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와 어린 양이 뛰노는 나라] 이사야 40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
이사야 40장 강해
요절: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31)
이사야 40장부터는 이사야의 후반부입니다. 후반부는 바벨론 포로와 그 포로 해방을 통하여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지 포로당하는 사람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하십니다. 바벨론 포로가 끝날 때를 배경으로 하여 바벨론 포로 사건 후에 있을 축복의 말씀을 하십니다. 회복될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십니다.
(내 백성을 위로하라)
1,2절을 보면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화자는 하나님이고 청자는 심판 받는 유다 백성입니다. 하나님은 매를 맞고 고난을 받는 백성을 선지자를 통해 위로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70년 동안 바벨론 포로생활하는 백성을 위로합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섬기기보다 우상을 숭배하고도 회개하지 않다가 바벨론에 의해 망했습니다. 바벨론에 의해서 왕은 눈이 뽑힌 채로 끌려가고 남자들은 전쟁터와 노동판으로 끌려가고 여자들은 정신대로 끌려갔습니다. 그들은 바벨론의 침략으로 인해 슬퍼서 울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 포로 생활한지 70년이 지났습니다. 70년은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눈물이 마를 때가 없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로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내 백성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 백성이므로 하나님이 친히 인도하십니다. 그들은 죄로 인하여 바벨론의 감옥에서 복역이 끝났습니다. 그들에게 무엇보다 가장 큰 위로는 죄사함을 받고 사면복권 된 것입니다. 죄사함을 받을 때 성령이 오시고 성령께서 그들을 회복시켜주십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바벨론 포로 생활을 통하여 그들의 죄로 인한 벌을 배나 받았습니다. 이사야는 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심판하심으로 이스라엘의 죄를 배나 갚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그 죄값을 치르심으로 그들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의 죄를 용서하시고 이스라엘을 위로해 주십니다.
(대로를 평탄케 하라)
3-5절을 보면 하나님은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치고 회개를 돕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 죄를 회개할 때 우리는 죄사함을 받고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사야 시대의 사람들은 우상숭배의 죄를 지었습니다. 강대국을 의지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완고하여 선지자의 책망을 무시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이를 회개하면 모든 것을 위로하시고 회복시켜주십니다.
회개하여 길을 닦으면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서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성령으로 임재하여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회개한 모든 육체는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을 보게 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 속에 오셔서 우리를 위로해 주십니다. 모든 육체가 하나님 영광의 날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오셔서 위로해 주신다)
6-8절을 보면 이사야 선지자는 사람과 하나님의 말씀을 대비하여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은 풀과 같이 일시적입니다. 하나님의 기운이 불고 하나님의 말씀만 서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우리는 영원한 말씀으로 위로를 받아야 합니다. 바벨론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바벨론의 세력이 크지만 바벨론의 영광도 풀의 꽃과 같이 시들게 될 것입니다.
9-11절을 보면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자는 높은 산에 올라서 힘써 소리를 높여 외치라고 말합니다. 많은 사람에게 큰 소리로 외쳐야합니다. 복음을 전하라고 하십니다.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 외치라고 말합니다. "너희 하나님을 보라." 공동번역에는 “너희의 하느님께서 저기 오신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것이 복음입니다. 우리는 슬픔의 순간에 회개하고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임하십니다. 위로의 하나님이 오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오셔서 불신하고 대적하는 자를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은 심판의 주로 임하십니다. 예수님은 사단과 싸우시는 강한 분이십니다.
(크신 하나님 앞에 바벨론은 아무것도 아니다)
12-17절을 보면 우리를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얼마나 크시고 광대하신 분이신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똑바로 보면 세상일은 작아 보입니다. 하나님의 경륜, 지혜 능력을 깨달으면 그 경륜 아래 내가 흡수됩니다. 나의 세계가 작게 느껴집니다. 은혜에 크게 감사하는 사람은 나의 문제가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느껴집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앞뒤 옆이 막혔으면 위를 보라고 합니다. 위를 보아야 문제가 풀립니다. 땅만 보면 땅도 하늘도 잃어버립니다. 하늘을 보고 하늘의 뜻을 알면 땅의 문제가 풀어집니다.
하나님은 바다 물과 하늘과 땅과 산들을 친히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스스로의 지혜로 천지 만물을 만드신 지혜자가 되십니다. 하나님은 광대한 우주를 만드시고 다양한 생물들을 만드셨습니다. 아무도 하나님께 지도할 수 없고 충고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의롭게 살았다고 요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절대 주권자이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열방은 통에 한 방울 물같고 저울에 적은 티끌같고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습니다. 이스라엘은 열방으로 고생합니다.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믿을 때 열방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 창조주 앞에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다.)
18-26절을 보면 찬송가 가사에서 오늘 본문이 나옵니다. 하나님을 우상과 비교하여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바벨론이 섬기는 어떠한 우상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유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땅 위 궁창에 앉으셔서 천지를 창조하신 살아계신 하나님입니다. 우주를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우상은 장인이 형틀에 부어서 만들고 장색이 금으로 입힌 것입니다. 우상은 죽어있는 돌덩이나 쇳덩어리에 불과합니다. 썩지 않는 나무로 만든 것입니다. 우상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늘을 차일같이 치셨으며 거주할 천막같이 치셨습니다. 크신 하나님 앞에서 인간은 메뚜기처럼 작은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땅의 거민들을 메뚜기 같이 여기시고 귀인과 사사들을 헛되게 여기십니다. 그들은 겨우 심기고 뿌려졌으며 줄기는 겨우 뿌리를 박았습니다. 그들은 회오리바람에 불려가는 지푸라기 같습니다. 하나님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각각 그 이름을 불러 인도하시는 권세가 크고 능력이 강하신 분이십니다. 모든 별들을 만드시고 이름을 불러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권세가 크고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없이 인도하십니다.
(피곤한 자에게 새 힘을 주시는 하나님)
27절을 보면 우리는 피곤함의 이유가 무엇입니까? 몸이 피곤하고 돈이 없고 환경이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피곤합니다. 하나님이 사정을 모른다고 생각할 때 피곤합니다. 그들은 포로생활하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과 지혜를 불신하고 피곤하고 낙심해졌습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이방 땅으로 붙잡혀 가고 그들의 손에 맞아 죽기도 하고 굶고 헐벗고 조롱받고 병들었는데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우리 사정을 몰라 주시나 원망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원통한 사정을 아신다면 갈 길을 열어 주셔야 하는데 왜 길을 열어 주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죄인이라 들으시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고 합니다. 불신은 우리를 피곤하게 하는 가장 무서운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께 버리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과 나의 사랑의 관계가 깨어질 때 피곤합니다.
28-31절을 보면 하나님은 원망하는 그들을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영의 눈이 없어 보지 못하고 영의 귀가 없어 듣지 못한다고 책망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알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고통을 듣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후에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다시 말씀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창조주이십니다. 하나님은 피곤치 않고 곤비치 아니하시는 분입니다. 자기 백성을 내버려둘 정도로 힘이 없으신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명철이 한이 없으십니다. 이스라엘을 도우실 지혜가 없으신 분이 아닙니다.
그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피곤한 자와 무능한 자에게 힘을 더하십니다. 하나님은 물질을 주시지 않고 능력을 주시고 힘을 주십니다. 생명의 힘을 주십니다. 기도응답을 들으면서 힘을 얻습니다. 어떤 사람이 힘이 넘칩니까? 사람이 젊다고 피곤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진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절망하는 사람입니다. 절망하면 청년이라도 피곤합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습니다. 힘을 얻는다는 것은 히브리 원문에는 힘을 바꾼다는 표현입니다. 여호와를 힘의 원천으로 삼습니다. 사람은 같은 데 힘을 바꾸는 것입니다. 그때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영을 바꾸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성령으로 힘이 가해질 때 소생함을 얻습니다. 동력이 바꾸어야합니다.
앙망한다는 것은 우러러 보며 사모하며 기다리는 것을 말합니다. 앙망은 여호와를 믿고 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타나는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주님을 소망으로 삼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희망의 존재입니다. 여호와를 앙망할 때 새 힘을 얻어 슬픔을 이기고 절망을 이길 수 있습니다. 정확하신 하나님을 소망할 때 하나님의 위로를 얻게 됩니다. 이때 벅찬 감격으로 하루하루를 살 수 있습니다. 여호와를 앙망하여 새 힘을 얻고 승리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오요한 목사
천안 UBF(말씀사랑교회)
성경 66권 유튜브 강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