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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 내일, 모레다. 추석, 한가위, 팔월 한가위, 중추절, 팔월대보름….
제일 좋은 날이라 그런지 이름도 많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추석날만 같아라.”
아마 일 년 중에 가장 즐거운 날이 아닌가 한다. 설날보다도 더….
추석이 되면 귀향 행렬이 줄을 이룬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서 그럴까?
유난히 우리 민족은 귀향(歸鄕)·귀소(歸巢) 본능이 강하다.
그리도 긴 시간을 참고 견디며 갔다가 금방 되돌아오니 말이다.
대처로 나갔던 자식들이 열일 젖혀 놓고 그리도 어려운 귀향 대열에 합류하니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전쟁이라 부른다. 아마. 추석은 고향과 조상과 부모님의
그리움이 묻혀 있는 곳이라서 그런가 보다. 이젠 내 나이, 추석이 되어도 찾아갈 고향이
없는 뒷방 늙은이가 되었다. 일명 꼰대이고 라떼족이다.
하기야 실향민(失鄕民)이 따로 있을까. 찾아갈 고향이 없거나 잃어버리면 실향민이다.
이젠 게도 구멍도 다 잃어버린 신세타령이다. 추석빔으로 목양말 한 켤레 얻어 신은
것도 신이 났다.
추석날, 이른 아침에 큰형은 작대기로 이슬털이하고, 한복 두루마기 입으신 아버지를
나는 종종 걸음으로 따라 갔다. 차례를 지내러 큰댁으로 가는 논둑길에는 누렇게 익은
메뚜기가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목양말 신은 검정고무신 코에는 이슬이 총총 맺혔다.
집안 대소사가 모인 대청마루에서 차례를 지내고, 성묘 가고, 밤에는 한가위
대보름 달맞이하던 때!
갈수록 바래지는 추석의 추억들이 이젠 가물거리는 고향열차처럼 덜컹거린다.
용산 역에서 추석 특별수송 야간열차를 타고 고향으로 밤을 도와 달린다.
그 열차는 바닥구멍이 숭숭 뚫린 화물 곳간차였다.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덜거덕덜거덕 밤을 달려 고향으로 달렸다.
보름달이 다 된 달은 고향 가는 우리들을 따스하게 비추어 주었다.
고향 역에 오밤중에 내린다. 거기서 밤길을 사오십리 걸어야 내 고향 마을이 있다.
보름달과 별빛이 그리도 쏟아지는 신작로 길을 허위적 가면 고향 어구에서 기다리는
호롱불이 그리 반가울 수가 없다.
공동묘지 곁을 지나면 여우가 캥캥 우는 것 같고, 흰옷 입은 사람을 만나면 그리
무서울 수가 없었다. 호롱불 밝히며 이제나 저제나 나를 기다리던 아버지·어머니이셨다.
아랫목에 묻어 놓은 밥주발은 어머니의 품처럼 따뜻했다.
따끈한 저녁밥을 먹으니 그리움이 달빛처럼 내 마음속으로 흘러들어 왔다.
대처에 나가서 공부하던 형들이 다 모였다. 시집 간 누나만 빼놓고….
손가락이 얽바위처럼 갈라져 무명천에 밥풀을 이겨 발라 감은 아버지의 손이 눈에 밟힌다.
갈수록 흰머리가 늘어만 가는 어머니가 보인다. 지금은 반창고나 염색약이 있건만.
‘아, 그래도 눈물겹도록 그리운 날들이다.’
이젠 내가 호롱불 들고 자식을 기다리는 나이가 되었으니, 나도 천애고아가 된지 오래다.
아버지·어머니 안 계시고, 형들 누나도 떠났으니….
나는 고향 가는 특별열차를 타고 싶다. 나도 고향으로 가는 작은 배를 타고 싶다.
실향민이 따로 있던가? 고향을 잃어버리면 실향민인데…. 자꾸 정을 잃은 사람이
되가는구나! ‘이젠 아버지 어머니를 꿈에서라도 보고 싶다. 단 한 번만이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