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 맞아?" "그때 피눈물이 헛되지 않았군요" "정말 김 장군님이십니까?" "러셀, 귀관도 이젠 백발이 성성하구먼." 23일 오후 5시40분쯤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에서 아주 특별한 만남이 이뤄졌다. 포화가 빗발치는 전장을 함께 누볐던 두 노병이 6·25전쟁 50여년 만에 다시 해후한 것. 김성은(80) 전 국방부 장관과 미 해병대 예비역 대령 제럴드 러셀(88)씨가 그 주인공이다.
러셀씨는 미국, 터키, 에티오피아 등 5개국 참전용사 재(再)방한 사업에 초청받아 한국을 찾았다. 51년 7월 미 해병 1사단 대대장으로 한국 땅을 밟아, 53년 9월 본국으로 돌아간 뒤로 처음이다. 그는 "2년2개월간 혼신을 바쳐 지켰던 자유를 다시 떠올렸다"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두 사람은 52년 10월 도라산에 진(陣)을 친 해병대 제1전투여단에서 만났다. 김 장군은 여단장이었고, 러셀은 미 군사고문단 수석 중령이었다. 둘은 중공군(中共軍)과 대치하던 전선에서 6개월간 매일같이 머리를 맞대고 작전 수립에 골몰했다. 함께 정찰을 나갔다가 중공군 척후병에게 포착돼 수십발씩 내리꽂히는 포격을 뚫고 탈출한 경험도 있고, 52년 10월 30일부터 이틀간 중공군과 전면전을 벌여 중과부적의 불리한 전황을 딛고 격전을 승리로 이끈 뒤 감격에 겨워 부둥켜 안고 운 기억도 생생하다.
여단장·보좌관 사이 '도라산 대전투' 주역 팔순 노병 우정다져
김 장군은 "그렇게 생사(生死)의 고비를 함께 넘은 러셀 생각이 자주 났지만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좀처럼 재회의 기회를 잡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 장군은 62년 해군 중장으로 예편한 후 재향군인회 회장, 국방부 장관, 대통령 안보특별보좌관 등을 지냈다. 러셀씨도 마찬가지였다. 68년 29년간의 군생활을 접고 전역한 뒤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법과 미국사를 전공한 만학도(晩學徒)로, 학위를 마친 후에는 교수(敎授) 요원으로 19년을 바쁘게 살아왔다.
그러던 중 작년 러셀씨는 미 한국전참전용사회(KWVA)에서 전우들을 상대로 방한행사를 벌인다는 소식을 접하고 김 장군을 수소문했다. 그러자 한국 재향군인회에서 나서 김 장군과 연결해줬고, 이후 2~3차례 편지를 주고받으며 이날의 만남을 기다려왔다.
러셀씨는 "50여년 전이지만 어제 일처럼 또렷하다"며 "장군님은 탁월한 리더십으로 부하들에게 존경받는 지휘관이었다"고 엄지손가락을 내밀었고, 김 장군도 "명민한 보좌관이었던 러셀이 있었기에 승전고를 울릴 수 있었다"고 맞받았다. 덕담(德談)을 나누는 와중에 김 장군은 "오, 자네도 이젠 뱃살이 장난이 아니군" 하는 등 정겨운 농담도 섞어가며 재회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러셀씨는 4박5일 일정 동안 판문점, 전쟁기념관, 미군 참전비 등을 돌며 50년 전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볼 예정이다. 그는 "놀랍게 발전한 한국을 직접 보니 가슴이 뭉클하다"며 "그때 흘렸던 전우(戰友)들의 피눈물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김 장군은 26일 러셀씨를 데리고 서울 이태원을 둘러볼 계획이다. 이곳에 있는 단골양복점 '산스테일러'에서 근사한 정장 한 벌도 맞춰줄 작정이다.
김 장군은 "죽기 전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양복을 입을 때마다 한국을 생각하고 전우를 잊지 말아 달라고 당부하려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