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터 카멘친트 / 헤르만 헤세 / 원당희 / 민음사
한 사람의 유년기부터 장년기까지를 담담하게 풀어놓은 소설이다. 마치 마음을 열고 들으면 숨소리까지 들리지만, 고개를 돌리면 저만치 사라져 버리는 어떤 재즈처럼, 또는 맑은 색의 수채화처럼 느껴지는 강렬한 맛을 주는 그런 부류의 소설은 아니다. 그러나 왠지 가깝게 느껴진다고나 할까? 그런 이상한 매력이 있다.
'카멘친트'라는 성을 가진 사람들이 몰려 사는 산골에서 태어나 잠시 도시를 배회하다 고향으로 돌아오는 페터는, 태어난 곳으로 회귀하는 연어와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인간은 자연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고, 자연을 벗어난 삶은 허구임을 주장하는 듯하다.
사랑, 죽음, 자연, 신, 인간, 심지어 술에 대한 고찰까지 작가는 짧은 소설 안에서 참 많은 것을 담아내려고 했다.
책의 서두에 추천의 말에는 사독을 권할 정도로 깊이가 있다고 한다. 사독을 얼마 간격으로 해야 좋은가? 이번에도 언젠가 읽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으로 책장을 넘겼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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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니체나 바그너도 모르지만, 눈 덮인 산에 많이 올라가 봤고, 건강한 산악 지방 사람의 얼굴을 갖고 있습니다. -리하르트 65
그리하여 말 없는 자연을 문학으로 표현하는 것이야말로 내 참된 사명이라고 여기게 됐다 75
"아, 사랑이란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 존재하는데 아니에요. 그것은 우리가 고통과 인내 속에서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를 알려 주기 위해 있는 것 같아요." 84
어렸을 때부터 내게 인간은 도대체 그리 사랑스럽거나 필요한 존재가 아니었는데, 이제는 인간을 비판과 조롱의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90
나는 갑자기 죽음이 우리의 현명하고 착한 형제라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죽음은 올바른 때를 알고 있으니 우리는 확신을 가지고 그를 기다려도 좋을 것이다. 나는 또한 고통과 실망과 우울은 우리를 망치고 쓸모없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성숙시키고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106 ~ 107
나는 아무도 '자연을 이해한다.'라고 말할 수 없으며, 사람들이 아무리 찾고 구해도 거기에서 단지 수수께끼만을 발견하고 슬퍼하게 되리라고 대답했다. 햇빛 속에서 있는 나무, 풍화된 돌, 동물, 산 ‐ 그것들은 저마다 생명과 역사를 가지고서 살아가다가 고통받고, 반항하고, 죽어간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120
내 삶은 어떤 의미이며, 무엇 때문에 그토록 수많은 기쁨과 슬픔이 나를 지나쳐 갔는가? 왜 나는 진실과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을 갖게 되어 오늘날까지도 목마른 사람으로 존재하는가? 왜 나는 그 여인들에 대한 사랑과 고통으로 눈물과 쓰라린 마음에 시달려야 했는가? 왜 그런 내가 오늘 다시 서글픈 사랑 때문에 수치심과 비탄에 빠져 있는가? 붙잡을 수 없는 신은 무엇 때문에 사랑의 불타는 그리움을 내 심장에 심어 놓고서, 고독하고 거의 사랑받지 못하는 삶을 살도록 결정했는가? 135
이미 알고 있듯이 내 소망은 위대한 시를 통해 오늘날의 인간을 너그럽고 말 없는 자연의 삶으로 가까이 데려가, 자연을 사랑하게 하는 것이었다. 나는 인간들에게 대지의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듣는 법과 그 총체적 삶에 참여하는 법, 인간이 지닌 작은 운명의 충동 속에서 우리는 신도 아니고, 저절로 만들어진 존재도 아니며 대지와 그 우주적 전체의 한 부분이자 아이들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방법을 가르치고 싶었다. 나는 시인의 시나 꿈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밤과 강, 호수와 흐르는 구름과 폭풍들이 동경의 상징이자 버팀목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싶었다. 이런 것들은 하늘과 모든 살아 있는 것들에 동등한 권리와 불멸성을 의심 없이 확신하게 한다. 모든 존재의 가장 내면적 핵심은 이 권리를 확신하는 것이고, 신의 아이가 되는 것이며, 두려움 없이 영혼의 품속에서 쉬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내면의 지니고 있는 모든 악과 병, 타락은 그에 대항하여 죽음을 신봉한다. 149
나는 인간이, 다른 무엇보다도 그들을 둘러싸고 보호해 주는, 끈끈한 아교풀 같은 거짓에 의해 다른 자연과 구별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랍게 받아들였다. 1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