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端宗>
단종은 조선 제6대 국왕으로서 1452년 6월 14일(10세)에 즉위한 1년 뒤에 숙부인 수양대군(후일 세조)이 반란(계유정난)을 일으켜 뒷전(상왕)으로 밀려나 있던 중, 사육신(死六臣)이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발각되어 세조로부터 죽임을 당했는데, 그러한 사태를 차단하고자 단종을 '노산군'으로 강등 시키고 강원도 영월 청령포로 유배를 보냈다. 청령포는 육지의 섬으로써 삼면이 강(서강)이고 뒤에는 절벽이라 오를 수 없고 배가 아니면 절대 도망칠 수 없는 곳이었다.
여기서 생육신(生六臣) 또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생육신은, 세조가 단종을 폐위하자 관직을 포기하고 절개를 지킨 여섯 명의 신하이다.
1. 김시습(승려가 됨) 2. 원호(고향 원주에서 칩거) 3. 이맹전(고향 선산에서 칩거) 4. 조려(고향 함안에서 칩거) 5. 성담수(고향 파주에서 칩거) 6. 남효은(방랑생활)
<사육신>
1. 성삼문
2. 백팽년
3. 하위지
4. 이개
5. 유성원
* 집현전 학사, 세종의 총애를 받았던 인물
6. 유응부(무관武官)
<단종의 복권>
노산군에서 단종으로 복권된 것은 숙종 24년(1698년)이었으며, 그 당시 단종의 시신을 거두면 3대 멸족을 당함을 알면서도 당시 영월 호장이던 엄흥도가 이를 거둔 뒤 아들 삼형제를 뿔뿔히 흩어져 살게 하였는데, 그 공을 인정 받아 단종 복권 다음 해에 숙종은 엄흥도에게 '공조좌랑'으로 추승, 영조 때 '공조참판'으로 추승, 순조 33년(1833년)에는 '공조판사', 고종 14년(1877년)에는 '충의공' 시호와 함께 '의금부사 오위도총부 도총관'이란 정승급으로 추승하였다.
당시 유교 사상에 젖은 조선시대에는 적자(장자) 단독세습이 원칙이었으나, 조선 왕조에서 장자세습으로 왕위에 오른 건 문종, 단종 제외하고 5명뿐입니다. 문종이 차라리 어린 단종 아니라 동생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물려 주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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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애사(端宗哀史)
태공 엄행렬
단심丹心은 충절이라 책망할 수 없지만
앞날을 생각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어린 왕
허수아비인대도
복위 시켜 뭐 하려고
종 부리며 굶주림은 모르고 산 사대부
호미나 삽과 괭이 들고 땅 파봤나
기득권 빼앗길까 봐
맞 선 것은 아닌지
애꿎은 단종 죽게 만든 건 어설픈 모의
이름 비록 남았나 충절로 생각할까
한명회 명석한 두뇌
신숙주가 동참했지
사그라진 사람들
다시 볼 수 없는 얼굴
그 때 더듬어 보니 온갖 암투투성이
죽은 뒤 단종은 태백산 신선 됐단 전설 있네
-20240710-
첫댓글
슬픈 비화의 역사 소용돌이
후에 우리의 교훈이 될 수 있지만
역사는 돌고 도는 건지
조선 시대를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태공 시인님
배경음이 뭔가 의미가 있습니다
제 고향(영월)에서는 매년 한식인 4월 5일 경 3일 동안
단종제 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가장행렬 및
단종 왕릉이 있는 장릉에서의 행사
능 입구 밖에는 늘어선 천막
빈대떡에 부침개 등 먹거리와 빠질 수 없는 막걸리
완전 잔칫집 풍경이었지요.
마지막에 본 것이 군입대 전이었으니
벌써 40년도 훌쩍 넘었군요......
출근 때는 여지껏 잠바 입고 나와서
사무실에 와서는 벗는데
조금 전 잠시 반팔 차림으로 나갔더니 왠지 춥더군요.
비가 오려나
하늘 어둡지만 편한 하루 되십시오.
베베 시인님!~~~^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