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낙엽이 떨어질 때를 아는 사람을 사랑하라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낙엽이 왜 낮은 데로 떨어지는지를 아는 사람을 사랑하라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한 잎 낙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라
시월의 붉은 달이 지고
창밖에 따스한 불빛이 그리운 날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한 잎 낙엽으로 떨어져 썩을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라
한 잎 낙엽으로 썩어
다시 봄을 기다리는 사람을 사랑하라...............................정호승의 詩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전문

산행 들머리
최근의 정기산행 역사상 가장 적은 18명의 회원이 참가하여 승용차 넉대에 나눠 탔다
봉동의 대영아파트 주차장에서 내려 산행 채비를 한 후...바로 산행로로 접어들었다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불어와 자켓을 껴입었지만 금방 벗어야 했다

성작산(오봉산) 제2봉
성작산 길은 완주군민체육센터가 있는 순지리(蓴池) 마을에서도 올라갈 수 있다
예전 마을 근처에 큰 못이 있었는데 그 못의 이름이 순지였다고 한다
순(蓴)은 부들의 꽃을 의미하고 지(池)는 못을 의미하니, 순지마을은 부들이 가득한 연못의 마을인 셈이다
성작산은 높이가 358미터로 순지, 용복, 가목마을을 빙 둘러싼 형국을 지니고 있다.
제2봉에는 예전에 송스테파노가 설치하였다는 운동기구들이 있고, 봉동읍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성작산 제3봉
제3봉의 정상부터는 평상이 설치되어 있는데 소나무 사이에 운치있게 걸쳐 있었다.
정상을 알리는 작은 표지석과 함께 소나무 주위엔 무언가 기원을 하며 쌓아올린 돌탑도 보였다.
오랜만에 큰 아들과 함께 나온 푸른솔과 물안개님 가족이 무척 보기좋았다

철모르는 철쭉
성작산 3봉 앞에는 철모르는 철쪽이 몇 송이 피어서 하늘거리고 있었다
지난 봄에 피우지 못한 꽃이 이제야 개화한 것인지...
계절을 착각한 꽃송이가 미리 개화한 것인지...철모르는 꽃송이는 어쩐지 을씨년스럽다

호젓한 숲길
등산로는 잘 가꾸어진 소나무 숲을 따라 부드럽게 이어졌다
성작산은 봉동의 모악산이라 부를 만큼 이 고장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산이다
특히 오늘은 오직 우리들만을 위한 산인듯 인적이 없어서 호젓하고 정겨워서 더욱 좋았다

가슴의 피를 조금씩 식게 하고
차가운 손으로 제 가슴을 문질러
온갖 열망과 푸른 고집들 가라앉히며
단 한순간 타오르다 사라지는 이여
스스로 떠난다는 것이
저리도 눈부시고 환한 일이라고
땅에 뒹굴면서도 말하는 이여
한번은 제 슬픔의 무게에 물들고
붉은 석양에 다시 물들며
저물어가는 그대, 그러나 나는
저물고 싶지를 않습니다 .......................................나희덕의 詩 <살아 있어야 할 이유> 부분

성작산 제5봉
5봉 정상에는 마치 사람들의 기원과 바램을 매듭짓기라도 하듯 돌탑이 다섯 개나 있었다
산봉우리가 5봉이라서 오봉산이라 많이 부르지만, 동네 사람들은 성작산이라 부르고 있다
성작산(成爵山)은 성스럽게 조성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원래 이름을 찾아주는게 좋을듯 하다

하이트 맥주 공장
우리는 성작산을 벗어날 때까지 하이트 맥주 공장 굴뚝의 하얀 수증기를 계속 바라보며 걸었다
하이트맥주회사의 전신은 조선맥주 회사인데, 예전에는 상표명으로 크라운맥주를 쓰고 있었다.
크라운맥주는 씁쓸한 맛으로 인해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오비맥주에 밀려 맥주시장에서 맥을 못 추고 있었다.
크라운맥주가 단숨에 오비맥주를 밀어내고 맥주시장의 맹주로 등극하게 만든 게 하이트맥주였다. 회사명도 아예 하이트로 바꿨다.
지하암반수를 뽑아 만든 신선한 맥주라는 이미지를 내세우며 출시된 하이트맥주는 전국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사거리 갈림길
임도 공사장을 건너서 가목마을, 인풍마을, 서방산, 오봉산으로 갈리는 사거리를 만났다
여기서부터 서방산이 3.6km라는 표지판을 보니 갈길이 아득해짐을 느꼈다
갑자기 시장기가 느껴져서 배낭을 내려놓고 앉아서 과일을 한 조각과 물 한모금을 마시고 출발하였다

안장군의 기개
서방산 가는 길로 정신없이 가고 있는데 다른 쪽에서 등반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등산로를 벗어나 전망이 기막히게 좋은 바위 위에서 먼저 간 일행과 합류하였다
소나무 위에 걸터앉은 안장군의 기개가 늠름하다...항상 곧추선 안장군의 모습은 신산회의 상징이다

첫번째 깃발을 펼치다
골골이 흘러내리는 단풍이 한눈에 보이는 절벽 위에서 산산회 깃발을 펼쳐 들었다
우리들의 시선이 끝나는 곳에 지난 일요산행 때 들렸다는 보리암이 보였다
우리 회원들에게 커피를 타주었다는 맘씨 고운 처사는 지금 어느 누구에게 미소를 보내고 있을까?

석양을 받으며
막바지 단풍이 남김없이 타오르더니
마침내 그 빛깔들을
모두 거두었다
사랑도 그리움도
이젠 쉬어야 할 시간
안으로 더 깊이 채찍질하며
침묵을 시작하는 나무들
산등성이를
오르는 바람도 말이 없다......................원인숙의 詩 <11월의 불곡산> 전문

깃대봉(358m)
누군가가 소나무 가지에 깃대봉(358m)란 표지판을 만들어 매달아 놓았다
산에 다니다 보면 누군가의 선행으로 인해 이렇듯이 기분이 흐뭇해지는 일이 자주 생긴다
반면에 표지판을 돌려 놓거나, 글씨를 지우는 행위는 야만적인 짓이므로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새들아, 미안하다
우리가 걸어가는 길 옆에서 비어있는 새의 둥지를 발견하였다
새끼를 키워서 데리고 나갔는지, 인간의 손을 타서 폐허가 되어버렸는지 궁금하였다
새들이 마음 놓고 살아갈 공간마저도 빼앗아버리는 우리들의 욕심이 부끄럽고...그리고 미안하였다

점심식사를 하다
비록 낮은 봉우리지만 여러 개를 넘다보니 힘이 빠지고 시장기가 밀려왔다
12시 반 무렵, 서방산에 도착하지마자 도시락을 꺼내들고 점심 식사를 하였다
여전히 변함없는 마당쇠의 막걸리와 컵라면, 향이 짙은 커피가 있어서 점심식사가 더욱 풍요로웠다

서방산(617m)
점심 식를 마친 후, 서방산 표지판 앞에서 두번째 신산회 깃발을 펼쳐 들었다
서방산은 완주군 용진면 간중리, 소양면 대흥리에 경계하고 있으며, 종남산에서 이어지는 연봉중 제일 높은 주봉이다.
평야와 산지의 경계에 있어 넓은 김제 만경들을 넘어 서해 바다를 볼 수 있고, 북에서 동을 거쳐 남으로도 수많은 산들을 조망할 수 있다.
서방산은 부처가 있는 서방정토라는 의미인데 한국지명총람에는 서대산(西大山)으로 기록돼 있다

종남산(終南山) 608m
점심 식사의 포만감과 함께 마신 먹걸리의 노곤함을 극복하고 종남산까지 오는데 많이 힘들었다
송광사를 세운 도의선사가 절터를 구하기 위하여 남으로 내려오다가 이곳에서 영천수가 솟는 것을 발견하였다
영천수가 솟아 오른 것을 발견하고는 큰 절을 세울 곳이라 생각하고 더 이상 남으로 내려가는 길을 포기했다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아무도 없어서는 안 된다
서 있는 것들은
저 바다 빈 나무로 서 있고
나도 그들과 함께 서서
오래오래 묵은 소리로
우수수 우수수 몰려가는
이 세상의 여호와여 낙엽이여
내가 서서 빈 나무 되어도
나무는 나무끼리
더 이상 가깝지 않게
나무 사이의 어린 나무에게
흐른 하늘을 떼어 준다
바람 속에서 바람도 몸임을 알아라.........................고은의 詩 <11월> 부분

드디어 하산하다
송광사로 내려가는 길은 경사가 급해서 하산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보이스카우트 야영장으로 내려섬으로써 약 7시간에 걸친 산행을 마무리하였다
보이스카우트 야영장은 현대식 건물로 신축되어 있었는데, 내가 스카우트 활동할 때의 열악한 시설이 떠올라 씁쓸하였다
리따와 회장님이 먼저 도착하여 하산주를 준비하고 있었다
상이 차려지는 동안 회장님은 기사들을 데리고 차를 가지러 가고, 나머지는 송광사 구경에 나섰다

엄마와 아들
엄마와 아들이 정겹게 손잡고 거니는 모습은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다
엄마의 키는 아들의 어깨에 미치지 못하지만 세상의 어떤 엄마보다 크고 믿음직스럽다
아들이 먼훗날 엄마와 함께 걷던 이 길과 그날 오후의 화사한 햇빛을 기억해낼 수 있을까?

송광사
송광사는 신라 경문왕 때 도의선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며, 임진왜란 때 폐찰 되었다가 광해군(1622년) 때 재건되었다.
송광사는 국가 위난이나 기도 감응시에는 대웅전, 나한전, 지장전의 불상들이 땀을 흘리고 있어 세인의 관심을 끈다.
특히 대웅전 불상은 KAL기 폭파사건, 12·12사건, 군산 훼리호 침몰, 강릉잠수함 출몰 때에 엄청난 양의 땀과 눈물을 흘려렸다고 한다
한산한 경내에는 단풍나무와 은행나무가 최고의 빛깔을 내뿜고 있어서 발걸음이 헛되지 않았다

가을과 안녕을 고하다
낙엽지는 나무 아래에서 단풍잎을 모으고 있으려니 물안개님이 아는 체를 하고 지나갔다
빨간 단풍잎과 노란 단풍잎으로 '안녕'이라는 글자를 만들었다
하늘이 같고, 땅이 같고, 시절이 같아도 영영 다시 만날 수 없는 이 가을과 작별을 고하는 것이다

환상적인 하산주를 마시다
리따가 준비해온 하산주는 여태까지 맛보지 못한 환상적인 메뉴였다
시래기와 새우 조림, 콩나물무침, 고사리나물, 배추김치, 무김치, 돼지주물럭까지 한 접시 받으니 왕이 된 느낌이었다
거기에 번암막걸리를 몇 사발 마셨더니 포만감과 행복이 극치에 달해서 군다 없는 빈방이 쓸쓸하지 않았다
첫댓글 내년에는 대부산에서 위봉사까지 합시다
막걸리는 번암 것이 좋지요?? ㅎㅎ
산행후기를 읽어야 정말 산에 다녀온듯한 느낌이 듭니다.
이렇게 올릴려면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드려야 될텐데
부회장님의 열정이 부러울 따름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아~~안녕!! ㅎㅎ
모든게 안녕입니다..
지나가는 시간도. 떠나가는 아들도..
스치듯 지나가는 인파속의 사람도..
모두가 안녕입니다..
만남과 이별의 인사도 안녕입니다..
이제는 서서히 가을도 마음속에서 떠나 보낼때가 된 것 같네요..
한줄 한줄~ 가슴을 후비는 싯귀와 함께
그날의 시간들을 음미하고 갑니다.
먼훗날 엄마와 함께 걷던 이 길과 그날 오후의 화사한 햇빛을 기억해낼 수 있을까?
마음 속 깊이 와닿네요.
아들이
아들은 기억할 수 없을지 몰라도 엄마는 뚜렷이 기억할거라 믿습니다
이것이 세상 모든 엄마들의 뜨거운 사랑 아닐까요?
혜자 언니~ 여친의 손을 잡고 있는 아들을 불러내어 눈길을 함께 걸어보지 않으실래요?
같이 사는 우리 아들 얼굴보기도 힘드네요
서로 노는 시간이 엇갈려서......
참 귀한 장면을 찰칵하신 찍사님!!!
항상 감탄입니다. 예리한 그 감성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