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산사와 가을 호반은 언제부턴가 보통명사로 쓰인다. 산들이 동면에 들어가는 만추의 산사는 그만큼 적막해서 마음을 착 가라앉게 하고 호수도 가을에 가장 아름답기 때문이다. 청도는 천년고찰 운문사와 운문호를 끼고 있어 한꺼번에 산사와 호수를 모두 둘러볼 수 있다.
호거산(虎踞山) 운문사는 병풍처럼 주변이 산에 둘러싸여 있지만 산사 같지 않다. 산을 등지고 앉은 것이 아니라 산을 바라보고 있다. 호거산은 호랑이가 쭈그려 앉아 바라보고 있는 형국. 호환을 피하기 위해 지은 것이라고 한다.
신라 진흥왕 때 지어진 운문사는 1,500년 역사를 가진 대가람이다. 당나라에서 돌아와 1,200년 전 세속오계를 전수했던 원광법사, 삼국유사를 쓴 일연스님이 주석했다. 신라 때는 화랑들의 훈련장으로 쓰였다. 유서 깊은 고찰답게 경내에는 석탑과 불상 등 7개의 보물이 있다. 경내는 너무 크지도 않고 너무 작지도 않다. 크고 작은 법당이 가지런하게 늘어서 있다. 가람이 단아하다.
운문사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천연기념물 180호 처진 소나무이다. 수령 400년이 넘는 이 소나무는 가지를 모두 땅에 내려놓고 있다. 마치 부처를 향해 이마와 손·발·무릎을 대고 오체투지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토록 오랜 세월동안 가람을 지켜왔지만 아직도 상한 솔잎을 찾기 힘들 정도로 싱싱하다. 특별히 영양제를 주지도 않고 거름을 퍼부어주지도 않는다. 스님들은 해마다 봄·가을에 막걸리 12말을 보시했을 뿐이라고 한다.
운문사에서는 불가의 예법을 볼 수 있다. 스님들이 예법대로 행하는 불전사물이 운문사의 또 다른 보물이다. 국내 최대의 비구니 승가대학을 끼고 있는 수행도량이라 아마도 ‘원칙’에 충실하기 때문일 것이다. 오후 6시면 어김없이 불전사물이 행해진다. 가죽짐승을 깨우는 북소리, 날짐승을 위한 운판, 물고기를 위한 목어, 그리고 커다란 종을 친다. 산을 울리는 북소리와 종소리는 탐방객의 마음마저 깨워 놓는다.
불전사물이 행해지는 동안 절 마당에서 홍가사를 차려입고 가지런히 줄을 서서 대웅전으로 행하는 앳된 사미니(불가에 입문해서 수행 중인 어린 여승)의 모습에서 불가의 전통을 엿볼 수 있다.
가을 호반인 운문호도 아름답다. 운문호는 10년 전 운문댐이 완공되면서 생긴 호수다. 호숫가를 따라 호반길이 놓여있다. 구불구불한 호반길을 돌다보면 호수의 다양한 표정을 볼 수 있다. 복슬복슬한 물억새와 잿빛 갈대가 함초롬하게 피어난 호숫가는 쪽빛보다 푸른 하늘을 담고 있다. 가을 호수는 새벽이면 멀미를 하듯 물안개를 토해낸다. 산들이 안개에 의해 지워졌다 불쑥 얼굴을 내미는 새벽 호반. 안개를 밀어내며 고깃배가 나간다. 어부들이 그물에 걸린 물고기를 건져내며 아침을 연다. 물안개는 상류에서 하류로, 다시 하류에서 상류로 옮겨다닌다. 호숫가에서 텃새가 돼버린 백로와 왜가리가 물고기를 잡는 모습도 아름답다. 수는 얼마 되지 않지만 시베리아에서 건너온 청둥오리들도 호수에 머물며 겨울을 난다.
청도에는 문화재가 많아 답사코스로도 손색이 없다. 운문호변으로 옮긴 운곡 김몽로(1828~1884)의 생가인 운곡정사,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숙종 때 세워진 석빙고 등이 흩어져 있다.
▲ 전국의 감마을
감마을은 정겹다. 주렁주렁 매달린 곶감을 말리는 모습도 그렇고 까치밥도 그렇다. 감마을에선 우리가 잊고 사는 예스런 풍광도 만날 수 있다.
# 완주 동상 감마을
완주 동상은 산으로 둘러싸인 두메산골이다. 산너머가 구름과 해만 보인다는 진안의 운일암반일암. 마을 어귀에 있는 저수지는 과거 논산훈련소의 유격장이었다. 옛날 방식 그대로 감을 말린다. 대형 창고에 쇠파이프를 걸친 현대식 곶감 건조장이 있지만 아직도 나무로 만든 옛날 건조대가 많이 남아 있다. 동상 감마을은 찬 이슬이 맺혀 감이 물렁해지는 한로(寒露·10월8일)때 감을 따낸 뒤, 무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10월23일)이 지나면서 곶감을 말리기 시작한다. 청도감과 비슷하게 씨가 없는 고종시다. 고종시는 고종임금이 맛을 보고 감탄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마을을 끼고 동상호와 대아호가 자리잡고 있어 호반도 둘러볼 수 있다.
# 경남 진영·창원
김해의 진영과 창원의 북면은 국내 최대의 단감 생산지. 현지에는 80여만 그루의 단감나무가 흩어져 있다. 이 일대 단감은 당도가 높고 사각사각하다. 주변에는 주남저수지와 창녕 우포늪이 가까워 철새관찰도 할 수 있다. 주남저수지에는 철새 조망대가 들어서 있으며 창녕 우포늪은 국내 최대의 자연 늪이다.
# 충북 영동
영동의 가로수는 감나무이다. 그만큼 감이 많다는 뜻. 영동은 소백산맥 자락에 앉아있어 낮과 밤의 기온차가 심해 감의 껍질이 얇고 당도가 높다. 영동감은 곶감이 가장 유명하다. 물론 연시(홍시), 침시(담근감), 감식초, 감장아찌, 감잎차, 갈옷 등 감으로 만든 것이 대부분 다 나온다. 영동에서는 금산이 가깝다. 영국사와 천내강변 등이 아름답다. 이밖에 경상권에서는 고령의 수시감과 상주 곶감도 유명하다.
# 전남 장성
장성은 남면, 동화면, 황룡면, 삼계면, 삼서면, 진원면 일대에 감나무가 많다. 야산의 경사지에 단감나무를 심었다. 1997년에는 전국우수과실품평회에서 단감 부문 대상을 차지했다. 장성에는 고불총림 백양사가 유명하다. 백양사란 이름은 흰 양이 설법을 들었다는 전설에서 유래했다.
〈글 최병준·사진 정지윤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