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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은 모든 중생이 불성를 갖춘 절대적인 존재임을 일깨워 주신 자비하신 스승이십니다. 누구나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착한 마음을 가지고 있음을 깨우쳐주신 부처님이십니다. 해상법당에서 하는 기도도 본래 깨끗한 본마음을 맑게 하고자 하는 뜻입니다. 참다운 자기방생은 스스로 불성을 밝히는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불자님들과 모든 이의 생일에는 부모님께 방생하세요! 어머님은 생사의 기로에서 여러분들의 생명을 세상에 탄생시켰습니다. 우리 모두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봅시다! 내가 태어난 생일을 어떻게 보내야 옳을까요?”
나는 늘 이렇게 말합니다. 생일에 대한 개념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고 봅니다. 진정한 불자라면 생일 하루만이라도 고기를 안 먹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이 태어 난 날, 부모님이 자신을 태어나게 해 주신 날 하루라도 진정으로 모든 생명이 다 소중함을 생각합시다.
그리고 부모님께 특히 어머님께 따뜻한 마음으로 큰 절 한번 하며 손을 잡아드리고, 어머님의 은혜를 깊이 생각하여 어머니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이 없도록 결심하도록 노력합시다. 내가 어머님께 하는 모습을 본 내 자녀들이 그대로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대를 이어서 행복한 삶을 할 수 있음을 명심합시다.
요즘 젊은 세대는 자기 생일은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내가 출생되는 과정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고 내가 잘 먹고 즐겁게 보내려고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생일날 절에 가서 “부처님 우리 부모님 극락세계로 인도해주시고 저희들도 부처님 말씀 잘 듣고 배워서 올 바른 불자가 되겠습니다” 라고 발원하고 잠시 생각에 잠겨 보시기 바랍니다. 그 시간이 아주 아름답고, 평소에 스스로 보지 못한 점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꼭 해보세요!
사람이 동물과 다르다는 것은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은 유익한 만큼 해로운 면도 있으니, 지혜롭게 쓸 줄 알아야 합니다. 말은 크게 나누면 좋은 말, 예쁜 말, 덜 좋은 말, 덜 예쁜 말(나쁜 말들)을 구별 할 수 있습니다. 그 많은 말들 중에는 해서는 안 될 말임에도 불구하고 아무 생각 없이 하는 말이 많습니다.
‘아이고, 내 팔자야.’
이런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이고는 언뜻 아무 뜻 없이 내 뱉는 말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고란 말은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애곡(哀哭)을 하는 소리입니다. 무엇이 잘 안될 때 ‘아이고’하면 그만큼 슬프다는 뜻이지요. 그런 말을 일상에서 자꾸 쓰면 어떻겠습니까? 점점 더 좋지 않은 일들이 생깁니다. 그 말의 기운이 몸에 스며들고 마음에 젖어들어 자꾸만 아이고 소리를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자꾸 ‘아이고 아이고’ 하면서 살면 정말 슬프고 비통한 일이 생기게 됩니다.
팔자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입만 열면 팔자타령을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 분들에게는 “팔자타령만 안 해도 그 팔자는 망가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팔자라는 것은 스스로 짓고 스스로 받는 자작자수의 인과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타고난 팔자를 망가뜨리지만 않아도 불행해 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스스로 팔자타령을 하고 무엇이든 부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삶을 꽈배기처럼 꼬이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람은 능력으로 살고 업력으로 살고 덕력으로 살고 복력으로 사는 겁니다. 능력은 현생에서 배운 기술을 발휘하여 살아가는 것이고 업력은 전생부터 지어온 업의 힘으로 사는 것입니다. 또 덕력은 인품을 닦아 형성된 덕의 힘으로 사는 것이고 복력은 자신이 알게 모르게 쌓아온 공덕의 힘입니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복력입니다. 예부터 ‘능력 있는 장수는 덕 있는 장수를 이길 수 없고, 덕 있는 장수라도 복 있는 장수를 감당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가지고 온 복을 다 쓰면 고갈되어 버립니다. 그러니까 복을 지을 행위를 자꾸 해야 합니다.
복은 지으면서 쓰는 것입니다. 복을 짓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다들 잘 아실 겁니다. 그런데 제가 보니까 복을 까먹고 팔자를 망가뜨리는 말이 입에서 지나치게 자주 나오는 분들이 많습니다. ‘죽겠다’는 말도 그 섬뜩한 뜻은 생각하지 않고 지나치게 많이 씁니다. 걸핏하면 ‘힘들어 죽겠다’ ‘배불러 죽겠다’ ‘우스워 죽겠다’ 등등 죽겠다는 말을 많이 하더라는 겁니다. 이래도 죽겠고 저래도 죽겠으면, 왜 살고 있습니까?
‘미치겠다’는 말도 습관처럼 쓰고 ‘환장한다’는 말도 습관처럼 씁니다. 미치는 것은 정신줄을 놓치는 것이고 환장하는 것은 창자가 뒤틀려 버리는 것입니다. 정말 그렇게 되길 원하는 겁니까? 자꾸 ‘미치겠다’ ‘환장하겠다’ 하면서 살면 정말로 미치고 환장하여 입원하고 수술할 일이 생깁니다. 스스로에게 불행을 자초하는 주문을 거는 것이니까요.
부정적인 말, 비관하는 말, 남을 낮추고 멸시하는 말, 나를 타락시키는 말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렇게 입만 조심해도 스스로 갖추고 있는 불성의 밝은 빛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말이 씨가 된다는 옛말은 진리입니다. 사람의 말에는 영적인 힘이 있어서 반드시 결과를 만들어 내게 됩니다. 가는 말 오는 말이 고와야 사람 사이도 좋은 것입니다. 결국, 말 한 마디에도 지옥과 극락의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천구경>의 맨 처음이 ‘정구업진언’인 이유를 잘 생각해 보면 말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불교를 바로 믿고 바르게 살기위해서는 업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앞에서도 말 했듯이 업은 버릇
을 말합니다. 버릇은 내 인생의 마지막까지 따라 다니는 것입니다. 한 순간도 나를 떠나지 않습니다. 이 이치만이라도 부디 명심하여 좋은 버릇을 길러야 합니다. 기도하는 버릇, 말하는 버릇, 생각하는 버릇 등등 모든 것이 버릇들이기 나름입니다.
석천 스님은 “모두 정각(正覺)의 삶을 추구해야 하는데, 물질문명이 발달할수록 착각(錯覺)의 늪에서 헤어나질 못하니 안타까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스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우리의 일상은 거의가 착각에 매몰되어 있는 것 같다.
지금 나는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 단순한 이치를 잊어버리고 엉뚱한 곳에서 부처를 구하고 보살을 들먹이며 잘난 체 하고 있지 않은가? 스스로에게 물어 보며 아름다운 한려수도의 섬들을 에돌아 뭍으로 돌아왔다.
석천 스님은... 황해도 옹진에서 태어나 동화사에서 서운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동화사에서 9하안거를 성만하고 김룡사에서 서암스님을 모시고 정진하는 등, 전국의 선원에 방부를 들여 정진하다가 제주도에서 토굴생활을 하기도 했다.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겠다는 원력을 세우고 한산도를 찾아가 한산사를 세우고 기도 정진하다가 해상법당을 건조해 기도와 전법도량으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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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_()_스님 고맙습니다 나무 지장보살 마하살 ()()()
나무 지장보살 마하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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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지장보살 마하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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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관세음보살 스님 감사합니다
나무 지장보살 마학살...()()()
나무 지장보살 마하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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