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새벽 81세를 일기로 세상을 뜬 신성일에 대한 추모열기가 뜨겁다. 6일 발인하는 날까지도 신문. 방송 등 모든 언론매체에서 신성일의 별세와 관련한 뉴스들을 쏟아내고 있다. 응당 그럴 대접을 받을 만한 우리나라 영화계의 큰 별이다. 한 시대 국민들을 웃기고 울리면서 국민의 정서를 영화로 대변한 '스타'였기에 그 추모의 염은 가히 국민적인 것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론들의 오비추어리(obituary, 부고기사)는 당연히 고인에 대한 추모의 염이 담겨진 찬양일색이다. 부고기사는 고인이 된 자의 죽음에 관한 소식과 고인의 행적을 더듬어가는 기사다. 딱히 구분은 되지 않지만, 고인과 관련된 특집기사도 오비추어리로 봐도 무방하다. 각 언론매체들은 신성일 별세와 관련한 헤드라인으로 "영화계 큰 별 지다" 등 동원할 수 있는 최대의 표현으로 고인을 애도하고 있다. 그 표현들을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신성일, 그 이름은 곧 청춘이었다"는 표현도 있다. 80을 넘긴 고인이지만, 젊었을 적의 강열한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헤드라인이다. 고인이 생전에 쓴 자서전 제목 '청춘은 맨발이다'를 헤드라인으로 건 매체도 있다. 언론매체들 뿐만 아니다. 고인과 알고지내던 각계각층 인사들의 고인에 대한 평가도 추모의 염이 가득찬 찬양일색이다. 고인과 한 때 정치적 인연을 맺었던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표의 말이 눈에 띈다. "천의무봉의 꾸밈없고 거짓없는 사람"으로 추모하고 있다. 남 추켜세우는 말에 좀 인색했던 그인지라, 고인에 대한 그런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故 신성일에 대한 오비추어리가 이렇듯 찬양일색이니까, 그가 생전에 정말 훌륭하고 고결하고 위대한 영화배우라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라고 왜 흠결이 없지 않았을까. 고인은 감옥살이까지 한 사람이다. 그것도 국회의원하면서 뇌물을 받은 혐의다. 그 죄로 2년 이상을 복역했다. 고인은 또 청춘영화 스타답게 여성 편력이 남달랐다. 몇 년 전에는 70을 넘긴 나이에 자신의 외도를 담은 자서전을 기자회견까지 하며 공개해 세상의 물의를 샀다. 비난성의 부정적인 평가가 훨씬 많았다. 그럼에도 오비추어리는 일반적으로 고인의 행적에 좀 관대한 측면이 있다. 세상을 뜬 마당에 굳이 고인의 잘못된 것을 들추어내기 보다는, 착하고 아름다운 일을 한 고인의 생전의 행적으로 고인을 추모하는 부고 글이 일반적인 오비추어리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부정적인 측면을 전혀 다루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글의 흐름 속에 느끼고 짐작케하는 행간으로 처리해 나가기도 한다. 신성일의 별세, 그리고 오비추어리와 관련해 한 가지 강하게 느껴지는 게 있다. 그것은 오비추어리에 녹아진,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고인의 부정적인 측면이 부인 엄앵란 씨에게 수렴되면서 엄 씨의 위상을 상대적으로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외도행각 만큼 반려에게 상처를 주는 짓이 있을까. 하지만 엄 씨는 그것을 50년 이상을 감당해냈다. 어디 그 뿐인가. 고인은 정치생활도 했다. 어려운 정치생활이었다. 그것은 곧 돈과 직결된다. 그걸 곁에서 묵묵히 뒷바라지한 게 또한 엄 씨다. 가정을 등한시한 것은 그나마 축에도 끼지 못할 것이다. 그런 엄앵란 씨에게 고인은 유언으로 세 마디를 남겼다. "수고했다. 고맙다. 미안하다." 엄 씨는 떠나 보내는 고인에게 이런 뜻의 바람을 전했다. "저 세상에 가거든 좋은 여자, 순두부처럼 순한 여자 만나 구름타고 하늘타고 자유롭게 놀러 다니시게. 거기는 차비도 안 들테니..." 이 말로 엄 씨는 고인의 생전의 잘못을 껴 앉고 있는 것이었다. 신성일의 오비튜어리보다 백배 천배 값진 것이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