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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산(鳳凰山)
이 기 영
1
아침 해가 솔밭 위로 찬란히 떠오른다. 새날의 빚나는 광선은 때마침 곱게 물들어가는 단풍숲 새로 더욱 영릉하게 반사된다.
“깟깟! 깟깟깟!……”
울안에 선 버드나무 가지가 흔들리며 별안간 까치 한 마리가 지붕마루를 내려다보고 영악스레 짖는다. 치수는 그 밑에서 풋벼바심¹을 하고 있었다.
“반가운 손님이 올라 카나. 무슨 까치가 저리 짖노!”
화롯불에 미음을 데우던 보배는 행주치마로 코를 씻으며 처마 밖을 내다본다. 까치는 또 한 번 꽁지를 촐싹대며 짖다가 가지를 옮겨 앉는다. 거기는 ‘겨우살이’가 새 둥지처럼 시퍼렇게 엉겨 붙었다.
“반가운 손님이 어디서 와, 내사 그런 손님이 올 것 같잖다.”
아내의 목소리를 듣고, 치수는 퉁망스레 대답한다. 그는 여전히 도리깨질을 하기에 분주하다.
“혹시 알 수도 없지…….”
보배는 전에 없이 음성이 아름답다. 청명한 가을 아침을 맞이한 그는 자기도 모르게 명랑한 기분이 뜬 것 같다. 그러나 보배는 남편의 말을 다시금 새겨보았다. 과연 이 집엔 반가운 손님이라곤 찾아올 아무도 없었다. 하긴 친정에나 누가 있다면 보배에게는 그들이 제일 반가운 손님이 될 수 있고 이런 때에 그들이 왔으면 얼마나 반가우랴마는 홀로 있던 친정아버지마저 작고한 터이니, 다시 또 바랄 사람이 누가 있으랴.
그런가 하니, 보배는 새삼스레 자기의 신세가 여지없이 고달픈 것 같다. 그는 친정만 그런 게 아니라, 시집 역시 고단하다. 시집도 지금 사는 세 식구들뿐이었다. 먼 촌 일가는 더러 있다지만 그들은 있으나 마나, 어쩌다 몇 해 만에 한 번씩 다녀가면 고만이다. 하긴 만주 가서 산다는 그중 가깝다는 일가는 찾아오지도 않지마는……
그런데 시어머니는 벌써 오 년째나 속병으로 고롱고롱한다. 시어머니만 그렇지 않아도 집안 꼴이 이 지경은 안 되었을 것이다. 그 역시 가운이 불길하다면 고만이겠지만.
몇 해 전만 해도―이 산중으로 이사를 오기 전까지는 농사를 광작하고 소바리나 세웠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부질없는 짓을 한 것뿐이었다. 낫지도 않는 약을 쓰다가 빚구럭에만 들었기 때문이다. 그랬으면 집을 팔더라도 그 근처로 줄여 앉든지 하지 않고, 무얼 하러 이 산골로 피접을 온다고 들어왔는가. 시아버지는 봉황산이 명산이요 피난처로 유명하다고, 그전부터 이사를 못 가서 애를 썼다. 그래 그 좋은 월하감나무가 열 그루나 따른 가대를 뎅겅 팔아버리고, 강원도 오색이 물보다도 더 좋다는 이 산속을 찾아 들어왔다. 그러나 소득이라고는, 살림을 더욱 망친 것뿐이요, 병주머니는 그대로 처져 있다. 글쎄 약으로 못 고친 병을 맹물로 어떻게 고친다는 것인가?
그들은 명산을 찾아와서 산전이나 파먹고, 좋은 약물을 장복하면 병도 나을 것 같았고, 〔몇 자 판독 불능〕 재미도 있으리라 싶지만, 세상일이 어디 그렇게 뜻과 같이 되느냐 말이다.
하긴 이곳 물이 나쁘지는 않았다. 산중 물이 어디는 나쁘랴마는, 시어머니도 물을 갈아 자신 뒤로는 한동안 우선한 듯하였다. 그러더니만, 웬걸 몇 달 뒤에는 도로, 전과 마찬가지로 악화할 뿐인 데야…… 그게 무슨 까닭이었는지는 모르나, 보배의 생각에는 물 대신 밥이 나쁘기 때문인가 하였다. 이 산중에서야―큰절 중들은 모르지만, 누가 무슨 형세로 쌀밥을 먹을 수 있는가. 시어머니도 음식이나 잘 공양했더면, 그길로 병줄을 놓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성한 사람도 먹기가 어려운 조밥과 메밀 당수²만 우겨대자니, 아무리 물이 좋다기로 중병 든 노인이 어떻게 원기를 차릴 수 있으랴? 그는 날이 갈수록 낫긴커녕, 병은 점점 더 골수에 박여서, 인제는 호정출입¸도 못 하고 아주 몸담아 드러눕게 되었다.
2
“아이고…… 얘야…… 응! 끙…… 아무도 없나? 아이고…….”
보배는 그동안 무심히 서서 까치가 올라앉은 버드나무를 쳐다보고 있는데, 안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그것은 다 죽어가는, 실낱같은 음성이다.
‘와 또 뭐 할라꼬, 불르노. 원수놈의 병이 기어코, 집안을 망치고 말 게다! 두고 보랑이.’
보배는 속으로 쭝얼거리며 눈살을 찌푸린다. 그는 인제 고만 병 치다꺼리엔 몸서리가 쳐진다. 무슨 놈의 병이―그전 당골의 말과 같이 무슨 귀신이 붙었는지 참말 알 수 없다. 낫지 못할 병이거든 차라리 얼른 죽기나 하든지…… 이건 노상 한대중으로 성한 사람까지 달달 볶아가며, 무작정 끌어가는 것은 마치 무슨 심사로 부지깽이 하나도 이 집에 안 남기고, 죄다 없애는 꼬락서니를 보고야만 내가 죽겠다고, 부러 심청을 부리며 버티고 있는 것 같았다.
“아이고 야 야 나 좀…… 이…… 일으켜 도고…… 아이고…….”
목 안에서 가래가 가릉가릉 끓는다. 피골이 상련한 얼굴은 두 눈이 움푹 팽기고 반백이 넘어 센머리가 화투 보구니처럼 엉겨 붙었다. 그것은 대낮에 보아도 산 귀신같이 무시무시하다. 오랫 동안을 병객으로 있는 노파는 병꼴이 몸에 박여서, 성한 사람과는 아주 다른 어떤 이상한 체취와 분위기를 발산한다. 그는 해소병까지 겸했다.
“와 일어날라꼬, 가만 눕어 있지!”
“아이고·…… 가슴이 갑갑해서…… 나 물 좀 도고.”
병인은 두 손을 허공으로 저으며 어서 일으켜달라는 시늉을 한다.
보배는 그를 벽으로 기대서 일으켜 앉혔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서 끓이던 미음을 한술 떠다 먹이었다. 그는 미음도 잘 못 마신다. 욕지기가 나서 못 먹겠다 한다.
“느그 아버지는……장에 갔나?”
“네, 장에 갔대요.”
“아이고 약을 지어 오지 말라카지…… 그까진…… 약을…… 묵으면 뭘 한다꼬. 암만 묵어야 나…… 낫지도 않는걸!…… 원수의 귀신은 아! 아……다 뭘 하는지…….”
병인은 여기까지 간신히 말을 이어가다가, 고만 기침이 나와서 한바탕 콜록콜록 자지러진다. 그러더니만, 고만 기진한 듯이 자리에 픽, 쓰러진다.
보배는 한동안 어쩔 줄을 모르고 서서 보기만 하였다. 그가 쓰러지자, 이불자락을 덮어줄 뿐이었다. 병인은 죽었는지 아무 기척이 없다. 숨 쉬는 소리도 안 들린다. 그러나 보배는 별로 놀라지도, 무섭지도 않았다. 그는 그런 경험 이 많았기 때문이다.
일순간 그는 시어머니의 일생이 가엾다 생각해본다. 성한 사람이 고생을 하다가 죽는 것도 남들은 다 불쌍하다 않는가. 황차 저런 몹쓸 병을 오래 앓다가 죽으면 여북하랴 싶었다. 그러나 그는 일순간 그 생각을 자기에게로 다시 옮겨다 본다. 불쌍해 보이던 시어머니가 별안간 불공대천의 원수처럼 미워진다.
참으로 시어머니만 아니었더면, 집안은 살기도 넉넉했고, 병구원과 약시중하느라고, 이렇게 신역이 고될 것도 없지 않은가? 아니 그보다도 그는 먼저 살던 감나무골을 떠나서 이 산중으로 처량하게 올 까닭도 없었고, 청춘의 오륙 년간을 아무 경황없이 지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 생각은 보배로 하여금 별별 생각을 다 들게 한다. 어려서 같이 크던 동무들은 지금 다 잘되었을 것 아닌가? 그들은 제가끔 시집을 잘 가서 모두가 잘살 것만 같았다. 그런데 자기 혼자만 남모르는 고생을 하며 이 산속에서 처량히도 고목과 같이 썩는 것 같았다. 왜 하필 시어미 있는 데로 시집을 보냈을까? 그는 오늘날 자기의 신세는, 원수의 시어미가 똑 망쳐준 것만 같았다. 그런 줄 알았으면 왜 진즉 양잿물이라도 타서, 저 산 귀신을 몰래 못 먹였던가 하는 악독한 생각이 치받치기도 한다.
그러나, 보배는 다시 가슴을 진정하고 냉정히 생각을 돌려보았다. 아까까지는 모든 것을 시어머니 탓이라 하였지만, 과연 시어머니가 없었다면 자기의 신세가 나아졌을까? 그것은 물론 그랬을 것이다. 아니 그것은…… 그럴 것 같기도 하였고 또 안 그럴 것 같기도 하쐈카. 왜 그러냐 하면, 시어머니가 병나기 전에도, 그의 신세는 별반 나은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도 남편은 일 년 내 농사를 짓기에 허덕이었다. 자기는 안에서 그 뒤치다꺼리로 또 그러했다. 방아 찧고, 김매고, 밥 짓고, 빨래하고, 오줌동이를 이기에 도무지 눈코 뜰 새가 없지 않았던가! 고생되기는 그때나 이때나 일반이었다.
그렇다면, 자기의 일생은 누가 망쳤는가? 친정어머니는 일찍 돌아가고 완고한 아버지는 훈장질로 돌아다니다가, 근년에 작고했다. 보배는 그 아버지를 생각하면 뼈가 아프다. 그도 어려서는 남과 같이 잘 입고 잘 먹고 잘살아보자고, 이를 뼈물었었다. 그랬건만 인생의 기구한 운명은 부지중, 그의 찬란하던 젊은 꿈과 희망을 어디로 빼앗아갔다. 그리고 그 대신 지금은 이울어가는 꽃과 같은 시든 청춘에, 오직 아귀 같은 어린것을 두서넛 매달아서 이 산속에다 휙 내던진 신세가 되지 않았는가? 아, 과연 자기를 이 산중으로 집어 내던진 자는 누구일까?……
별안간 남편의 기침 소리에 정신을 차려보니, 그는 어느 틈에 밖으로 나와서 버드나무에 붙은 ‘겨우살이’를 맥없이 쳐다보고 섰다. ‘겨우살이’는 언제 보아도 신기한 생각이 든다. 지금도 그래서 무의식중에 쳐다본 모양 같다. 그것은 비록 미물이라도 자기보다는 훨씬 훌륭한 생활을 한다 싶었다. 다른 나무에 붙어서, 남의 진액을 빨아먹고 사는 놈이, 도리어 원나무보다도 싱싱하게 사철을 살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이상스러운 물건인가?…… 그래서 겨우살이는 기생초(寄生草)라는 별명이 붙었다 하거니와. 보배는 미물인 ‘겨우살이’만도 못한 신세를 다시금 애달파할 뿐이었다.
햇살이 차차 퍼지면서, 좌우의 우중충하던 산그늘이 활짝 걷어치우고, 맑은 추공(秋空) 위로 백옥 같은 태양이 번득인다.
봉황산 단풍은 자고로 유명했다. 그러나 교통이 불편하던 옛날에는 근처의 사람들과 시인 묵객이 간혹 찾아들 뿐이었는데 근년에 신작로를 내고, 자동차가 개통된 뒤로부터는, 명산을 찾아드는 먼뎃손들이 도리어 더 많아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해마다 단풍철이면 철도국에서는 탑승객을 이곳으로 유인하려고 머리를 쥐어짜는 모양이었다. 올해도 그들은 × ×도 내의 각 역마다 오색으로 인쇄한 선전 포스터를 내걸었다. 그것은 기생이 활옷을 입고 단풍 가지 밑에서 춤을 추고 있는 광경이었다.
산 밑까지는 정기로 두 차례씩 내왕하던 자동차가 요새는 네 차례를 통래한다. 그것은 철도국에서 직영하는 버스를 임시로 운전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봉황산은 단풍이 들기 전부터 각처에서 모여드는 탑승객으로 복잡하다. 나날이 붉어가는 단풍이 무르녹는 요즈음에는 더욱 그들의 발자취가 시끄러워서 날마다 이때쯤 되면 벌써 구경꾼들이 산 위로 치미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지금도 산 밑에서 자동차 소리가 뿡 하고 난다. 아이들이 그 소리를 듣고 모두들 쫓아 나간다. 자동차 왔다! 자동차 왔다! (순식이도 거기를 따라갔는가?)
산골 아이들은 구경꾼들이 먹고 내버린 사이다 병과, 미루꾸⁴갑과, 간쓰메⁵ 통과, 벌레먹은 실과 쪽을 마치 무슨 보물처럼 줍는 재미로 몰려간다. 그리고 어떤 날은 기생들이 춤추며 노래부르는 구경을 하기도 한다. 그런 때에는 희떠운 손님들한테서 먹던 과자 봉지를 재수 좋게 얻어볼 수 있는 횡재를 만나기도 한다. 보배는 순식이가 그런 것을 얻어 온 것을 보고, 처음에는 지청구를 하였었다. 그러나 지금은 내버려둔다. 그것은 다른 아이들이 모두 그렇대서뿐 아니라, 그런 자존심을 꺾인 지도 이미 오래전이기 때문이다.
그의 집은 바로 봉황사 큰절 밑에 있다. 좌우로 계곡을 끼고 앉은 개울 바닥 옆이었다. 물소리가 사철 귀에 떠나지 않는다. 먹을 건 없어도 경치만은 훌륭한 곳이다.
먼저 온 구경꾼들의 한 패가 절 위로 올라온다. 고요하던 산중이 별안간 떠들썩해진다. 앞뒤로 둘러싼 푸른 솔과 잣나무 전나무가 쭉쭉 뻗어 올라간 산허리. 그 사이로 동학을 이룬 골짜기마다, 무성한 수림이 마치 술 취한 군중처럼, 서로 얼크러지고 비틀어지고 한 거기에 또한 뻘겅 칠 노랑 칠을 해서 일면으로 시뻘겋게 빛나는 색깔의 아리따움은 참으로 무어라 형용할는지?…… 다시 그 위로 톱니 같은 연봉(連峰)이 하늘을 치받는가 하면, 땅 밑으로는 한 줄기 벽계수가 굽이굽이, 폭포를 매달고 옥을 부시며 떨어진다. 이때의 만산홍엽과, 맑은 공기와, 빛나는 하늘빛과, 산중의 청허(淸虛)한 정적과, 거기에 다시 그윽한 물소리와 문득 이름 모를 새소리의 반주는, 음향과 색채가 한데 어울린 위대한 음악이요 미술이요, 또한 장엄한 자연계에 누구나 머리를 숙이게 하는 무엇이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산을 명승지라 한다.
그러나 보배는 이런 경치를 무시로 보아야 아무런 감상이 나지 않는다. 그는 마치 다른 사람들과는 감정의 세계를 달리한 딴 나라 사람같이 보이는 것이었다. 그의 이와 같이 무딘 감정은 도리어 구경꾼들을 미친 사람으로 보았다. 요새 과연 그들은 단풍에 미친 것 같았다.
하긴, 그도 여기 와서 단풍의 장관인 결 처음 볼 때는 남과 같이 좋은가 보다 하였다. 그러나 그는 어느 틈인지 그런 생각은 없어져버렸다. 그것은 마치 그에게서 청춘과 행복을 빼앗아간 때처럼…… 인제는 그런 것과는 아주 상관없는 딴 남으로밖에 더 안 뵈었다. 그는 단풍을 구경할 돈이 있으면 차라리 옷 한 가지를 더해 입지 싶었고, 그만큼 저게 무슨 돈지랄들인가 싶었다. 그는 모
든 것이 시들해 보였다.
그동안 치수는 벙어리처럼 서서 도리깨질만 부지런히 하고 있다. 댓 마지기 논을 모처럼 지은 것이다. 워낙 마냥모로 심었지만 다 타버린 게 아주 모지락스럽게‘ 되어먹었다. 난쟁이 키 같은 홰기에 벼 알이 간혹 두세 개씩 붙었을까. 그래도 그것이 일 년 내 지은 농사라고, 베어들이긴 했다. 개상질⁷을 하기도 난중스러워서 펴놓고 검부러기째 뚜드리는 것이었다. 지주는 봉황사 중이었
다. 소작료는 간신히 반감을 시켰다. 그러나 논농사를 시작한다고 올해 공연한 생빚을 진 것이 이자를 합하면 이십 원이 된다. 그 돈을 갚을 일이 난감하다. 치수는 지금도 그 생각에 가슴이 뻐근하다. 그는 논농사를 지으면 셈평이 좀 나을 줄 알았는데, 올 같은 해에는 공연한 헛수고를 한 것뿐이었다.
점심 전에 한참을 쉬면서 담배 한 대를 피우자니까 누가 문 앞에 와 어른거리며 찾는다.
“주인 집에 있소?”
“누구요?”
치수가 나가보니 뜻밖에 그는 걱정하던 빚쟁이였다. 올봄에 돈 십오 원을 얻어 쓴 읍내 강주사 집 차인⁸으로 있는 김선달이었다.
“아! 영감님 나오십니까? 좀 들어오시지요.”
치수는 떫은 표정을 짓다가, 어찌할 수 없이 그를 마당 안으로 인도한다.
“부친은 어디 출타하였소.”
“저, 약 지으러 장에 갔습니다.”
“와 누가 병 났는데?”
“네 저의 오마니가 벌써부터 속병을 앓으십 니다…… 좀 들어앉어야 할 낀데 방이 더러버서 온……”
치수는 민망한 모양으로 둘러보다가
“참, 여기라두 좀 앉으시오.”
하고 짚 토매를 갖다 놓는다.
“아니 괜찮소…… 그런데 오늘 일부러 나오긴 당신도 알겠지만 그 차금 조간을 기한 안에 해야겠소…… 어련히 요량하겠소만, 그래도 미리 통지를 해두는 것이 좋겠고. 또 나중에 딴말이 있을는지도 모르니까…….”
“예 참 그런 줄은 잘 압니다…… 아버지도 매우 걱정을 하시면서 오늘 장에 이자라도 만들어가지고 한번 찾아가 보겠다고 합디다…….”
하고 치수는 불안한 듯이 머리를 긁는다.
“이자라니? 그건 안 될 말이고…… 본전을 다 받아야겠소.”
“그렇지만 이 나락 된 것 좀 보소. 이 통에다가 집에 앵화’까지 들었으니 시방은 아무 경황이 없습니다. 한즉 내년 가을로 좀 연기를 해주시오!”
치수는 부친 대신으로 이렇게 사정을 해보았다.
“그건 당초 안 될 말이라 카니 그래! 그까진 돈 십오 원을 내년까지 누가 미루겠소.”
김선달은 머리를 좌우로 흔든다.
“그렇지만 사정이 딱하지 않소? 더구나 올 같은 해에…….”
“그거야 당신 집 사정이지, 우리야 알 배 있소.”
치수는 허망한 웃음을 지어본다.
“그럼 어쩌겠소? 없는 돈을 각중에¹⁰ 변통할 수 있어야지요. 소작료도 못 치르겠는데요.”
“글쎄 그런 말은 소용없다니까! 인자 와서 무슨 소리요! 만약에 기한 안에 아니 물면, 지불 명령을 해서 재산 차압을 할 것이니 당신 부친한테 그렇게 말하소. 더 길게 말할 것 없이.”
“앙이 무엇?…… 차압을? 하…….”
“뭣이 무어라! 뻔한 일 아니가. 당신이 줄 수 없으면, 보증인한테 받아도 될 埈이니까…… 당신 집에서 물든지, 보증인이 물든지, 좌우간 기한 안으로만 돈을 갚으면 안 되오. 자, 그럼 난 가겠소.”
그러자, 김선달은 수대를 집어들고 휙 나간다. 치수는 그 당장 사지가 얼어붙은 사람처럼, 장승같이 한동안을 우두커니 섰을 뿐이었다.
3
빚쟁이가 개울로 건너가는 것을 바라보던 보배는 남편 앞으로 한 걸음을 선뜻 대들었다. 그러나 그도 말문이 콱 막혔다. 보배는 그들의 수작을 부엌문 안에 숨어서 낱낱이 듣고 있었다. 차압! 차압을 한단 말을 들었을 때는 사지가 금방 벌벌 떨리었다. 차압! 그것은 호랑이보다도 얼마나 더 무서운 괴물인가? 그는 자기의 친정에서나 시집을 와서도, 그 괴물 때문에 집을 빼앗기고, 솥단지를 떼우고, 풍비박산하는 이웃 사람들을 무수히 보아왔다. 그때는 그래도 남의 일이라, 가엾단 말이나 할 뿐이었더니, 아, 이 무서운 괴물이 자기 집 대문 안까지 들어올 줄은 뜻밖이었다. 그는 마치 사형 선고를 받은 죄수와 같이 두 눈이 뒤집히며 눈앞이 금시로 캄캄해졌다.
“여보 어쩌겠소?”
“뭘 어째여. 제길헐 당하면 당했지 별수 있나!”
치수는 그 아내와는 반대로 아주 무표정한 거동을 보인다.
“온!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오. 아이고, 이 산골로 들어와서 인제는 집까지 뺏기는가 부다. 장차 이 치운 겨울에 어디로 빌어먹어 나갈라꼬…….”
보배는 땅바닥에 가 털썩 주저앉으며 또 한 번 한숨을 내쉰다. 치수는 아무 말 없이 담배만 뻐끔삐끔 피운다.
“에이 빌어먹을 것 듣기 싫여. 청승맞구만……”
“방정맞은 놈의 까치! 난 누가 반가운 손님이나 온다꼬!…….”
보배는 애꿎은 까치한테 분풀이를 하려 든다.
“그러니 내가 뭐라쿠데! 우리 집에 빚쟁이밖에 찾아올 사람이 누가 있겠다고!”
치수는 자기의 말이 맞은 것이 신통해서 아내에게 오금을 박다가 제풀에 그도 웃음이 나와 싱그레 웃었다.
“당신은 뭣이 좋아서 웃음을 다 웃는교!”
“그럼, 웃음도 내 맘대로 못 웃을까. 체!”
치수는 담뱃대를 빼어들며 가래침을 탁 뱉는다. 집어 내던진 마음ㅡ되는대로 되거라, 새삼스레 겁 날 것도 없다 싶다.
“사람은 와 밥만 묵고 산다고 이 야단인가 몰라…….”
누구나 흔히, 너무 벅찬 힘에 눌릴 때, 그것을 항거하지 못하면 애상적으로 흐르기 쉽다. 보배도 지금 갑자기 센치해지며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시름없이 버드나무 고목을 쳐다보다가, 혼잣말처럼 이렇게 중얼거린다.
“흥! 밥 안 묵고 사는 건 귀신이나 있지.”
치수도 공연히 심사가 뒤틀려서 엇조로 말이 나간다.
“그럼 저으사리는 저렇게 가만히 붙어서도 잘 처먹고 살지 않나.”
“그놈은 남의 몸에 덧붙이기로 사는 놈이니까, 말할 것도 없지……”
치수는 또 한 번 가래침을 탁 뱉었다.
“덧붙이기라도 고생 않고 잘살기만 한다면 난 좋겠드라. 그런 생각을 하면 사람은 저으사리만도 못하지 뭐!”
“넌 그럼 이담에 죽걸랑, 부처님한테 저으사리가 되게 해돌라 카라믄!”
“누가 이담 말인가, 지금 말이지!”
보배는 남편에게 눈을 흘긴다.
“그 대신 지금은 일을 많이 하지 않나. 이 세상에서 일 많이 한 사람은 죽어서 천당 가고 극락 간다더라.”
“아이가! 어느 시러배 친구가 그럽디까?”
보배는 남편의 말이 같잖아서 웃음이 나오곤 말았다.
“누가 그래여 다 그러지. 그럼 일하는 게 나쁘다는 사람은 누가 있던가? 이 세상에 일해서 나쁘다 카는 사람이 하나나 있는가 보지!”
보배는 남편이 들이대는 말에는 대답이 막힌다. 그러나 그 말은 옳은 듯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수긍되지 않는 점이 있다.
“그럼 와 판판 놀고서도 잘사는 사람이 있고, 일하기보담도 놀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더 많은교?”
“흥 그건 저으사리 같은 사람들이라!”
치수는 무심히 이런 말이 혀 위로 떠올랐다. 그것은 자기도 무슨 의사로 한 말인지 모른다. 그래 그도 버드나무 위를 쳐다본다. 그러나 보배는 남편의 지금 말이 머릿속을 번개같이 환해놓고 지나갔다.
―겨우살이는 아무 나무나 높다란 가지에 붙는다. 그러고 그것은 흠집 있는 가지만 골라 붙는다. 그놈은 그런 가지의 흠집에다 제 씨를 붙여서 키운다. 그래 그놈은 원나무의 진액을 빨아먹고 살아간다. 따라서 그놈은 뿌리가 없다. 뿌리가 있어야 소용없다. 왜 그러냐 하면 남의 뿌리에서 올라오는 진액을 얻어먹고 붙어살기 때문에. 그래서 이놈을 꺾어보면, 대 밑동이 원나무 가지에 붙었다가 그대로 살점이 묻어나서 떨어진다. 그것은 마치 원나무 가지를 꺾은 것과 같이 붙어 있던 자리에 생채기를 나게 한다. 한데 이놈이 사철 살아서, 지금같이 낙엽이 지는 가을에도 이놈은 시퍼런 잎사귀와 노랑 구슬 같은 열매를 맺고 있다.
보배는 이런 생각이 들자, 이 세상에서 놀고도 잘사는 사람들은 과연 이 ‘겨우살이’와 같지 않은가 하는, 신기한 생각이 들기 때문이었다.
“그럼 또 일하는 사람은 뭣 같을꼬?”
보배는 남편의 엉뚱한 말에 잠깐, 현실의 자기를 잊고 동화(童話)의 나라 같은 꿈속을 더듬는다.
“당신같이 일하는 사람은 돼지! 하하·…….”
“뭣이라?”
보배는 주먹을 둘러멘다.
“안 그런가 보지. 돼지는 밤낮 코로 땅을 쑤시며 먹을 것만 찾지 않에? 그러니 돼지 아니고 뭐이라.”
보배는 무슨 말을 하려다가 생각이 잘 안 나와 고만두었다. 그리고 남편은 마치 술 먹은 사람처럼 농담하는 듯하는 통에 상대하기가 싫어졌다. 그러나 그의 한 가지 의심은, ‘겨우살이’도, 돼지도 아닌 사람이 따로 있을까? 함이었다. 하긴, 그런 사람이 있어야 정말 옳은 사람일 것 같기도 하였다.
그는 부엌으로 들어가서, 남편의 점심을 주려고 조밥덩이 ―조, 보리, 팥이 절반씩 섞인 삼위일체를 솥 안에 넣고, 푹푹 삶았다.
4
그 후 며칠 뒤 치수의 부친 서노인은 십오 원 차금에 대한 변리를 간신히 변통해가지고 읍내로 들어갔다. 그길로 강주사를 만나보고 비진¹¹ 사정을 해보았으되, 그들은 예상했던 바와 같이 두말도 못하게 거절하였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아내의 병은 점점 덧쳐만 간다. 암만해도 그는 이 겨울을 못 넘길 것 같다.
보배는 귀찮은 생각만 나서 그전에는 시어머니가 어서 죽기를 남몰래 축수하였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딱한 형편에는 그가 죽을까 봐도 겁이 난다. 죽으면 더 큰일이다.
빚은 몰리고 먹을 것은 없는데, 초상마저 나면, 장례를 어떻게 치러내느냐? 이왕 병줄을 오래 끌었으니, 내년 가을에 농사나 잘 짓거든 돌아가주었으면 하였다. 아닌 게 아니라 제발 그래줍시사고 그는 심중으로 무수히 빌었다.
그래 그는 남편과 완고한 시아버지를 우겨서 큰절로 불공을 가보았다. 그것은 지주 되는 중의 말에, 이 절 밑으로 들어와서 부처님 은혜로 사는 사람들이 불공 한번을 안 올리니 무슨 병이 나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미상불 그 말에 찔리기도 하였다. 인제는 약을 쓸 돈도 없으니, 정성이나 드려보자는 최후로 바라는 마음에서 그러 하였다.
보배의 이기적인 그런 정성에는 부처님이 감동할 리도 없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난치의 병근이 박인 것을 불공을 한다고 나을 턱이 없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빚 갚을 걱정하랴, 병인을 간호하랴, 정신이 없는데, 거기에 또 산 입을 풀칠할 것까지 다급하니, 이야말로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할는지 모르겠다. 보배는, 저녁마다 이 밤이 영구히 새지 말았으면 하였다. 그것은 날이 밝으면, 조석을 끓일 걱정이 크기 때문이다.
그렁저렁하는 동안에, 빚 갚을 기한은 닥쳐왔다.
보증을 선 이웃집 박서방도 안팎으로 드나들며 애를 바글바글 태운다. 그러나 그들은 무슨 수로 이십여 원을 장만하는가? 그들은 지주에게 소작료를 내년으로 미루어달라고 간청해보았다. 지주 편에서는 사정은 딱하지만 절반이나 감한 것을 금년에 못 받으면 되느냐 한다. 그러니 거기도 할 말 없고, 다른 수는 도무지 없다.
그렇다고 보증인에게 물릴 수도 없었다. 보증을 선 박서방도 물론 가난하지만, 설사 넉넉한 형편이 되더라도, 남의 빚을 물어줄 사람이 누가 있는가.
그것도 본인이 정히 갚을 수가 없다면, 채권자에게 졸리어서라도 대신 무리꾸럭을 하겠지만, 명색 집칸이라도 지닌 터에 그럴 수도 없는 일 아닌가.
그래서 치수는 부친과 의논하고 집을 잡히든지 팔아서 빚을 청장하자 하였다.
집을 판다는 말에 누구보다도 먼저 보배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날은 차차 치워가는데, 집을 팔면 어떻게 살라꼬. 여러 식구가 어디서 잔단 말이오…… 내사 모르겠소!”
보배는 토라져서 남편에게 역정을 내며 대들었다.
“아니 또 집을 잡힌다면 그 돈 변리는 누가 갚겠노! 공연히 헐값으로 잡혔다가 이자도 못 물고 보면 집만 날라갈 것이니 내 말은 차라리 돈이나 더 받고 팔아버리자는 게라! 사정이 안 그런가?”
부친은 그들의 말을 들으니, 두 편 말이 다 옳았다. 그것은 어느 편을 들어야 할는지 모르겠다. 그래 그는 검다 쓰다 말이 없이 오직 담배만 피우고 앉았다. 생계에 아무 능력이 없는 노인은, 젊은이들의 의사에 맡길 수밖에 없다는 듯이.
“그렇지만 당장 용신할 데도 없으니 답답하지 않소.”
보배는 최후까지 우겨본다.
“그건 어떻게 변통할 수도 있겠지.”
“모든 변통을 한단 말이오? 백주에 택도 없이…….”
“무슨 택이 없다노? 내 말 들어보라니…… 집은 팔랴면 당장 팔 수가 있겠는데, 집 내놓는 걸 내년 봄까지 미루자고 할라는구만…… 그런다면 내년 봄까지 있다가 이 집을 내놓게 되거들랑 그때 가선 또 어떻게 하든지 임시변통을 할 수 없겠나!…… 혹시 만일에 그때 가서도 별도리가 없다면 말이다, 뉘 집 곁방을 얻어 들더라도…… 또 박서방한테라도 방 한 칸 빌려돌라 카면 안 빌려줄까니? 세 개나 방을 쓰면서…….”
“그야 그렇지만…….”
이리하여 그들은 집을 아주 팔기로 결정하였다. 치수의 말대로 집을 아주 판다면, 빚을 갚고도 몇십 원 떨어진다. 그러면 그 돈으로 무슨 대책을 세우자는 것이었다.
남편의 이런 심중을 모르는 보배는 초조한 가슴을 쥐어뜯고 있었다. 그는 절박한 사정으로는, 집을 부득불 팔아야 되겠고 그래서 자기도 동의를 하였지만 막상 최후로 그렇게 작정하고 보니 서러운 생각이 북받친다. 인제는 집도 절도 없는 신세가 되었는가? 아니 그보다도 이 집을 쫓겨나면 여러 식구들이 당장 어디 가 의지를 한단 말이냐! 명산을 찾아왔다 집도 없이 되었구나! 그래 그날 밤에 보배는 아이들을 재우고 나서, 남편의 의사를 또 한 번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인제는 아주 멱이 찼다. 죽든지 살든지 양단간 무쏜 구정을 내어야 할 최후의 막다른 골목이 닥쳐 왔다.
“집을 팔고 나면 그래 어쩌겠소? 그까진 돈 얼마 더 받는다 한대도 입에 묻은 밥티로 며칠꺼정 가겠능교? 그럼 그 뒤는 어찌한단 말이오. 병든 어무이와 어린 새끼들하고…… 식구나 한둘이래야 얻어나 묵는다 카지……”
“그러기에 나도 생각한 바가 있거든. 집을 팔고 나면 그 일을 당신과 의논하자고 마음을 묵고 있는 터야!”
치수는 전에 없이 침착히 말을 꺼낸다.
“아니 어떻게 할 작정으FH?…… 인자 조용하니 좀 예박(이야기) 해보소!”
보배는 남편의 턱밑으로 바짝 달려들었다. 참으로 그는 무슨 수가 있는가?
치수는 한참, 침울한 표정으로 희미한 등잔불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무슨 결심을 간단히 한 모양이다. 이윽고
“나는 노수¹²를 장만해가지고 집을 떠나겠소!”
한다.
“아니! 뭐? 집을 떠나다니, 어디로요?”
보배는 남편의 의외의 말에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 데나 돈을 좀 벌러 가보지. 만약에 조선에서 돈을 몬 벌게 되면 만주라도 가볼밖에…….”
“뭐, 만주?”
남편은 점점 더 놀라운 말만 하지 않는가.
“와, 만주는 몬 가 사는가? 만주 가면 쌀밥 묵는다더라!”
“만주는 좁쌀 곳이라던 데?”
“조선 사람이 들어가서는 쌀농사를 짓는다 해.”
쌀밥! 지금의 보배로서는 이 얼마나 행복스러운 소리냐? 아이들은 벌써 언제부터 쌀밥을 먹어지란 소원이었다.
치수는 느럭느럭 다시 말을 잇는다.
“전엔 만주라 카면 나도 조선 안에서 굶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안 갈라 캤지만 지금은 영판 달라졌다더라. 그러니, 오늘날 이 지 경에 어디 간들 몬 살겠노. 아무 데나 살 수만 있으면 뿌리박고 살지.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꼬, 먹을 것 없는 이 산속에서 경치만 좋으면 멀 하겠노. 그러니 아버님이 이리로 들어오자고 할 때도 나는 애초부터 반대했거든! ―그것은 당신도 그때 그랬지만―짐승은 산중으로 가고 사람은 대처로 가라 캤는데 황차 지금 같은 개화 세상에서 산중으로 들어가면 무슨 수가 있겠노 했지만, 이곳은 물이 하도 좋다기에 나는 어무이 병환이나 낫기를 바라고 그 하나 때문에 안 그랬던가……인젠 그 소망도 없이 집도 절도 없이 되었지만……! 그러니 나는 벌이를 나갈 수밖에 없는데…… 내야 튼튼한 몸이 어딜 간들 설마 내 한 몸 감당 몬 하겠소마는 집에 있는 당신을 생각하면 떠나잔 맘도 잘 내키지 않소. 그러나 어찌겠노. 고시란히 앉아서 굶어 죽길 기다리는 것보담은 무슨 짓을 해서라도 살아야 하잖겠소? 그러니 내사 나가서 몇 달이 되든지 간에 당신을랑 그동안 고생을 참아가며 내 소식을 기다려주소! 여러 식구를 당신 한 몸에 떠맡기고 가는 것 같아서 안 되었지만, 설마 한 달에 다만 몇 원씩이야 몬 보내겠소. 한 달에 오 원씩 만 보내준다 캐도 그냥지냥 목숨은 부지할 게니까…… 만약 그것도 여의하게 안 된다면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만주로 들어가보겠소. 그전부터 살 수 없걸랑 들어와 농사를 지어보란 일가 사람이 북만주에 사는 줄 아니까, 나는 그 사람이라도 마주막 찾아가겠소.”
어느덧 남편도 눈물이 글썽 하니 말을 그치며 한숨을 내쉰다. 보배는 가슴이 콱 결린다. 그것은 남편의 말이 마디마디 폐부에 찔리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만일 남편이 그런 결심만 갖는다면 나도 어떠한 고생이든지 참고 기다리마. 나도 몸이 성하니 무슨 장사인들 못 할 게 무엇이냐! 인제는 체면이니 양반을 찾을 시절도 아니다. 그렇다! 무슨 장사라도 해보자. 남들이라고 다 사는데 왜 우리만 못 살 것인가. 땅이 두 쪽이 나더라도 끝까지 살아보자!
“당신이 정말로 그런다면 나도 집에서 무슨 짓을 해서라도, 기다리겠어요. 감 장사를 하든지, 도토리묵 장사를 하든지…… 그래서 어디든지 살 수만 있다면 당신을 쫓아가겠어요. 만주는 말고 대국이라도!”
보배는 남편의 말에 뒤를 이어서 자기도 이렇게 감격한 말로 부르짖었다. 그러고 나니 그들은 전에 없이 새 용기가 난다. 그들은 마치 생활의 새 출발을 시작하는 희망과 기쁨과 용기가, 자신도 모르게 용솟음치는 것이었다. 그래 그들은 마치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와 같이, 남모르는 희망을 품고 명일의 새 생활을 동경하고 있었다.
5
며칠 뒤에 치수는 예정대로 집을 팔았다.
그는 시세보다는 약간 헐값을 받았다. 그것은 첫째 속히 팔게된 원인도 있었지만 몇 원간 더 받을 자옥¹³도 고만두었다. 왜 그러냐 하면 거기는 집을 속히 내놓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팔십 원이나 받았으니 큰돈이다. 그래 치수는 그 돈으로 우선 빚진 돈과 산 밑 가게의 외상값을 모조리 갚아버렸다. 장래 사는 어찌 되었든지 그들은 무거운 짐을 벗고 나니 시원하다. 그랬어도 오십 여 원 돈이 남아 있다.
그런데, 마치 돈 생긴 싹수를 잘 보았다는 듯이, 돈 쓸 구멍이 뜻밖에 생기었다.
치수는 옷을 해 입고 며칠 뒤에 집을 떠나기로 하였는데, 모친의 병세가 갑자기 더해진다. 서두는 품이 암만해도 이번에는 무슨 일을 당할 것만 같다.
그래 치수는 하루 이틀 미뤄가며 동정을 살피고 있는데, 하룻밤은 밤새도록 기침을 되우 하더니만 그 뒤로는 아주 인사불성이 되었다. 그들은 망지소조¹⁴했다. 최후로 약을 또 써보았다. 그러나 다섯 첩 약을 다 써보기 전에 모친은 마침내 한 많은 일생을 떠나고 말았다.
뜻밖에 상사를 당한 그들은, 며칠 동안은 또 정신을 못 차리게 되었다. 서노인은 간단하게 상포를 준비해서, 그 아내를 이튿날 불식 (佛式)으로 화장을 지내었다. 그 바람에 돈 몇십 원이 쑥 들어갔다.
궂은일을 치른 집 안은 더욱 쓸쓸하였다. 살았을 때는 죽기를 바라던 시어머니라도, 인제 턱 죽고 나니 불쌍하고, 잘못한 것이 후회된다. 그러나 보배는 은근히 시어머니가 내 집에서 돌아간 것을 감사하였다. 참으로 내년 봄에 아들도 없고 집도 없이 쫓겨난 뒤에 큰일을 당한다면 어찌할 뻔했나? 죽은 영혼인들 그러면 얼마나 서러울 것이며, 산 식구인들 또 얼마나 참혹한 경상이랴!
보배는 남편의 바치저고리 한 벌을 새로 몰래 꾸몄다. 치수는 장사를 치르고 남은 돈에서 노수로 할 오 원만 떼놓고, 몽땅 아내에게 맡겼던 것이다. 헌 옷은 한두 벌 있지마는 타관으로 나가서 더구나 노동판을 쫓아다닐 것을 생각하니, 아무래도 튼튼한 새옷이 필요할 것 같다. 그것은 돈이나 넉넉하다면, 당장 사 입을 수도 있겠지만, 겨울철에 더군다나 무슨 벌이가 있다고, 옷 사 입을 여유가 있으랴! 밥은 한때 굶더라도, 옷주제는 성해야만 우선 남 보기에도 궁상이 없어 보인다고……
그래 그는 축낸 돈은 자기가 물어놓을 셈 잡고 남편 몰래 무명 한 필을 끊어다가 바지저고리 한 벌을 새로 지었다. 하긴 상중이 아니라면, 아래위를 깜장 물을 들이려 했던 것을 할 수 없이 흰옷으로 그냥 지었다.
이럭저럭 모든 준비는 다 되었다. 치수는 집상을 할 형편도 못 될 바에야 하루바삐 떠나고만 싶었다.
남편의 떠난다는 일자가 임박해짙수록 보배의 마음도 그에 따라 설렁 여간다.
헤어질 일을 생각하면, 그이를 꼭 붙들고 싶다. 그러나 집안 형편을 생각하면, 어서 보내고 싶다. 그는 이렇게 무시로 두 가지 마음에 번롱되었다.
치수가 떠나던 전날 밤, 보배는 눈 한번을 안 붙이고 곱다랗게 새웠다. 그것은 그의 남편인 치수도 그러했다. 그들은 서로 떠난 뒤에 앞일을 생각하니 아득한 장래가 안개가 낀 것 같다. 어쩌면 피차간 무슨 수가 생겨서 불과 몇 달 안에 서로 만날 것도 같고, 어쩌면 또, 그와 반대로 이 길이 아주 영구히 갈리는 최후가 아닌가도 싶었다.
“편지나 자주 하고 몸조심하소이.”
보배는 오늘 하루 동안에도 열 번은 더 이 소리를 하였으리라.
“그래 내 걱정은 말고, 당신이나 아버님 모시고 아이들과 잘 지내소.”
남편도 그와 마주 이런 말을 주고받았다.
어느덧 이 밤도 밝아오나 보다. 큰절에서는 새벽 예불을 드리는 종소리가, 뎅뎅 울려온다.
보배는, 어린것을 남편의 자리 위로 밀어 뉘고, 가만히 일어나서 치마를 입었다.
그는 남편이 먼 길을 떠나는 새벽밥을 지어야 한다. 남편은 여기서 백 리를 걸어서 ○○ 정거장을 당일에 대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오래간만에 쌀밥을 지어본다. 아침거리를 떠 가지고 부엌으로 나갔다. 바깥은 아직도 캄캄하다. 새벽 공기는 쌀쌀하게 품안으로 스며든다. 그는 잠을 안 잤어도 조금도 졸리지가 않다. 정신은 오히려 또랑또랑해진다. 그리고 알지 못할 가냘픈 피로와 흥분이 그의 정신을 휩싸고 흐른다.
그들은 해가 돋기 전에 아침을 다 같이 먹었다. 아이들도 깨워서 떠나가는 아버지와 마지막 인사를 드릴 겸 밥상 앞에 느런히 앉혔다. 일곱 살 먹은 순식이, 네 살 먹은 태식이―그들은 졸려서 눈을 비비고, 하품을 친다. 그는 어제 받아 온 술을 부친에게 올렸다. 무언중에 그들은 비극적 작별을 이렇게 하고 있었다.
치수는 아침을 먹고 나자, 옷 보따리를 둘러메고 나섰다. 아직도 해는 뜨려면 멀었다.
그는 부친에게 하직 절을 하였다. 그리고 아이들의 머리를 하나씩 하나씩 따로 쓰다듬으며
“할배랑 느그 음매 말 잘 듣고 잘 있그라이!” 하였다.
그가 문밖으로 나서자, 식구들은 죄다 따라 나왔다.
“아배! 갔다 오이소이!”
보배는 자기 대신으로 아들에게 인사를 시켰다.
“응! 그래!”
보배는 남편이 개울을 건너가서 그림자가 다 사라지도록, 삽짝문에 우두머니 붙어 섰었다.
“아!……”
그는 가냘픈 한숨을 또 쉬었다.
그리하여 치수는 이날도 ‘겨우살이’ 같은 구경꾼들이 봉황산으로 단풍놀이를 하러 들이미는 자동차 길을 한옆으로 비키면서 봇짐을 짊어지고 먼 길을 떠났다. 집에는 어린애들과 젊은 아내와 늙은 부친을 두고, 그리고 지금은 영혼이 되어서 어디로 떠나가 있는지 모르는, 모친의 임종하던 광경을 눈앞에 그려보면서……
그러나 그들은―떠나보낸 아내나 떠나가는 남편이나―절망하진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생활의 재출발을 위하여 전에 느끼지 못하던 명일의 희망에 불타고 있었다.
이날도 일기는 명랑하였다.
-끝-
2016년 6월 21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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