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여목[苜蓿] 게여목
기름진 몽근 땅이 좋다. 7월에 이랑을 치고 심는데 물 주는 방법은 한결같이 부추에 주는 법대로 한다. 《거가필용》에는 “철파(鐵把)로 흙을 긁어 일어나게 한 다음 물을 준다.” 했다. 《거가필용》 《신은지》
한종(旱種)할 때에는, 거듭 땅을 갈아 골이 깊고 넓게 해 놓고, 구멍이 있는 바가지로 종자를 뿌리고서 비계(批契)로 긁어 준다. 언제고 정월이 되면 마른 잎들을 불놓고, 땅이 축축할 적에 즉시 갈아 두둑을 치고서 철치루(鐵齒●)로 긁고 다시 노감(魯砍)으로 깊은 데를 골라주면 습기가 있어 무성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여위게 자란다. 한 해에 세 차례 움을 베지만, 씨를 두어야 할 것은 한 번만 베고 말아야 한다. 초봄에도 날로 먹기가 좋으며 국을 끓이면 매우 향기롭고 맛이 좋다. 특히 말이 즐겨 먹는다. 이것은 오래 사는 것이어서, 심는 사람이 한 차례 수고만 하면 길이 일이 없으니, 도읍(都邑)의 성곽(城郭) 양지에 심는 것이 적격이다. 《거가필용》
한자로는 목숙(苜蓿)이라고 표기되는 이 풀은 홍만선의 ‘산림경제’(권1)에 ‘게어목’이라는 우리말이 병기되어 있다. 지금은 흔히 거여목으로 불리는 이 풀은 개자리로도 불린다. 거여목은 원래 서역에 자생하는 풀이었다. 한나라 때의 장군 장건(張騫, ?~B.C.114)이 흉노를 치기 위해 지금의 감숙성(甘肅省, 깐수) 지역에 있던 대월지국(大月支國)과 동맹을 맺기 위해 서역으로 파견된 적이 있었다. 덕분에 실크로드가 개척되었다고 전하기도 한다.
그가 이 지역의 여러 나라를 돌아다닌 탓에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한나라는 이 지역과 사신을 파견하면서 선린(善隣) 관계를 확보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이 지역 사람들이 포도주를 담그는 것을 보기도 했고 말들이 거여목을 잘 먹는 것을 목격한다. 결국, 왕명으로 포도와 거여목의 씨를 한나라로 들여와서 비로소 중국 땅에 이런 품종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고 한다. 사마천의 ‘사기’(권123) ‘대완열전(大宛列傳)’에 나오는 기록이다.
포도와 거여목을 장건이 중국으로 들여왔다고 하는 설은 여기에 근거한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장건이 계기가 되기는 했지만, 장건이 들여왔다기보다는 그의 사후 한나라와 사신이 오가는 과정에서 필요 때문에 수입된 것이리라.
어떻든 거여목이 한나라 사람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말이 잘 먹는다는 점 때문이었다. 당시 한나라는 흉노와의 전쟁 때문에 한창 말에 관한 관심이 증폭되던 시기였고, 말 먹이를 준비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었다. 그런 와중에 거여목이 전략적으로 중요하다고 여겼으니 씨를 들여와서 재배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런 사정에서도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거여목은 애초에 식용으로 주목을 받았던 것은 아니었다.
쌍떡잎식물 장미목 콩과의 여러해살이풀.
서남아시아 원산이며 옛날부터 사료작물로 재배하였다. 유럽에서는 루선(lucern)이라고 불렀으나,
미국에서는 아랍어로 '가장 좋은 사료'라는 뜻으로 앨팰퍼라고 한다.
원줄기는 곧게 30∼90cm까지 자라서 가지가 갈라진다. 잎은 어긋나고 작은잎이 3장씩 나온 잎이다. 작은잎은 긴 타원형 또는 바소꼴이고 끝이 뭉툭하거나 움푹하게 들어가 있으며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다.
꽃은 7∼8월에 자주색으로 피고 총상꽃차례에 달린다. 타화수정을 하고, 꼬투리는 2∼3회 나선 모양으로 말리며 털이 있고, 종자는 신장 모양이다. 잎이 풀 전체의 반 정도이므로 벤 다음에 잎이 떨어지지 않도록 한다.
모든 가축이 다 잘 먹지만 생육지에서 방목하면 가축의 발굽에 상처가 날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한편, 사람에게도 좋은데,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작용이 있어 특히 육류와 함께 먹으면 좋으며, 식이섬유가 많아 변비에 효과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