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슴이 따뜻해지는 詩] 가을
먼 산이 한결 가까이 다가선다.
사물의 명암과 윤곽이
더욱 또렷해진다.
가을이다.
아 내 삶이 맞는
또 한 번의 가을!
허나 더욱 성글어지는 내 머리칼
더욱 엷어지는 내 그림자
해가 많이 짧아졌다.
―김종길(1926-2017)
가을에 이 시를 읽으니 사색에 잠기게 된다. 김우창 문학평론가는 김종길 시인의 시편에 대해 “절도 있는 리듬의 말”이라고 상찬을 했는데, 그런 특장도 잘 느껴진다. 가을에 이르러 사물의 밝음과 어두움, 테두리가 분명해지는 것은 쾌청한 날씨 때문이요, 또한 생명 세계가 꾸밈새와 지니고 있던 것을 버리고 덜어내는 때이기 때문일 것이다. 장식이 걷히면 대상의 홑몸이 확연하게 노출된다.
시인은 가을의 시간을 맞이하게 된 일에 대해 기쁜 소회를 털어놓는다. 동시에 노쇠해지는 몸을 쓰다듬듯 바라보아 그 변화를 순순하게 받아들인다. 늙어가는 몸은 가을날의 청량산을 빗대서 표현한 시구대로 “맑게 여위다 못해 이미/ 춥게 여위기 시작하는/ 초로(初老)”의 몸일 테다. 가을이 깊어지면서 생명들이 왕성하게 활동하는 낮의 시간은 점차 짧아진다. 시인은 이 사실 또한 담담하게 수긍한다.
시인의 후기 걸작들을 읽어보면 생각에 사특함이 없다는 뜻의 ‘사무사(思無邪)’를 매우 귀하게 여겼음을 알 수 있다. 이 시의 절제된 행간에서도 그런 궁구와 허심한 면모가 엿보인다.
*사무사(思無邪) : '생각이 바르므로 사악함이 없다'는 의미이다. 공자의 《논어(論語)》 위정(爲政)편의 “시삼백(詩三百), 일언이패지왈(一言而蔽之曰 사무사(思無邪))에서 따온 중국의 시학으로 한나라 시대에 와서 경전화되고 왜곡된 문학성과 민중성 경향을 경계하기 위한 시법이다. 이를 공자는 《시경》의 독법이 사실성(寫實性)과 진정성(眞正性)에 있다고 규정하며, 이를 한마디로 '사무사(思無邪)'라고 규정하면서 사무사의 시법이 탄생 되게 된 것이다. 이 사무사 시학의 키워드는 ”즐거우면서도 지나치지는 않고, 슬프면서도 다치게 하지는 않는다“는 ‘낙이불음(樂而不淫)’과 ‘애이불상(哀而不傷)’ 의 문예미학이다.
✵김종길(1926-2017)은 시인이자 영문학자이다. 경상북도 안동군에서 태어났다. 혜화전문학교와 고려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1947년 <문>이 입선되어 등단한 이래, 시집으로 1969년 <성탄제>, 1977년 <하회에서>, 1986년 <황사 현상> 등이 있다. 한국시인협회장과 고려대 교수를 역임하였다. 제7차 교육과정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수록된 <성탄제>라는 시의 저자로 잘 알려져 있다. 대한민국 문화훈장을 수훈했다.
✺ 성탄제/ 김종길(1926-2017)
어두운 방 안엔
빠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藥)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그 붉은 산수유(山茱萸) 열매ㅡ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생,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熱)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聖誕祭)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것이라곤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 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血液)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현대시학(1955년 4월호)
「성탄제(聖誕祭)」는 삼애사(1969년)에서 발간한 첫 시집의 표제시이기도 하다. 이는 시인 자신이 전통의 본고장인 안동 출신이면서 영미 주지주의를 전공한 영문학도라는 점과 상관관계가 있을 것이다. 「성탄제」는 바로 작자의 이와 같은 성향을 대표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 흔히 쓰이는 크리스마스라는 말 대신에 ‘성탄제’라는 낯선 역어를 고집하는 것부터가 이 같은 성향의 표출인 것이다. 곧, 서구적 정신의 바탕을 이루는 그리스도의 탄생과 수난의 의미를 작자는 유년 시절의 체험을 통하여 우리의 전통적 부성애(父性愛)와 등가물(等價物)로 파악하고 있다.
병든 자식을 살리기 위하여 아버지가 눈 덮인 산 속을 헤치고 산수유 열매를 따오던 그 밤을 작중화자는 성탄제의 밤과 같은 의미로 이해한다. 그리하여 눈 내리는 성탄절날 밤 성탄의 의미를 생각하며 잠 못 이루는 화자에게 ‘불현듯 아버지의 서늘한 옷자락’이 느껴지는 것이다. 결국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한 성탄절의 의미는 작중화자로 하여금 ‘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山茱萸)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름’을 자각하게 만든다. 이처럼 동양적 정신과 서구시의 기법을 결합시킨다는 것은 정신과 기법이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쉽게 이루어질 수는 없는 일이다.
이 작품은 이 같은 어려움을 무난하게 극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찍이 정지용(鄭芝溶)에 의하여 개척된 주지적 서정시의 전통을 올바르게 계승한 작품이라 평가할 수 있다.
이 시는 어린 시절 심한 열병을 앓던 어느 겨울밤, 눈 속을 헤치며 산수유 열매를 따온 아버지에게서 느꼈던 육친애가 골격을 이루고 있다. 육친애에 근거한 수직적 사고는 유가적 가부장 체계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눈 속을 헤치며 아버지가 따오신 산수유 열매로 나는 치유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어른이 된 화자는 아버지의 서늘한 옷자락을 새삼 느끼게 된다.
삽화적 이야기의 회상을 통해 아버지와 화자는 자연스럽게 조우한다. 서른이란 나이는 아버지의 나이이기도 하며 화자 자신의 나이이기도 하다. 아버지의 그 나이가 되어서 화자가 반추하는 아버지의 애정은 과거의 열병에 대한 치유인 동시에 현재의 치유로 작용한다. 성탄제라는 시간은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리는 피상적 축제가 아니라 열병의 치유와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서 새롭게 깨닫는 각성의 시간으로 인식된다. 예수도, 성모 마리아도 보이지 않고 오직 아들의 병구완에 정성을 쏟았던 아버지의 모습만이 돋보이는 거룩하고 고요한 밤은 가부장적 질서에의 그리움이라는 의식의 단면을 드러내는 것이다.
「성탄제」가 김종길의 정신적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유가적 가부장제 질서의 한 구현이라고 볼 수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7차 교육과정 3학년 2학기 국어 교과서 '창조적인 문학 체험' 단원에서 등장했으며, 2011학년도 6월 모의평가 3번째 지문인 현대시 파트(19~22번)에서도 출제되었다. 또한 2025학년도 수능완성 연계 작품으로 출제되었다.
[참고문헌 및 자료출처: 조선일보 2024년 11월 18일(월) 〈가슴이 따뜻해지는 詩(문태준 시인)〉, 《Daum, Naver 지식백과》/ 사진: 이영일 ∙ 고앵자 yil20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