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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친절
시편 104:1~15
오늘 읽은 시편은 지난 시간 생각한 시편 103편의 저자인 다윗이 쓴 것입니다. 시편 103편과 시편 104편 똑같이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하는 말로 시작됩니다. 시편 103편에서는 세계 일반에 관한 하나님의 섭리의 놀라운 업적을 찬양했습니다. 그런데 시편 104편에서는 하나님의 은밀하신 친절에 대하여 찬양하고 있습니다. 앞의 시편에서는 하나님의 은총을 찬양했고, 여기에서는 자연의 하나님으로 찬양되고 있습니다.
이 시편은 비교적 긴 시편이기 때문에 한 절 한 절 생각하며 해석할 수 없고 대목 대목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이 시편 기자는 오늘 본문 첫 대목에서 천상 세계에 비치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봅니다. 그것은 눈으로 바라보이지 않는 것 중에 하나이지만 신앙이 그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대한 존경과 경외심 그리고 감사함으로 기도를 시작합니다.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는 심히 광대하시나이다” 하나님이 광대하신 것은 우리의 기쁨입니다. 왕이 위대할 때 이것은 온 국민의 자랑인 것입니다. 사실 세상에서는 왕이 화려하고 찬란하고 영광스럽지만, 하나님과 비교하면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세상의 왕들은 왕의 옷을 입고 백성 앞에 나타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옷은 어떻습니까? “저는 존귀와 권위를 입으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2절에 “주께서는 옷을 입음같이 빛을 입으신다”고 했습니다. 요한 일서 1장 5절에 “하나님은 빛이시다”라고 했습니다. 야고보서 1장 17절에 “빛들의 아버지시라”고 했습니다. 디모데전서 6장 16절에는 “빛 가운데 거하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빛의 옷을 입은 것처럼 하신다고 성경은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십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볼 수 있는 것 중에 빛은 영에 가장 가깝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거처는 가장 높은 하늘에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제일 첫날 창조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창세기 1장 3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빛으로 그 자신을 가리기를 즐기시며 인간들이 그들 자신을 가리는 곳에서 나타나는 것과 비슷하게 하나님 자신을 빛 가운데 나타내시기를 좋아하십니다.
그리고 3절에 “물에 자기 누각의 들보를 얹으시며”라고 했습니다.
왕들은 저들의 궁전이나 광야의 누각에서 장엄하게 나타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궁전이나 누각은 어떤 것입니까? 2절에 “그는 하늘을 휘장같이 치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방 사이를 나누는 휘장같이 물을 나누어 궁창을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을 휘장같이 치시며 저희에게 권력을 펴십니다. 하나님은 빛으로 그 자신을 가리지만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어두움으로 그의 누각을 만드십니다. 그래서 구름으로 자기 수레를 삼으시고 바람 날개로 다니시며 그의 위대하심을 드러내십니다. 이 얼마나 위대하십니까!
세상의 왕들은 입성할 때 기름진 말들이 이끄는 위엄있는 수레를 타고서 나타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구름으로 자기 수레를 삼으시고” 이 세상을 지배하시며 통치하십니다. 구름이 하늘 이 편에서 저 편으로 날아가는 것처럼 하나님은 특별하신 섭리로 무슨 일을 행하고자 하실 때는 언제 어디서나 나타나셔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율법을 주시기 위해서, 다볼산에서 복음을 주시기 위해서 수레를 탄 것처럼 구름 속에서 하강하셨습니다. 그리고 바람 날개로 걸으십니다. 위풍당당한 모습을 의미합니다. 시편 18편 10, 11절을 보세요. “구름을 타고 날으심이여 바람 날개로 높이 뜨셨도다 저가 흑암으로 그 숨는 곳을 삼으사 장막같이 자기를 두르게 하심이여 곧 물의 흑암과 공중의 빽빽한 구름으로 그리하시도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바람에게 명하셔서 그가 원하는 대로 인도하시며 그의 목적을 이루십니다.
“바람으로 자기 사자를 삼으시며 화염으로 자기 사역자를 삼으시사”(4절) 에스겔이 본 환상대로 그들이 번개 섬광같이 빠르게 왕래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스랍’, 다시 말해서 불태우는 자들이라 불리워졌습니다. 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5절에 “땅의 기초를 두사 영원히 요동치 않게 하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틀림없는 기초 위에 세워진 것처럼 하나님의 기초는 요동치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 지구를 그의 기초 위에 두셨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인간의 죄 때문에 충격을 받고 지옥의 악한 것이 그것을 치더라도 시간의 종말까지,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질 때까지 영원히 요동치 않게 될 것입니다.
6-8절은 아주 재미있게 표현했습니다. “옷으로 덮음같이 땅을 바다로 덮으시매 물이 산들 위에 섰더니(아마 노아의 홍수 때를 이렇게 표현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주의 견책으로 인하여 도망하매(물이 다 빠져서 제자리에 돌아온 것을 말한 것 같습니다) 주의 우레 소리를 인하여 빨리 가서 주의 정하신 처소에 이르렀고 산은 오르고 골짜기는 내려갔나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시적 표현입니까? 이것은 과학자의 표현이 아니라 시인의 특권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창세기 1장 9절에 기록한 대로 세상이 인간을 위한 거주지로 적합하지 못하므로 제 3일에 천하의 물이 한 곳에 모이고 뭍이 드러나게 하셨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견책으로 보았습니다. 이렇게 세상 만물은 다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고 이상한 것은 유독 인간에게만 귀하게 주어진 자유의지, 인격을 가지고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실 인간의 비극입니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구유를 알지만,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을 거역합니다. 하나님은 물의 경계를 정하여 넘치지 못하게 하시며 다시 돌아와 땅을 덮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왜냐 하면 이 모든 일을 통해서 온 세상이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선하심을 경외하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제한이 없으면 바다의 물이 땅을 곧 덮고 말 것입니다.
이제 10절 이하에는 이 땅이 홍수로 넘치게 되는 것으로부터 구원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다윗은 여기서 모든 피조물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본문 10-16절을 읽어보십시다.
“여호와께서 샘으로 골짜기에서 솟아나게 하시고 산 사이에 흐르게 하사 들의 각 짐승에게 마시우니 들 나귀들도 해갈하며 공중의 새들이 그 가에서 깃들이며 나뭇가지 사이에서 소리를 발하는도다 저가 그 누각에서 산에 물을 주시니 주의 행사의 결과가 땅에 풍족하도다 저가 가축을 위한 풀과 사람의 소용을 위한 채소를 자라게 하시며 땅에서 식물이 나게 하시고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와 사람의 얼굴을 윤택케 하는 기름과 사람의 마음을 힘입게 하는 양식을 주셨도다 여호와의 나무가 우택에 흡족함이여 곧 그의 심으신 레바논 백향목이로다”
하나님은 이처럼 산골짜기에 개천이 흐르게 하고 야수나 조류가 마시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야수는 무엇 때문에 기르시며 조류는 무슨 필요로 자라게 하십니까?
하나님은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 새나 짐승은 사람을 해롭게 하는 곤충이나 짐승을 금하기 위하여 기르십니다. “그러면 사람을 해롭게 하는 짐승이나 곤충을 없애면 되지 않느냐” 하는 반문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뜻이 있습니다. 사람이 잘못할 때 종종 이를 벌하기 위해서 놔두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해로운 짐승이나 곤충을 내시고 기르시는 까닭은 사람들이 그와 같은 것과 비교해 보아서 하나님께 우리를 그렇게 만들지 않은 사실에 대해서 감사하게 하기 위함인 줄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으로 하여금 짐승을 보고 기쁨을 얻게 하려는 뜻이 계십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지으실 때 무미건조하게 지으신 것이 아닙니다. 동물원에 가서 여러 가지 짐승을 보며 즐기고 식물원의 수목과 화초를 보고 좋아하듯이, 하나님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 조화를 이룸과 동시에 우리로 하여금 즐기게 하려 하신 것입니다.
이 주간부터 우리 기도원에서 산상기도회를 하고 있습니다. 산 속에 우거진 수목, 우뚝 솟은 바위, 골짜기를 흐르는 시원한 물,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새소리와 매미소리는 우리의 심신을 시원하게 만듭니다.
1.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저 솔로몬의 옷보다 더 고운 백합화
주 찬송하는 듯 저 맑은 새소리
내 아버지의 지으신 그 솜씨 깊도다
2.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저 아침해와 저녁놀 밤하늘 빛난 별
망망한 바다와 늘 푸른 봉우리
다 주 하나님의 영광을 잘 드러내도다
3.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저 산에 부는 바람과 잔잔한 시냇물
그 소리 가운데 주 음성 들리니
주 하나님의 큰 뜻을 내 알 듯하도다
1.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 속에 그리어 볼 때
하늘의 별 울려 퍼지는 뇌성
주님의 권능 우주에 찼네
후렴 :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2. 숲 속이나 험한 산골짝에서
지저귀는 저 새소리들과
고요하게 흐르는 시냇물은
주님의 솜씨 노래하도다
로마서 1장에 보면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알 만하게 지어졌다고 하였습니다. “말씀이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그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자연 뿐만이 아닙니다. 사람이 먹는 음식도 영양과 즐거움의 이중 목적이 있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은 제각기의 장소마다 알맞은 형태의 생명을 두셨습니다.
17, 18절을 보세요. “새들이 그 속에 깃을 들임이여 학은 잣나무로 집을 삼는도다 높은 산들은 산양을 위함이여 바위는 너구리의 피난처로다”
그렇습니다. 잣나무는 학을 위하여, 높은 언덕은 산양을 위하여, 바위는 너구리나 토끼들을 위하여 안성맞춤입니다. 하나님의 세계의 모든 곳은 피조물 또는 그 밖의 것들의 거처가 될 것을 의미합니다.
본문 25절을 보십시오.
“저기 크고 넓은 바닷가 있고 그 속에 동물 곧 대소 생물이 무수하니이다” 개울을 그늘지게 하는 나무 사이에는 새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으며, 울창한 소나무에는 학들이 보금자리를 만들고 있고, 저 멀리 사람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에는 토끼들이 바위 사이에 저희의 거처를 찾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인 세계에 있어서도 하나님은 우리 심령에 알맞은 삶의 형태를 마련해 주십니다. 인류의 조상 때는 하나님과 동행한 거룩한 생활을 하였고, 인간이 타락하자 하나님은 노아를 지키셨습니다. 다시금 이 땅 위에 사람이 번성하고 죄악이 관영해지자 우스 땅의 욥과 약속대로 산 아브라함, 이삭 그리고 야곱이 있었습니다.
어느 때의 역사적 시기를 지적해도 거기에는 하나님이 살아 계심과 마찬가지로 거룩하게 하나님과 동일한 사람을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최악의 시대에도 예외가 없습니다. 엘리야가 이세벨에게 쫓기어 도망가서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라고 말할 때,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 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라”(왕상 19:18)고 하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각 시대마다 그리하였듯이 모든 위치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모든 피조물은 그에게 알맞은 처소가 있습니다. 새들은 레바논의 백향목에 저희의 보금자리를 정했습니다. 거기서야 아름답게 보입니다. 동물원에 가서 갇혀 있는 짐승을 보면 아름답게 보이지는 않습니다. 조화가 깨어져서 그렇습니다. 모든 피조물은 자신의 처소에서만이 뛰어나게 보입니다. 우리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각 사람마다 하나님에 의해서 그에게 정하여진 섭리의 지위가 있습니다. 우리가 그 위치를 바꾸어 놓는다면 본래의 위치에 있을 때보다 행복하지 않을 뿐 아니라 삶의 의미를 찾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목사는 목사의 위치에 있어야 행복합니다. 정치를 해서 아무리 높은 자리에 있다고 해도, 장사를 해서 아무리 많은 돈을 모았다고 해도 행복해 보이지 아니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현재의 위치가 중요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 만족이 있고, 기쁨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있어서 어느 것이 가장 좋은가를 우리보다 더 잘 알고 계십니다. 비록 우리가 우리의 지위를 선택할 수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를 지정하고 있는 것보다도 더욱 좋게 우리의 지위를 지정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이 세상 만물을 만드실 때 똑같이 만드시지 않았습니다. 한 나무에 달려 있는 나뭇잎을 따 보아도 똑같은 잎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경험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나 똑같은 경험, 똑같은 은사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다릅니다. 그것이 너무 당연합니다. 자녀는 대개 부모를 닮습니다. 그러나 각자가 다 다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가 어느 정도 그리스도를 닮아가지만, 그리스도인 서로는 같은 사람이 전혀 없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죄인이요,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주십니다. 그러므로 구주되신 주님을 바라봅니다. 다른 사람이 내가 가는 길을 걷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할 것이 없습니다. 나는 내가 가야 하는 길이 있고 다른 사람은 그 사람대로 가야 하는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너구리를 산양과 같이 짓지 않으셨고, 학을 비둘기와 같이 짓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피조물들이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장소에 알맞게 지으셨습니다. 그래서 그 장소에서, 그 형편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격이나 개성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서로 다르게 개성있는 인격으로 지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다른 사람과 같이 될 수는 없습니다. 마틴 루터는 성격이 너무 강했기 때문에 멜랑히턴과 같은 부드러운 성격의 소유자가 되었으면 하고 소원했을는지 모릅니다. 만일 그렇게 되었다면 종교개혁은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멜랑히턴은 확실히 루터와 같이 정열적인 사람이 되었으면 하고 때때로 소원했을는지 모릅니다. 베드로는 그의 성품이 너무 거칠지만 않았더라면 보다 더 진보했을는지도 모릅니다. 요한이 좀더 굳센 사람이었다면 더욱 위대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지으실 때 그는 베드로로서 가장 훌륭하게 되었고, 요한을 지었을 때는 요한으로서 최대로 빼어난 사람이 되게 한 것입니다. 베드로가 요한이 되고자 원하고, 요한이 베드로가 되고자 갈망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의 인격이나 우리의 신앙이 우리 자신이 되는 것입니다. 결코 다른 사람의 미덕을 위장하지 말고 우리의 경험을 다른 사람의 기분에 일치시키지도 말 것입니다. 우리가 존경하는 어떤 사람과 같이 보이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의 개성을 모조하려고 애쓰지도 말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우리를 새롭게 만드신 주님에게, 주님이 의도하신 바대로 우리의 인격이 형성되게 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도록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주께서는 잣나무를 위하여 학을, 학을 위하여 잣나무를 찾으시고, 산양을 위해서 높은 언덕을, 높은 언덕을 위하여 산양을 찾으시듯이,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장소를 찾아 주시고 우리를 위하여 지으신 장소를 우리를 위한 인간을 찾아 주실 것입니다. 그때에야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 자신이 안전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에게 은신처를 제공하십니다.
새들은 나무 사이를 날고, 학은 잣나무로 날아가며, 산양은 높은 언덕으로 올라가며, 너구리는 바위로 올라갑니다. 크고 작은 피조물들을 위한 은신처가 있습니다.
거기에 중요한 진리가 있습니다.
모든 인간이 위험에 처하여 있고 사람은 이를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짐승을 지키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심령이 피할 곳을 없이 하겠습니까? 있습니다. 거기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 만세 반석이십니다.
이사야 40장 1, 2절에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너희는 정답게 예루살렘에 말하며 그것에게 외쳐 고하라 그 복역의 때가 지났고 그 죄악의 사함을 입었느니라 그 모든 죄를 인하여 여호와의 손에서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작은 너구리는 바위틈에서 안전을 누립니다. 마찬가지로 부족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참 평안과 안식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피난처 있으니 환난을 당한 자 이리 오라
땅들이 변하고 물결이 일어나
산 위에 넘치되 두렵잖네
높으신 여호와 우리를 구하니 할렐루야
괴롬이 심하고 환난이 극하나
피난처 있으니 여호와요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사 41:10)
요한복음 6장 37절에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쫓지 아니하리라” 참으로 감사한 말씀입니다.
성경에는 여러 가지 약속의 말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더구나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고자 하시는 모든 사람의 생각과 마음에 맞도록, 마치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사람들의 형편에 맞게 하시듯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와 같은 주님께 나아오기만 하면 됩니다.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도 계시록 22장 17절에 “원하는 자는 와서 값없이 생수를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무조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관용에 대항하지 맙시다. 무관심하지 맙시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예수께 나아오면 우리가 구원함을 받을 뿐더러 만족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0장 9-10절에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풍성한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33-35절을 읽고 기도하십시다. “나의 평생에 여호와께 노래하며 나의 생존한 동안 내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 나의 묵상을 가상히 여기시기를 바라나니 나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로다 죄인을 땅에서 소멸하시며 악인을 다시 있지 못하게 하시리로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할렐루야”
만물의 회복과 하나님께 향한 찬양을 말합니다. 우리의 부족과 허물로 인하여 우리의 심령이 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그러므로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할렐루야!”
여기 ‘할렐루야’라는 말이 처음으로 나옵니다. 최후의 승리를 가져올 때 부르는 노래입니다.
요한계시록 19장 1절에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19장 3절에 “두 번째가 가로되 할렐루야 하더니”
19장 4절에 “이십 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아멘 할렐루야 하니”
19장 6절에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도 같고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아서 가로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입에서 할렐루야 승리의 찬송이 떠나지 않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인테리어
성경본문 : 시편 104: 1-18
1.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는 심히 광대하시며 존귀와 권위를 입으셨나이다
2. 주께서 옷을 입음 같이 빛을 입으시며 하늘을 휘장 같이 치시며 사40:22
3. 물에 자기 누각의 들보를 얹으시며 구름으로 자기 수레를 삼으시고 바람 날개로 다니시며 암9:6, 사19:1
4. 바람으로 자기 사자를 삼으시며 화염으로 자기 사역자를 삼으시며 히1:7
5. 땅의 기초를 두사 영원히 요동치 않게 하셨나이다
6. 옷으로 덮음 같이 땅을 바다로 덮으시매 물이 산들 위에 섰더니
7. 주의 견책을 인하여 도망하며 주의 우뢰 소리를 인하여 빨리 가서 시18:15, 시106:9
8. 주의 정하신 처소에 이르렀고 산은 오르고 골짜기는 내려 갔나이다
9. 주께서 물의 경계를 정하여 넘치지 못하게 하시며 다시 돌아와 땅을 덮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창9:11
10. 여호와께서 샘으로 골짜기에서 솟아나게 하시고 산 사이에 흐르게 하사 시107:35
11. 들의 각 짐승에게 마시우시니 들 나귀들도 해갈하며 욥39:5
12. 공중의 새들이 그 가에서 깃들이며 나무가지 사이에서 소리를 발하는도다
13. 저가 그 누각에서 산에 물을 주시니 주의 행사의 결과가 땅에 풍족하도다 시65:9
14. 저가 가축을 위한 풀과 사람의 소용을 위한 채소를 자라게 하시며 땅에서 식물이 나게 하시고 시147:8
15.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와 사람의 얼굴을 윤택케 하는 기름과 사람의 마음을 힘있게 하는 양식을 주셨도다
16. 여호와의 나무가 우택에 흡족함이여 곧 그의 심으신 레바논 백향목이로다 민24:6
17. 새들이 그 속에 깃을 들임이여 학은 잣나무로 집을 삼는도다
18. 높은 산들은 산양을 위함이여 바위는 너구리의 피난처로다 욥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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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며 묵상하며 : 하나님의 놀라운 인테리러(104:1-18)
위대하신 하나님(1-4)
어마어마하게 높고 큰 빌딩을 지을 때는 많은 중장비들이 동원되고, 많은 양의 철골과 시멘트가 그 구조물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런 후에 빌딩의 내부공사를 단단하게 하고, 겉에 페인트를 칠하면 아주 멋진 빌딩이 완성됩니다. 마찬가지로 지금은 무척 아름다운 이 세상도 처음에는 흑암과 어둠뿐이어서 아름다운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이처럼 놀랍게 창조하시고, 섬세하고 꼼꼼하게 내부공사를 하신 것입니다.
탁월한 창조주, 하나님께서 하신 인테리어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빛이고 하늘이며 내가 밟고 있는 흙과 이 땅의 모든 생명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온 세계를 볼 때 나는 하나님을 찬송하고 그분께 영광의 경배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땅의 기초를 세우신 하나님 (5-18)
하나님은 ‘말씀’으로 이 세상을 디자인하시고 아름답게 가꾸셨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현장을 상상하면 하나님의 세심함과 크고 깊으신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땅과 물의 경계를 만드셔서 물이 땅을 덮어버리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산 사이에서는 샘물이 나와 동물들이 마실 수 있게 하셨고, 풀과 채소를 자라게 하셔서 사람과 동물들에게 양식을 공급하셨습니다. 더욱이 모든 피조물들이 거할 편안한 처소까지도 제공해 주셨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만든 모든 피조물에 대해 책임을 지시고, 그들을 사랑으로 돌보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항상 나에게 필요한 것을 아시고 때를 따라 채우시는 주님이 계심을 깊이 묵상하며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새벽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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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 하나님의 솜씨
크게 보자면 우리 지구가 속한 우주며 은하계 등은 끝없이 넓고 광대하며 헤아리기조차 어렵고, 작게 보자면 나노세계라 하여 너무 미세하고 정밀하여 쉽게 이해할 수도 없는 것이 하나님의 작품이라네. 한마디로 신묘막측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네.
사람아, 사람아, 하나님의 피조물인 사람아. 우리가 어찌 우주의 광대함을 알 수나 있을까? 가히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그냥 한 번 상상이나 해봄세.
우리 인간이 살고 있는 지구는 1년에 한 번씩 태양 주위를 돌고 있지. 그 속도는 1초에 28㎞, 1분에 1,777㎞를 달린다니 1분에 서울서 부산까지 1.9번 왕복하는 속도가 되고 있네. 빛은 1초에 지구를 7바퀴 반이나 돌 수 있으니 그런 속도로 태양까지 가는 데 5시간 반이나 걸린다네. 빛이 은하계의 가운데까지 가는 데는 3만 3천년이 걸린다니, 그 넓고 광대함을 어찌 다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태양은 지구 130만개를 합한 것만큼 크고 안타레스라는 별은 그 직경이 8억 3천 5백만㎞나 된다니 너무 엄청나서 입이 안 다물어진다네.
그리고 은하계는 별이 대략 1천억 개나 있다 하네. 그 별을 1초에 한 개씩 세어본다면 다 세어보는 데만 3,000년이 걸린다니 어쩌겠는가? 그리고 은하계라는 것이 어찌나 넓은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데 그 축을 중심으로 한 번 회전하는 데 2억년이 걸린다는군 그려. 그래서 천문학적 숫자라는 말이 실감나지 않는가?
그러면 이제 우리들의 몸은 또 얼마나 신비한 것인지 생각해보세. 하나님의 솜씨가 얼마나 위대한지 살펴보기로 하세. 우리 몸속에 퍼져있는 동맥과 정맥 그리고 모세관들을 모두 떼어내서 그 끝과 끝을 연결하면 말이야. 놀랍게도 지구를 4바퀴쯤 돌 수 있다네. 그 길이는 9만 6천㎞에서 16만㎞까지 된다네.
심장은 또 어떤가? 1분에 72번, 하루에 10만 번, 1년에 3천 6백 50만 번, 그러니까 70세까지 산다면 25억 번 이상이나 펌프질을 하고 있다네. 이 세상 어떤 펌프나 파이프가 그토록 오랫동안 무탈하게 견디겠는가? 피는 1초에 15㎝ 속도로 핏줄을 통과하는데 심장에서 발끝까지 돌아오는 데 18초, 뇌까지 갔다 오는 데 8초가 걸린다네. 눈(目)엔 말이야, 1억 3천만 개의 빛을 받아들이는 조직체가 있고, 700만 개의 빛을 감지하는 신경조직이 있다네. 그리고 눈에서 뇌로 연결되는 선은 30만 개쯤 있다는군.
우리들의 귀(耳)는 이 세상에서 제일 성능이 좋은 악기인 셈이지. 훌륭한 피아니스트는 88개의 음까지 분간할 수 있다는데 우리 귀는 1만 5천개의 음까지 분간할 수 있다는군. 우리 뇌는 그 무게가 1.3㎏인데 70세 된 사람의 뇌는 무려 150억 개의 정보자료들을 보관하고 있다네. 뇌를 구성하고 있는 세포들로 가느다란 섬유조직을 만들 수 있다면 그 길이는 대략 지구에서 달까지 갔다 올 만한 길이가 된다는군.
그리고 우리들의 내장을 모두 펼쳐낼 수 있다면 대략 그 넓이가 축구경기장 3개쯤 되는 넓이가 된다네. 우리 몸속이나 우주 만물을 자세히 알면 알수록 신묘막측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네.
길기무 장로님이 과학적 시로 써놓은 감탄사들이다.
이제 옛날 다윗왕이 부른 감탄시를 읽어보자.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주의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린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들과 보복자들을 잠잠하게 하려 하심이나이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 곧 모든 소와 양과 들짐승이며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바닷길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시편 8:1-9)를 읽어볼수록 새로운 감탄이 우러나온다.
하나님의 설계와 솜씨는 한마디로 “Wonderful!”이요, 신묘막측(神妙莫測)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정말로 찬양과 영광을 세세토록 받으실 분이시다. 한 해가 저물고 새 해가 와도 우리는 영원히 하나님을 공경해야 되겠다.
김형태 장로<한남대 총장, 대전 삼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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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하며 적용하며
1, 주께서 두른 빛은 어떤 빛을 의미합니까(104:2)?
2. 인간이 누리는 하나님의 은혜에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104:14,15)?
3. 하나님의 은혜를 얻을 수 있는 길은 무엇입니까(104:10-350?
4. 아름다운 자연과 시시각각 변하는 계절 등을 볼 때 무엇을 느끼나요?
구석구석에 하나님의 손길과 흔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관심 부족으로 그냥 지나쳐 버리진 않나요?
5. 하나님은 우주와 자연뿐 아니라 나의 인생도 돌보고 책임지십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필요를 아시고 당신의 약함까지 모두 아신다는 것을 믿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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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하며 간구하며 :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한일서 5장 4절 말씀)
주님의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
주님을 간절히 찾고 주님의 은혜를 간절히 구하는 이들을 만나 주시고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좋으신 은혜의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믿음의 자녀들이 이 세상을 능히 이기고 살아갈 수 있도록
지혜와 지식과 총명과 명철로 채워 주시는 좋으신 지혜의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먼저 주님의 나라와 주님의 의를 구하는 이들에게
일용할 양식과 더불어 은혜와 사랑을 넘치게 부어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당신의 독생자를 십자가 위에서 죽이심으로
저희를 측량못하는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로 사랑하고 계심을 증거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께서 저희를 사랑하고 계시는 것에 합당한 감사를 드리지 못한 저희를 긍휼히 여겨주시고
저희 심령에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켜 주소서.
예수님의 은혜가 하나님께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주의 자녀들이 가는 곳마다
늘 임하여 계심을 믿고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감사로 제사를 드리게 하소서.
저희의 연약함을 아시고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간구하고 계시는 보혜사 성령님께
감사와 찬양과 경배와 영광을 드립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들을 위하여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게 하시고
더욱 뜨겁고 열심있는 신앙으로 은혜의 주 성령 안에서 모든 일을 행하게 하소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이 땅에 드러내게 하시고
사랑의 짐을 서로 나누어지는 참된 신앙을 가지게 하소서.
저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풍성히 받아 누리게 하소서.
바라옵기는 저희 삶이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풍성한 빛의 열매와 성령의 열매를 맺기를 소망합니다.
저희가 날마다 주님의 능력이 되는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 나아가
이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믿음으로 충만하여 이 세상을 이기게 하소서.
저희의 선한 목자가 되시는 주님과 늘 동행하는 믿음으로 살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존귀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