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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록수] 불개미와 같이(2)
동혁은 청석골이 가보고 싶었다. 날이 가고 달이 바뀔수록, 사랑하는 사람과 그가 활동하는 모양이 보고 싶었다. 날마다 이 일 저 일에 얽매어서, 잠자는 시간밖에는 공상할 틈조차 없기는 하지만, 일을 하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무뜩무뜩 영신의 생각이 나면, 손을 쉬고 발을 멈추고 넋을 잃은 사람처럼 머엉하니 하늘을 쳐다보는 습관이 부지중에 생겼다.
‘그가 꿈결같이 댕겨간 지가 언제이던가.’
하면 적어도 사오 년은 된 성싶었다. 편지만은 끊임엇이 내왕이 있었는데, 최근에는 웬일인지 열흘이 훨씬 넘도록 영신의 소식이 끊어져서, 여간 궁금히 지내지를 않았다.
그러다가 일전에야 기다란 편지가 왔는데, 한낭청이란 부잣집에 기부금을 걷으로 가서 창피를 당하고 분풀이를 실컷 하다가, 일주일 동안이나 고초를 겪었다는 것과, 앞으로는 기부금 명부에 이름을 적은 사람에게도 자발적으로 주기 전에는 독촉도 하지 못하게 되었고, 예배당 문까지 닫으라고 딱딱 얼러메는 것을 간신히 양해를 얻기는 했으나, 무슨 수단을 써서든지 청석학원 하나는 기어이 짓고야 말겠다고 새로운 결심을 보인 사연이었다.
그러면서도 한 번 구경이라도 와달라는 말은 비치지도 아니한다. 반드시 청좌를 해야만 갈 것이 아니지만, 그래도 혹시나 와달랄까 하고 동혁은 편지마다 은근히 기다렸다. 그러나 오는 편지마다 판에 박은 듯한 사업보고요, 고생하는 이야기뿐이다. 동혁은 그런 편지를 받을 적마다,
‘나두 어지간히 버티는 패지만, 나버덤두 한술 더 뜨는걸.’
하고 편지를 동댕이치는 때도 있었다. 가기만 하면야 반가이 맞아줄 것은 물론이나, 사실 내왕 노자도 어렵고 별러 별러서 간댔자 급한 볼일 없이 며칠 동안이나 버정거리다가(부질없이 짧은 거리를 자꾸 오락가락 거닐다) 오기는 싱겁고 멋쩍은 일일 것 같았다. 첫째, 남자 친구를 찾아가는 것과 달라서, 하룻밤이나마 묵을 데도 만만치 않을 듯하고, 둘이 함께 얼려 다니고 마주 붙어 앉아 이야기라도 하면, 노처녀인 영신이가 제가 당한 것보다도 곱절이나 부질없는 놀리움을 받을 것도 상상되었다. 그래서,
‘좋은 기회가 올 때까지 꾹 참자.’
하고 피차에 일하는 것밖에 다른 생각은 아주 책장을 덮어두자고, 몇 번이나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그러나 늙은 총각의 가슴속에 한번 호되게 붙어 다긴 사랑의 불길은, 의식적으로 참고 억지로 누른다고 쉽사리 꺼질 리가 없었다. 시뻘건 정열이 휘발유를 끼얹은 듯이 확 하고 붙어 당길 때는, 머리끝까지 까맣게 그슬릴 것만 같다. 그럴 때면,
‘일이다, 일! 그저 들구 일만 허는 것이, 그와 완전히 결합될 시기를 지루하게 기다리는 동안의 최면제도 되고 강심제도 된다.’
하고 식전부터 오밤중까지도 동네일과 집안일로 몸을 얽어매었다. 돈 있는 집 자식들이 몸뚱이가 아편쟁이처럼 비비 틀리도록 무료한 세월을, 술과 계집 속에 파묻혀서 보내려고 드는 것처럼—.
그래도 억제하기 어려운 청춘의 본능이 피곤한 육체를 괴롭게 굴 때에는, 누웠다가도 벌떡 일어나 밖으로 뛰어나갔다. 아랫도리까지 발가벗고 냉수를 끼얹고는, 엇둘 엇둘 하고 체조를 한바탕 하고 들어와서,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눈을 딱 감으면 한결 잠이 쉽게 들었다.
한편으로 그가 영신을 될 수 있는 대로 호의로서 이해하려는 것도 물론이다. 그만한 나이에 다른 여자들 같으면 몸치장이나 하기에 눈이 벌겋고, 돈 있고 소위 사회에 명망이 있는 신사와 결혼을 못 하면, 첩이라도 되어서 문화생활을 할 공상과, 그렇지 않더라도 도회지에서 땀 아니 흘리는 조촐한 직업도 없지 않건만, 유독 ‘채영신’에게는 다만 한 가지 허영심이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는 못 속이지.’
하고 동혁이가 자신 있게 맥을 짚어본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청석학원을 온전히 저 한 사람의 힘으로 번듯하게 지어놓고, 교장 겸 고쓰가이(小使) 노릇까지 하더라도, 내가 이만헌 사업을 하고 있노라’
하고 백현경이나 다른 농촌운동자들에게 보여주고, 애인인 저에게도 자랑하고 싶은, 그 허영심만이 충만한 것이 틀림없으리라 하였다. 그러니까 자신의 사업의 기초는 어느 정도까지 잡혔더라도, 외형으로 눈에 번쩍 띄는 것을 만들어서 보여주기 전에는, 저를 청석골로 부르지 않으려는, 그 여자다운 심리가 들여다보이는 것 같았다.
한곡리의 안산인 소대갈산 마루터기에, 음력 칠월의 초생달은 명색만 떴다가 구름 속으로 잠겼는데, 동리 한복판인 은행나무가 선 언덕 위에는 난데없는 화광이 여기저기서 일어난다. 농우회의 열두 회원들은, 단체로 일을 할 때면 입는 푸른 노동복 저고리를 입고, 수건으로 머리를 질끈 동이고 모여 섰다. 동혁이 형제와 건배는 기다란 장대에 솜방망이를 단 것을 석유를 찍어가며 넓은 마당을 밝히고 섰는데, 바람결을 따라 석유 그을음 냄새가 근처 인가에 까지 훅훅 끼친다.
“자, 시작허세!”
동혁의 명령이 한마디 떨어지자, 회원들은 굵다란 동아줄을 벌려 잡았다.
“에에 헤에라, 지경요—“
열두 사람의 목소리가, 목구멍 하나를 통해서 나오는 듯, 우렁차게 동네 한복판을 울리자 커다란 지경돌(터를 다질 때 쓰는 돌)이 반 길이나 솟았다가 쿠웅 하고 떨어지면, 잔디를 벗겨놓은 땅바닥이 움푹움푹하게 패어 들어간다. 여러 해 별려오던 농우회의 회관을 지으려고 오늘 저녁에 그 자경을 닦는 것이다.
회원들의 마음은 여간 긴장되지 않았다.
자자손손이 대를 물려가며 살려는 만년주택을 짓기 시작하는 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 생각으로, 자기네들이 웅거할 회관을 지으려는 것이다.
달구질 소리가 들리자, 야학을 다니는 아이들과 동네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든다. 아직도 이 시골에는 누구나 집을 지으면 터 닦는 날과 새를 올리는 날은 품삯을 받지 않고, 대동이 풀려서 일을 보아주는 습관이 있어서, 회원들 외에 어른들과 아이들이 벌써 수십 명이나 들러붙었다.
“에에 헤에라, 지경요—“
“에에 헤에라, 지경요—“
고요한 바닷가의 저녁 공기를 헤치는 달구질 소리는, 점점 더 커지는데 큰마을 편에서 징, 장구, 꽹가리를 두드리는 소리가 가까이 들려온다. 여러 사람은 잠시 팔을 쉬고 그편을 바라본다.
레인코트(우장옷)의 허리띠를 졸라맨 기만이가 저희 집 머슴꾼이며 작인들을 말끔 풀어서 술까지 먹인 뒤에, 두레를 떡 벌어지게 차려가지고 오는 것이다.
높이 든 깃발은 선들바람에 펄펄 날리는데,
“깽무갱, 깽깽, 깽무, 깽무, 깨갱깽.”
상쇠잡이가 앞장을 서고,
“떵떵 떵더꿍 떵기떵기 떵더꿍.”
장구잡이는 뒤를 따른다. 징소리는 점잖이 꽈응, 꽈응 하고 이슬이 흠씬 내린 잔디밭과 들판으로 퍼지다가 사라지는 그 여운이 웅숭깊다.
마중을 나간 솜방망이 불빛에, 컴컴한 공중으로 우뚝 솟아 너울거리며 다가 오는 것은, 이등 삼등까지 무동을 선 머리 땋은 아이들이, 고깔을 쓰고 장삼 자락을 펼치면서 나비처럼 춤을 추는 것이었다. 터를 닦는 마당까지 올라오더니, 풍물 소리는 자진가락으로 볶아치기 시작한다.
조금 있자, 풍물 소리를 듣고 성벽(자신이 가진 정욕의 만족을 쫓는 소질)이 난 작은마을과 구엉마을에서도 낮에 두레로 논을 매던 야학의 학부형들이, 재비를 차려가지고 와서는 큰마을 두레와 어울렸다.
그럭저럭 언덕 아래는 머슴 설날이라는 이월 초하루나, 추석날 저녁보다도 더 풍성풍성해졌다. 각ㅊ처 두레가 다 모여들어 한데 모였다 흩어졌다 하며, 징 꽹과리를 깨어져라고 두들겨대는데, 장구잡이도 신명이 나서, 장구채를 이 손 저 손 바꾸어 치며 으쓱으쓱 어깨춤을 춘다. 거북이라는 총각 녀석이 어둠침침한 소나무 밑에 가 쭈리고 앉아서, 청승스러이 꺾어 넘기는 새납(호적,胡笛) 소리는, 밤바람을 타고 바다 건너까지도 들릴 듯.
재비꾼들은 수구를 들고 장단을 맞추어가며, 패랭이 위의 긴 상모를 돌리느라고 보는 사람까지 현기증이 나도록 곤댓짓을 한다.
“얼시구 좋다, 어리시구.”
나중에는 구경꾼까지도 어깻바람이 나서, 개구리처럼들 뛰면서 마른 흙이 뽀얗게 일도록, 한바탕 북새를 논다.
그 광경을 바라다보고 섰던 동혁은,
“야야, 오늘 밤엔 우리가 산 것 같구나!”
하고 부르짖으며 징을 빼앗아 들고, 꽝꽝 치면서 재빗꾼 속으로 뛰어들었다. 키장다리 건배도 깃대를 꼬나 들고 섰다가, 그 황새 다리로 껑충껑충 춤을 추며 돌아다닌다. 다른 회원들도 어느 틈에 두레군 속으로 하나둘씩 섞여 들어갔다.
아들이 동네일만 한다고 눈살을 찌푸리던 동혁의 아버지 박 첨지도, 늙은 축들과 술이 거나하게 취해가지고 와서는,
“아아니, 내가 옛날버텀 맡어논 좌상님인데, 어떤 놈들이 날 빼놓구 논단 말이냐.”
하고 난쟁이 쇰직하게(다른 것보다도 크기나 정도가 조금 더 하거나 비슷하다) 키가 작은, 석돌이 아버지의 수염을 끄두르며,
“여보게 꽁배, 어서 따러오게.”
하면서 군중을 헤치고 들어선다. 그는 석돌이 아버지와 술을 먹다가 풍물 소리를 듣고,
“내 자식놈이 둘씩이나 덤벼들어서 짓는 집인데, 아비 된 도리에 안 가볼 수가 있나?”
하고 기운이 나서 올라온 것이다.
박 첨지는 언덕 위에 올라서서 팔을 걷고 곰방대를 내두르며, 목청을 뽑아 달구질 소리를 먹인다.
“산지조종(山之祖宗)은 백두산(白頭山)이요.”
하고 내뽑으면, 달구질꾼들은 그 소리를 받아,
“에에 헤에라, 지경요—.”
하며 동시에 지경돌을 번쩍 들었다 놓는다.
“수지조종(水之祖宗)은 한강수(漢江水)라.”
“에에 헤에라 지경요—.”
땅을 다지는 동네 사람들은 목이 쉬어가는 줄도 모르는데, 그날 저녁 동혁은 젊은 사람과 조금도 다름이 없이 싱싱하고 씩씩한, 아버지의 목소리를 생후 처음으로 들었다.
한 달 하고도 보름이나 지났다. 그동안 한곡리 한복판에는 커다란 새집 한 채가 우뚝하게 솟았다. 커다랗다고 해야 두 간 겹집으로 폭이 열 간쯤 되는 창고 비슷이 엉성한 집이지만, 이 집 한 채를 짓기에 회원들은 칠월 염천(몹시 더운 날씨)에 하루도 쉬지 않고 불개미와 같이 일을 하였다.
논에는 아시(‘애벌’의 방언) 두 번 호미질과 만물(만도리. 벼를 심은 논에 마지막으로 하는 김매기)까지 하였고, 이제는 피사리(농작물에 섞여 자란 피를 뽑아내는 일)만 하면 힘드는 일은 거진 끝이 난다. 그동안의 한 달 반쯤은 농군들이 추수를 할 때까지 숨을 돌리는 농한기다. 그 틈을 이용해서 농우회관을 지은 것이다.
엄부렁하게나마(엄벙부렁하다. 실속은 없이 겉만 크다) 거진 이십 평이나 되는 집을 얽어놓았는데, 그 건축비가 불과 몇십 원밖에 들지 않았다면 누구나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라. 회원들끼리 거진 삼 년 동안이나 농사를 지어 모은 것과, 술 담배를 끊은 대신으로 다달이 얼마씩 저금을 한 것과, 또는 도야지를 치고 이용조합에서 남은 것을 저리로 놓은 것을 걷어 모으면 거진 오백 원이나 된다.
이발부의 수입은 모았다가 동리서 공동을 쓸 솜틀을 칠십여 원이나 주고 샀고, 포패조합(捕貝組合)을 만들어(회원은 다 여자인데, 앞바다 건너 ‘안섬’에다가 이 년 작정을 하고 굴을 번식시킨 뒤에, 조합원끼리 따먹고 장에 갖다가 파는 권리를 가지는 것) 불가불 소용이 참되는, 조그만 나룻배를 사십 원가량 들여서 지은 것밖에는, 한푼도 쓰지 않은 채 있었다.
그들 중에서 이 회관을 짓는 데는 오십 원도 다 들이지를 않았던 것이다.
첫째, 기지가 민유지라 땅값이 아니 들었고, 재목은 단단해서 썩지도 않는 밤나무, 참나무, 아카시아나무 같은 것을, 회원들의 집 앞이나 멧갓에서 베어왔고, 수장목은 오동나무와 미루나무를 썼는데, ‘영치기 영치기’하고 회원들끼리 목도질까지 해서, 운반을 했으니 돈이 들리 없었다.
터를 닦고 주춧돌을 박는 것부터, 자귀질, 톱질이며, 네 올가미를 짜서 일으켜 세우고, 새를 올리고 욋가지를 얽고 토역(흙일)을 하는 것까지 전부 회원들의 손으로 하였다. 이엉을 엮을 짚도, 농우회에서 연전부터 유념해두었었는데, 여러 사람이 입에 혀같이 봉죽(일을 꾸려나가는 사람을 곁에서 거들어 도와줌)을 들었거니와, 회원중의 석돌이는 원체 지위(목수)의 아들인데다가 눈썰미가 있어서, 수장은 물론, 문짝까지 제 손으로 짜서 달았다.
품삯이라고는 한푼도 아니 들었지만, 다만 화방 밑에 콘크리트를 하는 데 쓰는 양회와, 못이나 문고리며 배목 같은 철문만은 할 수 없이 돈을 주고 사다가 썼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고, 거진 두 달동안이나 열두 사람의 회원들이 땀을 흘린 기념탑이, 우뚝하게 서게 된 것이다.
그러나 서투른 목수와 토역장이들이 얽어 놓은 집이라 장마를 치르고나니까 지붕이 새고 벽이 허물어져서, 곱 일을 하느라고, 동혁이도 몇 번이나 코피를 쏟았다. 그랬건만 다 지어놓고 보니, 겉눈에 번듯하게 띄지는 않아도, 거진 이백 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수용할 수가 있게 되었고, 엄부렁하게나마 헛간으로 쓸 모채(띳집. 따로 지붕을 이어 지은 집)까지 세웠는데, 안으로 들어가 보면, 사무실, 도서실까지 오밀조밀하게 꾸며놓았다. 도서실에는 기만이가 사서 기부한, <농업강의록>과 농촌운동에 관한 서책이 오륙십 권이나 되고, 동혁이가 보는 일간 신문과 회원들이 돌려 보는 <서울 시보>, <농민순보> 같은 정기간행물이며, 각종 잡지까지 대여섯 가지나 구비되어서, 회원들은 조금만 틈이라도 타면 언제든지 모여 와서 새로운 지식을 얻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형편을 짐작할 수 있도록 차려놓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오락부를 새로 두었다 .
“사철 일만 하는 우리의 생활은 너무나 빡빡하고 멋이 없다. 좀 더 감정을 윤택하게 하고 모두 함께 즐기는 기회도 지어서, 활기를 돋우려면 적어도 한 가지 통일된 음악이 필요하다.”
는 견지에서 건배가 주창을 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말을 빌리면, 콩나물 대가리(보표,譜表라는 뜻) 하나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이라, 무슨 관현악대를 조직하는 것이 아니요, 우리 농촌에 재래로 있던 징, 꽹과리, 장구, 수구, 호적 같은 악기를 장만한 것이다.
“그런 건 천천히 장만해두 좋지 않은가. 날마다 뚱당거리구 뚜들기면 공청을 지어놓고 놀려구만 드는 줄루 오해들을 허면 재미 적으이……”
하고 동혁이가 반대를 하면,
“온 별소릴 더 허네. 자넨 구데기 무서워서 장두 못 담그겠네그려. “
하고 건배는 기만이를 구슬러서, 새로운 풍물 한 벌을 사들인 것이다. 그래서 회원들끼리만 재빗꾼이 되어서, 노는 방식을 개량하고 두레는 노는 것까지도 통제를 하게 되었다.
“자, 우리 인제 낙성연을 해여지.”
“추렴이래두 내서 내일 하루만 실컨 놀아보는 게 어떤가?”
“암, 좋구말구. 이새 저새 해두 먹새가 제일이라네.”
“우리가 두 달 동안이나 집의 일은 내버려두구설랑 그 땡볕에서 죽두루 일을 했는데, 하루쯤 논다구 누가 시빌 허겠나. “
“여보게, 우리끼리만 암만 공론을 허면 무슨 소용이 있나? 우리 대정헌테 하루만 술을 트자구 졸라보세. 건 깡깡이루야 신명이 나여지.”
“해당초에 그런 말은 비치지두 말게. 일전엔 동화가 또 몰래 주막엘 갔다가, 성님헌테 단단히 혼이 났다네.”
얼굴이 새까맣게 그을다 못해서, 오지그릇처럼 빤들빤들해진 회원들이, 회관 한 모퉁이에 모여 앉아서, 새로 사온 풍물을 두드려보다가 낙성연을 할 음모를 한다.
저녁때였다. 찌는 듯하던 더위가 한 걸음 물러서고, 축동 앞 미루나무에 쓰르라미 소리가 제법 서늘하게 들린다. 회원들은 서퇴도 할 겸 하나둘씩 은행나무 아래로 내려가서, 재벽(목조 건물에 흙벽을 칠 때 처음 바른 벽 위에 다시 한 번 시멘트나 황토 반죽을 바르는 일)한 흙이 채 마르지도 않은 집을 쳐다 보고 앉았다. 그 집을 바라다보는 그들의 기쁨은 형용할 수 없을 만치나 컸다.
‘힘만 모으면 무슨 일이든지 되는구나! 땀만 흘리면 그 값이 저렇게 나타나고야 만다!’
그네들은 회관 집 한 채를 짓는 데 단결의 힘이 얼마나 크다는 것과, 또는 노력만 하면 그 결과가 작으나 크나 유형하게 나타난다는 것을 비로소 체험한 것이다. 동시에 움집 속에서, 또는 남의 집 머슴 사랑에서 구차히 모이던 때를 생각하니, 실로 무량한 감개가 끓어올랐다.
‘저게 내 손으로 지은 집이거니.’
하면 무한한 애착심도 느껴졌다. 그 집을 바라다보고 앉았으려면, 끌 구멍을 파다가 손가락을 다쳤거니, 사닥다리에서 떨어져서 허리를 삐고는 동침(병을 치료하는 데 쓰는 가늘고 긴 침)을 맞느라고 혼이 났거니, 중방(벽의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나무)과 도리(서까래를 받치기 위하여 기둥 위에 건너지르는 나무)를 잘못 끼다가 석돌이 녀석한테 핀잔을 맞았거니 —
이러한 추억만 해도, 여간 정다운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자네 저 기둥감을 베다가 영감님헌테 몽둥이찜질을 당했지?”
“그건 약괄세, 이걸 좀 보게그려. 여태 이 지경이니.”
하고 회원들 중에 제일 다부지고 땅딸보로 유명한 정득이가, 헝겊으로 칭칭 감은 발을 끌러 보인다. 그것은 저의 집 산 울안에 선 참죽나무를 밤중에 몰래 베다가, 저의 아버지가 ‘도둑야!’ 소리를 지르며 시퍼런 낫을 들고 쫓아오는 바람에 어찌나 급해맞았던지 담을 뛰어넘다가 탱자나무 가시에 발을 찔렸었다. 누렇게 곪은 것을 그대로 끌고 다니며 일을 해서, 그저 아물지를 못한 것이다.
사실 그네들이 부모나 동네 어른들의 반대 속에서, 초가집 한 채를 짓기는 대궐 역사만치나 거창하고 어려운 일이었다.
“쉬이, 대장 올러오신다.”
하고 정득이가 구렁이 지나가는 소리를 한다. 동혁이는 건배와 기만의 가운데에 서서 올라온다.
기만이는 여전히 건살포를 짚었는데, 오늘은 헬멧(박통 같은 모자)을 썼다.
“거기들 모여 앉아서 자네들 역적모의를 허나?”
건배도 그 넓적한 얼굴이, 눈의 흰자위와 이빨만 남기고는, 흑인종의 사촌은 될 만치나 그을렀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끼리 무슨 비밀헌 공론을 했는데요……”
하고 석돌이가 세 사람의 눈치를 번갈아 본다.
“무슨 공론?”
동혁은 농립을 벗어던지며 은행나무 뿌리에 가 걸터앉는다. 응달에서만 지낸 기만의 얼굴과 비교해볼 때, 동혁의 얼굴도 더한층 그을은 것 같다. 손바닥이 부르터서 밤콩만큼씩 한 못이 박혔고 손톱은 뭉툭하게 닳았다.
“저어…..”
하고 석돌이가 뒤통수만 긁적거리니까,
“왜 목들이 컬컬헌 게지.”
동혁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러잖어두…..”
하고 이번에는 칠룡이가 응원을 한다. 건배는 기만의 눈치를 보면서,
“아닌 게 아니라, 이 기만 씨가 낙성연을 한번 굉장히 차리구 놀자는데….”
하는 말이 끝나기 전에, 동혁은 손을 들어 건배의 입을 막는다.
“안 되네, 낸들 벽창호가 아닌 담에야 그만 생각이 없겠나? 허지만 말썽이 많은 판에, 동네가 부산허게 떠들구 놀면, 되레 오해를 받기가 쉬우이. 지금두 면장이 나와서 나를 보자구 헌대서 큰마을로 갔다 오는 길일세.”
하고 반대를 하였다.
“왜 무슨 말썽이 생겼수?”
나중에 올라온 동화가 눈을 둥그렇게 뜨며 묻는다.
“차차 알지.”
형은 자리가 거북한 듯이 대답하기를 꺼린다.
“우리 회와 상관이 되는 일이면 회원들두 다 알어야 헐 게 아니요? 면장이 우리 일에 무슨 참견이라우?”
“글쎄 뒀다 알어.”
동혁은 기만의 등 뒤에다 눈짓을 해 보인다. 청년들의 일이라면 한사코 반대를 하는 기만의 형인 기천이가, 면장이 나온 김에 무어라고 음해를 한 것이거니 하고 동화와 다른 회원들도 짐작은 하는 눈치다. 그러나 기만이는 형과 달라 이편을 들고, 농우회의 일이라면 금전으로까지 후원을 많이 해오는 터이지만, 아우가 듣는데 형의 욕은 할 수가 없었다. 또는 경우에 따라서는 초록은 동색이라고 저의 집의 이해관계가 되는 일이면 형에게 무어라고 연통을 할는지도 몰라서, 항상 경계를 하고 있는 터이다.
동혁이는 기천의 집에 다녀오는 길에, 건배와 기만이를 만나서 같이 오기는 했어도, 그들에게도 그 내용을 말하지 않았다. 건배는 탕탕 대포(허풍이나 거짓말 또는 그것을 잘하는 사람을 빗대어 이르는 말)를 잘 놓는 대신에, 말이 헤퍼서 비밀을 지킬 만한 일을 들려주기를 삼가지 않을 수 없었다. 회원들은,
‘무슨 일이 단단히 생겼나 보다.’
하고 불안을 느끼면서도 더 재우쳐 묻지를 않고, 낙성하는 날 술 한 잔도 못 먹게 하는 동혁이가 원망스러운 듯이 쳐다보다가, 애매한 북과 장구만 두드린다.
기만이도 그 눈치를 챘건만, 이런 경우에 아무 말도 아니 하는 것은, 도리어 여러 사람에게 오해를 살 듯도 해서,
“그런데 ‘센세이’(‘선생’을 뜻하는 일본어)가 또 뭐래?”
하고 들띠어놓고 묻는다. 그래도 동혁은,
“그까짓 건 알어 뭘 허우. 우린 우리가 헐 일이나 눈 딱 감구 허면 고만이니까….”
하고 역시 자세한 말대답하기를 피한다. 기만이는 자리가 거북하니까 꽁무니에다가 손을 찌르고, 간다는 말도 없이 슬금슬금 언덕 아래로 내려간다. 제가 하는 일을 반대하고 양반을 못 알아보는 발칙한 놈들과 얼려다니고 돈을 쓰고 한다고, 눈에 띄기만 하면 얼굴에 핏대를 올리며 야단치는 저의 형이, 면소나 주재소까지 가서 무어라고 쏘새기질(불을 처음 지필 때 사용하는 풀잎이나 나뭇잎을 의미하는 사투리)을 하고 온 것만은 묻지 않아도 짐작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농우회관을 짓게 된 뒤부터 가뜩이나 시기심이 많은 기천이가 두 눈에 쌍심지가 돋아서 그 태도가 부쩍 악화된 것만은 사실이었다.
동혁이가 입을 꽉 다물어버리니까, 다른 회원들도 어떠한 예감을 느끼면서도 말이 없다.
건배는 무슨 일인지,
“저기 좀 다녀옴세.”
하고 기만의 뒤를 따라서 내려갔다. 조그만 일에도 궁금증이 나면 안절부절못하는 성미라, 동혁이가 말을 하지 않으니까, 혹시 기만에게 들을 이야기나 있나 하고, 그 속을 떠보려고 따라가는 눈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