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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2. 25
연천530GP 사건 유가족 대책위원회
연천 최전방 530GP 사건
1. 군 수사발표
'05.6.19.02:36분경 선임병들로부터 잦은질책 및 욕설,인격모욕을 당한 김동민일병이 앙심을 품고 취침중인 내무실에 KG14(K413)세열수류탄 1발,실탄 44발을 연발사격하여 8명사망,4명 중경상을 입힌 사건.
(일주일전부터 소대원몰살 후 이남 도주 계획으로 발표)
□ 최초 적 도발사건으로 오인하여 후송시간 3시간 30분 소요 됨.
□ 변경된 내용: 범행시간 7-8분에서 2-3분으로,
우발적 범행에서 계획적 범행으로 ,
언어폭력에서 질책으로
2. '05.6.25 희생자 영결식(국군수도병원,28사단장,윤광웅장관 참석)
3. 김동민 일병 군사재판 내용
⃞ '05.11.23 3군 사령부 보통군사법원 "사형선고"
⃞ '06.4.21 국방부 고등군사법원 "항소기각" 선고
⃞ '06.4.25 대법원 상고
○ "상관살해죄 사형"에 대한 헌법소원제기
○ 위헌판결에 따른 동사건 대법원 파기 환송
⃞ '08.5.7. 국방부 고등군사법원 환송심 "사형 선고"
대법원 상고포기로 형 확정
4. 군사재판 위법성 : 2008.1.29일자 진정서(사건당일 530GP 야간 차단작전실시, 은폐/조작단서)에 대한 검증 미실시,
경량 세열수류탄 탄체에 대한 검증 미실시
생존 소대원에 대한 증인 채택 미실시
5. 최전방 530GP 사건 실제내용
본 사건은 위조지폐와 같은 것이기에 총기학, 법의학적 기본 지식이 있는 사람은 논리적,과학적으로 규명 가능합니다.
□ 실제 야간 차단작전 중 적 도발 사건
2005.6.18일 22:00 - 6.19일 00:20분경 상병급 14명이 야간 차단작전 (노루골방향 우차단) 임무 수행 중 복귀하다 북한군의 미상화기 9발 기습 공격(폭음)으로 발생, 530GP 옥상도 함께 피격 됨.
('05.6.17일 5사단 27연대 북한군 사병 1명 검거,진도개 둘 발령)
□ 당시 미상화기 9발 피격으로 적 도발 매트릭스/.DMZ출입규정 준 수, 약 5시간 후송지연되어 살릴 수 있는 부상자가 추가 사망.
⃞ 야간 차단작전 참여자 명단 (총 14명,밑줄 사망자)
①차단1조 (분대장, 자동소총수,소총수) : 김종명. 차유철. 김인창
②지휘조 (부GP장. 통신병. 의무병) : 최충걸, 김유학(부상) 정은총 현규대
③지원조(K-3사수, K-3부사수, K-201) : 조정웅 신태준(부상) 박준영(부상)
④차단 2조(부분대장,소총수 소총수) : 전영철 이태련, 임창용 유민호(부상)
※ 530GP 옥상도 1발 피격 되어 박의원, 이건욱 2명 사망.
□ 장소별 사상자 명단 (총 8명사망 4명부상)
1. 야간차단작전 지역(우차단,노루골) : 6명사망, 4명 부상
-.사망자 : 김종명중위,김인창상병,차유철상병,
조정웅상병,전영철상병,이태련상병
-.부상자 : 신태준상병,김유학일병,박준영일병,유민호일병
2. 530GP 옥상 : 2명 사망
-.사망자 : 박의원상병,이건욱상병
6. 사건 후 530 GP 인원 현황
구 분 계 전역 제적 정상근무 구속 사망
인 원 36 24 1 2 1 8
내 용 만기 9의병 15 최충걸하사징역 1년집유 2년 이인성중위김희준소위 김동민일병 김종명중위외 7
7. 위법한 특혜성 국가유공자 지정
군 수사발표 상 질책한 사병 7명과 경계근무자 3명은 불 입건되었고 국가유공자로 지정될 수 없음에도 국가유공자 6급, 7급으로 지정 (동 법률 4조 6항(제외사유)을 위반)
8. 군 수사발표의 은폐/조작 내용
□ 최고 경계근무/사건당일 28사단 주간/야간차단작전 실시사실
⃞ 사건 발생시간 조작
○ 군 수사발표 : '05.6.19.02:36 분
○ 실제 시간 : '05.6.19. 00:20분 전후 (약 2시간 시차 발생)
⃞ 무기 종류 및 수량 조작
○ 군 수사발표 : 수류탄 1발,실탄 44발
○ 실제 내용 : 소형열화탄, 미상화기 9발 (폭음)
⃞ 시신 이동배치하여 현장조작
○ 부GP장 최충걸하사가 고인 전투복 벗기고 시신 배치.
○ 총탄흔과 수류탄 폭발흔 조작
○ 현장촬영 VTR 복사본에 530GP 옥상 촬영내용이 없는 점.
9. 차단작전과 포격공격을 입증하는 단서
○ 다수의 폭발음, "꽝", "꽝", "꽝" 다수 폭음기록과 열화탄상처
○ 부상자 후송시 까지도 소대원일부는 GP에 복귀하지 못했음
○ 총기부족, 전투복 소각, 사건 당일 28사단 GP 차단작전 실시
○ 부상자의 파편형상이 사다리꼴 형상으로 세열수류탄파편이 아님
국방부 은폐 조작 총괄 내용
국방부 항 목 실제 내용
언급 없음 경계근무 사고발생 한달전부터 최고조의 경계근무 실시
---- 정치상황 친북정책 정동영 통일부장관 북한방문
---- 일주일 전 '05.6.13일부터 매일 대대 수색/매복작전 실시
---- 3일 전 MDL 전선촬영(정보요원 530GP 파견)530GP 주간차단작전 실시
당시 언론매체 보도(3일전 6/14일 대마리 침투) 1일 전 6/17일 인접5사단 북한사병 1명검거진도개 둘 발령
김동민일병 범행 사고 당일수사발표 북한군 기습도발 친북세력에 의해 정치적 조작
수류탄 1발 실탄44발야간 차단작전 사실 부인 530GP사건 6/18일 23:00 - 6/19일 01:00북한군 도발, 미상화기 9발 최초 RPG7 9발 피격(다수의 폭발음 청취)내무반으로 시신이동배치 전투복,총기 폐기, 현장증거조작, 일지조작 강압수사
적 도발 오인,3시간 30분 소요 후송지연 사고발생 후 4-5시간 후송지연, 추가사망자 발생
질책사병 7명, 초소병 3명 국가유공자지정 국가유공자 법 4조 6항 위반(은폐를 위한 특헤 부여)
[첨부1]
530/181GP 세열수류탄 파편 비교
동 사건 모두 군 수사발표는 경량형 세열수류탄 KG14, (주)한화 K413기종이 내무반에서 폭발한 것으로 발표하였으나 파편 형상이 명백하게 다르다.
○ 수류탄 제원 : KG14 경량형 세열수류탄 (주) 한화 K413
※ 제278회 국회(정기회) '08.11.26 국방위원회의록 3쪽
181GP사건보고 육군참모차장 한민구 : 1000여개의 구슬로 형성
⃞ 181 GP 수류탄 사고 세열파편 형상 : 쇠구슬
⃞ 530GP 파편 실물 확대사진 : 사다리꼴 형상 (미상화기)
[첨부2]
수류탄 폭발에 대한 의문 제기
근거: 제254회 국회(임시회 '05.6.20)
국방위원회회의록(연천530GP사건)
11 -12쪽 :고조흥의원 - 내무반 수류탄 폭발흔에 대한 강한 의혹제기 수류탄이 터졌다고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닌것같다. 내무실 형태가 온전하다
15-17쪽 : 송영선의원 - 김일병 진술에 의문점 제기. 대응 및 긴급후송 문제 제기
18-19쪽 : 박 진의원 - 수류탄 파편 폭발범위가 그렇게 제한되어 있는 것인가 의문 제기
22-20쪽 :박세환의원 - 소대원 대응, 김동민 범행 동선, 범행동기와 경위, 수류탄 폭발력에 대한 많은 의문 제기
'07년 국정감사 자료요청 거부
'07년 국정검사자료 요청한 맹형규,공성진,송영선의원의 자료를 당시 국방부 장관 김장수 거부 함.
사유 :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
※국정감사요구자료는 재판과 무관한 자료로서 수사기록에 포함되지 않은 관련부대 일지자료 등 을 요청한 것임.
[첨부3]
사건 당일 야간 차단작전 참가자 명단
※ 숙련된 상병급만 차출되었고 병장과 신참 일병이 제외 됨.
[첨부4]
당일 야간차단작전 실시 3군 사령부 답변서
중요 : 평소 531GP와 530GP는 81연대 소속으로 평소 동시 작전수행
사건 당일 28사단 520,531GP 주간, 야간차단작전 2회 실시
[첨부5]
531GP 부대일지 조작
[첨부6]
미상화기 9발 피격
□ 북한군 도발로서 내무반사고가 아닌 단서
1. 폭음 청취 무전보고
당시 GOP 순찰중이던 3중대장 노진철 대위 : 폭음 청취. 무전으로 대대보고
☐ 사건 당시 고속지령대 전파 내용
연천 530GP 사건 당시 적도발,국지도발로 전파되었고 전방 11개 사단 고속지령대 전파 내용은 최초 북한군의 RPG-7 9발 공격에 의한 아군 4명 사망으로 되었다가 그 후 미상화기 9발로 변화되었다.
야간 차단작전 중 적의 포격 공격에 의한 사고"를 입증하는 단서는 "폭음 청취", "다수의 폭발음" 이었다는 부대일지 기록에서 확인되었다.
1. 군 수사기록 내용
철책 순찰 중 인 GOP 3중대장 폭음청취 무전으로 보고
대대 상황병 중대장으로부터 폭음관련 무전을 받고 상황일지에 기록함 --
( 군 수사기관 원본 압수 상황일지 미공개)
☐ GOP 중대장 폭음청취
대대상황병 폭음관련 무전내용 일지 기록
2. 미상화기 9발 피격
3. 다수의 폭발음 청취
4. 530GP TOD 상황병 진술서(미상화기, 포격 공격 입증단서)
꽝...또다시 "폭음"이 들리고.... 다시 "폭음"이 들렸고 정전이 되고
(정전된 후 에는 어떠한 소리도 없었고 상황 종료)
※ 그러나 군 수사발표는 정전이후에도 취사장 총격,,, 밖으로 나가 탄창교체...다시 내무실 25발 총격으로 군 수사발표 됨.
※ 후방초소 이병삼은 김일병 행적을 관측할 수 있는 위치임에도 보지 못했으며 탄창 교체시 땅에 떨어지는 금속성 소리조차 못 들었다.
5. 당시 평문통화 금지로 발송된 군 내부 공문
탄약 10여발... 이란 내용은 미상화기 9발을 의미하는 내용으로
특히 중요한 사실은 수류탄 폭발내용이 없다.
○ 군 수사발표는 최초 미상화기 9발 -- 탄약 10여발 -- 수류탄 1발
실탄 25발 -- 수류탄 1발 실탄 44발 로 무기수 4차례 변화.
○ 체력단련실 총탄흔까지 최초 4개에서 6개로 증가
○ 2회연발 총격했다는 취사장에는 총탄흔조차 전혀 없다.
○ 상황실,취사장,체력단련실에는 총탄흔을 입증할 총알부스러기가 1개도 없었다
○ 군 내부공문 : 평문 통화금지
6. 생존소대원 24명 중 17명 면담.
당시 수사기록 등 증거물을 보여주며 설득에 설득을 거듭한 결과 양심적 진술을 얻을 수 있었다.
진술확보 내용 : 야간 차단작전 중 사고, 후송지연으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
[첨부7]
고인들의 상처에 대한 단서
고인과 부상자들의 상처는 공통점과 특징이 있으며 야간 차단작전을 나갈 때 착용하는 방탄조끼에 의해 가슴부위가 보호된 것으로 추정 됨.
첫째 : 가슴에 상처가 없읍니다.
사망자 8명과 부상자 4명에게는 가슴에 상처가 없다.
둘째 : 머리부분과 목, 하체의 다리부분 상처가 대부분이다.
· 세째 : 상처의 크기가 유사하고 맹관상처[의학] 총알이나 파편이 몸을 관통한 것이 아니라 몸속에 박히어 있어 생긴 상처)가 많다.
○ 상처크기와 부위 : 20-30mm 원형상처, 허벅지 맹관
: 부상자 신태준, 고 조정웅, 고 이태련
○ 찟긴 예리한 상처
: 부상자 박준영, 고 김인창, 고 이건욱
○ 열상 환자
: 부상자 신태준 , 부상자 유민호 , 고 박의원
○ 목상처 화약감입
: 고 김종명
○ 시신 검안서의 파편상 내용
: 고 김인창, 고 이건욱, 고 전영철
넷째 : 부상자 4명에게는 총상이 없다.
일부 고인들에게 2차적 총격테러를 자행한 단서로 당시 사건 은 미상 화기 9발 포격 공격에 의해 발생됨.
1. 고 김종명의 목부분 상처는 총알에 의해 불가하고 더 큰 무기에 의한 상처라는 일본 법의학자 소견.
2. 고 박의원의 상처는 세열수류탄으로 불가한 검게 그을린 상처
사건 처리를 경험한 기무대, 사단참모 등 에 의해 소형 열화탄의 상처로 확인 됨. 내무반에서 거꾸로 취침할 수 없으며 관물대에 혈점이나 파손이 전혀 없는 점은 시신이동배치 단서 임.
3. 고 이건욱의 상처는 파편상으로 기록되었으나 수류탄에 의한 파편상으로 볼 수 없다고 총상으로 둔갑됨.
□ 중요점 : 최초 파편상으로 검안되었데 수류탄 파편에 의한 상처가 아니라고 총상으로 둔갑 됨. 따라서 미상화기 파편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중요한 단서(사망 후 후송되어 상처를 꿰메어 상처은폐)
4. 고 김인창은 상처는 옷이 찟기고 목에 파편상이 있으며 시신아래 형광등 깨진 조각이 흩어지지 않은 점은 사건 당시 빈자리를 입증하는 것으로 시신이동배치를 입증하는 단서 임.
○ 총상으로는 옷이 찟긴 상처가 발생될 수 없는 점.
5. 고 조정웅 상병은 우측턱 관통 총상 1개소있으나 목부분이나 상체에도 혈흔자국이 전혀 없다. 미상화기 9발 포격에 의한 사건이기에 조작을 위해 2차 총격테러를 자행한 만행을 입증하는 단서.
○ 우측 입술아래 사입 - 후경부 사출 : 파편으로 관통이 불가한 상처로서 2차 총격테러를 자행한 증거, 후경부 사출된 총알에 의한 왼쪽어깨 상처도 없으며 2회 연발 총격한 취사장에는 총탄흔조차 없었다.
6. 고 이태련은 20-30mm 허벅지 맹관상처 하나뿐으로 사망 함.
○특히 생존한 신태준상병과 동일한 부위와 같은 크기의 상처인 점과 고 조정웅 상병도 동일한 부위 상처가 있음.(신태준 상처는 찰과상으로 발표했지만 실제는 화상상처(열화탄) 임)
7. 고 전영철상병은 발목과 목부위에 상처로서 특히 발바닥 부위상처는 파편상을 의심하는 소견이 있어 부검요함으로 검안.
○ 목부분에 파편상이 있음.
8. 고 차유철 후두부 X-RAY는 사고 발생 1년 2개월동안 비공식 보관하였고 수사기록에도 포함시키지 않는 불법을 자행하고 검안한 유성호대위는 총알이 깨져 부서진 파편이라고 설명함.
○ 그러나 후두부 뼈에 의해 총알이 부서질 수 없으며 50-65mm 큰 맹관상처이며 특히 표피에 3개의 작은 파편이 붙어있는 것은 총알부스러기가 아닌 것을 입증하는 단서 임.
※ 국군 수도병원 전산망 입력일자 : 2006.8.16
사건 발생 후 1년 2개월 경과
○ 당시 검안한 유성호대위는 후두부와 복부는 총알이 뼈에 부딪혀 생긴 파편으로 볼 수 있다고 소견이지만 아래사진의 척추뼈 등 손상 부위가 없으며 수많은 불규칙한 파편 형상은 미상화기 파편상을 입증하는 단서.
소결 : 모두 미상화기 파편상임에도 총과 수류탄 상처로 위장하고 조작을 위해 일부 소대원에 2차 총격테러를 자행하였음.
○고인 8명은 차단작전 중 방탄복을 착용하여 대부분 머리와 다리부분의 상처이며 8명 모두 가슴에 상처가 없다
○고인들이 취침 중 이었다면 전투복이나 군화 및 총기가 손상이 될 수 없으며 특히 사건 후 내무반에서 구호조치를 한 사병이 없고 부상자인 박준영일병이 전영철 상병만 구급조치를 한 내용이 진술서에 기록되어 있는 점은 내무실 사고가 아니었다는 입증단서 임.
국가안보는 좌파, 우파, 야당, 여당 등 정치적 이념보다 우선되어야 하는 중요한 것이기에 정의와 법과 원칙이 존중되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특검 등 제반 활동과 당시 군 부대 관련자료요청을 통하여 확인해 주시고 조속한 진실 규명이 될 수 있도록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참고 : 1. 카페명 : 전방부대 총기난사희생자 추모 (다음카폐)
2. 연락처 : 한국폴리텍 6대학 구미캠퍼스 부교수 조 두 하
T 054-468-5230, 011-9829-9677
2010.2.25
연천 530GP 사건 유가족 대책위원회
연천 530GP피격사건“진상규명촉구국민협의회”발족 및 기자회견>>
빨갱이정권과 국방부는 당시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여 국민정서상 남북관계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민감한 사건이기에 “적 도발 사건을 아군의 자작극 사건으로 둔갑”시키고 가짜범인 김동민일병의 위증을 내세워 각종 증거물을 은폐, 조작하여 조국수호를 위해 목숨 바친 고인들을 친북정책의 희생양으로 만든 극악무도한 천벌을 받을 “국기문란”사건입니다.
<<당시 지휘라인 및 부대간부 명단>>
대통령 : 노 무 현, 국무총리 : 이 해 찬, NSC : 이 종 석, 이 재 정
국방부장관 : 윤 광 웅, 합참의장 : 이 상 희, 육군참모총장 : 김 장 수(현 국회의원), 3군사령관 : 김 관 진 중장, 28사단장 : 김 은 상(현 포병학교장) 1대대장 : 배 상 주 중령, 81연대장 : 오 주 석 대령(현 국방부 미군기지이전사업팀장) 수색중대장 : 정판영 대위(전역)
국가보훈심사위원회 위원장 : 한 명 숙
○ 당시 정치적 상황은 정동영통일부장관이 평양에서 김정일과 면담하면서 전기 200만KW 지원을 내세워 김정일과 노무현의 정상회담을 구걸하던 정치적으로 친북정책이 진행되었고,
○ 군사적 상황은 사고 발생 3일전 2005.6.15일 부대 정보요원이 530GP에서 북한측 전선 촬영, 2005. 6.17일 06:55분 5사단 27연대 북한 사병 리동수(20세, 인민군복장, 김일성빼지착용) 1명 검거, "진돗개 둘 " 발령 경계강화, 2005 .6.18일 28사단 81연대 GP 주간, 야간 차단작전, 수색매복 실시 등 최고조의 경계근무가 실시되었습니다.(국방부와 육군은 이를 은폐)
따라서 국가안보와 직결된 사안이기에 이명박대통령은 군 최고통수권자로서의 군의 명예와 국가보위차원에서 연천530GP피격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조국에 목숨 바친 호국영령들이 편히 쉴 수 있도록 그 날의 진실을 밝혀주실 것을 강력히 촉구 드립니다.
**군 당국은 당시 북한군에 피격된 연천530GP에 대하여 은폐조작하기위한 응급적인 복구로서530GP옥상에 호화스러운 휴계실을 설치하였는데 적과 불과 200여m거리의 직사화기의 공격을 받을 수 있는 진지(GP)옥상에 휴게실을 설치 할 수 있단 말인가?
세계 어느 지역에서 적과의 대치 속에 이러한 시설이 있단 말인가?
더 더욱 가증스러운 것은 휴전선 전 전선에 유일하게도 북한에 피격을 당한 연천의530GP만이 옥상에 휴게실(은폐조작하기위하여)을 급조로 설치 적의 직사화기의 공격목표물로 만든 것이 빨갱이정권의 급조된 은폐조작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연천530GP피격사건 "진상규명촉구국민협의회“ 발족 및 기자회견>>
일시 : 2010년 6월 8일(화요일) 11시
장 소: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
***. 감사원에 “국민감사청구”를 위한 서명운동에 관심 있는 애국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당부 드립니다.(서명한 애국시민들의 ”진상규명촉구서“는 이명박대통령에게도 접수 할 예정입니다.
[진상규명촉구국민협의회 임원명단]
고문단:정기승,안응모,임광규,류지철,김현욱,구재태,박희도,민척기,박상준,김선호,지만원,채병률
공동대표의장:류기남
공동대표:송영인(HP:011-896-9211),김한응,이강욱,김춘규,최해근,권오강,이건호,박찬성,문인주,조웅기,김인규,송영식,이계성,도희윤,이순창,김규학,박두철,이흥우, 윤용,최인식,
유가족대표:김용배,김길남,이문행,이찬호,전제용,
조두하HP:011-9829-9677, 박영섭HP:011-9424-5590,
□ 추모카페명 : 전방부대총기난사희생자추모
(pys5590@hanmail.net / dhc22@hanmail.net)
2010년 5월 31일
{참여단체}
국사모(국가사랑모임,)국제외교안보포럼,대한민국재향경우회,대한상이군경회,대한민국전몰군경유족회,대한민국지키기불교도총연합,대한민국참전경찰유공자회,대한불교조계종방생법회,올바른교육을위한시민연대,대한참전단체연합회,육해공(예)영관장교연합회,대한민국ROTC구국연합,(자유지성300인회,(사)철우회,통일안보중앙협의회,대한민국어버이연합,반핵반김국민협의회,반인도범죄조사위원회,나라사랑시민연대,실향민중앙협의회,국가중흥회,시스템크럽,한국대학법인연합회,한국미래포럼,한국유격군총연합회,철도참전유공자회,전국철도노우회,6.25참전태극단동지회,자유시민연대,실향민중앙회,부정부패추방시민연합회,헌법을생각하는 변호사모임
2005년 6월 경기도 연천군 중면 최전방 GP에서 일어난 총기난사사건.
언제
2005년 6월 19일
어디서
경기도 연천군 중면 소재 최전방 GP
누가
제28보병사단 81연대 수색중대 1소대 소총수 1명(일병)
무엇
GP장 중위 1명을 포함해 총 8명을 살해하고 2명에게는 중상을 입힘
어떻게
내무실에 수류탄 1발을 던지고, K-1 소총으로 44발을 난사해
왜
내성적 성격으로 인한 복무 부적응과 일부 선임병의 욕설 및 질책 등에 대한 앙심으로
본문
2005년 6월 19일 경기도 연천군 중면에 있는 제28보병사단 81연대 수색중대 1소대 GP(guard post:전초)에서 소총수 1명(김 일병)이 GP 안에서 수류탄 1발을 던지고, 내무반 관물대에 있던 동료 상병의 K-1 소총으로 25발들이 탄창 2개를 난사한 사건이다.사건은 같은 날 2시 30분경에 일어났다. 사건 당사자인 김 일병은 같은 시간 후방초소 근무 중 다음 근무자를 깨운다는 명분으로 내무반으로 이동하였는데, 몸에는 수류탄 1발과 25발들이 탄창 2개를 지니고 있었다. 내무반에 도착하자마자 관물대에 있는 K-1 소총을 절취해 화장실로 간 다음, 소총에 탄창을 장전해 조정간을 연발로 맞추고 다시 내무반으로 갔다.2시 36분경 내무반에 수류탄을 던지고 상황실로 이동하던 중 체력단련장에서 나오는 GP장에게 소총을 난사해 사살한 데 이어, 취사장에서 상병 1명을 더 사살했다. 그 뒤 곧바로 내무반으로 들어가 우왕좌왕하는 병력들을 향해 전체 44발 가운데 남은 25발을 모두 난사하고 전방초소로 이동하였다. 전방초소에서 상병 1명에게 다시 사격하였으나, 실탄 고갈로 미수에 그친 뒤, 2시 50분경 체포되었다. 이 사건으로 GP장과 7명의 병사가 숨지고, 2명이 중상을 입었다.조사 결과, 사건 당사자인 김 일병은 평소 선임병들로부터 잦은 질책과 욕설 등 인격모욕을 당한 데 대해 앙심을 품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국회 진상조사소위원회에서도 내성적 성격과 원만하지 못한 동료관계 등 복무 부적응에 일부 선임병의 욕설과 질책이 상호작용해 일어난 사건으로 결론지었다.사후대책으로는 GP 근무 병력의 지원병 충당과 이들에 대한 특별수당 및 특별휴가 등 각종 인센티브 제공, 군 생활에 대한 적극적 유인책 개발, 사병 봉급의 대폭 인상, 사병관리 시스템 개선 등의 대안이 제시되었다. 이 사건으로 국방부장관이 사임 의사를 밝혔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군단장과 사단장 등 최고 지휘관들에게는 감봉 3개월의 경징계만 내려져 국민들의 질타가 잇따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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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 군부대 총기 난사사건은 2005년 6월 19일 새벽 경기도 연천군 중면 삼곶리 중부전선 비무장지대(DMZ) 내 국군 28보병사단 소속 GP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이다. 8명이 사망하고, 2명이 부상을 당했다.[1]
목차[숨기기]· 1 관련자· 2 다른 주장· 3 같이 보기· 4 주석
관련자 [편집]
· 범인: 김동민 일병(22)
· 사건내용: 내무실에 수류탄 1발을 던지고 K1 기관단총 44발을 난사해 6명이 현장에서 즉사. 이후 체력단련장으로 이동한 김동민 일병은 그 곳에서 만난 김종명 중위를 K1 기관단총으로 사살함.
· 사망자: GP장 김종명 중위(26.학군41기), 전영철(22), 조정웅(22), 박의원(22), 이태련(22), 차유철(22), 김인창(22), 이건욱(21) 모두 상병
· 부상자: 김유학(22), 박준영(22) 모두 일병
다른 주장 [편집]
2007년 9월 28일, 연천군 총기 사건 유가족 대책위원회는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 회견을 열어, 김동민 일병의 단독 범행이 아니라 작전 수행 중 북한의 공격을 받아 발생한 사건이라고 주장했다.[2]
유가족 대책위원회의 주장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 사망자 8명 중 6명은 GP의 노루골 차단작전 지역에서, 2명은 GP 옥상에서 북한군에 의해 로켓추진수류탄(RPG-7) 9발의 공격을 받아 사망한 후 시신이 내무반으로 옮겨져 내무반에서 살해된 것으로 꾸며진 것으로 보인다.
· 상황실, 취사장 등 범행 현장에 총알심이나 총알 부스러기가 없다.
· 내무반에 수류탄이 폭발했다는 직접적 증거도 없다. 관물대에 수류탄 파편 흔적이 없고 희생 장병들의 상처는 수류탄 파편으로 볼 수 없는 큰 상처가 있어 RPG-7에 의한 상처일 가능성이 제기된다.[3]
· GP에 근무했던 2명의 병사로부터 관련 진술을 확보했다.[4]
여러가지 의혹들을 남겨둔 채, 2008년 5월 14일 범인 김동민 일병에게 사형을 선고한 원심이 확정되었다.
같이 보기 [편집]
· 연천군
· 징병제
· 대한민국의 징병제
· 모병제
· 인권
· 대한민국 국군
· 대한민국 육군
주석 [편집]
1. ↑ 軍 기강해이 도 넘었다, 한국일보 2005-06-19.
2. ↑ "연천 GP 총기 난사 북한군 공격 때문" 중앙일보 2007-09-29.
3. ↑ "연천 총기난사, 정부가 은폐조작"뉴데일리
4. ↑ "유가족 진술 및 GP 506 사건분석 동영상"
이 글은 군사에 관한 토막글입니다. 서로의 지식을 모아 알차게 문서를 완성해 갑시다.
이 글은 범죄에 관한 토막글입니다. 서로의 지식을 모아 알차게 문서를 완성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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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대한민국의 사건 및 사고 | 대한민국의 군사 | 난사 사건 | 2005년 대한민국 | 묻지마 살인 | 인권 침해 | 대한민국의 인재 사고 | 대한민국의 살인 사건
2005년 발생한 연천군 GP(전방관측소)총기 난사 사건의 희생자 부모들이 "당시 사건은 북한군의 공격으로 발생한 사건이며 이를 군이 은폐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연천군 GP 총기난사 사건의 희생 장병 부모들은 28일 서울 중구 프레스 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정부가 사건을 은폐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뉴데일리
2005년 6월 19일 경기도 연천군 530 GP에서 한 병사가 수류탄 1발을 터뜨리고 총기를 무차별 난사해 동료 병사 8명을 사망케 한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김동민 일병으로 밝혀졌으고 그는 사건 발생 후 곧바로 체포돼 사형선고를 받았다. 2년이 지난 현재 이 사건은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당시 사건의 희생자 부모들로 구성된 '연천군 총기사건 유가족 대책위원회'는 28일 서울 중구 프레스 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연천군 GP 사건은 가짜 범인을 내세워 아군에 의한 사고로 위장시킨 사건으로 군대와 사병의 명예를 실추시킨 이적 행위에 해당되는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에 따르면 당시 사건은 차단작전 임무수행을 하던 중 GP근처 노루골 지역에서 북한군 로케트포(RPG-7) 9발 공격을 받고 발생했다고 한다. 이는 선임병 질책에 앙심을 품은 김 일병이 내부반에 수류탄 1발 실탄 44발을 연발 총격해 사망자 8명 부상자 4명을 발생시킨 사건이라는 군의 발표와 정면 배치된다.
화상흔적 남길 수 없어"
연천군 GP 총기사건 희생장병의 부모들은 당시 현장 사진을 공개하며 사건이 조작 은폐 됐다고 주장했다.(모자이크 처리)ⓒ뉴데일리
"5.56mm 총탄에 60mm 상처와
유가족 대책위원회 대표인 조두하(고 조정웅 상병 아버지)씨는 "내부반에서 수류탄이 폭발했는데도 관물대에는 파편 흔적이 없으며 희생장병들의 상처를 살펴보면 총상과 수류탄 파편에 의한 것이 아님을 알수 있다"며 북한군의 RPG-7 로케트포에 의한 상처일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조 대표는 희생 장병의 사진을 보여주며 "군은 처음에 수류탄 상처라고 했다가 수류탄 파편으로 저렇게 큰 상처가 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자 다시 총상이라고 바꿔 발표했다. 상처가 크면 총상, 작으면 수류탄 파편에 의한 상처라고 하는데 여러 연구기관에 문의를 한 결과 10m내의 지근 거리에서 피격당할 경우 총상은 탄두보타 클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5.56mm 총탄을 지근거리에서 맞았는데 60mm의 상처와 화상 흔적을 남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 대표는 희생자들의 사망 원인을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X-레이 촬영임에도 불구하고 군은 이를 발표하지도 않았고 수사기록에도 포함시키지 않았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나 그는 희생자 8명 중 한명의 X-레이 사진을 입수했고 몸에서 나온 파편을 구할 수 있었다며 분석이 끝나면 곧 희생원인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생존 사병의 진술 "작전 중에 희생"
유가족들은 사건이 조작됐다는 또 다른 증거로 당시 생존했던 사병들의 진술 녹취록을 공개했다. 공개한 녹취록에는 생존 희생자들이 어떻게 죽었는가를 묻는 질문에 생존 사병으로 보이는 인물이 "작전 중"이라고 말하고 있다. 유가족들은 2명의 생존 사병이 작전 중 사망했다고 진술했으며 이들의 신상을 곧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유가족들은 당시 작전 중 군 병원에 후송간 한 장병을 찾아내 진술을 받았다고도 했다. 조 대표는 "후송간 친구는 자신이 떠날 때까지도 희생 장병들이 GP에 복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며 작전 중 희생된 게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정치적 음모, 정동영이 김정일 면담시 사건 발발"
조 대표는 이 사건은 '정치적 음모'에 의한 것이라고 강하게 주장했다. 그는 사건이 발생한 2005년 6월 19일 이틀전인 17일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김정일과 면담을 했던 것에 주목하며 "당시 정치 상황은 노무현 정부의 친북 정책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시기였으며 530GP 사건은 온 국민을 경악시킨 엄청난 사건이었기 때문에 정치적 이유로 은폐 조작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2005년 6월 17일 김정일과 면담한 정 전 장관은 사건 발발일인 19일 '면담 후 후속조치'를 발표했고 3개월이 지난 9월 19일 남북한은 공동성명, 북한의 6자회담 복귀등을 발표했다.
김동민 아버지 "동민이는 울면서 자신이 했다고 말했지만 믿을 수 없어"
이날 군이 범인으로 판결한 김동민 일병 아버지도 자리를 함께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조 대표의 부축을 받으며 앞으로 나온 김동민 일병 아버지는 "유가족한테 한없이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유가족들이 찾아와 동민이가 범인이 아니라고 해 혼란에 휩싸였었다"며 "조 대표의 말을 듣고 면회를 가서 동민이에게 물었다. 동민이는 울면서 '자신이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증거도 목격자도 없는 상황에서 왜 범행을 인정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국방부 "이미 여러 차례 검증 통해 결론 난 사안"
한편, 이날 기자 회견과 관련,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같은 날 2005년 경기도 연천군 GP 총기난사 사건은 "이미 여러 차례 검증을 통해 결론이 난 사안"이라고 분명히 했다.
당시 진상조사 과정에 참여했던 군 관계자는 "북한군의 도발이었다면 전쟁 상황으로 치달았을 일"이라면서 "수류탄과 총격으로 아수라장이 된 상황에서 사태 파악이 전혀 이뤄지지 않아 GP에서 오인 보고가 있었지만 조사 과정에서 모두 해명됐다"고 설명했다.
“530GP 진실 밝힐 결정적 증거 있다”
· 최종편집 2010.08.10 11:4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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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내 국방부의 성의 있는 답변을 기다리겠다. 하지만 부실하다고 판단될 경우 2차 대응에 나서겠다.”
지난 6일 국방부 민원실에서 열린 2005년 연천 530GP 사건 설명회에 참석했던 유가족들은 “한마디로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유족대표 중 한 사람인 전제용씨는 12일 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국방부 측의 설명은 기존 수사를 철저한 진실로 설정하고 그를 옹호하는 입장이었다”고 말했다.
연천 530GP 총기난사사건은 지난 2005년 6월 19일 오전 2시30분경 경기도 연천군 중면 최전방 GP에서 일어났다. 28사단 81연대 수색중대 1소대 소총수 김동민 일병이 수류탄과 K-1 소총으로 44발을 난사해 GP장인 중위 1명을 포함해 총 8명을 살해하고 2명에게는 중상을 입혔다고 발표된 사건이다. 군 당국은 사건 후 수사를 통해 김 일병이 내성적 성격으로 인해 적응하지 못하고 일부 선임병의 욕설 및 질책 등에 대한 앙심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유족과 시민단체들은 이 사건이 “친북정권에 의해 진실이 가려졌다”며 “차단작전 중 북한군의 기습에 의해 희생된 참사”라고 진실 규명을 호소하고 있다.
전제용씨는 “가장 답답한 것은 국방부가 열화탄에 의한 상처를 수류탄과 총탄에 의한 상처라고 설명하면서도 이에 대한 유족들의 반박에 제대로 해명을 못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당시 사상자들 상처의 크기나 형태에 대해 군은 “사체 검안 결과 대부분 총상이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군 의문사위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의뢰해 나온 결과는 달랐다. 국과수는 ‘총상으로 나올 수 없는 상처’라며 “대부분 파편창”이라는 소견을 발표했다.
전씨는 “고 차유철 상병의 X-ray에서는 총이나 수류탄의 파편이 아닌 수많은 불규칙한 형상의 파편창이 발견됐다”며 “이 같은 문제점을 지적해도 국방부는 애매한 기존 입장만을 고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씨는 이어 “범인으로 지목된 김동민 일병의 동선 문제도 국방부는 애매한 대답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군 발표에 따르면 7~8분 동안 수류탄을 투척하고 탄창을 바꿔가며 실탄 44발을 난사했다는데 김 일병이 움직였다는 동선을 아무리 재현해 봐도 20여 명이 무방비로 당했다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전씨는 이어 “김 일병은 장갑도 끼지 않고 탄창을 갈아 끼워가며 총을 쐈다는데 총과 탄창 2개, 수류탄 탄통 테이프 어디서도 지문이 안 나왔다”며 “이에 대한 과학적인 수사도 전혀 이뤄지지 않은 채 무조건 국방부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전씨는 “주내 국방부에서 보낼 유족들의 질의에 대한 회신을 주시하고 있다”라며 “결정적 순간에 내놓을 히든카드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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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 증언 "작전 복귀중 쾅 포격이..."
· 최종편집 2010.07.22 09:0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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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뷸런스 지연으로...”
“그렇지, 앰뷸런스 지연으로 많이 사망했다. 그럼 마지막으로 차단작전을 나가서... 나갈 때 사고여? 아니면 작전 중이여? 아니면 들어올 때 사고여?”
“작전 중의 사고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작전 중 사고라고? 복귀하다가 발생된 사고가 아니고? 작전에서... 너희들 작전 하면 벙커에 다 들어가 있잖아? 차단지 점령을 해서? 그러면 포격에 의해서 안 다치잖아?”
“그... 복귀 같았습니다.”
“복귀 같아서? 차단점령하고 복귀하다가?”
“네.”
2005년 연천군 530GP 총기난사사건(일명 김일병 사건)의 결정적인 단서가 될 당시의 부GP장 최충걸 하사의 녹취 전문이 공개됐다.
당시 범인으로 지목된 김 일병이 현장검증을 하고 있다. ⓒ 자료사진
당시 희생 장병 유족 대표인 조두하 한국폴리텍대 교수는 21일 뉴데일리에 녹취 전문을 보내오고 “530GP 사건은 김동민 일병의 하극상이 아니라 노무현 정권이 은폐한 북한의 도발사건”이라며 재차 강조했다. 조 교수는 530GP 사건으로 이대 독자인 고 조정웅 상병을 잃었다.
조 교수는 “530GP 참사는 상병급 사병들이 차출되어 야간 차단작전 중 북한군의 미상화기 9발에 피격되어 발생한 것”이라며 “김동민 일병은 가짜 범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생존 장병들의 증언 등을 통해 사건을 재구성해보면 차단작전 지역(노루골)에서 북한의 미상화기 8발 피격으로 6명이 사망하고 GP 옥상에 또 1발을 맞아 2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그는 “차단지역 등의 시신을 내무반으로 이동배치한 뒤에 허위 검안과 현장 조작, 생존 소대원 입막음 순서로 사건이 은폐됐다”고 덧붙였다.
조 교수는 또 “이 사건은 위조지폐와 같아 총기학이나 법의학적 지식이 있는 사람은 쉽게 조작 여부를 구별할 수 있는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조 교수가 공개한 당시 부GP장 최충걸 하사는 당시 시신을 내무반으로 옮겨 재배치한 인물이다.
녹취는 지난 2007년 3월 20일 상주 최충걸 하사의 집에서 이뤄졌다. 최 하사는 평소 가족들에게 “걔들(희생 장병들)은 억울하다”라는 말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최 하사는 이날 조 교수와의 대화에서 “정신이 없어서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면서도 결정적 근거가 될 얘기를 몇 마디 흘렸다. 그는 조 교수가 “군 수사 발표 내용이 맞느냐?”고 묻자 “조금 틀린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또 “어떤 점이 틀렸느냐”는 질문에 “당시 현장에 있었던 사람과 현장에 없었던 사람의 차이일 거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최 하사는 또 “(차단)작전 중의 사고라고 볼 수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최 하사는 포 소리에 대해 “처음에 한번 쾅 그냥... 소리 나고 그 다음은 생각이 안 난다”고 말했지만 재차 질문을 하자 “그 뒤에는 잘 모르겠고...다른 애들은 기억할 수도 있겠습니다”라고 답하기도 했다.
조 교수는 최하사가 당시 수사관들에게 사건 뒤에 “시신 이동배치를 잘했다”고 칭찬을 듣기도 했다며 “당시 군 당국의 회유와 협박으로 침묵하고 있는 생존 장병들이 진실을 증언해주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다음은 조두하 교수가 보내온 녹취 내용 2건 전문이다.
“야간 차단작전 중 사고”
녹취일자 : 2007.3.20
녹취장소 : 상주 (최충걸 집, 2차 녹취를 위해 방문)
진술인 : 부GP장 최충걸 하사
□주요 내용 (질문자 : 조두하)
조두하 : 작전 나갈 때의 임무는? 니가 지금 이야기한대로 이야기 해봐.
최하사 : 그냥 나가라고 해서 나갔습니다. 임무는 잘 기억이 안 납니다.
조두하 : 그러면 사고시 현장을 언제 이탈했어? 애들이 포격을 받았지? 포격을 받았을 때 선발조에 있는 애들은 3명이 현재 사망한 상태였는데, 처음 종명이나 유철이나 인창이가 현장에서 다 죽었어? 아니면 후송하다가 GP로 들어오다가 죽은 거야 들어와서 죽은 거야?
최하사 : GP에서...
조두하 : GP에서 죽은 거야 걔들 세 명도? 그러면 김종명 김인창 차유철도 GP에 와서 죽었다?
최하사 : GP에서...
조두하 : GP에서, 후송이 된 이후에 죽은 거네? (누군가가- 잘 안 들림) 작전지역에서 GP로 복귀시킨 후에 죽은 거네?
최하사 : GP에서...
조두하 : 음, 그리고 박의원 하고 이건욱이, 박의원 하고 이건욱이 사망은 어떻게 된거야?
조두하 : 그건 잘 생각이 안납니다.
조두하 : 이거는 생각이 안 난다? 작전 나간 애들이 아니니까?
최하사 : 네
조두하 : 정웅이, 태련이, 영철이 여기에 대해서, 애들은 종명이보다 먼저 들어왔어 늦게 들어왔어?
최하사 : 야간이라... 잘 생각이 안 납니다.
조두하 : 그러면 일단 애들이 나중에 다 들어왔을 때, 애들이 들어와서 대화를 나눈 적 없어? 정웅이나 태련이 영철이?
최하사 : 예 전혀
조두하 : 전혀? 그러면 애들이 GP에 복귀가 된 것을 봤어 못 봤어?
최하사 : GP에 있었는데...
조두하 : 애들도 GP에는 복귀가 됐었어?
최하사 : 정신이 없어서 잘 생각은 안 나는...
조두하 : 그러면 애들이 전부 전투복을 입었잖아, 나간 애들이 그렇지?
최하사 : 예
조두하 : 근데 이 전투복을 누가 다 벗기고 옷을 갈아 입힌 거야 이거는?
최하사 : 그것 또한 기억이 안 나고 잘 모르겠습니다.
조두하 : 그것도 기억이 안 난다고? 그러면 사고 당시 상황을 이야기 해봐 한번, 어떤 식으로 포격이, 포격 공격을 너희들 줄줄이 받았나?
조두하 : 진짜... (잘 안 들림) 큰 충격을 받으면 생각이 안 나듯이.. 저도 정신이 없었습니다.
조두하 : 포격은... 공격 무기는 어떤 거였을 것 같어?
최하사 : 공황상태였기 때문에 그때는 저가 진짜 생각이 안나거든요.
조두하 : 너도 놀래고
최하사 : 제가 예전부터 몸이 약해가지고...
조두하 : 포격이 몇 발 정도 난 거 같어? 소리는 알거 아녀?
최하사 : 처음에 한번 쾅 그냥...소리 나고 그 다음은 생각이...
조두하 : 근데 쾅소리가 그 쾅 하나였어? 아니면 뒤에도 계속 났어? 수는 기억이 안나지만...
최하사 : 예... 한번 듣고 나머지는 잘 생각이 안 나는 (누군가가-피격 9발이라고 했는데...) 그 뒤에는 잘 모르겠고...다른 애들은 기억할 수도 있겠습니다. (누군가가-니는... 파편을...(잘안들림))
조두하 : 너는 지금 유학이랑 같은 조였고 인창이가 무전병이었자나, 종명이랑 같이 붙고, 유학이도 무전병이고 너랑 같이 있었는데 유학이는 파편...포탄 파편 10개 정도가 몸에 있는데 너하고 떨어진 간격이 얼마였기 때문에 너는 안 다치고 유학이가 다친거냐? 어떻게 서 있었어? 니 뒤로 떨어진거냐?
최하사 : ...밤이고 하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조두하 : 그러면 니가 앞에 있었을거 아녀? 유학이보다?
최하사 : 아마 위치상으로는...
조두하 : 그렇지 니가 선발로 나가니까 조의 장으로... 그러면 니 뒤에 유학이가 있을테고 니 앞에도 떨어지고 뒤에도 떨어졌다는 이야기네? (누군가가-앞쪽하고 뒤쪽...) 종명이, 인창이, 차유철이가 1조고 너는 지원조의 2조였자나? 그러면은 앞에 떨어진 거는 알거 아녀? 애들이 다 다쳤으니까 파편으로...
최하사 : 잘 생각이 안 납니다.
조두하 : 그러면 앞쪽 애들이 파편, 폭탄에 의해서 다친 걸 알고, 그 다음에 뒤에도 다친걸 알자나?
최하사 : 뒤에는 잘 모르겠습니다.(누군가가-앞에는 알고?) 앞에는...(잘 안 들림)
조두하 : 앞에 가던 애들이 가던 위치 정도에서 쾅하는 폭음과 섬광이 보였다는 이야기야?
최하사 : 전 폭음만 듣고
조두하 : 폭음만 듣고?
최하사 : 잠시 멍한 거 같습니다.
조두하 : 그러면 혹시 폭음이 지뢰폭발이야? 포가 날라와서, 떨어져서 발생된 폭음이야?
최하사 : 잘 생각이 안납니다.
누군가가 : 아니 RPG-7 9발이...
조두하 : 그러면은 통문이 있고 여기가 GP라고 하면(지도를 보면서 질문 중) 차단작전 지역이 이쪽이자나? 그렇지? 직선거리로 몇 미터야? 직선거리로 대략?
최하사 : 800이나
조두하 : 800? 직선거리로 약 800미터 정도?
최하사 : 1km 정도
조두하 : 1km 정도 음, 그러면 빙 돌아가면 실거리는 얼마정도 되는거야?
최하사 : 직선거리로 1,200 정도...
조두하 : 돌아서 가는데 한 1,200 정도?
누군가가 : 안 맞지. 직선거리가 1,200이라면...
조두하 : 그러면 직선거리로 800이나 1km 되고, 돌아서 가면 1,200정도니까 거의 직선거리 유사하게 차단지역까지는 간다는 이야기네.
최하사 : 네
조두하 : 200미터 정도 선회하는 거니까? 너는 마지막으로 이 진상이 밝혀지기를 원하냐? 아니면...
최하사 : 밝혀지기를 원합니다.
조두하 : 밝혀지기를 원해? 군수사 발표 내용이 맞아 틀려?
최하사 : 조금 틀린거 같습니다.
조두하 : 어떤 점이 틀린거 같어?
최하사 : 그때 당시 현장에 있었던 사람과 현장에 없었던 사람의 차이일거라고 생각합니다.
조두하 : 그러면은 현장에 있던 사람으로서 어떤 사고였어?
최하사 : 많은 인원이 사망한 대형사건...
조두하 : 많은 인원이 어떻게 사망?
최하사 : 네 많은 인원이 사망한...
조두하 : 사망한 사건이다. 그러면 많은 인원이 사망안할 수도 있는데 많은 인원이 사망한 사건이다 이거지? 살릴 수 있는 애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후송을 늦게 해가지고 너희들도 상당히 노력했을 거 아녀? 애들을 살리기 위해서, 그런데 앰블런스 같은 게 늦게 오고 후송이 지연되는 바람에 더 많은 인원이 죽었다는 이야기잖아?
최하사 : 앰블런스 지연으로...
조두하 : 그렇지 앰블런스 지연으로 많이 사망했다. 그럼 마지막으로 차단작전을 나가서... 나갈 때 사고여? 아니면 작전 중이여? 아니면 들어올 때 사고여?
최하사 : 작전 중의 사고라고 볼 수 있습니다.
조두하 : 작전 중 사고라고? 복귀하다가 발생된 사고가 아니고? 작전에서... 너희들 작전하면은 벙커에 다 들어가 있자나? 차단지 점령을 해서? 그러면은 포격에 의해서 안 다치잖아?
최하사 : 그... 복귀 같았습니다.
조두하 : 복귀 같아서? 차단점령하고 복귀하다가?
최하사 : 네
조두하 : 복귀하다가 난 사고다?
누군가가 : 담배 피워 담배 피워
최하사 : 부모님이 오실 때가 됐고 ....부모님이 많이 걱정하십니다..
조두하 : 다시한번 이 말의 사실 여부를 확인.
내무반 시신이동배치
녹취일자 : 2006.10.22
녹취장소 : 상주, (최충걸 하사의 집)
진술인 : 최충걸 하사 어머님
□ 내 용
(시신) 피를 닦아가면서 충걸이 지가 옮겨 가면서...지가 덮어가며 지가 혼자 했답니다. 그거를 하는데 너희들은 또 봐라 누군가 봐라하고 뭘 배치를 시키는데 그 상황에 배치를 설사 시키더랍니다.
이거 머 살은 아덜한테 니가 그러더냐 지가 그랬데요. 정신이 한개도 없이, 가가 정신이 한개도 없이. 겁이 나는데 그 후에 정신을 잃어가지고 그 뒤로는 모른답니다. 그 뒤로는 모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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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0GP 김 일병, 교도소 수감 중인가?”
· 최종편집 2010.08.10 11:48:32
·
“김동민 일병은 과연 육군 교도소에 수감 중인가?”
연천 530 GP 사건 범인으로 장호원 육군교도소에 수감 중인 것으로 알려진 김 일병의 실제 수감 여부에 대해 유가족들이 의문을 제기하고 나섰다.
530 GP 유가족 대표인 조두하 한국폴리텍 교수는 10일 “지난 7일 오전 11시경 육군교도소를 직접 방문해 김동민 일병에 대한 면회를 신청했지만 교도소 측으로부터 거절당했다”고 뉴데일리에 알려왔다.
조 교수는 “무엇보다도 유가족들이 의문스럽게 생각하는 김 일병의 실제 수감 여부와 근황 등을 확인하기 위해 이날 면회를 신청했지만 교도소 측은 면회를 거절하고 수감 여부조차 확인해주지 않았다”고 밝혔다. 김 일병은 지난 2005년 12월 3일부터 장호원 육군교도소에 수감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 교수는 “육군교도소 정문에서 근무자가 신분증을 확인하고 외래인 출입대장에 기록을 한 뒤 한 뒤 전화로 면회신청 사실을 알리자 잠시 후 전화로 ‘면회를 할 수 없다’는 연락이 왔다”고 말했다.
조 교수가 면회불가 이유가 묻자 면회접견대 직원이 "굉장히 민감한 사항이라 곤란하다"고 답했다는 것.
조 교수는 “그 직원이 (김 일병 면회는) 상급자의 승인이 필요한 사안이라고 말해 상급자에게 연락해 달라고 하니 얼마 뒤에 김 일병을 담당하고 있다는 헌병과 당직사령이 내려왔다”며 “담당 헌병이 작은 수첩에 ‘유가족 대표 조두하 면회를 거절합니다. 김동민’이라고 적힌 메모지를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김 일병의 필체를 본 적이 없어서 김 일병 본인이 작성했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조 교수는 “김 일병 면회가 안 되면 교도소 수감 여부를 확인할 수 있게 얼굴만이라도 보여주던지 CCTV 화면으로라도 확인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자 담당자는 ‘확인해 줄 수 없다’고 거절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담당자가 ‘사전에 미리 연락하고 오시지 그러셨어요’라는 말을 했다”라며 “미리 면회신청을 해야 하느냐고 묻자 동석해 있던 다른 담당자가 ‘사전 연락이 없이 면회할 수 있다’고 서로 엇갈린 말을 했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재차 김 일병의 면회를 요청하자 담당자는 ‘윗선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잠시 자리를 뜨더니 윗선에 연락은 않고 당직사령과 한참 이야기를 한 뒤 국방부 민원실 전화를 적어주며 민원신청을 하라고 했다”며 “윗선에 승인요청은 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간단한 면회조차 못하게 하는 이유가 궁금하다”며 “교도소를 총괄하는 당직사령조차 면회나 재소여부 조차 확인해줄 수 있는 권한이 없는 이유 역시 궁금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