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미도, 침묵 속에 묻힌 이름들
- 역사는 끝나지 않은 질문을 우리에게 남긴다
전홍구
실미도는 인천 앞바다에 떠 있는 작은 무인도이다. 썰물이 되면 무의도와 길이 이어져 누구나 걸어서 들어갈 수 있는 평화로운 섬이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섬은 한때 대한민국 현대사의 가장 비극적인 비밀을 품었던 곳이기도 하다.
1968년 1월, 북한의 무장 공비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려 했던, 이른바 김신조 사건이 발생하자 정부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극비 북파공작 부대인 684부대를 창설하였다.
선발된 대원들은 대부분 사형수나 중범죄자였다는 이야기가 널리 알려졌지만 이후 밝혀진 자료와 법원의 판단에 따르면 실제로는 생계가 어려운 청년 군 복무 중이던 사람 사회 주변부의 젊은이 등 다양한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국가의 명령을 믿고 실미도에서 혹독한 훈련을 받으며 북한에 침투할 날만 기다렸다.
그러나 세상은 그들을 기다려 주지 않았다. 남북 관계가 변화하면서 북파 계획은 사실상 중단되었고, 대원들은 이유도 모른 채 오랜 세월 섬에 고립되어 있었다. 작전은 취소되었지만, 미래를 열어 주지 않았다. 신분도 자유도 희망도 잃은 채 살아가던 그들의 절망은 점점 깊어졌다.
마침내 1971년 8월 23일. 대원들은 기간병들과 충돌하여 여러 명을 살해한 뒤 실미도를 빠져나왔다. 버스를 탈취해 서울로 향했지만, 서울 동작구 대방동 부근에서 군과 경찰에 포위되었다. 마지막 순간 대부분의 대원은 수류탄을 터뜨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생존한 일부는 군사재판을 거쳐 사형이 집행되었다.
사건 직후 정부는 오랫동안 관련 사실을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국민은 실미도에 어떤 부대가 있었는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수십 년이 흐른 뒤에야 진실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고 영화《실미도》를 계기로 국민적 관심이 높아졌다. 이후 유족들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국가가 대원들을 적법한 절차 없이 모집하고 인간다운 처우하지 않았으며 사건 이후에도 진실을 은폐한 책임이 있다고 판단하여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진실이 밝혀진 것은 아니었다. 당시 누가 어떤 명령을 내렸는지 훈련 과정에서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록이 왜 사라졌는지 등은 아직도 완전히 규명되지 않았다. 그래서 실미도 사건은 '미스터리'라기보다 기록과 증언이 충분히 남아 있지 않아 모든 사실이 완전하게 밝혀지지 않은 현대사의 비극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오늘날의 실미도는 관광객이 갯벌을 걸으며 자연을 즐기는 평화로운 섬이 되었다.
그러나 바닷바람이 스치는 그 길 아래에는 국가를 위해 존재했지만, 국가로부터 버림받았던 젊은 생명들의 슬픈 흔적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역사는 과거를 비난하기 위해 배우는 것이 아니다. 같은 비극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기 위해 기억하는 것이다. 실미도는 우리에게 묻는다.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가, 아니면 국민이 국가를 위해 희생되어도 되는가.
그 질문이 풀릴 때까지 끝까지 답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이야말로 실미도의 진실을 기억하는 가장 올바른 길일 것으로 생각한다. 5,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