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은 얼굴 손 원
은퇴 생활을 하고 있는 요즘 문득 누군가의 얼굴이 떠오른다. 어린 시절 같이 뛰놀던 친구, 학교 친구, 군대 친구, 직장 친구 등이다. 한 명의 친구가 떠 오르기도 하고, 때로는 그룹으로 떠오르기도 한다. 그룹일지라도 그중 한두 명이 부각된다. 그들은 적게는 수년 많게는 수십 년 전의 모습이다. 만난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길에서 만난다면 십중팔구는 못 알아볼 것 같다. 눈에 익은 모습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본래의 모습을 어느 정도는 간직하고 있다. 오랜 친구를 만나면 과거의 친밀함이 되살아 나서 금방 격의 없는 사이가 된다.
술과 친구는 오래될수록 좋다고 했다. 어릴 때 삼 이웃에 동갑내기가 한 명씩 있었고, 마을 전체로는 열두 명이 있었다. 나와 친구 한 명이 대구에 살고 있고 열 명의 친구들은 전국에 흩어져 있다. 고향을 지키는 친구는 한 명도 없다. 이들의 얼굴 보기가 쉽지 않다. 죽마고우와의 어릴 때 추억은 또렷하지만 몇몇은 근황조차 알 수가 없다. 20대 이후로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친구도 있다. 죽마고우도 이렇게 잊혀 가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 전화번호는 알고 있지만 먼저 전화하는 것이 내키지 않아 망설이고 있다. 나를 잊고 있지나 않을까 해서이다. 하지만 대면하면 죽마고우의 정이 금방 되살아 날 것 같다.
학창 시절 잘 어울렸던 친구가 졸업 후 연락이 두절됐다. 둘 다 대도시서 유학했기에 비슷한 처지로 친밀한 사이였다. 집전화기가 귀했을 뿐만아니라 휴대전화기 마저 없던 시절이어서 고향 정도만 기억할 뿐이었다. 백방으로 찾아봤으나 허사였다. 당시 절친이었는데 잊힌 친구로 남아 아쉽다. 군 생활때 같은 내무반이었던 친구 한 명과도 연락이 두절된 상태다. 요즘은 이름, 나이, 고향 정도만 알아도 찾을 확률이 높다고 하는데 앞서의 친구들을 여태껏 찾지 못한 상태다. 이들을 만날 방법은 없을까? 효녀 심청이는 눈먼 아버지를 찾으려고 나라안의 눈먼 사람들 모두를 한 자리에 불러 잔치를 하여 극적으로 아버지를 만났다는 것이 심청전이다. 절실히 원하면 만날 수 있고, 시간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돌아가신 분에 대한 그리움은 사모곡처럼 울릴 뿐이다. 돌아가신 분을 머리에서 지우려고 애쓴다. 지나친 그리움은 득보다 실이 많기 때문이다. 세월이 흐르다 보면 그리움이 조금씩 희석되어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하지만 정이 두터울 수록 희석되는 속도가 느리다. 특히 부모님은 돌아가신 후 바로 보고 싶어진다. 앞으로 영영 볼 수 없다는 애절함에 사무치기까지 한다. 유행가 가사처럼 정 주는 약이 있고 정 끊는 약이 있으면 좋겠다. 나의 삶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오늘 행정동우회 신년교례회에 다녀왔다. 삼십년지기 선배까지 한 곳에서 볼 수가 있었다. 300여 명이 모인 자리로 대부분 앞면이 있었다. 그중 상당수는 평소에도 얼굴 한번 보고 싶었다. 특히 내가 모셨던 분, 인격이 훌륭하신 선배님들로 존경해 온 분들을 만나서 인사를 드리고 싶었다. 현장에 도착해서 먼저 그분들이 오셨는지 눈을 크게 뜨고 살펴보았다. 헤어진 지 너무 오래되어 혹시 못 알아볼까 봐 조바심도 났다. 유심히 살펴보니 저만큼에서 낯익은 분이 보이면 다가가서 인사를 드렸다. 특별히 보고 싶었던 몇 분께 인사도 드리고 간단히 담소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이심전심이 통했을까 긴 세월이 지나는 동안 그분들도 나를 잊지 않고 근황이 궁금했다고 한다. 마침 준비한 선물이 있어 다행이었다. 지난 연말에 출간한 수필집을 몇 권 가져갔기에 한 권씩 드렸다. 자신의 일처럼 출간을 기뻐하고 축하해 주었다. "이 책에 제 생각과 생활이 면면히 들어 있습니다. 공감을 얻고자 진솔하게 기록했습니다.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했다. 만나고 싶은 사람 중 일부는 참석하지 않아 아쉬웠지만 다섯 분의 선배와 담소를 나누었고 후일을 기약했기에 만족스럽다.
보고 싶은 얼굴 중 연락처는 알고 있지만 오랫동안 교류가 없는 이도 있어 안타까운 경우도 있다. 선뜻 연락하고 만날 수도 있겠지만 쉽지 않다. 그러기에는 심적인 부담도 있어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 동년배라면 몰라도 나이 차이가 나면 부담이 되고 조심스럽기까지 하다. 다급하게 만나고 싶지는 않다. 적절한 기회에 자연스레 만나는 것이 무난할 것 같다. 기회를 마련해 보도록 하자. 평소 SNS로 가끔 안부를 전하면 어떨까? 집안의 길흉사 때, 생일잔치에 초청을 하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당신이 보고 싶다는 뜻을 전하고 소통을 하면 가까워진다. 사람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어 그 벽을 허무는 데는 다소의 절차와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교류가 줄어들면 벽이 생기고 세월이 지날수록 점점 견고해진다. 인생 후반기에 접어들고 보니 보고 싶은 얼굴을 만나서 옛정을 이어가고 싶다. 세월이 쌓은 벽은 마음만 먹으면 쉽게 허물 수 있다. (2023. 1. 15.)
첫댓글 저도 몇 번 가까이 다가가도 반응이 없던 친구가 있습디다.
마치 저로 부터 멀어지려는 느낌을 받기도 했지요.
그러니 연락을 안 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또 멀어지고---
무언가 사연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