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님(이룻)님의 자전 소설(自傳小說) '노을을 품고 흐르는 강'
에필로그(Epilogue)
참으로 많은 세월이 흘러갔다. 아미와 은성도 결혼을 했다. 은성의 아내는 자그마한 키에 몸이 약한 여자였다.
나이는 여자가 한 살 위였는데 가끔 날씨가 춥고 몸을 조금 무리하면 몸에 마비증상이 나타났다. 증상으로 보면 성인성 소아마비(ADULT POLIOMYELITIS)인 것 같지만 항상 쾌활하고 다정다감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근심 걱정은 큰아들 하나만으로도 넘치는데 작은 며느리도 예삿일이 아닐 성싶어 무조건 기도를 올리는 수밖에 없었다.
은성이의 키는 훤칠해서 겉으로 본 두 사람은 잘 어울리지는 않았다. 첫 만남 때 잠시 엄마의 의견입네 하고 은성에게 신중해지기를 시도해보았다. 하지만 곧바로 은성의 공세적으로 되돌아오는 말이 설아의 폐부를 찔렸다.
“저 오늘로 어머니한테 실망했습니다. 형은 불구의 몸으로 성한 며느리를 맞아서 좋고, 저는 성한 아들이어서 몸이 약한 사람하고 결혼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까? 어머니! 어찌 그렇게 매정하고 이기적이십니까?
교육자이신 어머니 생각이 그것밖에 안 되신다니 정말 실망했습니다. 그래도 남들에 비해 열린 사고를 지녔다는 나의 어머니가 그러하신데 다른 사람들은 오죽하겠습니까.”
설아는 자신의 입장이 분명했지만 단지 의견입네 하고 조심스럽게 던진 말이 아들로부터 당연하게 지적되었다. 설아는 두말 하지 않고 결혼을 허락했다. 사실 설아는 은성을 위해 무릎이 닳도록 엎드려 기도드렸다.
은성과 눈이 마주칠 때면 두 손 꼭 잡고 기도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 버렸다. 그런 일상의 기도는 설아도 모르는 사이 서원 기도가 되어 하느님께 상달되고 있었다.
설아는 다짐했다. 적어도 미국의 인권운동가 쉐퍼드 라인은 되지 말아야 한다고. 실은 은성이의 그와 같은 숭고한 사랑, 그리고 젊은이답게 건강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음이 더 없는 신뢰감으로 다가와 좋았다.
앞으로 우리 사회가 좀 더 성숙해지려면 사람에 관한한 차별이 없이 공동체 정신이 보편의 가치로 거듭나야 한다. 둘은 서로 사랑함이 극진하였다.
인생이라는 게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아미의 배우자는 독실한 천주교 집안사람으로 그의 형님이 되시는 가톨릭 신부의 주례로 성당에서 혼례를 올렸다.
아미의 남편이 신경정신과 전문의가 되어 대학 강의도 나가고 미국에 연수 가서는 은학,보희,기봉의 가족들을 만나는 등 소식을 부지런히 전했다.
설희의 기도대로 막내 은성도 미국으로 건너가 목회 일을 하며 사라와 이삭이라는 두 자녀를 두었고 이삭은 버클리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하고 있다.
이제는 그들 모두가 너끈하게 자리를 잡아 모든 면에서 당당한 미국인이 되었다고 했다. 특히 기봉이는 한국 여성을 아내로 맞이해 안정된 삶을 이루고 있다고 하니 설아로선 그 무엇에 앞서 고마운 일이었다.
그들 중에 누구인지가 한 말이지만 귀담아 둘만 했다. 이제는 고국에서 재미동포들 보기를 한국 사람인 양 착각해서 보지 말라고 했다. 그들의 한국인 모습의 분명한 미국인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미국 현지에 사는 사람이나 한국에 사는모든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고 했다. 따라서 앞으로는 전 세계에 진출한 동포들에 대한 생각도 이와 같은 바탕 위에서 새롭게 인식되는 것이 좋다고 했다. 많은 세월 가운데 크고 작은 일들이 많았다. 설아는 그동안 틈틈이 써온 글로 문예지에 등단했다. 막내 은성을 결혼시킨 후 한숨 돌리면서 시집을 묶었다.
조촐하게 마련한 출판기념회장을 찾아준 제자들 중에는 벌써 머리가 희끗희끗한 사람도 여럿이었다. 그중 짓궂은 제자 하나가 말하는 것이었다. “선생님, 전에 우리가 학교 다닐 때 가끔 찾아오셔서 교실 환경정리를 해주던 그 키 큰 분이 사촌오빠라고 하시더니 거짓말이었네요. 어떻게 사촌오빠하고 결혼을 할 수 있는 겁니까?” 웃자는 소리였다. 좌중 모두가 좋으리만치 웃었다.
설아는 교장으로 승진하였다. 평교사로 출발하여 더는 올라갈 수 없는 데까지 올라선 것이다. 감개가 무량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그것은 곧 늙었다는 의미를 말한다.
2016년 하늘 공원 호수에서 나이를 헤아리며 감상에 젖을 시간도 없이 연속으로 불어 닥친 일들이 눈앞에 명멸했다. 교사라는 것은 학생을 가르치기도 하지만 세상살이에서는 도리어 배워가야 할 학생이었다.
바로 세상이 교사였다. 그 교과서에서 배운 것은 ‘인간만사 새옹지마’ 라는 말이었다. 과연 정답이었다.
교장으로 승진하여 기쁨을 누리기도 전에 어렵게 마련한 상도동 집이 날아갈 위기에 처했다.
친구의 유혹에 땅 투기를 하고, 은행지점장으로 있으면서 동생의 대출 담보 보증을 해준 허성재는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잘나가던 시동생의 시동생의 건설회사가 부도로 와르르 무너지기 시작했고 사업은 회생의 여지를 남기지 않았다.
허성재는 이를 만회하기 위해 설아의 인감까지 몰래 떼어 대출받기에 이르렀고 두 사람은 어쩔 수 없는 별거에 들어갔다. 허성재는 물론 설아는 수억 원의 빚더미를 머리에 얹고 사지에 내몰릴 지경에 이르렀다.
IMF체제에 한번 침몰하기 시작한 배는 기어코 가라앉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생활력 강하기로 소문난 시동생은 큰 병을 얻었고 빚은 고스란히 허성재와 설아의 몫이 되어버렸다.
발버둥을 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었다. 상도동 집은 물론이고 설아의 명의로 된 재산도 동이 났지만 시동생의 건설사업은 끝내 건질 수 없었다. 도움을 청할 곳도 없었다.
경매에 들어간 집은 팔리지 않아 천만 원 가까운 이자를 물어갈 즈음 학교에선 이상한 소문이 나돌았다. 이설아 교장 선생님은 한 달에 천만원 가까운 곗돈을 넣고 있다는. 어떻게 해명할 수도 없는 소문이었다.
그때쯤 참으로 고마운 은인 현숙선생이 다시 나타나 주었다.
경매에 들어가면 제값을 못 받는 위기에서 현숙 선생이 상도동 집을 사준 것이다. 고맙기 그지없었다.
사람은 어디서 사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한 일이지만 맘먹고 지은 집이 날아갔을 때는 무엇보다 심장에 대못을 박는 것보다 더 펄펄 뛰는 아픔이었다.
모두를 정리하니 서울을 떠나야 했고 지금의 수원 금곡동에 그저 거처를 마련할 정도였다. 하루도 쉬지 않고 가정과 사회생활을 하며 정신없이 뛰었건만 결과는 너무 허무했다.
이 와중에 설아는 정년퇴임을 하였다. 설아는 이제 출근할 일이 아예 없어졌다. 새로 이사한 집에 이렇게 앉아 있는 것이 흔한 일이 된 것이다.
집 베란다에서 바라보면 봄에는 목련꽃, 복사꽃, 살구꽃이 지천이었고, 6월부터 피기 시작하는 장미와 나리꽃이 9월까지는 침실을 기웃거리는데 지금은 늦가을이 었다.
11월 중순을 넘긴 하루해는 짧았다. 전축의 CD가 멎어 있었다.
‘내가 무슨 음악을 듣고 있었지. 가을엔 떠나지 마오, 그거였나? 왜 요즘 기억이 희미해 가는지 몰라.’ 고개를 갸우뚱하며 전축 쪽으로 다가서니 위에 놓여 있는 구리 인형은 그대로였다.
세월만큼 닮아서 거죽이 반들거렸다. 내 꽃 같던 어린시절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고, 미지꼬 선생님은 또 어디로 가신 걸까! 푸르고 예뻤던 연분홍 내 어린 시절이여!
인형을 보고서야 바흐의 무반주 첼로를 듣고 있었다는 게 생각났다. 요즘 기억이 가물가물해짐을 느낄 때마다 설아는 몹쓸 치매에나 걸리는 게 아닌가 하여 공연히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열심히 살아온 그 삶이 허전했다.
결국 이것뿐이어야 하나. 혈압이니 혈전이니 콜레스테롤 조절이니 하는 약들을 먹어야 하는 일도 가끔씩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가끔 남편이 와서 챙겨주는 일은 고맙지만 그렇다고 이제 와서 그녀가 외롭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 외롭다는 생각은 좀 더 근원적인 데 뿌리를 뻗고 있었다.
사랑이란 게 무엇인가. 가슴 시리도록 고독하고 외로웅 것인가 내가 아프면 대신 아파줄 것인가. 내가 죽으면 따라 죽어줄 것인가. 뭐 서로 이해상관이 적당한 선에서 맞으니 결혼해서 살아온 것이 아닌가.
결국 지금에 와서는 홀로 왔다가 홀로 떠나가는 인생임을 새삼스레 알게 되다보니, 누구라도 고독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인간의 본원적 존재인식이 스스럼없이 다가와 그녀를 외롭게 만들고 있었다.
적어도 부부간에는 이를 인식하지 않아도 좋으리만치 지고의 사랑을 나누며 서로를 보듬을 수 있어야만 한다. 누구나 감정이 메마르면 그만큼 삶은 무미건조해진다.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호르르 날더니 설아의 눈앞에서 뱅글뱅글 돌다가 가만히 내려앉았다. 갑자기 곽 보아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야말로 그는 홀연히 나타나서는 청하지도 않았는데 엘리야 선지자에게 떡과 고기를 날라주던 까마귀가 되었다가 이내 흔적도 없이 날아가 버렸다. 저렇게 힘없이 떨어지는 은행잎처럼.
곽 보아스! 그는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간 것일까? 한 여인에게 고이 간직한 남자의 순정을 아낌없이 바쳤던 보아스! 그는 그만의 후회 없는 사랑을 한 것인가? 설아는 그의 사랑을 받아준 것인가? 설아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인간의 인연에 대한 수렁 속으로 침몰해 갔다.
그렇게 잠시 만났다가 헤어지는 인연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아직도 보아스와의 잠깐의 일은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아 있다.
2010년 수원 금곡동 칠보산 아래에서 남편과 함께 그와의 만남과 헤어짐의 의미를 명쾌하게 해석할 길이 없다. 단 한 번 운명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기도 전에 끝나버린 일에 대해 설아는 크게 자책하며 아쉬움에 들뜨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잊혀지는 것도 아니었다. 사랑과 사모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순정을 한 여인에게 바치고 혼불 속으로 뛰어들어 흔적 없이 사라진 곽 보아스! 긴 세월 살아오면서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은 많았다. 무상한 일이었다. 해가 기울고 있었다. 그녀는 다시 베란다로 갔다. 석양과 밤이 만난 지점에 종점이 있네 친구여! 재촉하지 말게나 내릴 곳은 나도 알고 있다네 세월은 왜 자꾸 지친 나에게 핀잔을 하나 한 목숨 스러질 때마다 생긴 별들은 저 멀리에서 손발이 얼어 동동거리는데 지금 당신과 나 진실했던 시절만이 떨어지지 못하고 너울거리네 종점, 나는 알고 있네 아득한 저 편 점등 하나 기억처럼 서 있고 난 내려야 하지 나 어쩌다 여기까지 왔으나 가끔은 길을 잃고 싶을 때가 있었지 너무 낯익은 풍경이 싫증나 길에서 비켜나고 싶었던 때가 많았어 칭칭 감긴 내 사슬을 끊고 간장을 녹이는 애절한 노래를 피해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는 은밀한 곳에 웅크리고 앉아 무심히 보낸 세월을 한 가닥씩 헤아려보고 싶었다네 태어날 적 고고하던 내 울음도 만져보고 끊을 수 없었던 세상과의 끈을 심술이 잔뜩 난 채 와락 당겨도 보고 기쁨 속의 위안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구슬처럼 굴려보다가 익명으로 지는 시간 아! 네 시간도 내 시간도 아닌 다만 그대로인 시간을 깽지발로 폴짝 뛰어 건너도 보며 마냥 자유롭고 싶었는데 나 어쩌다 등 떠밀린 듯이 여기까지 와버렸네 평생 날 섬기느라 함께 늙은 내 그림자를 동반하고 더 갈 곳이 마땅치 않아 여기 종점 가까이 허름한 옷 한 벌 걸치고 기어코 오고 말았네 설아는 전축 앞으로 다가가 바흐를 다시 듣기로 했다. 그 곡은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주는 묘한 힘이 있었다. 그녀는 차분함에 빠져 들어가며 무엇을 향해선지 누구를 향해선지 섭섭하고 외로운 생각에서 중얼거렸다. 무반주라……. 그렇다. 누구든 불야성 세상에서 반주 없는 인생을 산다는 건 무척이나 고독하고 무던히 인내하는 삶일 거라는 생각을 하며 설아는 조여 오는 가슴을 애써 진정하며 먼 산을 바라 보았다.
내일은 큰아들 은학이 귀국하는 날이다. 그 불편한 몸으로 결혼을 하였고, 아이를 둘이나 낳아 건강하게 키운다는 사실은 기적이 분명했다.
얼마나 기쁜 상봉이 될 것인가 가슴이 설렌다. 또 내일은 장애인을 위한 봉사단체에도 나갈 일이 있다. 설아는 지금 그 단체에서 일 주일에 두 번씩 봉사하고 있다.
장애아들을 둔 사람으로 장애인을 돕는 일은 당연한 일일 뿐 내세울 일은 아니었다. 내일은 바쁜 날이 될 것이다. 갑자기 마음이 바빠지며 저녁밥을 안치고 걸레질을 하는 그녀의 발걸음엔 생기가 돌았다. 현관문 소리가 나더니 남편 허성재가 들어섰다. 손에는 붉은 장미 한 송이가 들려 있었다. “웬 장미예요?” 장미를 일부러 사들고 오는 줄 알고 설아는 기뻐했다. 허성재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어쩐 일로 화단에 장미가 피어 있더라니…….” “날 위해 사오는 게 아니구요? 공연히 좋아했나봐.” “가을이 길고 따뜻하다 보니 정열이 넘친 나머지 봄인 줄 알고 먼저 튀어 나왔나봐, 이놈이.” “그러게 따뜻한 사랑을 부어주면 안 되는 일이 없는 거예요. 지난주일 목사님 설교가 그거였잖아요.” “그래? 그렇다면 내가 당신을 지금 따뜻이 안아줄게. 당신도 붉은 장미 한 송이 피워 보실래?” “어머머, 이이가, 밖에서 무슨 좋은 일 있었어요?” “이런 바보, 있긴 뭐가 있어. 만들어가며 사는 거요. 이설아 여사님, 제발 철 좀 들으슈. 내일 은학이네가 오는데 맛있는 거 만들어 놓은 거 없나요? 배가 고픈데.”
보아스의 은혜 입어
보아스의 은혜 입어 유다 땅에 살고 싶다.
그 분이 흘려주시는 벼 이삭을 주우며 어둡고 시린 방황 모두 끝내고 그분의 숨결 되어 살고 싶다.
"소녀야 이리로 와서 네 떡을 초에 찍으렴 이 모든 곡식을 가져가렴 내 몸 모두 뽑아 흘려 네가 살기를 원한단다"
그분이 흘리는 이삭을 주으며 유다 땅에 살고 싶다 단 사이사이 들꽃 향기로 채워가며 그 분의 뜨락에 천하보다 소중한 한 송이 꽃으로 머물면서
그 크던 키가 구부정해졌고 희끗하게 세어버린 남편의 머리를 쳐다보며 설아는 생각했다.
두 사람, 죽어서도 한 몸 되어 보령에 있는 설아의 시비 앞에 묻힐 것을 약속했다.
우여곡절은 많았지만 결국, 남편 허성재는 소리 없이 설아 곁에 지켜 서 있는 무반주였다는 것을 재차 인식하며..... 그래서 자신이 앞장서 인생을 연주할 수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에필로그(Epilogue)끝
사진:이정님(이룻)님 작가
끝까지 구독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2019년3월25일(월) 캐나다 몬트리올 累家에서 청송(靑松) 카페지기 베드로 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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