 입학을 시키고 나자, 마치 한시름 놓았다는 듯이 모든 것들이 심드렁했다.
한편 우진은 군에서 휴가 나온 아들과 함께 식당에 앉았다. 어리기만 했던 아들이 씩씩한 군인이 되어 자신 앞에 앉아 있다.
검게 그을린 얼굴에는 자신감이 팽배해 있고 군에서 있었던 훈련 과정을 이야기할 땐 자신도 모르게, 군시절의 훈련병으로 돌아간다. 자신은 아들 나이 때 방황도 했었고, 인생이라는 긴 터널 중간에 주저앉아 엉엉 울기도 했었다.
모든 일이 바로 어제 일어난 일처럼 선명한데, 거울 속에는 귀밑 머리가 희끗한 중년 남자가 무심한 얼굴을 하고 있다. 그동안 일에 미쳐 살았다. 오직 회사와 가족을 위해서 단 한 번도 뒤돌아 보지 못하고 앞만 보고 달렸다. 누군가는 말한다. 달리다 지치면 잠시 쉬어 가라고 한다.
그런데 우진은 쉬는 방법을 모른다. 오직 앞만 보고 달리는 것만 배웠다.
매일 기름진 음식에 운동을 하지 않으니 자꾸 배만 나온다. 지방을 태워서 근육으로 만들어하는데
피곤하다는 이유로 운동을 게을리하는 탓일 것이다. 그의 유일한 취미는 주말에 푸른 잔디에서 청량한 자연을 보면서
작은 공을 쳐서 자신이 보내고자 하는 지점에 안착을 시키고 다시 홀컵으로 넣는 동작의 반복을 통해서 희열을 느꼈다.
어쩌다 만나는 동창들과 사람 사는 이야기 하는 시간이 좋다. 휴식을 취할 때만큼은 회사 일은 잊고 싶다.
우진은 주말에는 휴대폰을 끄고 잠적하듯이 시간을 보낸다.
다음에 계속 이어집니다
첫댓글 반갑습니다. 이헌 조미경 작가님!`~
연두색 새싹들이 머리를 쪼긋 내미는 희망의 새봄에
소망 이루시고 늘 건강 행복하십시요,
소설을 연재하시는군요 . 대단하십니다. 파이팅!~
방장님
요즈음 연재 소설 올리시느라고
고생 많지요
정말 연재소설은 너무 재미가 있는 것
같아요 방장님의 소설을 보면서
저도 소설애 대하여 공부하고 있지요
오늘도 귀한 소설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