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신 252/0925]남원장南原場과 춘향 영정影幀
어른들이 흔히 말하듯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남원장南原場 구경을 갔다. 4, 9, 14, 19, 24, 29일은 남원장이 열리는 날. 돌림병을 비롯하여 금지면 등 태풍의 상처가 깊은데도 추석대목을 앞두고 촌로村老들이 몰려나와 제법 북적거린다. 모처럼 시골장같다. 역시 마당을 깔아놓았으면 사람이 얼싸덜싸 몰려야 한다. 시장market도 생물生物이다. 아이쇼핑eye-shopping도 쇼핑이다. 이제야 남대문시장 둘러보듯, 장 구경 하는 맛이 난다. 여기도 여지없이 ‘마스크 폭탄’이다. 대체 이 꼴불견 풍경이 일거에 사라지는 날은 언제일까? 엄청 큰 갑오징어도 있다. 족발을 기 막히게 맛있게 삶아 파는 집은 줄을 서있다. 애장품으로 나무지게를 사고 싶은데, 15만원이란다. 아버지와 아내에게 '한소리' 들을까싶어 마음을 접는다. 긴 장마와 태풍의 뒤끝인지라 배춧값이 금값이란다. 세 포기에 2만원. 같이 간 일행은 절삭기 등 공구에만 관심이 깊다. 낙지비빔밥에 반주 한잔, 딱이다.
남원 하면 누구나 춘향春香-이몽룡李夢龍의 사랑 그리고 그들의 데이트 명소였던 광한루廣寒樓를 떠올릴 것이다. 어쩐지 한번쯤 KTX를 타고 가보고 싶은 곳이 아닐까? 남원분지에 자리잡은 기와집이 제법 많은 곳, 추어탕하면 누가 뭐래도 남원이 아닌가. 남원은 일단 안온한 느낌이 들어 나는 좋다. 읍내를 가로지르는 요천蓼川이 넘치면 국가적으로 큰일이 난다는 옛말도 있었다. 76년 프레시맨 시절이던가, 춘향제를 보겠다고 친구와 전주에서 남원까지 자전거여행을 한 적이 있다. 국도 17번 왕복 120km쯤 되는 거리여서 무척 힘들었다. 지금은 아련한 추억이지만, 춘향이고개 오를 때는 악몽이었다. 다음날 잘 걷지를 못했으니.
마침 저녁 KBS전주방송 뉴스에 ‘춘향 영정 60년만에 철거’소식이 나온다. 시민단체 등이 친일화가 이당 김은호가 그린 영정 철거를 십 수년 전부터 요구해온 게 이제야 관철된 것이다. 이런 것 하나도 제대로 정리되기가 이렇게 힘들다. 이당은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왜색倭色화가로, 친일인명사전뿐만 아니라 친일·반민족행위 705인에도 꼽히는 ‘큰 인물’이다. 광복 후 친일파 청산되지 않아, 이후에도 여전히 우리 화단에 지배적인 영향을 미쳤다. 장우성, 김기창 등 '빵빵한' 제자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죽을 때까지 참회의 말 한마디 없었던 미당 서정주와 다름없었다. 미당의 망언들을 보아라. "누가 이렇게 해방이 빨리 될 줄 알았가니?" "전두환의 미소는 부처님보다 더 인자하다"고 했다. 진작 이뤄졌어야 할 일이지만, 행정기관들의 일 처리는 늘 이러지 않았던가.
지난달 29일 경술국치일에 전주 덕진공원에 있는 시인 김해강의 시비 옆에 단죄비斷罪碑를 세웠다는 뉴스를 보고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전주시민의 노래’를 짓는 등 전북 문단에 내로라하는 시인으로 천수天壽를 다했다. 미당이 전국 문단에 내로라하는 시인으로 천수를 다했듯이. 단죄비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다. <천황을 위해 죽는 것보다 더 위대하고 아름다운 죽음이 어디 있느냐고 부르짖던 김해강이여!' 그대의 글은 생명의 외경畏敬을 노래한 시가 아니라 죽음을 부추긴 사악한 선동문이었다! > 공과功過를 분명히 하고, 청산되거나 단죄되어야 할 것들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일이고(the sooner the better) 마땅한 일이다. 우리들이 맨먼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남원농협 판매장에 들렀다. 광고용 세워진 X밴드의 문구가 하도 희한하여 사진을 찍었다. 복숭아밭에 설치하는 나방교미교란제와 과수복합 노린재트랩이 그것이다. 순나방과 심식나방이 교미交尾를 하지 못하도록 교란시키는 약제로, 효과가 189일 동안 지속된다고 쓰여 있다. 흐흐. 세상에 미물微物인 나방에게 그 '재미'조차 못보게 하는 이런 약제도 있구나. 아아-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잔인함이여! 그 죄가 하늘을 찌르도다. 자기들이 필요하면 싫다는 동물들에게 교미도 예사로 시키는 것을. 냄새가 지독한 노린재를 아시리라. 그 종류가 여섯 가지나 되는 줄도 처음 알았다. 갈색날개노린재, 썩멍나무노린재, 풀색노린재, 알락수염노린재, 가시노린재, 톱다리개미허리노린재. 톱다리개미허리노린재, 썩멍나무노린재 이름을 보고, 나도 모르게 푸웃- ‘ 썩소’를 흘렸다. 처음으로 지어본 참깨에 달라붙은 노린재들의 폭격에 두어 번 농약으로 대처할 수 밖에 없었는데, 이번엔 '트랩trap'이란다. 이 덫만 세워놓으면 온갖 종류의 노린재들이 저 죽을 줄 모르고 기어오고, 날아 들어오는 걸까? 신기하다. 이런 약제와 덫은 누가 만들까? 누가 노린재를 얼마나 오랫동안 관찰하여 이런 이름들을 짓는 걸까? 참, 알 수 없어 답답하고, 알면 알수록 신기한 농촌세상이다.
첫댓글 전주남원간 도로 춘향이고개 한두번씩은 자전거타고 겁없이 도전해보던 시절이 기억난다.
여러번 달려봤어도 그길만 올라가려면 죽을똥살똥 개거품물듯 오르던 기억이난다.
조그만 조성문이는 왜 그리도 잘 달리던지 ㅎ
우리 전라고가 자전거.핸드볼로 유명한 학교 아니었던가?
아쉽게도 핸드볼선수였던 친구들이 조선대에 합격하여 폼잡고 승용차를 몰고 달리다 전주 남원간 도로에서 사고로 운명을 달리한 사고가 있었다.
꽃도 피우지못한 영혼들을 위하여 기도라도 올려본다.
초.중.고등학교 동창이었던 떡정거리리(경기장옆) 살던 김귀혁이 불현듯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