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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공원이라고도 불리는 검암산(儉巖山 216.1m 함안)은 검암마을의 뒷산으로 정상부에는 헬기장과 체육시설 및 4층 팔각정자가 세워져 있다.
검암마을은 상검, 중검, 하검으로 나뉘어져 있고, 등산로는 주로 검암쪽으로 나있어 함안천 생태공원과 연계하여 원점회귀하는 코스가 주로 이용된다.
하지만 나는 검암산을 오른 뒤 문암산성과 고려동유적지를 연계하기 위하여 입곡군립공원을 원점으로 삼았다.
입곡군립공원(入谷郡立公園)은 일제강점기 때 농업용수로 사용하기 위하여 협곡을 가로막아 만든 저수지로서 둘레가 약4Km가 된다.
폭은 좁지만 길이는 꾸불꾸불 길게 휘어져 있으며, 함안에서 제일 큰 저수지로 깎아지른 절벽과 우거진 송림은 가식없이 꾸며진 자연 휴게소.
저수지 물가에는 이따금 강태공들이 찾아들고, 봄이면 산등성이와 암벽 사이에 연분홍 진달래, 가을철이면 산책로에 단풍이 곱다.
거기다 저수지를 가로지르는 출렁다리와 정자 등 데크시설이 갖춰져 있어 수변 산책하기가 아주 좋다.
함안 문암산성(門巖山城, 경상남도의 기념물 제182호)은 해발 197m의 자구산 장원봉과 북서쪽으로 이어진 167m의 산 정상에 각각 남아 있는데,
문암 큰 성과 작은 성으로 부른다.
전체 둘레는 1100m 이고 동남쪽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양호한 상태로 남아 있으며, 성 폭은 대개 3m 정도.
큰 성은 장원봉의 8부능선에 둥근모양의 타원형으로 돌아가며 쌓았고, 성벽은 바깥은 돌로 쌓고, 안쪽은 흙과 잡석으로 밋밋하게 만들었다.
고려동유적지(高麗洞遺蹟址 경상남도 기념물 제56호)는 고려 말 성균관 진사 이오(李五)가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들어서자 고려의 유민으로 절의를
지키기 위해 이곳에 거처를 정한 뒤 그 후손들이 살아온 장소이다.
이오는 은거지 주변에 담을 쌓아 밖은 조선의 영토라 할지라도 안은 고려 유민의 거주지임을 명시하는 ‘고려동학(高麗洞壑)’이라는 표비를 세웠다.
여기서 ‘담안’ 또는 ‘장내’라는 마을이름이 유래되었다.
1) 입곡삼거리-포장임도-아스팔트-동지산마을회관-사거리이정표-191m봉-화장실-솔밭-검암산-임도-독가-계곡묵밭-입곡삼거리(빨간 화살표)
2) 입곡삼거리-굴다리-절개지-문암산성-임도-자양산남릉-자양산통신탑(401.6m)-임도-대숲-문암산이정표-고려동유적지-문암초교-입곡삼거리(파란 화살표)
클릭하면 큰지도
1)과 2)를 합한 거리와 시간.
네비엔 '입곡삼거리'를 입력하여 '입곡군립공원' 입구 외진 곳에 차를 댔다. 옆에 비각이 있어 살펴본다.
성주이효자지비(星州李孝子之碑).
입구의 기문.
입구의 상량문.
입곡삼거리는 엄밀히 말하면 입곡사거리. 횡단보도를 건너...
여러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 방향으로 들어가다...
좌측 아래로 입곡저수지를 내려다보다...
잔잔한 수면 위를 유영하는 오리들을 당겨 보았다.
우측으로 철계단이 보여...
계단 위 바위면을 당겨보니 암면에 빼곡히 글귀가 새겨져 있다. 궁금증이 유발하였지만 패스.
아래 길가의 비석엔 '경인동경계추모비' 경인년(庚寅年)생 계(契)조직을 말하는 듯하다. 경인년이면 1890년,1830년,1770년. . . .
갈림길 좌측으론 입곡저수지이고, 직진하여...
동지산마을 방향으로 오른다.
버스는 이곳에 대는 듯.
좁은 세멘트 포장길을 걸으면...
함안면의 면계 안내판이 서있다.그러니까 지금부터 산인면에서 함안면으로 들어간다는 말.
다시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나오는 제법 반듯한 도로변에 나와...
2차선 아스팔트를 걸어...
고개마루인 동지산마을에 도착하니 길가에 비석군들이 세워져 있다. '정무공동산선생시우지지'라고 새겨져 있지만...
맞은편엔 동지산마을회관. 나는 회관 앞(승용차 두 대)을 가로질러...
내려가다...
좌로 꺾어지는 지점에서 주택 좌측 골목으로 들어가...
다시 농가를 만나는 지점에서 좌측 검암마을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난다.
이 지점의 이정표.
내가 들어온 곳.
검암산 이정표를 바라보고 진행.
고개마루가 코앞.
고개마루의 이정표.
이 포장도로는 아까 동지산마을회관 뒤로 올라오는 길. 낮은 산자락으로 올랐다.
이 지점의 이정표.
소나무 듬성듬성한 정수리(190.6m)엔...
무덤 몇 기가 있고...
자양산 방면으로 조망이 열린다.
자양산을 살짝 당겨보니 통신탑이 잡힌다.
내려서노라니 철탑과...
화장실이 있다. 나는 직진 솔밭 위로 올라 좌측으로 내려왔다.
상쾌한 솔밭길을 걸어...
5분 만에 다시 임도에 내려서 임도 아래를 내려다 본다.
금세 널따란 공터가 있는 검암산.
동네 주민들의 산책로인 듯하다.
정상엔 목재 4층 망루가 세워져 있고...
현판엔 검암산마루.
4층 망루에 올라 주위 조망을 한다.
망루의 검암산조망도를 참고 삼아 주변 산군들을 헤아려 본다.
좌측 서북산과 여항산, 그리고 우측으로 백이산과 멀리 방어산까지...
방어산 다음 더 우측으론 삼봉산, 우측 멀린 자굴산.
방어산을 당겨보니...
훤출한 산세.
자굴산도 당겨보니...
그 모습이 드러난다.
클릭~ <파노라마>
참고한 검암산 조망안내도.
내가 오를 자양산과 남릉.
당겨본 모습.
4층 망루에서 내려와 사각정자에는 성산광평이씨 종중에서 군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증여한 산이란다.
야외도서관도 꾸며져 있고...
동지공원 안내도도 그려져 있다.
이정표.
이젠 임도를 따라 내려서다...
잘 꾸며진 가족묘원에서 다시 솔밭길로 올라...
대충 입가심을 한 뒤...
이정표를 지나...
190.6봉을 에두르는 임도에서 농가를 만나...
농가 좌측으로 길을 찾아 들기로 했다. 임도를 계속 따르면 아까 들어온 동지산마을회관으로 빙 두르기 때문.
그러나 권하고 싶은 길은 아니다.
가족묘원이 있어 여기까진 길이 좋지만...
도로가 보이는 곳(무덤)에서는 길이 없어 돌아나와...
노란 철탑 안내리본이 달린 곳으로 내려가...
어쩔 수 없이 묵밭의 흔적이 있는 계곡 옆으로 그냥 치고 내려와...
올려다 본 모습. 이럴줄 알았으면 아까 무덤이 있는 곳에서 그냥 치고 내려왔으면 가까웠을 것.
입곡삼거리가 내려다보이는 지점은...
아라가야 자전거 코스 조형물이 있는 곳.
조형물 뒷쪽으로...
아라가야 자전거길 안내판.
건너에 차를 주차한 효자비각이 보인다.
길로 내려가 매천교를 건너 덤프트럭이 있는 굴다리를 통과한다.
굴다리를 통과해서...
만난 2차선 도로 건너로 낮은 산자락이 내려와 있다. 저곳이 내가 붙어야 할 능선.
쳐다보는 능선 끝자락. 우측 끄트머리는 도로가 난 절개지.
무덤이 있는 곳에서 잡목을 헤치고...
능선에 붙었더니 역시 무덤들이 있고...
묵은 길이 산아래로 내려가 있어...
짚어 보았다.
성돌인 듯한 돌무더기들을 지나...
잡목들 사이로 올랐더니...
널따란 길이 보인다.
산성이라지만 흔적은 없어 꼭대기에 올라보니 몇 기의 무덤들이 산정을 지키고 섰다.
시그널 한 개가 나풀거려 확인을 해보니 문암산이라 적어 놓았다.
문암산성이 있는 산이니 문암산이 맞을 것이지만 네이버 지식백과에는 '자구산(紫丘山)의 지봉(枝峰)인 장원봉(壯元峰 197m)과 북서쪽으로 연이어진
해발 167m의 산정에 띠를 두른 듯한 산성이다.
북쪽에는 석축이 무너져 있고 돌출된 산이 표주박같이 생겼으며, 남쪽에 있는 산성 외에 북쪽에 또 소규모의 산성이 있어 편의상 큰 산성, 작은 산성이라
부르며 두 산성의 중간에 난 고개를 가산고개라 한다.'라고 되어있다.
자구산은 자양산의 옛이름. 따라서 문암산성이 있는 이산은 자양산의 지봉인 장원봉이 맞을 터.
산성의 흔적을 좇아 널따란 길을 따르다...
경운기가 있는 농막에 접근하니 인기척이 들린다.
"어서 오이소."
사람이 보이지 않아 묵묵부답하니 다시 "어서 오이소." 나는 보이지 않지만 그 사람은 나를 보고 있는 듯해서 "반갑습니다."하고 인사를 건넸다.
성의 흔적을 찾는다고하니 나를 따라오라고 한다. 그러면서 성 한 바퀴 둘러 보았느냐고 묻는다.
내가 사진을 한 장 찍자고 하였다. 처음엔 산에서 도를 닦는 기인인 줄 알았으나 이곳에 사유지를 갖고있는 사람이었다.
커피 한 잔 하고 가라고 하였으나 갈 길 바빠 극구 사양하고 돌아섰다. 적적한 산막에서 사람이 그리웠던 모양이다.
경운기가 올라올 만큼 좋은 길을 따라 내려서며 주위 성곽의 흔적들을 카메라에 담는다.
무너진 성터를 그냥 방치하고 있으니 안타깝다. 고증이 완벽한 일부만을 복원하면 좋겠는데...
성곽의...
성돌들은 그냥 돌무더기들.
일부 복원을 기대해 본다.
널따란 길을 내려서면...
도로를 만나고...
도로를 가로질러 다시 산자락으로 붙는다.
등로는 능선으로 곧장 붙지않고 우측으로 비스듬히 사면을 따른다.
정비한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 산길에 연두색 깃발이 꽂혀있어 궁금증이 동하지만...
아무런 설명을 들을 수 없어.
노란색 깃발도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다. 어느 답사팀들이 들고가다 버리고 간 것인가? 표식기라면 단단히 묶었을 텐데...
에구, 이넘들. 또 오토바이가 올라왔네. 산길을 정비해보았자 오토바이가 다 훼손해 버린다.
이것의 용도는 무었일까? 도무지 알길이 없다.
잘 닦여진 산길을 올라서니...
갈림길이 나온다. 좌측 길로 올라와서 돌아본 모습이다. 우측길은 어산(魚山 163.7m) 또는 안인(외동)마을 가는 길인 듯.
자양산의 통신탑을 올려다보다...
휀스에서 우측으로 잠깐 들어가다 길이 없어 좌측으로 돌아 나갔다.
세멘트 축대를 우측으로 끼고...
빙 돌아나오면...
임도가 올라있는 곳.
그 지점이 정문이고, 내가 나온 곳은 우측 하얀 화살표.
임도를 내려서다 다시 돌아본 통신탑봉. 실제 정상인 통신탑봉은 나에게 아무것도 제공해주지 않는다.
엊그제 산불초소와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이 있는 400.6m봉에서 내려서는 지점.
이정표에 자양산 100m라고 적혀있다. 통신탑 방향으로 안인(외동)마을 1.7km라고 적혀있으니 아까 갈림길을 말하나보다.
엊그제와 마찬가지로 우측으로 시원한 조망이 터진다.
우측 서북산과 여항산의 모습.
빠른 걸음으로 정자가 있는 임도사거리에 와서 엊그제는 직진을 했지만 오늘은 우측 임도를 곧장 따른다.
10분 만에 대숲이 보이는 삼거리에 닿아...
삼거리 우측 대숲 20여m 아래에서...
임도를 버리고 좌측 화살표 방향으로 들어간다.
이 길은 전형적인 둘레길 수준으로...
대숲을 지나면...
다시 임도에 닿는다. 돌아본 모습.
임도는 마을로 곧장 내려서게 돼.
길 옆의 '덕강처사조공지묘비'. 함안은 유난히 비석이 많은 고장.
버섯 닮은 지붕의 집을 바라보고...
제법 큰 길에 내려서 돌아본 모습.
'어모장군(籞侮將軍)용양위부사직 여주이공 유허비'를 곁눈질.
<어모장군(籞侮將軍)과 어회장군(籞悔將軍)은 다같이 종4품(從四品) 훈련원첨정(訓鍊院僉正)을 지내는 비슷한 벼슬로 보인다.>
수동세장 비석과...
효자 충신 도암종택(韜巖宗宅)의 석비를 본다. 도암종택은 이렇다할 자료가 보이지 않아 '함안 조씨 대종회'에서 발췌했다.
도암공(韜巖公) 조탄(趙坦)은 도암공파조(韜巖公派祖)로서 [1552年生(明宗7壬子)~1598年(宣祖31戊戌)卒.
자는 극평(克平), 호는 도암(韜巖), 증직(贈職) : 가선대부병조참판(嘉善大夫兵曹參判)
임진왜란 때 재산을 풀어 의병을 모병하자 그 고을 원님 읍재(邑宰) 류숭인(柳崇仁)이 군량미를 도와주었다.
충익공(忠翼公) 곽재우(郭再祐) 막하에 참전하여 정강진(鼎江陣)에서 공을 세웠다.
도암공이 새터를 잡아 지금까지 대대로 살아오고 있는 곳이 이곳 함안군 산인면 수동(洙洞)으로 초석(礎石)을 놓은지 400년이 되었다.
길가 이정표에 문암산 0.2km가 나온다. 100m정도의 동산이 문암산?
예전부터 문암산성이 있었으니 마을이름도 문암마을이었을 테고, 다시 문암마을 뒷산이니 문암산이 되었을 것.
계단이 놓여진 등산로를 쳐다보다...
고색 짙은 돌담과 고래등 같은 기와지붕들을 만난다.
청간문(聽澗門) 현판을 쳐다보고...
도랑을 따라 내려가다
또 효의문(曉義門) 현판을 카메라에 담고, 까치발을 하고 담안을 살폈다. 그리곤 현판을 당겨 잡았다.
효산정은 효산 이수형의 유적이다.
효산정은 조선 말기의 문신이며 학자인 효산선생(1837~1908)이 우거하던 곳이며 대원군이 보낸 편지등 백운래홍첩(白雲來鴻帖)이 전한다.
당겨본 효산정(曉山亭) 현판.
고려교(高麗橋)를 건너기전 우측에...
'율간선생승수지'와 '모은선생둔(遯)적처'. 잠긴 문 안의 비석은 담지 못한다.
고려동유적지는 여러 건물들이 있었지만 한국전쟁동안에 모두 소실되어 복원한 것.
자미고원, 고려세장 잠긴 문 안에 불사이군(不事二君)의 굳건한 절개를 상징하듯 배롱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고려가 망하자 모은 선생이 이곳에 이르렀을 때 백일홍(자미화)이 만발한 것을 보고 평생 살 거처로 정했다고 한다.
물채문(勿替門) 담장 안으로 까치발을 하고 자미정(紫薇亭) 현판을 당겨 본다.
옆 솟을대문이 열려있어 안으로 들어가 선조의 훌륭한 유업을 이어 받는다는 뜻의 종가의 사랑채격인 계모당(繼模堂)을 카메라에 담고...
그 편액도 당겨 잡았다.
안내판이 보이는 옆으로 돌아가니...
우물이 있고, 복정(鰒井)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이 우물은 모은의 현손에 얽힌 효자상이 깃들어 있다.
현손인 이경성은 병조참판에 증직된 사람으로 현감을 지낸 사람이다.
남명 선생이 "어찌하여 벼슬을 더 하지 않는가"하고 물으니 "노모를 봉양하기 때문"이라고 답했을 정도로 효성이 지극해 남명 선생으로부터
양지지효(養志之孝)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의 부인 여주 이씨도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시어머니가 병에 걸려 전복을 먹고 싶다고 했으나 산골지방이라 구할 수 가 없었다.
백방으로 전복을 구하러 다니게 되자 하늘이 감동했던지 옆에 있는 우물에서 전복이 나와 시어머니께 드릴 수가 있었다.
이 우물은 모은이 직접 판 것으로 60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맑은 물이 솟고 있으며 아무리 가뭄이 심해도 마르는 일이 없다고 한다.
자미정은 담장 밖 자미단에 백일홍이 피면 그것을 바라보며 시화를 나누던 곳으로 6.25때 아군에 의해 불타버린 것을 옛 주춧돌위에 복원한 것이다.
자미정(紫薇亭)은 선생이 평소 기거한 곳으로...
왼쪽에는 경모당(景矛堂)이라는 현판이 걸려있고...
오른쪽에는 우죽헌(友竹軒)이라는 편액이 걸린 방이 또 하나 있다.
상의문(尙義門)안으로 들어가니...
'고려진사모은이선생경모비'가 세워져 있다.
고려동유적지를 떠나 마을 어귀에서 돌아본다.
이곳엔 이오 선생의 증손들이 19대 600여 년 동안 마을을 떠나지 않고 30호의 후손들이 재령 이씨 단성의 동족마을로 그 순수성을 지켜가고 있다한다.
버스정류소는 장내정류소로...
운행노선 114-1, 777(함안~칠원) , 252-2번이 운행된다.
길가에 '가선대부홍문관부제학/ 율간이선생 유허비'가 있다
율간(栗澗)은 모은의 둘째 손자로 흥해부사와 낭양부사를 거쳐 벼슬이 홍문관 부제학에 이르렀으며 가선대부로 특지된 인물.
차량회수를 위하여 아스팔트르를 걸어 문암초등학교를 지나고...
길가 삼절각(三節閣)을 살핀다.
효자비다. '효자 증가선대부한성부좌윤재령이공유적비'
문암보건진료소를 지나고...
내거 문암산성에 접근한 낮은 산자락이 뻗어 내려온 곳.
현재위치 대천교에서 연수원 방향은 대천마을 가는 길.
그곳에 산인면게이트볼구장이 있네. 그 뒤로 낮은 산자락은 문암산성으로 접근한 능선.
입곡천 굴다리를 지나 차량을 회수했다.
그리곤 차량을 이용 입곡군립공원을 한바퀴 돌아보았다.
입곡저수지를 가로지르는 출렁다리.
출렁다리의 안내판.
불밝은 다리를 건너...
팔각정자에 올라 보았다.
데크로드를 따라 조금 걷다가 차량으로 돌아와...
입곡군립공원 안내판을 살펴본다. 언제 아내와 함께 온다면 가볍게 저수지 둘레길을 걸을 수 있을 것이다.
- 겨울 산길에서 -
추억의 껍질 흩어진 겨울 산길에
촘촘히 들어앉은 은빛 바람이
피리 불고 있었네
새 소리 묻은 솔잎 향기 사이로
수없이 듣고 싶은 그대의 음성
얼굴은 아직 보이지 않았네
시린 두 손으로 햇볕을 끌어내려
새 봄의 속옷을 짜는
겨울의 지혜
찢어진 裸木의 가슴 한켠을
살짝 엿보다
무심코 잃어버린
오래 전의 나를 찾았네
<이 해 인>
첫댓글 넘 잘보고갑니다~수고했심더^^
수고많으셨습니다
제한테 필요한 자료를 몇 개 퍼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