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교사 "황당한 전형" 입학생 강의 못따라가 고전도
만점이면 의·한의대 합격, 이상한 수시
학부모·교사 "황당한 전형" 입학생 강의 못따라가 고전도
재수생 아들을 둔 학부모 최모(여·49)씨는 얼마 전 아들의 고교 동창 중 한 명이 토익시험에서 만점(990점)을 받아 특별 전형으로 의대에 합격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최씨는 "전교 1등 해도 가기 어려운 게 의대인데 영어 성적만 좋다고 뽑는다는 게 말이 되느냐"면서 "조기 유학 갔다 온 애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선발방식"이라고 말했다.
수험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 사이에서 최근 들어 "영어만 잘하면 의대나 한의대 갈 수 있다"는 말이 퍼지고 있다.
실제로 일부 대학의 의대와 한의대에서 수시 특기자 전형이라는 이름으로 외국어 능력 우수자를 신입생으로 선발하고 있다. 신입생 47명을 선발하는 중앙대 의대는 수시 2차의 '글로벌 리더 전형'에서 영어 성적이 우수한 학생 4명을 뽑는다. 공인 영어 성적 80%, 생활기록부 20%로 합격자를 선발한다. 면접시험은 없다. 지원 자격은 토플IBT 100점(만점 120점)이나 토익 900점(만점 990점), 텝스 820점(만점 990점) 이상이다.
대전대 한의대의 올해 입시 요강을 보면 71명의 신입생 가운데 수시 모집에서 영어 성적 우수자 2명과 중국어 성적 우수자 2명을 선발한다. 외국어 성적 60%와 학생부 성적 40%를 합산해 합격자를 뽑는다.
경희대 한의대(신입생 108명)는 네오르네상스 전형(10명)이라는 입학사정관제 전형에서 외국어 성적 우수자를 선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경희대 관계자는 "단순히 어학 성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입학사정관들의 심사를 통해 다양한 경험, 능력을 보고 선발한다"면서도 "한의대도 국제화 시대에 맞는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 외국어 능력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 전형으로 진학하는 학생들의 학교 내신도 매우 좋은 편이다.
이처럼 영어 점수를 중시해 의대나 한의대에 진학할 수 있는 길이 생기면서 일부 유명 입시학원에는 "어떻게 하면 되느냐"는 학부모들의 문의 전화가 꼬리를 물고 있다. 강남의 한 입시학원 관계자는 "특히 외국어고에 다니는 자녀를 둔 학부모들에게서 이런 문의가 많이 온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학부모들과 일선 교사들은 "황당한 전형"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이과 수험생 자녀를 둔 학부모 최모(여·47)씨는 "외국어 잘한다고 의대 보내주는 건 외국어고등학교 출신들에게 유리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휘문고 신종찬 교사는 "의대 수업을 따라가기 위해선 고등학교 이과 수업을 100% 이상 소화해야 하는데, 어학 성적이 좋은 학생들만 뽑을 경우 대학 수업을 따라가기 어려울 수 있다"면서 "의대 특별 전형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선발방식"이라고 했다.
실제로 어학 우수자라는 이유로 의대나 한의대에 입학한 학생들 중 수업을 따라가지 못해 고전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토플 만점으로 서울의 한 사립대 의대에 입학한 김모(24)씨는 "고등학교까지 문과였는데 의대에 진학하니 수업 따라가기가 벅차다"며 "차라리 국제학부로 진학해 어학 특기를 살리는 건데 괜히 의대 욕심을 냈다가 후회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