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생명말씀(2024.1.7.) 말씀 / 스가랴 1:3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되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happy new year. 갑진년 새 해가 돌아왔습니다. 아무런 문제들 없기 새 해를 바라보고 싶은데 정치권을 보면 너무 시끄럽네요. 과거도 그랬지만 요즘 정치 세태를 보면 참 가관이란 생각이 듭니다. 지난 정권에 문재인 대통령을 믿었는데 크게 실망했습니다. 결국 민주진영이 극 보수 쪽에서 져서 법조계에서 법만 공부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세워서 지금까지 바람 잘 날이 없습니다 김건희 주가조작, 명품백, 탄핵 사건으로부터 외교 문제까지 해서 숱한 문제를 일으키고 요즘은 국민당쪽마저 탈당사태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몇일 전에는 국민이 명한 쌍특검 법을 거부했네요.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특검을 안 받는 것은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본인이 안 받습니다. 그러더니 지난 주에는 급기야 이재명은 목에 칼을 맞아 병원으로 실려가는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이게 사람들이 하는 일들입니다. 사람의지하고 바라보면 실망하게 됩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사람은 절대 믿을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사야 2:22절을 보십시오. 성경은 사람에 대해서 뭐라고 합니까?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호흡이 코에 있는 인생은 수에 칠 가치가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추종자들의 행태는 사이비 신도들 같습니다. 정치나 종교가 그런 점에서는 비슷합니다. 어디든지 교주 노릇 하는 사람들이 있고, 절대 추종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역사는 반복이라고 하는데 오늘 날 이 시대를 보면 과거와 똑같습니다. 이런 어려운 시기에 우리는 오히려 사람에 대해서 절망하는 것이 낫습니다. 그리고 다시 우리 마음을 겸손히 하고 하나님께 돌이킬 기회로 삼는 것입니다. 그래도 그동안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대한민국이 국위선양을 하고, 문화강국, 군사 강국을 이루어내고, 경제 대국 선진국을 이루었습니까? 이제는 제 삼국의 사람들이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몰려오고 있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쌓아놓은 공력을 다시 후퇴시키면 되겠습니까? 안타까운 것은 다른 것은 그래도 감사한데 정치만큼은 후진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국민 수준도 너무 낮다는 것입니다. 겉 모양만 보고 검증되지 않는 대통령을 뽑지를 않나, 공정과 상식을 부르짖던 대통령은 가장 공정하지 않지 않나? 그렇게 힘들게 군부 독제에 항거해서 민주주의를 세웠는데 다시 검찰 국가 를 세우지 않는가, 범무부 장관은 엉뚱하게 앞으로 운동권하고 싸우겠다고 하지 않는가, 최순실 사건으로 그렇게 나라를 흔들어놓고 대통령이 감방을 갔는데 국민이 바라는 김건희 탄핵을 거부권을 발동하지 않는가. 국방부 장관이란 사람은 군인들 정신 교육 교제에 독도 지도를 빼고 분쟁지역이라고 하지를 않는가... 국가의 수장들이 무식하고 완전 친일 행각에 가관이 아닙니다. 문화 세계를 보면 선진국인데 정치 세계를 보면 원시시대로 돌아가는 느낌입니다. 그래도 그나마 요즘 겨우 개인적으로 희망이 되는 뉴스는 유일하게 손흥민이나 이강인, 황희찬 등 몇 몇 축구선수들의 국위선양하는 이야기들입니다. 손흥민 선수같은 경우는 기술 뿐 아니라 인품에서도 칭찬과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같은 대한민국 사람으로 기분이 좋습니다. 그런데 정치 세계에만 오면 그렇습니다. 몇 일전에는 김태구 목사와 잠시 통화를 하면서 정치 이야기를 좀 했습니다. 정말 정치가들이 몰라서 그런 걸까요? 왜 아직도 공산주의 타령 빨갱이 노름을 할까요? 알아도 선택의 기로에 서면 나뿐 줄 알면서도 상대방을 공격할 수단으로,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줄을 선다는 것입니다. 분명한 가치관도 용기가 없으면 사람들은 선과 악, 정의와 불의를 떠나 자신에게 유리한 쪽을 택한다는 것입니다. 상도란 책을 보면 한 거상이 자신을 찾아와 조언을 구하는 상옥에게 질문합니다. 저 성문을 들고 나는 사람들의 성이 몇 종류인 줄 아느냐? 두 종류입니다. 그 성이 무엇이더냐? 이자와 해자입니다. 선과 악이 이익을 주는 자와 해를 주는 자입니다. 인간 심리를 정확하게 파악한 것입니다. 아직 못 봤지만 서울의 봄에서도 보면 구테타를 막을 수 있는 길이 많이 있었지만 선택에 기로에서 결국 사람들은 정의를 택하지 못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쪽을 택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의존하던 사람들이 잘 되었습니까? 믿었던 사람이 결국 백담사로 도망가고 역사 속에 한 도둑놈 무리가 된 것입니다. 저도 과거에는 아에 정치에 무관심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런 일년의 정치 사태를 보면 격분이 될 때가 있었습니다. 아니 정치 수준이 왜 이렇게 낮지? 거짓 찌라시 선동하는 저놈들은 도대체? 하고 욕이 나오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러다가도 모든 역사 위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면 이런 부정적인 사태 속에서도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곁에 두고 있는 니체란 책을 보면 프랑스어로 르상티망이란 단어가 있습니다. 원한 증오 질투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쌓이면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부정적 감정도 때론 삶을 더욱 견고하게 지탱해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강한 부정을 통한 긍정적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대 급부으로 난장판의 싸움이 국민들에게 제대로 실물 정치 교육을 할 수 있고, 사람을 바로 보는 교육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 그리고 성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선은 내가 생각을 잘 못했구나, 나도 틀릴 수 있구나, 사람은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구나... 이렇게 사람의 본질에 대해서 배우게 되면 정치에 무관심했던 사람도 눈이 떠지고 분별력을 가지며 성숙해 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오히려 작금의 사람들에 대해서 일찍 실망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빨리 분별력과 신중한 선택을 해서 좋은 지도자들을 세울 수 있고, 우리가 꿈꾸고 바라는 나라를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 사람을 믿으시면 안 됩니다. 사람은 도움이 필요한 연약한 존재입니다. 기도가 필요한 존재입니다. 우리가 정말 믿는다면 믿을 분은 누구입니까?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입니다. 이사야 48:17절을 같이 읽어보갰습니다. 너희의 구속자시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이신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는 네게 유익하도록 가르치고 너를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라 이사야는 우리를 바르게 지도하시고 가르치고 이끌어주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 한 분 뿐이라고 합니다. 정치 교육 교회 다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가 어둡고 혼돈해도 적극 기도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면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우리 교회의 주인으로 모시면 됩니다. 이 나라의 참 지도자로 모시면 됩니다. 가정에 주로 모시면 하나님이 지도하시고 유익하게 가르쳐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게 잘 안 되는 것은 사람들에게는 눈에 보이는 사람을 의존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시대를 보면 처음에 이스라엘 가운데 왕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가 있었고, 사사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고 다스렸습니다. 그런데 사무엘 때에 사람들이 왕을 세우고 싶어했습니다(삼상 8:5). 이방 나라를 보니 왕의 제도가 너무나 멋있어 보였습니다. 왕이 있으면 자신들을 잘 지켜주고 편할 것 같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에게 그런 뜻을 비추었을 때 사무엘은 기분이 안 좋았습니다. 하나님 역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이런 의도는 나를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삼상 8:7). 그러면서도 왕을 세우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사람 왕을 세울 때 어떤 폐단이 있는지 알려주고 각오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최초로 사울이 왕이 되었습니다. 겉보기로는 다른 사람보다 어깨 하나가 더 있는 남아 대장부처럼 생겼습니다. 능히 나라를 구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왕이 되었을 때 어땠습니까? 어린 다윗 하나 감당치 못해서 시기심과 악신에 시달렸고, 무당을 찾아가 죽은 사무엘을 불러내는 영매도 했고 결국 하나님께 버림받았습니다. 결말은 dkef 요나단가 함께 전쟁에서 칼에 엎드려 죽었습니다. 그리고 다윗과 솔로몬이 왕이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그래도 좋은 왕 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대 왕정시대를 보면 온전히 좋은 왕들이 없고, 거의 모든 왕들이 산당을 세워절을 하든지 우상 숭배를 하였습니다. 므낫세 같은 경우는 자기 아들을 우상의 제물로 드리기까지 하였습니다. 왕이 세워졌을 때 포악한 왕들에 의해서 많은 백성들이 시달렸습니까? 그들의 죄악으로 결국 나라는 망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멸망 당하고, 유다는 바벨로 포로로 끌려가는 비운을 맞았습니다. 좋은 왕을 뽑아 세우면 왕이 나라를 지키고 자신들을 보호해줄 것 같았지만 오히려 멸망의 빌미를 제공하여 주었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사람을 의지한 결과였습니다. 오늘 말씀의 요지가 무엇입니까? 호흡이 코에 있는 인간을 의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기대하지 말고 더욱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과거 열 왕이 다스리던 시대에도 왕이 겸손히 하나님을 찾았을 때는 나라가 태평했습니다. 유다왕 웃시아의 예가 그러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가 사는 날에 하나님을 찾았고 그가 여호와를 찾을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셨더라고 했습니다(역대하 26:5) 그러나 왕과 백성이 하나님을 떠날 때 나라는 풍전등화 같았습니다. 우리도 2024년 새 희망을 보기 원한다면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온 백성이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사람들 대통령 의지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이 나라와 민족을 다스려주시도록 기도해야합니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가 된다면 그것이야 말로 전화위복이 되는 것입니다. 욥기5:8을 보면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의 손으로 고치시는 분이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스가랴 1: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3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되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분명 우리가 돌아오면 하나님도 우리에게도 돌아오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주님이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게 답입니다. 나라 가정, 남편, 아내 자녀 교회 일터, 나라의 문제들 내가 하나님께 돌아오면 하나님이 돌아오시고 하나님이 하십니다. 하나님이 하시면 다 잘 됩니다. 이야기 하나 하고 마치겠습니다. 20세기 독일을 대표하는 신학자 가운데 헬무트 틸리케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치 치하에서 히틀러의 나치 정부를 비판하다가 교수직과 설교권을 박탈당했습니다. 세계 2차 대전이 막바지에 이르렀던 1944년부터 그는 슈투트가르트에 있는 교회들에게 '주님의 기도'에 대해서 설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듬해인 1945년 초 헬무트 틸리케가 주님의 기도에 대한 설교를 끝마쳤을 때에는 슈투트가르트는 연합군의 공습으로 폐허가 되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그의 설교 원고가 스위스로 밀반출 되어서 그곳에서 '세계를 부둥켜안은 기도'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그 책이 유럽의 각국 언어로 번역되어서 원치 않는 가운데에 세계 2차 대전에 참전하게 된 병사들이나 포로들 그리고 전쟁의 피해자들인 유럽인들의 영혼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 책을 통해서 믿음을 되찾았고 하나님에 대한 소망과 위로를 다시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히틀러 나치 정권의 공포 정치.. 시도 때도 없이 계속되는 연합군의 공습.. 하루 아침에 살던 집과 일터가 잿더미로 변하고 사랑하는 가족들이 눈 앞에서 죽어갔는데 어떻게 그런 상황에서 위로와 소망을 얻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 때 헬무트 틸리케는... 그 전쟁의 절망 속에서도 단지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변함없는 믿음과 소망.. 감사와 찬송을 설교했다는 것입니다. 문제보다 문제 넘어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헬무트 틸리케는 '주님의 기도' 이 마지막 부분에 관련하여 설교하면서도 오히려 어려울수록 하나님을 찬송할 것을 거듭 거듭하여 되풀이 강조했습니다. '하나님을 찬송한다는 것은 만물을 그것이 도달할 궁극의 목표로부터 내다보는 것을 의미 합니다. '만물이 도달할 궁극적인 목표는 바로 하나님 이십니다. 모든 일의 결과 되시는 하나님.. 모든 인생의 종착점 되시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인간의 삶을 내려다보면 모든 것은 감사의 조건이 되고, 우리는 어려운 현실에서도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습니다. 그 목사님은 당면한 현실의 문제 앞에서 워칭을 한 것입니다. 시공을 넘어서 궁극적으로 도달할 하나님께로 가서 하나님의 관점에서 현실을 본 것입니다. 그렇게 워칭을 하하자 현실의 어려운 문제들이 다 감사 제목이 된 것입니다. 내가 비록 세상에서 약자의 위치 패배자의 위치에 있을지라도 사람에게 실망했을지라도 세상을 이기신 궁극의 주님 바라보니 감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비록 세상에서 병들고 아파 고통 중에 있을지라도 다시는 눈물도 없고 아픈 것도 없는 하늘나라를 주신 하나님을 생각하며 그 관점에서 바라보니 우리는 이미 주님과 함께 하면서 오늘의 현실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회복되어 서게 될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면 우리는 얼마든지 어려운 현실에서 감사 찬송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진짜 긍정적인 믿음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신자들은 이미 승리한 자들이며 이긴 싸움을 싸우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궁극적 믿음이 없으면 ...이 세상은 슬픔과 고통의 연속이며, 낙심과 절망과 불신의 처소밖에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으면 장차 더 나은 나라 새 일을 이루실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고, 찬양하고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틸리케가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그 믿음이 있기에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큰 위로와 소망을 가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그런 믿음으로 오늘 이 나라 세태를 바라보면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이 나라 이 백성 지도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야겠습니다. 그러면 2024년 정말 어느 때보다 희망의 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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