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치유- 일본 나가사키 성지순례
김선희
8월을 앞두고 7월 마지막 주 월요일 7월 30일 부터 8월 3일 까지 4박 5일의 일정으로 떠난 나가사키성지순례기를 기록으로 남겨본다
올해는 1979년 7월 29일 세례를 받고 주님의 자녀가 된지 39년되는 해, 나름대로 의미를 새기며 영세식때 순백원피스에 화관을 쓰고 세례를 받았던 첫마음으로 돌아가 보려는 마음을 가졌다.
나가사키성지는 이십대에 읽은 <침묵>이라는 책과 '영화' 문학기행으로 가 본적이 있어 지역은 낯설지는 않았으나 순교자의 삶에 대해서는 영화를 통해 본 게 고작이었다. 더구나 현재의 내 마음상태가 절박하고 억울한 그런 분노가 다 삭히지 않은 상황이었으므로 큰 의미부여가 되었다.
주님은 내가 힘들 때 어떤 지팡이라도 마련해 주시는 분, 함께하시는 분, '너의 상처만 제일 큰 것 같지!. 말씀하시며 ' 나를 바라 보거라 , 옷 벗김까지 당한 나,
아무 죄도 없이 너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달린 나를 .... 상처 준 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주님인 나를 바라 보거라 ...' 계속 채근하신다. 어쨌든 이런 복잡 다다한 마음으로 오도 가도 못할 상황이 되어 순례길에 나섰다.
첫째날 : 배를 타고 가야하므로 4박5일이나 이틀은 배를 타고 호텔에서는 이틀 밤만 한다는 안내에 고생을 할 거라는 지레짐작을 했다. 그리고 사상최대로 폭염이 극성을 부리는 시기이었으므로 집에서도 걱정을 했다. 11시에 성당에 집결했다. 철저하게 침묵하자고 결심한 터라 늦지 않게 가서 성당에서 조배를 했다. 하나 둘 상기된 모습으로 모여든다. 아브라함대학생들은 일등으로 , 구역장님들은 신선한 웃음으로 , 샛별어린이들은 보호자와 함께 샛별처럼 밝은 모습으로 41명이 다 모였다. 성산2동 성당 아버지이신 주임신부님과 어머니이신 원장수녀님, 전례담당수녀님 , 신학생인 학사님과 사무장님, 봉사자 등 모든 신자가 한마음이 되어 일본 시모노세키 항을 가기 위해 배를 타야하는 곳 부산으로 갈 관광버스에 올랐다. 사목회와 구역장님들의 환송을 받으며 기도로 한 마음이 되었다.
“찬미예수님” 4박5일의 아이디(?)였다. 날씨는 미리 겁먹어서인지 견딜만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11시 10분 탐승 부산에 도착하니 오후 5시 25분 이었다. 오후 6시, 부산 신국제여객터미널 3층 출국장에서 배에 승선하므로 여유롭게 진행되었다. 배로 해외여행을 하는 것이 첫 경험이므로 설레었다. 밤을 지새우며 가는 것이므로 11시간을 배에 머무르며 약간의 공포감과 신비감을 버무려 일본에 가는 배의 이층침대에서는 깊은 수면을 취하지 못했다.
둘째날 : 정확하게 정한 시간 시모노세키 항에 도착하여 조식을 했다 식사를 들기전 아침형인간인 나는 배를 돌며 동쪽에서 떠오른 해를 보았다. 바다속으로 다이빙하는 해까지 ... 입국수속이 비행기보다는 훨 간단하여 좋은 점으로 남겨두고 기억하고 싶다. 배에서 내려 처음 이동하는 지역이 히라도였다. 히라도는 작가 탐방하러 5월에 가본 곳이라 이름만으로도 정겨웠다. 맨 먼저 방문한 교회가 히라도의 "성 하비에르" 기념성당이다. 동서양의 조화가 종교간의 화합을 이루고 있는 듯, 불교사원과 신사, 하비에르성당이 함께 어우러져 쿠슈 올레길과 연결되어 있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히라도의 "성 하비에르"성당은 1971년 성프란치스코 자비에르 기념교회로 지정되었다고 했다. 이국적인 조각과 스테인드글라스가 참으로 아름답다.
나가사키로 이동하여 "나가이 타카시박사"의 생애를 설명 듣고 기념관을 방문했다. 20대에 <묵주알>이란 책을 통해 접했던 분의 집필했던 방과 마지막을 보냈던 집을 보며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작가와 아버지 남편으로 살았던 한 의학도의 원폭투하 때의 평화를 구하는 기도를 보며 " 여기당(汝期堂)"과 "여기애인(汝期愛人)자기처럼 남을 사랑하라 " 일본의 양심에 대해 생각하며 잠시 기도를 올렸다.
11시 빠른 점심을 먹고 타비라성당을 견학한 후 니시자카 언덕에 있는 오우라 성당에서 오후3시에 첫 번째 미사를 드렸다. 타비라 성당은 타리에 이주한 신자들이 직접 조개껍질을 구워 지었다고 했고 빨간 벽돌로 만들어졌다. 교회를 많이 설계한 테츠카와 요스케의 걸작으로 가장 자신 있는 작품이라고 스스로 말했다는 데 천주교신자는 아니라고 했다. 원폭 투하에 성모님의 얼굴이 일그러진 의미 깊은 성당 오우라 성당에서 미사 중 침묵의 성지순례 길에 나선 나에게 눈물이 앞을 가린다. 서러움인가, 분노인가. 용서하지 못한 용기 없는 눈물일까 아무튼 눈물이 섧다. 아픔을 말리며 미사의 은총을 구했다.
셋째날 : 호텔에서 유황온천의 물로 피로를 풀고 편안한 수면을 취한 터라 기분은 훨~ 업되었다. "나는 나다"로 결심한 침묵의 순례길 말없이 성지순례를 통해 주님 안에서 나를 찾기를 시도해 본다. 상처 준 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십자가를 바라보라는 원장수녀님의 가르침을 들었을 때 큰 반향이 일었다. 그래 우리의 구원을 위해 옷 벗김까지 당하며 십자가에 매달린 주님을 바라보자. 생각하니 나의 오해받음과 서러움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이런 마음이 잠시 잠깐 이다.
성지순례를 통해 잘 정리하고 신앙생활을 잘 해보자는 결심을 다시 한다.
아우슈비츠에서 순교한 "성 막시밀리아노 콜베신부"기념관과 성모기사수도원을 방문했다. ‘친구를 위해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라는 말씀을 실천한 신부님이 일본에서 6년 동안이나 선교 하신 것을 순례를 통해서 알았다.
기념관 방문 시 본당 주임신부님께서 설명을 열심히 해주셔서 더 큰 감동을 받을 수 있었다. 성지순례를 동행한 어린이 세 명에게는 콜베신부님 기념관에서 티셔츠를 사주시는 자상함을 보여주셔서 아이들을 기쁘게 했다. 기념관을 지나 언덕으로 오르니 오우라성당이 보였다. 아름다운 성당이다. . 오우라성당은 국보로 지정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라고 했다. 나가사키의 상징이라고 한다.
두 번째 미사는 성 콜베 성모기념 수도원에서 미사를 드렸다. 미사 후에 니시자카 공원을 가서 본 후 "26인 순교성인 기념비“를 견학하여 묵상과 기도시간을 가졌다. 니시자카 언덕에 세워진 우라카미 성당은 수리를 하고 있어 견학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몇 년 전에는 여행으로 방문하여서 이렇게 큰 뜻을 품고 있는지는 몰랐었다.
삼일이 지나고 보니 아쉬움도 생긴다. 무더위 속에 배를 타고 어찌 다녀오나, 갈까 말까를 망설이던 마음도 사라지고 순교자들의 신앙심에 일본사람들이 다시 보였다. 수녀님의 배려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순례만 다녀오면 성당은 당분간 쉬어야겠다는 결심을 아는 듯이 주님 이야기를 해주신다.
우리주님 예수님은 나를 지극히 사랑하셔서 순간순간 이끌어주신다. 큰 분노와 서러움에 힘들어하는 나를 나가사키 성지순례를 통해 치유시켜주고 계시는 것이다.
마지막 날 ; 여행은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떠난다는 말이 맞지 싶다. 이제 집으로 돌아간다는 마음이 기쁨을 준다. 왜 일까 ? 배를 타고가야 함에도 빨리 집에만 가고 싶다. 오늘은 운젠 선당과 운젠 지코구(지옥)을 방문했다. 국립공원안에 성당이 있어 참 아름다웠다. 신자가 고작 5명이라 했으니 일본의 실정을 대변하는 듯 했다. 교황 요한바오로2세가 방문한 교회로 운젠 지옥에서 순교한 신자들을 위해 지어졌다고 했다. 이곳에서 세 번째 미사를 운젠 성당에서 드렸다. 훨씬 마음이 편해졌다. 지옥을 순례하며 근심걱정을 다 버리라고 말씀하셔서 훌훌 털어버렸다. 이제 순례는 끝나고 나가사키 카스테라를 사는 것으로 일본여행의 순례기는 마감을 한다. 이제 배를 타고 부산 아미성당으로 향했다. 여기서 치유의 역사가 일어났다. 나에게는 최고의 시간이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리시어 한 시간 묵상 중 마지막에 이슬방울 윙크를 나에게 하셨다. 찰나였다. 성지순례의 은총이었다, 웃으며 성지순례 파견 미사를 드리고 송도 동해횟집에서 물회로 점심을 먹고 마지막순례를 기쁘게 장식했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읽어주셔서고맙습니다
저도 주보 보고 작년에 남편이랑 똑같은 코스로 다녀왔거든요.^^ 아름다운성당 순례와 이웃나라 일본의 신앙역사도 공부하는 좋은시간이었네요.
추천을 어디다 하죠?
하늘 나라에 합니다.
고맙습니다.
모두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일본 성지순례를 잘 읽고 음미합니다.
님은 이제 알고보니 기성 작가이십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