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하마터면 날짜를 넘길 뻔했던 고지서들과 책상 위로 수북히 쌓인 메모지들과 서류들을 정리하면서, 갑자기 들이닥친 손님을 맞는 것처럼 쩔쩔맵니다. 지난 한 달도 단 걸음에 지나간 것 같은 황망한 감으로 보니 시간이 미친듯이 내달리고 있는 말 처럼 느껴집니다. 그것도 절대 길들일 수 없는 말 처럼, 적지 않은 세월을 타고 달려 왔건만 아직도 여유롭고 솜씨있게 길들여 타지 못하고, 늘 시간의 등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 힘을 쓰면서 볼품없이 매달려 가고 있는 형국입니다. 내가 늙어갈수록 시간은 젊어가는지, 달릴수록 기름지고 탄탄한 근육이 붙어 이전보다 더 잘 달아나는 시간에 더욱 아찔한 위협을 느끼곤 합니다.
살아낼수록 삶은 더욱 텅 빈 느낌입니다.
나름 시간을 쪼개가며, 하루가 모자랄 정도로 열심히 기도하고 운동하고 공부하면서 치열하게 살고 있음에도 영원의 저울에 달아 무게로 남길 만한 것이 없습니다. 막 잠에서 깨어 새벽 어둠 속에 앉아 정신을 추스를 때면, 영원에서 눈뜨면 이생의 삶이 지금 막 사라지고 있는 꿈처럼 그렇게 흩어져버릴 것만 같습니다. 다윗도 그의 시편에서 그림자처럼 다니며 헛된 일에 분요한 인생을 묘사하며, 저울에 달면 입김보다 경하리라는 표현을 합니다. 먹고 자고의 반복으로 보잘 것 없는 생의 내용을 가진 나 같은 사람은 그렇다쳐도, 들에서 양을 치는 어린 목동이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고, 이스라엘의 명장들의 간담을 졸아붙게 했던 골리앗을 병든 개처럼 간단히 쳐죽이고, 가는 곳마다 승리를 이끌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 인류 최고의 감성 시인, 위대한 전사요 겸손한 왕으로 인간이 받을 수 있는 모든 찬사를 받았던, 성경의 책 한 권이 통째로 그의 통쾌한 승리와 영광을 기록할 정도로 풍성한 생의 내용을 가진 다윗마저 그같은 고백을 하는 것을 보면 이생의 모든 추구가 꿈처럼 헛되다는 뜻일 것입니다.
젊을 때 무쇠처럼 건강하던 분이 일주일에 두 세번 신장 투석을 하고 있다는 소식, 아직 젊은 나이인데 말기 암으로 죽음을 준비하고 있다는 지인들에 대한 소식들이 흔해지고 있는 나이에 이르고 보니, 생이 살 얼음판 위를 걷는 것처럼 조심스럽니다. 누가 어떻게 되었더라 하는 소식을 들으면 내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에 같은 아픔으로 기도하게 되고, 이미 내 나이에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생각하면, 오늘이 내게 없었을 수도 있었던 날이라 생각되어 건강도, 일도, 관계도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엎드려 은혜를 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도 다윗의 시편을 보고 위로를 받는 것은 용맹스러운 그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며 언제 어디서 어떻게 육체의 덜미를 낚아챌 죽음에 적잖이 위협을 느꼈음입니다. 그 존귀한 사람도 몇 일을 좀먹는 자기 연민에 속수무책이었던 때가 있었고, 절대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절망에 붙들려 보기도 했고, 온 세상이 등을 돌리고 욕할 것 같은 두려움과 뼛속 깊은 외로움과 싸웠으며, 어두운 동굴 속에서 하늘을 보려고 몸부림쳤고, 스스로 벌레 같다는 초라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위대함은 그 자리에서 눈을 들어 하나님을 보았고 힘들고 비참할수록 그의 찬양은 더욱 지고 지순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왕이어서, 전쟁에 이겨서가 아니라 구원 받은 사실 때문에 감격했습니다. 흉악한 죄를 짓고 회개하면서 그는 하나님께 왕으로서의 위신을 다시 세워달라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기쁨을 회복시켜 달라고 처절하게 울부짖었습니다. 분명 그에게는 왕권이나 사람의 평판이나 부요보다 구원의 기쁨이 훨씬 더 실제적인 소유였고 소중한 것이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구원의 기쁨에 대한 계시가 너무 약하고 침침하여 아직도 우리의 기도는 물질적인 것들을 앞세우고 있습니다. 영원과 삶과 죽음에 대해 너무나 중요한 질문들은 제쳐두고, 어느 직장을 갖게 될까, 어느 대학을 나오며 누구를 만나 결혼을 할까 등 안개처럼 금새 사라질 것들에만 열을 내며 경쟁하고 다투면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은총에 대한 계시가 선명하게 드러나길 바랍니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길을 함께 걸어가는 형제로서 자랑으로 깔아뭉개고, 비교하며 겨루고, 험담하고 미워할 존재들이 아닙니다. 부모님이 불화하고 이혼한 사실 때문에 냉가슴을 앓고 있는 아이들, 이력서에 쓸 경력 한 줄 늘리기 위해 시간과 싸우며 미래에 대한 불안에 시달리며 눈 밑이 까칠한 젊은이들, 머리에 왁스를 바르고 맵시를 부리던 청년이 아이의 부모가 되어 먹고 사는 일에 고민이 깊은 모습에 마음으로 힘찬 격려를 보냅니다. 지금 가난한 자로서, 애통하는 자로서 어려움을 통과하고 있는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천국을 소유한 복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전지전능 하신 하나님이 뭐가 아쉬워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죄인들을 이토록 사랑하시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불가능합니다. 사람이 대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고 권고하시는지, 사망의 냄새를 풀풀 풍기며 죄와 반역과 더러움이 가득한 벌레만도 못한 인생에 성령을 주시고 거룩을 이루어가시는지, 그 엄청난 은혜를 생각하면 여호와 하나님의 그 아름다운 이름을 찬송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