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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
<제 6장> 글로벌 역사상 최악의 금융의기
2006년 ~2007년 10월 부동산 가격이 상승을 멈춤. 축제를 벌이던 각 가정들이 위기를 감지하고 실수요를 숨막하게 줄이기 시작. 북대서양 주변국가들의 경제가 불경기로 접어든 것이 확연히 보임. 원래 이론적으로는 금융공학 이론이 이런 위험들을 적절히 분산해 경제전반에 걸쳐 흡수해야 했지만 치명적인 위험요소들이 그림자금융 시스템의 가장 취약한 일부 연결고리에 집중되어 있었음.-영세 모기지 대출업체들이 위기에 처함.
2007. 1. 3 메릴린치 증권화사업에 모기지대출을 공급하던 오운잇모기지솔루션스 파산 신청
위기 상황이 먹이사슬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2007. 2. 8 홍콩, 상하이, 런던에 지사를 둔 HSBC가 모기지투자 관련 손실을 위해 106억 달러 준비한다고 발표
2007. 3. 7 그때까지 상황을 낙관하던 벤 버냉키. 서브프라임 대출문제는 곧 진정될 꺼라고 발표
4. 서브프라임 대출만 전문으로 취급하는 업체중 가장 규모가 큰 뉴센츄리파이널 파산→
5. 스위스 초대형 은행 UBS가 DRCM이란 이름으로 진행하던 헤지펀드 사업 접겠다고 발표
6. 22 베어스턴스 MBS(주택저당증권)으로 큰 손해를 입은 펀드사업에 대하여 구제금융 신청
7. 29 독일게 소규모 대출업체 IKB 구제금융 지원받음
8. 8 독일 지방은행 베스트 LB 부동산 펀드에서의 손실로 지급중단선언
며칠후엔 작센도 지급중단 선언 ...
2007. 8. 9 BNP파리바 편드사업 3개에 자본 동결
미국 증권화 시장의 일부 부문에서 일어난 유동성 증발로 일부자산의 품질이나 신용평가가 어렵다고 이유를 댐. 담보가치를 측정할 수 업으면 담보로서의 가치가 없어짐 → 대규모 금융위기의 시작을 알려주는 신호탄.
그러자 8.9일 정오무렵 은행간 자금시장 차입비용이 껑충 오름. →장클로드 트리셰와 유럽중앙은행 동료들은 저이율로 자금 무제한 공급 8.9일 948억 유로. 8.10일 500억 유로→ 벤 버냉키와 헨리 폴슨도 이때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
가디언지 금융시장의 8월 9일은 세계 제 1차대전이 일어난 1914년 8월 4일의 재현이다,,
9. 14 영국 최대의 모기지업체 중 한 곳 노던록 파산. 뱅크런. 안보이는 곳에선 1조 달러규모의 자금시장이 무너지고...
노던록의 자금조달방식 80%이상을 예금이 아닌 도매자금시장, 즉 글로벌 화페시장에서 낮은 금리로
노던록 사태는 영국의 과열된 주택시장 거품이 만들어낸 산물이었지만 미국 서브프라임 대출상품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었다. 그러나 자금조달 시장자체가 서브프라임 대출상품을 취급하는 은행들과 일정하게 엮여있었다. 8월 9일 사태로 인해 은행간 대부시장과 ABCP시장거래는 중단되고 거래가 멈추자 증권화사업 전체가 흔들였으며 특히 ABCP 발행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해온 유럽쪽이 크게 타격받았다. 9월 13일 BBC가 관련사정을 보도하고 정부가 예급보장문제를 언급하며 위기를 공식적으로 언급하자 뱅크런 시작. 노던록의 파산은 그동안 공급하던 전산망의 자금들이 뒤로 물러나면서 그냥 무너져내렸다.
※ABCP는 그림자 금융중에서도 가장 약한 고리
ABCP는 자산유동화를 목적으로 하는 특수법인(SPC)이 매출채권, 오토론, 회사채, 자산담보증권(ABS), 주택저당증권(MBS) 등을 담보로 발행한 기업어음(CP)을 말한다. 회사채와 달리 금융당국의 감독을 받지 않음(우리나라의 경우).
Repo매매는(환매조건부 채권매매) 담보로( 완전히 보증이 된 대출이기 때문에 안전해 보였다.
(※주로 금융기관이 보유한 우량회사가 발행한 채권 또는 국공채 등 상대적으로 안정성이 보장되는 장기채권을 1~3개월 정도의 단기채권 상품으로 만들어, 투자자에게 일정 이자를 붙여 만기에 되사는 것을 조건으로 파는 채권)
그러나 2007년 1/4분기, 규모가 작은 베어스턴스가 모기지증권화 사업으로 인해 최초로 적자가 나고 그것만으로도 어음거래가 제한을 받기에 충분. 베어스턴스는의 ABCP발행규모는 2006년 말 210억 달러에서 1년후 40억 달러 떨어짐. 처음에는 Repo관련 자금조달을 690억 달러에서 1020억 달러로 늘임으로 부족분을 충당했다, 2008년 3.10 까지도 여전히 180억 달어어치의 초유동성 초우량증권을 보유했지만 이내 이것도 어려워지기 시작함.. 망해가는 은행이 보증하는 담보권을 받아들이고 싶어하지 않았기 때문. 2008년 모기지 대출부실이 다시 시장을 강타했을 때 헤지펀드들은 자금전담 중개업무 관련계좌를 정리하기 시작했고 양자간 Repo시장에 높은 헤어컷을(증권회사가 소유한 증권의 평가절하 . 증권회사가 소유한 순자산 가치를 평가하는 과정에서 그 가치가 하락한 증권의 장부가치를 현실화하는 것.) 적용했다. 3월 초만 해도 적격담보만 있으면 하루에 1000억 달러 정도의 차입이 가능했지만 은행들도 더는 자금을 융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름. 베어스턴스에 2008. 3.13일 남은 자금 20억 달러. 그 다음날부터 Repo중 140억 달러의 만기 연장 불가. 심각한 유동성 위기. 현대방식의 은행 파산. 3,13일 긴급구제금융 공식신청. 3.16일 J.P모건이 인수
-베어스턴스가 파산한 건 사업에 대한 의구심이 도매자금시장에서의 자금조달을 가로막았던 것.
더 심각한 일은 불확실한 전망이 취약한 개별은행들에서부터 전체 금융시스템으로 퍼져나간 것. 6월이 되자 양자간 Repo시장의 헤어컷이 엄격하게 적용되어 모든 자산, 그리고 모든 거래처에 전반적으로 확산되어 감. 발행된 채권을 유지하기 위해 요구되는 자본금 총액이 급상승했으며 은행업무 전체에 영향을 미침. -투자은행들에게 커다란 압박.
그다음 타자는 리먼브라더스. .리먼은 월가의 주류 금융업체가 되기 위해 부동산에 엄청난 승부를 검. 2008년 주식가치 73% 떨어짐. 대출업체들의 추가담보요구 .9.월 9일 보유자산까지 담보로 제공했지만 신용평가 하향. 주가는 다시 떨어지고 다시 헤어컷 상승. 9월 15일 파산
그 다음 AIG
금융상품부서 (AIGFP)파생생품 시장의 새로운 강자등극. 2007년 한해에만 파생 상품으로 계약한 거래규모는 2조 7000억 달러
2005년부터 CDS(신용부도 스와프)상품발행은 중단.
그러나 AIG를 위협한 건 부동산시장에서 천천히 다가오는 위기가 아니라 채무불이행과 담보압류라는 거대한 눈사태. 금융시장은 재빨리 가치재평가를 시행했고, 신용평가가 하락하자마자 즉시 마진콜을(자본확충요구) 요구.. 이들은 관련부동산가치가 하락하더라도 어음 계약대로 다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추가담보를 요구.
여기에 더하여 AIG의 증권대출사업부서가 민간발행 MBS에 투자한금액이 450억 달러나 됨
※골드만삭스는 금융시장 위기에 MBS에 대한 대규모 공매도 포지션. 그 거래중 상당수는 AIG에서 구매한 CDS.
신용등급이 다시 하향조정이 되고 마진콜 요구는 빗발쳤으며 9월 16일 아침 파산직전까지 감.
MMF시장
MMF시장에서 가장 오래되고 신뢰도 높은 상품중 하나인 리저브프라이머리펀드
620억 달러의 수탁고를 자랑하던 이 펀드는 2007년 엄청난 경쟁압박에 시달리다가 보유자금의 60%를 경쟁사들이 철수한 ABCP시장에 쏟아부음. 급전이 필요한 대출자들이 모여들어서 수익률이 그 전 해 하위 20%에서 상위 10%로 상향, 자산은 1년만에 두배로 상승.. 일부가 고수익을 보장하던 리먼의 ABCP에 투자되었는데 9월이 되자 이 ABCP의 가치가 폭락. 실질적인 손실은 크지 않았으나 안전을 추구하는 투자자들이 5000억달러를 MMF에서 빼내 미 재무부 채권으로 옮김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자금시장은 위기상황으로 치달았다. 양자간 Repo시장에서 사용되는 저품질의 불량 담보물의 헤어컷지수는 안그래도 25%로 높았는데 2008년 여름에는 45%까지 상승. 이로 인해 투자은행들이 고품질 우량증권을 그대로 보유하기 위해 동원해야하는 자금의 총액이 두배로 늘어남. 골드만삭스도 위험. 그러는 사이 투자금은 안전한 투자처를 찾아 계속해서 다른 곳으로 빠져나갔고 다른 분야나 상품들에서도 자금이 이탈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미국에서 일반은행과 투자은행, 헤지펀드, MMF등이 대형사업체들에 공동으로 대출해주는 신디케이트론의 규모는 2007년 2/4분기에는 7020억 달러 였지만 2008년 4/4분기에는 1500억 달러로 즐어듬. 대출이자는 23%까지 올라감주로 .→ 대출기피현상 기피 →모든 산업활동 위축.
ABCP, Repo, MMF , 그리고 AIG의 CDS상품들이 하나같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그 충격파는 이제 미국을 벗어나 더 넓게 퍼져나감.
MMF가 가장 선호하는 투자처는 유럽은행들의 채권, 채권발행은 유럽의 거대 은행들이 달러화 자금을 마련하는 중요한 방법이었다. 만일 유럽은행들이 적절한 비용으로 달러화를 조달할 수 없다면 다음 수순은 자산 정리. 그러나 그런 수천억 달러의 가치가 있는 자산을 처리할 시장자체도 존재하지 않았다.,
2008년 9월 16일 리먼 파산 다음날. 연방공개시장 위원회(FOMC)는 AIG보다 유럽사태를 더 중요한 안건으로 논의. 안전자산으로 철수를 마친 J.P모건도 모든 투자은행들이 파산할 때를 대비하며 긴장,. 그러는 사이 대서양 건너편 유럽에선 모든 은행들이 위기에 직면했다. 영국의 HBOS와 RBS. 베네룩스 3국의 포르티스와 덱시아. 독일의 하이포리얼에스테이트, 그리고 엥글로아이리시뱅크. UBS, 크레디스스위스등.. 거래가 중단되면 그냥 무기력하게 무너진다.
<미국의 자동차산업의 비명과 살인적 실업률>
대서양 양안의 대륙에서 실물경제활동 위축. 투자와 소비의 심각한 위축과 실업사태
대출부문이 주저 앉고 금융위기와 관련이 없는 일반 기업과 가계로 위기 확산, 10~15%의 성장세를 보이던 유로존 대출사업은 신규대출을 전혀 하지 않는 지경. 유럽의 성장을 가로막은 건 2010년 국가 부채 위기가 아니라 2008년 북미 중심의 금융위기.
신규모기지 대출이 줄어들자 주택시장 침체 가속화 . 미국 경제 침체, 소비침채. 생산과 공급줄고 실업문제 발생, 2008년 12월 크라이슬러와 제네랄 모터스 파산 거의 확실, 2008년 11월 GM 미국 정부에 구제요청. 2009년 여름 파산 상태. 영국과 독일의 자회사, 멕시코에 세운 부품회사 모두 어려워짐, 일본의 도요타도 2009년 70년만에 영업손실 기록.. 히타치도 78억 7000만달러의 영업손실 기록. 일본경제도 20%이상 규모가 줄어듬. 중국, 타이완, 한국 모두
2008년 충격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자 거래망과 공급망 역시 완벽하게 충격의 여파를 받았다, 세계의 공장 아시아는 불과 몇 주 지나지 않아 미국과 유럽으로부터 발주취소라는 상황을 맞이함. 독일, 신흥시장 모두,,, 2008년 금융시장 붕괴를 이토록 심각하게 만든 건 다름아닌 정도를 넘어서는 세계경제의 글로벌 동기화때문.
제조업은 교역량이 감소했고 원자재는 가격하락
가계소비와 기업투자가 모두 급감하면서 IMF에 분기별 GDP통계자료를 제출한 60개 국가중 52개 국가가 2009년 2/4분기에 경기침체를 기록, 이런 불황은 유례가 없었고 1929년 대공황만큼 빠르게 무너졌다.
금융위기가 닥치기전 전세계를 오고가던 자본의 유출입규모는 전시계GDP의 33%정도였지만 2008년 4/4분기에서 2009년1/4분기에는 전세계GDP의 3%를 밑도는 수준에 그쳤다.
<제 7장> 긴급구제금융
2008년 금융위기는 자본주의의 역사상 유례가 없는 국가 단위의 방어책이 동원. 자유방임주의의 충격적인 전복. 일단 개입하고 나면 보이지않는 손으로 대변되는 자본주의 시장은?
국가 개입- 금융시스템 자체의 오작동과 개별 기업들의 실패가 경제 전반에 걸쳐 악영향. 핵폭탄급 위기. 투입된 자금은 7조 달러를 넘어섰고. 중앙은행과 재무부, 금융규제 감독청 등
구제금융을 위한 전투는 미국과 아이슬란드, 아일랜드, 영국, 프랑스, 독일, 베네룩스 3국, 스위스등 곳곳에서 벌어짐.
<정부가 개입한 주요형태>
1. 은행에 대출형태로 자금 지원 2) 자본재구성 3) 자산매입) 4) 은행예금, 채무 혹은 은행의 대차대조표 전체에 대한 정부보증.
-국가의 역량과 금융세계화의 수준, 지도자들의 구체적 대응모습, 금융분야의 내부의 역학관계등이 반영. 백일몽에 빠져있는 은행도 있었음. 이런 위기중에 미국은 종합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로 떠오른다
미국 금융계를 이쓰는 지도력은 스스로 새로운 모습을 갖춤. ※부시의 어중간한 입장.
2007년 정부는 민간 주도로 위기를 해결하기 바람.
10월말 재무부의 지원을 받은 씨티, 뱅크오브아메리카, 모건체이스- 마스터 유동성 콘튜잇을 조성하는 일에 합의. .그러나 영국 HSBC에서 자회사 SIV로 인한 450억 달러의 손실금 전액을 모기업에서 끌어안겠다고 발표, 미국의 최대 경쟁업체들로서는(시티) 그렇게 하고싶어도 부실이 많아서 할 수가 없었다, 결국 민간주도 포기.
정부가 나서서 개별은행 인수 거래 관장하는 중개인 역할,
영국은 수상의 결단으로 스코틀랜드 계열 대형 금융보험업체 HBOS를 로이드 은행에 매각, 독일도 드레스너 와 코메르츠 합병.
미국 합병논의 본격적- 베어스턴스 2008. 3.13 파산을 신청할 예정 만일 그랬다면 파국을 맞았을 것, J.P모건 베어스턴스 관심. 연준자금으로 조성된 SIV가 베어스턴스의 부실자산 300억 달러어치 인수 .14일 새벽 베어스턴스의 Repo거래 중단. 연준은 J.P모건에 129억을 대출해주고 그 돈으로 베어스턴스에 대출. . 폴 볼크로서는 연준의 합법적이고 암묵적으로 공왼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마지막 한계(연준의 비상권한으로)
2008년 봄. 상황을 통제하기에는 절망적으로 되어버려 재무부는 민주당과 공화당 사이에 중재역할 시작, 그렇게 해서 연방정부가 모기지업계의 거인들을 재정비하는데 필요한 권한을 얻으려는 것..
<페니메이, 프래디맥> 평상시와 같은 우량 적격 대출상품만 있었던 게 아님. 1조 8000억 달러 가치의 MBS보유. 3조 7000억 달러에 대한 보증. 자기자본 은 412억, 129억-정부보증기괸이었기 때문에 엄청난 레버리지 발생. .최소한의 손실만 허락해도 자본이 완전히 날아갈 지경. 무너지면 미국의 신용도에 문제 –2008년 여름 기준으로 GSE가 발행한 채권을 해외투자자들이 8000억 달러 정도 보유. 망하기에는 중국의 자본이 너무 많았다.
공화당; 비협조적
민주당 ;일반주택소유자들에 대한 지원대책과 주정부들이 저당잡혀 넘어간 부동산을 대신 매입해줄 수 있도록 연방정부의 지원금을 우선 필요한 주 정부들에 먼저 지원해주는 내용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 -상황은 점점 악화
재무부- 연방정부의 차입 한도에 대하여만 제한을 받고 나머지는 자유로운 권한 원함.
그러는 사이 헨리폴슨은 중국이 한꺼번에 시장에 채권을 쏟아내지 않게 하기 위해 계속 중국을 설득...
공화당은 분노했지만 부시가 지지. 엄청난 정치적 용기와 결단이 필요했지만 금융시스템 구제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폴슨이 제안한 페니메이와 프레디맥을 구하기 위한 절대적 권한부여 법안이 7월 26일 통과, 30일 권한 획득
2008년 9월 7일 일요일. 페니메이와 프레디맥은 정부의 보호관리에 들어감. 사실상 국유화. -핵무기 동원- 어떠한 종류의 MBS라도 필요한 만큼 매입. 해외채권자들에게 페니메이와 프래디맥이 파산하지 않을 거란 확신을 줌
<리먼사태>연준은 리먼이 파산하도록 의도적으로 내버려 뒀을까? 여러 가지 의논이 분분. 헨리 폴슨의 정치적 입지와 리먼파산 후에야 확실하게 위임받게 되는 국가개입 등등.. .당시의 주장은 파산을 통해서야 솽황을 끝내야 시장이 안정된다는 견해도 존재
<메릴린치>는 뱅크오브 아메리카에 인수가 되었지만 리먼은 영국 바클레이 은행과 협상에 들어갔으나 실패.
2008. 9. 15 리먼이 파산하자 몇 시간이 지나자 어떤 파급효과가 나타나는지 알게 됨.
핸리 폴슨과 벤 버냉키, 팀 가이트너는 그 다음 순서로 AIG 처리를 고심해야 했음. 이번에도 민간이 먼저 해결하기를 바라고..파산사태를 준비했으나 금융시장이 견뎌낼 거 같지 않았다., 파생상품과 Repo, 증권대출과 관련된 부문에서 리먼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멸종수준이 될 수도 있다는 판단하에 연준 개입.. 비상권한 발동
뉴욕연준이 평가절하된 MBS를 구매하고 이를 통해 AIG가 관련 채무를 청산하면서 AIG의 증권대출사업은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 실제로 거래업체들은 모든 담보물과 불량채권을 보전받을 수 있었다. AIG가 유럽은행들과 맺은 보험계약들도 그대로 유지.
실제 그당시 장부가치보다 3배는 더 비싸게 보전되어 거래처와 고객들,유럽의 은행들까지 모두 이익을 볼 수 있엇다.
현재의 위기의 규모를 깨달은 헨리 폴슨은 추가자금과 권한을 의회에 요청하기로 결정. 정치적 위험이 따랐지만 월가 전체가 무너질 수도 있는 상황. MMF에서 융통헐 수 있는 자금이 고갈되어가자 어떤 펀드기금이든 자금을 필요로하는 업체를 돕는다면 그 보증을 정부가 서고 이를 위해 외화안정화기금에서 500억 달러를 지원하겠다는 결정(9. 19.)남아있던 유일한 자금)-주어진 상황에 따라 내려진 변칙적인 결정. -1934년 금본위제 폐지이후 달러 환율관리 차원에서 만들어진 제도
그 사이에 아직 무너지지 않은 모건 스탠리와 골드만삭스가 극심한 자금난에 처함. 일반은행지주회사로 업종변경해 FDIC(연방예금보험공사)의 지원을 받음,.
9.25. FDIC는 가장 규모 큰 시중은행 워싱턴 뮤츄얼 정리매각. 미국정부의 지원약속하에 J. P모건이 지점과 예금인수. 도이치 은행 20%지분. 인수. 워렌버핏도 골드만삭스에 50억 달러 투자.
9.20일 입법제안서. 헨리 폴슨은 의회에 7000억 달러의 자금과 무제한 권한 요구
이미 GSE에 대한 무제한적 구제금융 투입권한을 부여 받았지만 이제 다시 부실 MBS시장을 살리기 위해 국방예산 규모요구.
리먼과 AIG. 워싱턴 뮤츄얼이후 재무부와 연준은 상당히 초조한 분위기 였으나 의회는 금융사회주의라고 비난
한쪽은 금융시스템의 붕괴로 이어지고 한쪽은 납세자들의 파산과 사회주의로 이어지는 길. 그런데 24시간안에 대답요구. 선거중이었고
공화당의 지지기반이 흔들릴 수 도 있는 상황.
9.28일 민주당과 헨리 폴슨 의견 조율
정부지원에 상한선을 두고, TARP지원은 단계적으로. 납세자들에게 피해가 돌아갈 경우 금융업계의 세금으로 그 피해보상. 하원결의안도 함께 처리, 특별조세감면법(군인, 의용 소방대원, 평화유지군), -의회 부결 시장반응 공포
유럽에선 급한 물을 하나씩 꺼나가기 위해 애쓰고 있는데 9월 29일 법안부결 소식이 날아들었다.
아일랜드 무너짐. 3대은행의 대차대조표는 아일랜드 전체 GDP의 700%. 모두 파산직전.. 다급해진 아일랜드는 2년동안 6대 은행의 일반예금과 부채 모두 보증한다고 아무런 예고도 협의도 없이,.발표한다. 이는 결국..2010년 유로존 국가부채 위기로 연결-영국 어쩔수 없이 예금보장한도 올림.. 영국, 프랑스, 네델란드 긴급협의- 독일 비협조적..
네델란드가 공동 구제금융기금 제안. GDP의 3%선에서-3000억 유로정도
만일 취약한 유럽은행이 파산한다면→결국 연준의 조치가 유럽에도 필요했음. 그러나 독일은 공동조치에 찬성하지않음
※ 2005년이후 유럽연합의 독자적인 헌법제정문제가 표류하면서 단일 헌법조약대신 각 국가의 독립성을 인정하는 쪽으로 합의를 본 리스본 조약. 2007년 12월의 일. 그로부터 1년도 채 지나지 않았고 2008년 여름에는 아일랜드가 국민투료로서 이를 거부...금융위기가 닥쳐오자 리스본합의는 긴급하게 대대적인 수정에 들어간 상태였으며 독일 헌법재판소에서도 관련문제를 논의중었다. 유럽연합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정치적 프레임이 안정되지 못한 상황에서 독일정부는 은행을 구하겠다고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에 막대한 권한을 부여하는 일에 지지할 수 없었음.
10.4일 정상회담에서 아일랜드의 독자행동을 비판하고 앞으로는 합의된 행동과 조치를 취하자고 애기하고 돌아오는 길에 독일은 하이포리얼에스테이트 은행이 무너졌다는 소식이 들려옴.. 하이포리얼에스테이트 은행의 필요한 자금은 500억 유로 독일 정부가 자금지원을 요청하자 은행들이 거부-독일경재의 종말이 될 수도 있었다, - 메르켈 1조 유로를 보증한다는.기자회견을 단독결정. 유럽연합의 분명한 정책이 부재한 상황에서 덴마크처럼 국가규모는 작지만 대형은행들이 있는 국가는 알아서 결정을 내리고 스스로 예급보장 범위를 확대할 수 밖에 없었다.
만일 독일이 정부의 보증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면 미국은 어느 정도 수준의 조치를 해야하는가?? 10월 6일 월요일 주식시장에서는 2조 달러가 사라짐.
10월 10과 11일 G7과 G20국가들의 재무부 장관 긴급회동 열기로...-전세계가 금융공황상태에 빠져있었다.
영국의 고든 브라운은 HBOS와 RBS라는 거대 은행의 파산에 직면 . 로이드 은행은 HOBS은행 인수에 동의했지만 도매시장자금조달이 어려웠음. 신용등급 급락, 300파운드 인줄된 상황 인수작업중에 쓰러질 수도.있었다.. 노던록과는 비교할 수 없는 대재앙. 그러나 규모면에서는 RBS가 더 위험 했다. 10,3일 브라운은 굮가경제위원회 설립을 선언한다.
미국의 TARP가 불량자산을 정부의 돈으로 사들이는 내용을 기본골자로 한다면. 영국은 정부 보증과 자본 재구성.
2008.10.8.일 영국 구제금융 지원계획 시작..
RB.S 정부가 57.7% 지분 소유, 로이드도 43%정도 정부에 지분을 넘김. . 바클레이와 HSBC는 자본금 보증 모두 거부(아랍의 석유 달러등으로 자금여력이 가능하다고 믿었으나. 훗날 변칙적인 거래 때문에 형사고발 당함)
미국과 유럽에서 모두 구제금융 프로그램이 난항에 빠진 가운데 고든 브라운이 특별 유동성계획 제안. 노동당은 공화당과는 다른 입장. 뉴욕에서 폴 크르그먼이 찬사, 영국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이 금융자본주의를 구해내는 방법을 찾아냈다고..
10.10 G7 재무부장관회의..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금융기관의 파산이 더는 없을 것이다.
자본재구성을 지원할 조치들이 있을 것이더,
은행간 자금유동성을 풀어주기위한 조치를 취할 것이다.
적절한 수준의 예금보험을 해줄 것이다.
증권화된 자산을 거래하는 시장을 새롭게 개편할 것이다.
10.12 유로존 정부 지도자회의.- 은행에 대한 각 정부의 보증문제. 유럽전체의 공동대응과 관련된 합의는 없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회원국들에 외국계 은행이든, 극내은행이든 자국 영토안에 있는 모든 은행의 채무를 보증할 수 있는 퍼미시브 라이선스를 발행. 유럽연합이 이를 감독. 유럽 공동시장이 쪼개지는 수준까지는 이어지지 않도록 관리.
유럽 차원의 공동대응이 다시 논의의 주제가 된건 3년뒤.
2008년 10.13. 영국은 로이드-HBOS.,와 RBS를 사실상 국유화.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델란드 모두 은행 지원에 엄청난 자금을 지원하며 은행구제에 나섬. (파산 구조조정. 전면적인 경영전략 수정으로 이어짐)
세계화된 금융권과 맺어진 재무부와 연준
재무부 새로운 논의를 거쳐 법안 상정
재무부장관에게 막을 수 있는 압류는 막기 위해서 대출조건을 쉽게 해줄수 있는 권한을 주는 내용. 몇단계에 의한 관리감독
2008. 10. 3일 TARP관련 법안하원 통과.
10월 첫주 미국과 유럽시장 상황 급박하게 돌아감. TARP가 처음 에상과 달리 큰 효과 못내는 상황이 됨
시장이 공포질려있는 이 시기에 수천 억 달러에 달하는 불확실한 자산을 처분하기 위해 시장을 만들어내야 하는 실제로는 실행 불가능한 상황, 이제 과도한 지원금투입으로 혈세를 낭비하거나 원래는 돕기 위한 것이지만 반대로 은행을 더 불리하게 만들 수 있는 상황이 됨.
영국- 자본 재구성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불량자산을 매입하거나 은행의 채무에 대한 보증을 해주는 대신 정부 자본을 투입하고 지분을 확보방법.
TARP도 그와 비슷하게 자본을 투입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뀌게 되고 아일랜드 .,영국, 독일에서 일어난 사건들 때문에 예금 보장에 대한 논의도 바뀜. 이런 새로운 논의가 재무부 회담이 열리는 중간에 재무부와 연준, FDIC사이에서 이루어짐
10.13일 유럽정부가 보증 및 보장 관련조치를 발표한 이후 미국 9대 은행장들에게 관련 내용을 알림
그리고 9대 은행에게 정부자본을 받아들이라고 협박.
은행으로서는 좋은 조건이었다. 빨리 정부지분을 상환하게 하기위해 5년후에는 배당률이 올라가게하고 자본 투입의 대가로 모든 당좌거래에 FDIC가 보증을 서며 2009년 말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모든 신규채권에 대하여 125%까지 보증 . 지분참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떤 보증도 없다는 애기. 이를 통해 은행들은 1310억 달러이상 사업가치가 증가하는 효과를 얻게 됨
미국은행들은 유럽은행들과 비교해서 전반적으로 좀 더 빠르게 위기극복
회합이 열린 2008년 10.13일은 대서양을 중심으로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의 전진이 시작된 날
리먼에서 시작해 TARP까지 이어진 과정은 주권국가가 앞장서서 위기를 극복한 과정이라기보다는 워싱턴과 월, 유럽금융시스템까지 엮인 사회정치적 네트워트안에서 갈피를 잡지못한 권력들이 서로 충돌한 것에 더 가까움
9월에는 기업과 정치의 이해관계가 리먼을 못살렸다.
10월 중순까지 약 1개월에 걸쳐 공황상태와 정치적 혼란이 있었고 , 예상치 못한 금융계의 아수라장이 있었다..
<제 8장> “ 가장 시급한 현안 ” 글로벌 유동성
돌이켜보면 2008년 10월 첫주에 결정된 사안들이 미래 사건들의 향방을 결정지었다고 볼 수 있다.
미국; 자국 은행들의 자본 재구성이라는 목표 속에서 협조.
유럽; 독일의 반대로 공동대응이 잘 안됨 → 2010년 이후 유로존 위기로 이어짐
(상호의존성이라는 유럽의 특성에 주의를 기울여본다면 독일정부가 주장한 국가별 대응방식은 상황을 과소평가한 것. 더구나 2008년 가을 유럽은 미국에 심각하게 의존 의존)
은행 간 거래와 도매자금이 막히면 전 세계 달러화 자금시장은 큰 어려움을 겪게 되고 유럽이 제일 큰 타격을 입게 된다. 달러화문제는 가장 강력한 유럽국가들조차 어찌해볼 수 없는 치명적인 약점. 이런 상황이 대서양을 중심으로 한 심각한 위기로 번지지 않은 것은 유럽의 의지가 아닌 연준의 결정과 의지 덕분.
연준은 금융으로 연결된 상호의존 관계의 강력한 위력을 인지하고 움직임. 연준는 민간부문의 화폐시장이 제 역할을 못하자 공개협의 없이 부족한 달러를 공급했다, 모두 합쳐 수조에 이르는 달러가 미국과, 유럽, 아시아 은행들의 필요에 맞춰 공급되었다. 전례가 없었고 규모도 엄청났으며 적법한 절차도 거치지 않고 전격적으로 시행. 그 이후로 지금껏 우리가 상상해왔던 금융시스템과 각국 통화 사이의 관계도 다 바뀌게 된다. 연준은 모든 은행들의 중앙은행이 됨
유럽은행은 2007년 8월 은행간 자금조달사태를 한차례 치르고 8월 9일 자금시장에 950억 달러를 제공했다, 이는 의회 인준사항도 아니었고 구제조치가 아닌 중앙은행이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화폐거래였다. 규모가 컸을 뿐. 그러나 각각 파운드화나 유로화를 공급했을 뿐 달러에 대한 유동성 관리는 부족했다., 2008년 유럽은 간절히 달러를 원했다.
. 무역수지로 독일은 2007년 50억 달러의 흑자였지만 은행들이 필요로 하는 달러는 조 단위 였고 단기조달자금이 턱없이 비싸졌다. 2008년 금융위기는 유럽은행들의 사업방식이 안고있는 위험한 불균형을 드러내 보여주었다. 금융위기 이전 유럽은행들은 달러화 거래를 위해 약 1조 달러 이상을 미국 화폐시장을 통해 융통했다.
금융위기가 터졌을 대 유럽각국의 중앙은행들의 달러 보유고는 은행들이 필요량에 턱없이 부족했다.
파산직전에 몰린 AIG가 제일 먼저 토로한 문제도 유럽은행들의 어려운 자금 조달사정이었다.
연준의 팀 가이트너는 북미 유럽의 은행들이 연쇄부도를 일으킬 수 있다는 상황을 인지했다. 달러화가 공급되지 않으면 자산을 급매물로 내놓을 수 밖에 없었고 이는 유럽의 붕괴로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이에 연준은 전 지구적 규모에서 역외달러 은행시스템이 필요로 하는 규모와 매칭되는 유동성 계획을 갖고 실행에 옯겼다.
전통적인 통화정책과는 더 이상 관련이 없는 그런 계획과 조치들이었다.
● 2007년 ABCP시장이 기능을 못하게 되자 연준은 TAF(기간부 입찰대출제)만듬... ABCP에서 자금대출 못받는 은행들을 위해 단기로 자금조달 할 수 있는 제도. ABS와(부동산, 매출채권등을 기초자산으로 유동화시킨 증권) CDO(부채담보부 증권)를 포함한 다양한 자산을 담보물로 인정했다. -고객들 중 해외은행비중이 50%. 미국과 유럽의 대형은행들이 혜택을 봄
● 베어스턴스의 위기에 이어 ABCP와 Repo시장도 문을 닫자 연준이 직접 최후의 Repo거래소 역할을 제공. 싱글 트란셰 공개시장 .우량담보물에 대해서는 재할인을 통해 28일물 Repo거래 제공- 2008년 12월 가지 총 8550억 달러. 70%이상이 해외은행이 가져감
● 3자간 Repo시장이 선화하는 담보물이 재무부 채권이었기 때문에 TSLP(기간부 증권 대출제도)도 시행.
재무부 채권을 28일 기간한정으로 대출해주고 민간업체가 자체적으로 만든 것을 포함, 다양한 종류의 MBS를 담보물로 받음 . 리먼사태 즈음에 총 2조 달러어치의 우량담보물이 시장에 유통됨. 51%가 해외은행. RBS, 도이치. 크레딧스위스 등이 8000억 달러어치
● PDCF프라이머리딜러 대출제도도 시행- (다양한 담보물을 잡고 신중하면서도 무제한적인 연준의 익일물 유동선을 제공함으로써 Repo시장에서 중요역할 담당. 미국내 은행들을 위한 거라고 했지만 런던에 있는 자국 은행도 이용가능하게 함으로써 유럽을 지원.
● 그래도 계속 여려워지자 SPV를 세우고 직접 대출업에 뛰어듬, 최우량품질의 단기 기업어음 매임- 유럽은행이 많이 이용
● 모기지시장과 함께 ABS를 거래하는 더 넓은 의미의 시장도 기능이 정지되자 TALF마련-연준과 재무부가 보증하는 대출제도로 가장 많은 종류의 대출이 포함. 가장 대담하고 위험한 지원방식 P 309
● 마지막으로 QE1. 제 1차 양적지원 (통화신용정책의 전통적인 방식) - 연준이 직점 대량의 MBS를 사들여 시중에 자금 공급. 장기자산을 사들이는 대신 즉시 유동성 공급(장기 자산을 사들이는 대신 즉시 유동성 시장에 자금 공급-연준이 사들인 MBS의 52는 해외은행이 판매한 것(도이치, 스위스 크레딧은행)...
미국은행들과 이들 해외은행들은 이 제도들을 통해서 많은 이익을 남긴다.
<글로벌 최종 대부자의 역할>
미국과 유럽 금융계 모두가 연준이 뉴욕의 최고 수준 국제은행들에 제공하는 것과 같은 지원을 받지는 못했다. 취약한 은행들은 담보도 보잘 것 없었고 연준이 이 모두를 떠안기에는 위험도 커서 1960년대에 만든 통화스와프 협정을 이용한다.
통화스와프 협정
해당국가의 중앙은행과 연준이 통화스와프 협정을 통해 달러를 공급공급. 자국통화와 달러의 교환협정. 상호합의한 환율로 정해진 날에 다시 교환
유럽에서 달러조달비용이 올라가자 연준이 제안 2007년 8월, 유럽 회의적. 12월에 태도 돌변. 2008년 9월 금융위기가 점점 심각해지자 스와프협정은 점점 빠르게 진행되어 갔다. 2011년 9월이 되자 스와프 협정으로 대출된 금액은 10조 달러에 육박
유럽 중앙은행, 영란은행, 일본은행, 스위스 국립은행. 거의 무제한 달러 공급받음.
2008년 10.29 브라질, 한국, 멕시코, 싱가포르와도 통화스와프 협정. 14개국으로 늘어남.
1997년~98년의 위기를 돌아본다면 한국같은 나라가 IMF에 도움을 요청할 가능성은 없음.
유로-달러나 파운드-달러의 위기가 없었던 건 통화스와프 협정 때문
연준은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그때 그때 필요한 제도를 만들어 대응했고, 전세계 준비통화로서 달러화의 위상을 재정립했으며 미국 중앙은행을 달러화 네트워크의 핵심거점으로 만들었다.
연준은 각국 중앙은행에 지원한 달러가 어떻게 쓰여졌는 지는 비밀에 붙임, 다 알기도 어려웠고. 공개된 것만 알았고 정보가 알려지는 걸 최대한 막았다. 정치적인 분명한 적법성 결여되어 있었음 그리고 연준의 정책으로 은행들은 많은 이익을 본 것으로 보임.
2008년 연준은 당시의 위기가 미국과 유럽 구분 없이 북대서양 중심의 달러 기반 금융시스템이 다 함께 공동으로 맞이한 위기라는 전제하에 이를 진정시키고자 노력했다.
연준의 조치가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건 글로벌 금융시스템의 주역들, 즉 각국 중앙은행과 다국적 대형은행 모두에 민간부문의 자금조달이 어려워져도 달러를 무제한 제공함으로써 최후의 해결사가 있다는 것이었다.-이것이야말로 글로벌 최종대부자 역할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전에는 북미-유럽 중심의 역외달러 시스템에는 확실한 리더십이 존재하지 않었다.
실제로 전세계 달러화 경제의 근간을 이루었던건 월스트리트와 시티의 결합이 만들어낸 민간부문 금융과 금융시장 네트워크였다. 바로 의도적으로 국가의 통제밖에 세워진 미국과 유럽 금융계의 공동작픔. 규제와 통제를 피하고자 고안된 <역외>시장
2008년의 금융위기는 달러의 중요성을 절절하게 부각시켰다.
세계금융정책의 실체가 <침묵의 소용돌이 속으로> 사라져버린 것은 연준과 그 협력자들이 거대하고 노골적인 계층적 상호의존의 현실을 묻어버리는 일에 서로 이해관계가 일치했기 때문. 연준으로서는 방법적인 문제와 달러가 위험하다는 시각을 굳이 바로잡을 필요가 없었고(달러는 승승장구) 달러공급으로 이익을 본 계층들이 박수를 받을만했는 지에 대한 논쟁도 피하고 싶었을 듯..
특혜를 받은 은행들 또한 전 세계에 자신들의 특혜를 까발릴 입장이 아니었을 듯.
사르코지나 슈타인부르크의 달러화 위상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표현은 연준이 금융위기를 위해 엄청난 노력을 쏟아부으면서 감당해야 할 가벼운 몫. 연준은 자신들의 엄청난 노력을 결코 드러내는 법이 없다.
<제 9장> 유럽의 잊혀진 위기
2008년 미 연준의 통화스와프 협정제도 기준
경제 및 금융규모가 미국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국가
거시건전성을 잘 관리하고 있어서 직면 문제들이 외부국가의 영향임이 분명해서 미국의 지원을 정당화할 수 있는 국가
실제로 달러 스와프가 도움을 줄 수 있는 국가
통화스와프 정책은 곧 외교정책. 정치적 차별의 가능성이 존재했다.
미 연준이 협정을 맺은 나라 - 유럽과 남아메리카, 아시아등 14개 중앙은행
러시아
달러를 무제한으로 공급받은 프랑스와 달리 자체적으로 해결. 1998년의 경제위기 이후 러시아는 외환보유고를 충분히 비축하고 있었고 상승한 원유가격과 원자재 가격으로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나 글로벌 경제가 위축되면서 2008년 말 원유가격과 원자재가격 폭락 →. 주식시장 폭락 2008년 초 올리가르히들의 재산은 5200억 달러였지만 2009년 초엔 1480억 정도로 쪼그라듬.
루블화의 가치가 줄어들면서 원자재가격을 루블화로 받아온 기업들의 수익도 엄청나게 줄어듬.
러시아 정부의 1차 전략은 루블화 평가절하와 하락이라는 고리를 끊는 것. →1차로 루블화 방어에 자금을 투입하고 ((원유가격 64%하락할 때 루블화는 6% 떨어짐) 시간을 번 후에 올리가르히들에게 떨어지고 있는 자사주식을 방어하기 위해 현금투입 요구, 그리고 무너져가는 금융기관을 직접 사들이거나 아니면 현금이나 지분양도 명령. 그 다음에 푸틴이 이사로 있는 국영은행이 러시아 국내에서 규모가 작고 취약한 은행들에 대한 합병과 구제. 이 모든 것들은 가진 푸틴의 입맛으로 결정.
러시아는 급격한 파산사태를 피할 수 있었는데 이를 위해 상당한 규모의 국가자원이 투입됨
푸틴의 방식은 일면 효과적이었다. 강력한 지도력을 보여주는 동시에 올리가르히들의 기세를 꺾었고 러시아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푸틴-감세정책과 대규모 경기부양책으로 위기관리능력이 탁월하다는 신망을 얻음.
예산의 1/4을 일자리 창출, 기업보조금, 조세감면등으로 사용, 경제규모에 비해 세계 최고 규모. 정부에 협조적인 올리가르히들 위주로....
2008년 러시아 경제의 심각한 위험은 원유와 천연자원에 대한 과도한 의존과 올리가르히들의 부패한 자본도피가 있었다.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물론 2008년 대통령이 된 메드베데프는 푸틴의 이런 방식이 장기적인 방식이 될 수 있을지 회의적......
라트비아 동유럽 (IMF와 유럽연합에 힘입어 붕괴 모면)
동유럽국가들은 유럽의 변화를 상징하는 자존심이며 2007년~2008년 사이에는 새롭게 세력을 펼치려는 러시아와 대결했던 각축장.
라트비아를 비롯한 발트3국은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유로화에 자국환율을 고정했다.. 유럽연합과 NATO양쪽의 정식회원국으로 입성하는데 성공했고 가능한 한 빨리 유로존 회원국이 되고싶었으므로...
동유럽 국가들은 자유시장 경제와 금융 세계화를 새롭게 받아들인 모범생들이었지만 금융위기가 닥쳐오자 결국 같이 위기에 빠져들고 만다. 이들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 건 자금의 출처였는데 이들은 서유럽은행들로부터 자금을 과도하게 들여왔다.
금융위기전 매 분기마다 동유럽과 그 소비에트 시장에 500억 달러 이상의 자금이 유입. 2008년 4/4분기에는 1000억 달러 유출 2009년 1/4분기에는 또다시 500억 달러 유출. 지난 15년간 구축된 신용관계 흔들리기 시작. 이들은 서유럽과의 통합을 원했고 미국의 연준처럼 유럽중앙은행이 그와 비슷한 조치를 취해주기 바랬고 실제 연준도 그걸 기대했다.
러시아는 1990년대의 굴욕을 되풀이 하지않기위해 막대한 외화를 축적해 왔지만 동유럽 국가들은 위기에 대응할 무기가 하나도 없었다.
이들의 위기는 해외신용공급의 갑작스러운 중단에서 비롯된 것이며 여기에 개입된 유로존 은행들은 손실을 각오하고 있었다.
이들은 공산주의가 무너진 이후 IMF와 겪었던 그 잊을 수 없는 경험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지만 유럽중앙은행이 연준처럼 도와줄 것이라는 기대는 이루어질 수 없는 희망에 불과했으므로 어쩔수 없었다.
유럽연합 내부에서 제일 먼저 필사적으로 도움을 요청한 건 헝가리.
.2008년 10.27일 헝가리는 IMF와 유럽연합이 250억 달러에 달하는 자금대출에 합의 . 헝가리 GDP의 20%에 달하는 규모.
IMF가 요구한 긴축경제계획 때문에 헝가리 정계 둘로 쪼개짐.
헝가리의 뒤를 이어 아이슬란드, 라트비아, 우크라이나, 파키스탄, 2009년에는 아르메니아, 벨라루스, 몽골도 어쩔 수 없이 IMF에 도움을 청했다.
오스트리아와 스웨덴은 동유럽에 과감하게 투자와 대출을 감행해왔다.
헝가리와 루마니아처럼 변동환율을 채택한 나라들은 특히 상환불가의 위험성이 큰데 그 채권액이 오스트리아 GDP의 20% 정도.
스웨덴 또한 라트비아의 금융시장 대부분을 독점하고 부동산 호황이 일어나는데 일조했다, 세계은행과 유럽부흥개발은행 같은 국제기구는 어려움에 빠진 서유럽 은행들 중 한두 곳 이상이 갑자기 청구권을 회수하려고 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연쇄반응을 우려했다.
서유럽은행들이 모든 부문에서 차입금을 줄이기 위해 사력을 다하면 결국 동유럽에서 모두들 빠져나올 수 밖에 없었고 다른 업체들도 앞다투어 그렇게 할 것이었다.
그러면 서유럽의 경제부흥을 부러워하고 모범생이 되고지 했던 동유럽은 또다시 이들과 갈라서야하는 운명이 될 수 있었다.,
2008년 12월 가장 곤란을 겪고 있던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 은행들이 국제적인 지원을 위한 공동계획을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나섬. 유럽연합이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자 오스트리아 정부로 찾아감
오스트리아 정부가 유럽중앙은행과 협의 없이 <비엔나 이니셔티브>라는 협의서를 발표한다. .세계은행. 유럽부흥개발은행, 유럽투자은행이 공동합의하고 신규대출과 자본금 확충을 위해 245억 유로를 새롭게 지원한다는 내용. 각각의 상황에 따라 주요 민간은행에서 동유럽지역의 대출을 유지한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이를 통해 급격한 대출중단을 막을 수 있었음.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스웨덴이 참여했고 덴마크와 스웨덴이 공식적으로 통화스와프를 체결했으며 이 은행들이 동유럽에 어느 정도 유로화를 공급했다. 유럽중앙은행은 동유럽 사태에 얽히고 싶지 않아했다.
2008년 해외유입자본이 점점 줄어드는 상황에서 라트비아는 고정환율을 유지하는 일이 점점 더 고통스러워지고 있었다. 전 세계적인 총체적 위기와 함께 엄청나게 늘어가는 적자를 마주해야했다.
발트3국은 헝가리와 루마니아처럼 자국 환율을 평가절하할 수 없었다. 환율조정없이 무역수지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국내소비를 줄이고 근로자들의 임금을 삭감하며 세금을 늘리고 정부지출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이웃 유럽국가들로부터 80%이상의 외화를 조달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갑작스러운 평가절하는 국가부도 사태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었다.
짊어지고있는 부채 규모와 스칸디나비아 은행들과의 깊은 관계들로 인해 사람들은 라트비아가 발트 3국의 안정화 열쇠를 쥐고 있다고 생각. 만일 라트비아가 환율페그를 포기할 경우 에스토니아와 리투아니아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으며 환율문제로 어려움을 겪고있던 슬로바키아와 불가리아 역시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고 이러한 평가절하의 물결이 시작되면 <비엔나 이니셔디브>를 통해 만들어진 방어책들도 그대로 유지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웟다, 동유럽 전체에 걸쳐 각종 자산의 급매처분이 이루어질 것이고 누군가는 살아남겠지만 스웨덴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스웨드 뱅크와 노르디아에게는 그야말로 생존이 걸린 문제였다, 그동안의 채권액을 변제받을 수 없다면 파산으로 이어질 거였다, 최소 5~6개의 은행 파산 가능
IMF가 라트비아에 내리는 처방은 환율 평가절하와 채무 재조정. 혹은 막기일 조정,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결사반대.
결국 라트비아는 혹독한 긴축재정을 견뎌냄. 이 과정속에서 라트비아는 위기를 겪기전 GDP의 33%정도의 지원을 받음
우크라이나
발트 3국은 가던 길을 계속 가려했고(유럽연합, NATO, 유로존 회원국) 헝가리는 민족주의자들이 들고 있어났으며 우크라이나는 이중의 위기.
서방측에 정치적 승부를 건 대통령- 유센코
독립이후 추구해온 대로 러시아와 서유럽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정책을 선호했던 총리- 율리아 티모센코
오렌지혁명이후 우크라이나의 경제성장-해외차관에 크게 의존. 오스트리아와 프랑스 은행의 대출이 절반 이상
금융위기가 시작되자 자금유입 중단, 철강업이 우크라이나 수출의 42%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세계적인 투자지출의 감소로 피해가 컸음,
2008년 10월 우크라이나는 헝가리를 따라 IMF에 구제신청을 하는 것 외의 다른 대안은 없었음.
IMF는 164억 달러를 지원하면서 관례와는 다르게 자국예산을 스스로 조달할 것과 환율을 현실에 맞게 조정하며 금융시스템을 안정화시킬 것을 요구. -우크라이나 정부의 능력 밖의 일.
예산 균형을 맞추기 위해 세금을 늘리고 보조금을 삭감- 국민들 반발.
2009년 1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채무문제, 천연가스 가겪문제로 갈등, 난방조차할 수 없는 혹독한 겨울을 맞음. 결국 유럽연합이 중재에 나서고 가스가격이 인상되면서 간신히 갈등은 가라앉았지만 티모셴코는 곤란한 입장
우크라이나는 서유럽과 러시아 사이에 끼인, 굉장한 긴장감을 가지고 지켜보아야 하는 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