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래알 --길
고3 여름, 보충수업을 받지 않고 휘가라다녔습니다.
흘러 다니다가 바다와 붙은 길을 만났습니다. 셋도(지름길)라고 하데요. 팔팔할 때라 굽을 보고 싶었습니다.
인동초 줄기처럼 생긴 길을 걸었습니다. 길섶의 섶들이 발목에 휘감겼습니다. 한 곳 두 곳, 거미그물이 숲에 가득했습니다. 벗들은 그물을 헤치며 까불까불 가고 저는 까불면 파도가 이곳까지 와 덮칠 것 같았습니다. 솔짝솔짝 걷다가 깊게 내려가는 길을 만났습니다. 그곳은 시야가 좋았습니다. 물이 쑥 들어와서 생긴 쏠람한 바다가 보였습니다. 그 바다는 낮았고, 먼 바다는 높았습니다. 낮은 쪽으로 바다가 사라지는 듯했습니다. 맞선 육지에는 애기 골체(삼태기) 같은 땅이 자리했습니다. 소래알이었습니다.
북쪽에는 높은 밭이 있고 소래알에는 ‘테이’가 앉아 있었습니다.
밭은 감저밭(고구마밭), 감저밭이 널려있었습니다. 자파리로 감저를 캤습니다. 꿀(줄기)을 걷어 내지 않고 여물을 알아내는 재미, 그것을 친구들에게 알려줬습니다. 시기가 일러 감저는 시원치 않았습니다.
풀이 바다로 가다 걸음을 멈춘 곳, 밀물에도 물이 없는 이곳에 어떻게 테이가 올라 있나. 인가가 없는 곳인데 누가 사용할까. 바께(갯강구)들의 사냥터였습니다. 친구가 동쪽으로 넘어가는 길이 있다고 했습니다. 삼촌이 다니는 길이고 테이를 만드는 나무를 옮길 때 거들었다고 합니다. 땀을 훔치면서 비크레기에 난 길을 찾았습니다. 여러 풀이 우거진, 오르막길을 억지로 올랐습니다. 밭담 사이에서 기어 온 샛배엄(뱀) 닮은 작은 길과 눈이 맞춰졌습니다. 시선이 무서워서 친구들을 불렀습니다.
봉가온(주어온) 그릇으로 라면을 끓였습니다. ‘나는 물’이 없는 곳이라서 바닷물을 물 대신 넣었습니다. 김치도 없고 수프가 없는 라면을 저는 먹지 못했습니다. 국물까지 문짝 먹는 친구의 입맛을 부러워했습니다.
감저를 바닷물에 씻어 먹으며 ‘일본에 가카’ 내 말에 서로 의논을 했습니다. 여기서 가다 보면 일본에 도착할 수 있겠다고 여겼습니다. 일주일 후쯤에는 갈 수 있겠다고 믿었습니다.
노래를 흥얼거리며 올라탔습니다. 흥창 흥창 느려도 테이는 자기 길로 갑니다. 여들 사이로 바닷물이 들고나는 때를 맞춰 움직입니다. 벗들은 보이지 않는 길을 파도를 헤치며 몰았습니다. 작대기로 여를 피하고 또 여에 닿으면 작대기로 테이를 들락퀴며 갔습니다. 앞길은 어려운데 지나온 길은 보였습니다. 작대기로 길을 안내하는 친구와 노 젓는 친구가 나를 태워 태평양으로 향했습니다.
‘한바당’에 나오자 둘이서 순백하며 테이를 몰았습니다. 날은 덥고 섶섬도 멀었습니다. 배들이 한가득 서귀포항 쪽으로 향해 있었습니다. 배 위에서 많은 사람들이 손짓으로 오라고 합니다.
선원들 몇 명이 뭍으로 갔습니다. 일부가 상륙해서 만세를 부릅니다. 테이가 돌아올까 하는 근심이 생겼습니다.
파리한 선원이 태양 아래서 그물을 수리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선원이 같이 지내자는 말을 합니다. 파리한 선원이 고개를 젓는 것 같습니다. 친구는 다른 곳에서 정보를 얻어왔습니다. 선실도 구경하며 이 배를 타고 고기를 잡자는 권유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 배에 남겠다고 솔째기 말합니다. 근심처럼 일이 생겼습니다. 헤엄쳐서 돌아갈 수 있을까. 이러다가 모든 걸 안녕하는 것은 아닐까.
돌아오는 길은 물길이 변해 여도 많고 노도 힘들어하고 다가갈 수 없었습니다. 저는 물속에 들어가 테이를 밀었습니다. 테이를 포기하자는 말에 그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갈 때 내가 입으로 뱉은 감저 껍질을 봤습니다. 그것도 고기라도, 나눠 먹으려 세 등분하는데 또 보입니다.
다음 날부터 태풍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그리고
소래알 비크레기(비탈길)에 갤러리가 생겼습니다.
딸과 같이 민화 전시회를 보러 같습니다.
보라별꽃(뚜껑별꽃)을 그린 작품이 있었습니다.
커피를 마시며 이 근방의 뚜경별꽃 이야기를 했습니다.
늦은 오후, 바다가 좋았습니다.
바닷물로 라면을 끓이고 감저 껍질 주워 먹은 이야기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첫댓글 테이 타고 태평양으로 향할 때가 고3 여름이었군요....ㅎㅎ
따님과 민화 전시회를 보고, 그리고 커피 마시는 것에서
마치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 한 세월을 말씀하시는 것 같아 가슴 뭉클하네요.
'문학 소년의 감성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구나'를 느꼈습니다.
따님의 시선따라 저도 잠시 멍때리고 바다에 시선을 두었네요...토박이 제주도 방언은 너무 어려워요 ㅜ.ㅠ
솔짝솔짝 걷다가 ...쏠람한 바다..테이? 어려워요...
딸과 멀리 있어 함께 바다 보러 잘 가지 못해서 따님과 좋은 시간 부럽습니다.
야책님 글을 보면 제주 방언 저도 어렵습니다.
문맥으로 알거나 모르는 낱말은 검색을 해 봐야 하거든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