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 5
2014. 4. 4. 금계
사진은 곤드레. 취나물의 일종이랄까. 4월 2일, 아침 출근길에 김 선생이 하 선생한테 구입했다면서 곤드레 약간을 가져왔다. 오후 퇴근길에는 김 선생한테 곤드레를 판 하 선생이 직접 또 곤드레를 가져왔다. 하 선생은 곤드레뿐 아니라 달래, 갈치, 유기농으로 재배한 쌀 한 자루까지 푸짐하게 가져다주었다.
그 중에서도 곤드레와 달래는 가거도에서 채취한 완전 자연산이었다. 하 선생은 가거도에 근무하면서 생선회 뜨는 법을 배웠다. 지금은 일식집 주방장에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솜씨로 발전했다. 가거도에서 나온 지 꽤 여러 해 지났지만 아직도 거기 주민들과의 연락망이 건재하다. 곤드레, 달래는 물론이려니와 미역, 멸치액젓, 거북손, 잠수부들이 물속에 들어가서 따는 커다란 홍합, 오륙 킬로씩 나가는 자연산 농어나 광어 등 갖가지 해산물이 연락만 하면 가거도에서 목포항으로 배달된다. 동료 교사들한테 철따라 가거도의 별미를 맛볼 수 있도록 주선하는 것은 순전히 하 선생의 공로다.
올 봄 우리 집은 유난히 나물을 많이 먹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나물은 미나리다. 미나리는 꼭 봄에만 부드럽다. 동부시장에 가서 미나리 한 단과 살아 있는 바지락을 조금 사다가 데쳐서 함께 무쳐 먹으니 봄의 향취가 물씬 풍겼다. 아내도 맛있다면서 두 번이나 더 사다가 무쳐먹었다. 또 들판에 나가 쑥도 캐다가 두어 번 국 끓여 먹었다. 보드랍고 향기롭기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옆방에서는 죽순을 가져다주었다. 이웃 문구사 아주머니는 밭에서 캔 봄동 배추를 가져다주었다. 류 선생 사모님은 자전거 타고 영산강 나갔다가 뜯어왔다고 잎까지 붙은 어린 머위를 가져다주었다. 된장기 해서 무쳐먹으니 우리 집 식탁은 그야말로 봄의 향기가 가득하였다. ‘나물 강조주간’인 셈이었다.
이제 또 곤드레까지 먹게 되었다. 곤드레는 살짝 데쳐서 무쳐 먹어도 좋지만 향취를 제대로 느끼려면 날로 밥을 쌈 싸서 먹는 것이 제격이다. 풋풋하면서 별로 쓰지도 않아서 각별한 맛을 느끼게 해준다. 먹어보지 않은 사람한테는 그 덤덤하면서도 싱그럽고 상큼한 맛을 설명할 길이 없다.
4월 2일 오후, 류 선생과 나는 김 선생 퇴근 시각에 맞춰 청호중으로 갔다. 함께 산책을 하다가 택시를 타고 유달산 조각공원 부근에서 내렸다. 바야흐로 유달산은 봄꽃 축제 준비가 한창이었다. 이번 주말인 4월 5일 6일이 축제기간인데 올해는 날씨가 따뜻해서 벚꽃이 빨리 피었다. 개나리와 벚꽃이 함께 핀 것도 근래에 드문 일이고 벚꽃이 3월 말에 핀 것도 오랜만이라 한다. 해마다 날씨가 다르기 때문에 축제 기간을 딱 들어맞게 정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아직 축제는 며칠 남았지만 올해에는 사실 오늘 정도가 개나리와 벚꽃을 함께 감상하기로는 가장 좋은 날인지도 모른다.
뭐니 뭐니 해도 유달산은 봄꽃 축제기간이 가장 화려하고 떠들썩하고 경치도 좋다. 작년에도 우리들은 축제 언저리에 유달산을 거닐며 해물전에 동동주를 기울였고 내년에도 그러할 것이다. 이 꽃다운 날에 유달산을 거닐지 않으면 희망찬 새봄이 새로이 시작되었다는 실감이 잘 안 날 정도다.
달성공원에 즐비하게 들어선 주막 가운데 한 곳으로 들어간다. 작년에도 들렀던 곳이다. 단골 메뉴는 해물파전. 주로 오징어가 들어가는데 노릇하게 구워내면 바삭바삭 막걸리나 소주 안주로도 손색이 없다. 한창 술잔을 기울이며 얘기를 나누는 참인데 남자 주인이 조심조심 다가와,
“웅어 회 조금 드릴 테니 잡숴보실래요?”
“뭐라고라우? 웅어라고라우? 그 귀한 물고기 어디서 나셨다요?”
조금 있으려니 시키지도 않은 웅어 회가 서비스로 나왔다. 남자 주인이 오전에 달리도 근방에서 낚시로 잡았단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봄철이면 목포 주막에서 심심찮게 맛볼 수 있었는데 멸종이 가까워졌는지 요즘에는 구경하기 어려운 고기가 되어버렸다. 자기 주막에 들린 손님들한테 자기가 낚시질한 생선을 회로 대접한다는 것도 여간해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봉사정신이다. 우리는 내년에도 반드시 이 주막을 찾을 것 같다.
웅어는 멸치과에 속하는 바닷물고기로 길이는 이삼십 센티 정도이며 배 쪽이 은회색이고 4,5월경에 바다 가까운 민물에 알을 낳는다.
1971년 어느 봄날, 나주군 왕곡국민학교에 근무하던 나는 웅어 회를 먹자는 학부형의 초대를 받았다. 그 당시에는 영산강을 타고 왕곡까지 웅어가 올라왔다. 생전 처음 먹어보는 별미였다. 웅어 회를 맛나게 먹고 컴컴해서 그 집을 나왔는데 동네 길목에 물을 바가지로 떠먹는 박우물이 있었다. 거기에 엎드려 물을 떠먹다가 외이셔츠 윗주머니에 넣어두었던 라이터가 그만 우물 속으로 빠져버렸다. 그 때 배웅 나온 학부모도 그 장면을 목격했다..
다음날 그 집 학생이 학교로 라이터를 가지고 왔다. 깜짝 놀라 물었더니 학생 아버지가 날이 새자마자 박우물 물을 죄다 퍼내고 라이터를 건졌단다. 별로 비싼 라이터도 아니었는데 자기 자식 가르치는 선생을 대접하는 학부모의 정성이 이처럼 지극하였다. 나는 황송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던 것이었다.
차림표를 보니 맨 처음에 ‘통닭’이라고 쓰여 있었다. 사무실 일을 마치고 뒤늦게 참석한 별호사가 이 집 닭도 먹을 만하다고 해서 ‘통닭’을 시켰더니 내가 애당초 생각한 통닭이 아니었다. 나한테 ‘통닭’이란 털 벗긴 닭을 통째로 하얗게 푹 삶은 요리였다. 그런데 시뻘건 고춧가루를 뒤집어쓰고 나온 요리는 닭볶음이었다. 식당 주인과 나의 대화가 소통이 안 되었기 때문이었을까. 그런다고 손님들이 몰려들어 경황이 없는 주인한테 다시 물릴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먹기는 그대로 먹었지만 마음 한 구석이 찜찜했다.
요즘 ‘불닭’이 유행한다고는 하지만, 나도 매운 것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이렇게 혀가 화끈거릴 정도로 매운 닭을 먹기는 처음이었다. 매운 것도 매운 것 나름이었다. 나는 지독하게 매운 청양고추를 가늘게 썰어 입안에 매운 기운이 살짝 도는 정도로 먹는데 이처럼 혀가 얼얼하게 매운 음식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요컨대 향신료의 농도가 너무 짙어서 음식 본래의 맛을 훼손시키는 데에는 찬성할 수 없다.
그러거나 말거나 꽃 축제가 임박한 달성공원 저녁 주막들은 주막마다 만원을 이루었고, 우리들은 시끄러운 ‘생의 한가운데’에서 ‘한단고기’니 ‘흉노족’ ‘돌궐족’ ‘훈민정음의 기원’ 따위로 한껏 목청을 높이며 술잔을 기울였다.
밤이 들썩거렸다. 벚꽃 하얀 꽃잎이 시나브로 떨어져 팽그르르 돌면서 달성공원은 불야성을 이루었다. 우리는 부름택시를 타고 산 밑의 일상으로 내려갔다.
4월 3일, 살살 아내를 꾀었다.
“어야, 어제 유달산 가보니까 벚꽃 활짝 피고 개나리는 벌써 파란 잎이 돋아나데. 축제는 며칠 뒤지만 오늘 안 가면 꽃잎 몽땅 떨어져불겄데.”
정오도 되기 전에 아내 차를 타고 유달산으로 향했다. 바야흐로 봄볕은 요구르트처럼 질질 처지면서 유달산 상공에서 아스팔트 위로 부옇게 녹아내렸다. 봄볕은 목포역전 손님을 기다리는 1번 버스 지붕에도 새하얗게 달라붙어 미끄덩거렸다. 유달산 오르는 깔크막에도 봄볕은 이 건물 저 건물 벽에 찰싹 달라붙어 온갖 아양과 요망을 다 떨고 있었다.
바야흐로 바람 불어 좋은 날, 바람 쐬기 좋은 날, 바람피우기 좋은 날이었다. 유달산에 가기도 전에 벌써 상춘객들의 함성이 은은히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저기가 일등바위던가 이등바위던가.
조각공원은 언제 가보아도 깔끔하고 아늑하다. 더욱 좋은 점은 전에는 입장료를 받았는데 요즘에는 입장료가 없다. 얼마 안 되는 푼돈이지만 시민들 기분부터 다르다.
조각공원도 개나리, 벚꽃, 목련이 어우러지는 축제 기간이 가장 멋지다. 어디선가 봄 꿩이 꿔거겅, 교태를 부리며 날아올라 화들짝 사람을 놀래게 한다. 그러고 보니 조금 있으면 풀숲에 숨겨진 꿩알이 맛있을 때다. 꿩알이 얼마나 맛있느냐고? 달걀과는 게임이 안 된다. 안 먹어본 사람을 말을 말더라고.
유달산 축제를 더욱 예쁘게 꾸미려고 시청에서는 겨우내 온실에서 키운 꽃들을 곳곳에 배치했다. 물론 더 화려해보이지만 그런 꽃이 아니더라도, 자연 그대로의 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꽃가지 그늘에서 그늘로 이어진 끝없이 작은 길이여!
울긋불긋 색깔도 요란한 관광버스가 여러 대 주차장에 몸을 풀었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상춘객들이 달성공원 주위를 맴돌며 개나리와 벚꽃과 목련으로 한껏 치장한 유달산 꽃 잔치에 넋을 놓고 탄식한다.
때마침 점심시간이었다. 달성공원 주변의 식당가는 가는 곳마다 빼곡히 관광객들이 들어차서 발 디딜 틈도 없을 지경이었다. 먹고, 마시고, 취하고, 노래하고, 춤추고........지상낙원이 다른 곳이 아니었다. 여기가 바로 흥겨운 잔치판이었다.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김대중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13주년 기념 사진전. 장소 :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
오메, 멋져부러. 정말 좋은 말씀이여.
아무리 생각해봐도 인생은 아름답다.
길 위에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목포가 낳은 위대한 김대중 선생과 이휘호 여사가 활짝 웃고 있다.
북한 땅을 밟은 역사상 최초의 대통령. 야, 니기들 같은 핏줄끼리 아웅다웅 다투지 말고 빨리 통일해라. 남부끄럽지도 않냐? 그런 뜻에서 평화상을 주었을 터였다.
님은 가시고 님의 아름다운 말씀만 봄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난 유달산 중턱에 화사하게 나부끼고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