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레이스에 박차를 가하고 있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전격적으로 기자회견을 가진 날이 2017년 2월 2일이었다. 이 자리에서 반기문은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다. 하루 전만 하더라도 새누리당과 바른정당을 찾아다니며 보수 빅텐트를 모색하던 유력한 후보자가 갑자기 불출마를 선언하자 정국은 요동치기 시작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해 정국을 맞아 그나마 보수층의 대안이라고 여겨져 왔던 반기문의 중도 출마 포기 선언은 문재인 후보에게는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 되었고, 보수층에는 한 가닥 희망의 빛줄기가 사라지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이날 이후, 문재인은 대선이 끝날 때까지 상승세를 계속 유지할 수가 있었다.
그 당시, 반기문의 사퇴에 대해선 여러 가지 추측과 해석이 있었지만 그중에서 권력 도전에 대한 의지가 약했다는 것도 사퇴의 원인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정치권에서는 특정인이 대권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본인의 권력에 대한 의지가 얼마나 강한가에 달려있다고 말한다. 다수의 국민들은 반기문이 유엔 사무총장을 두 번이나 지냈을 만큼 관록을 지녔으니 권력에 대한 의지가 대단히 강한 것으로 알고 있었던 지지자도 상당했다. 그러나 반기문은 차려주는 밥상은 멋지게 먹을 줄은 알았지 모진 풍파를 헤쳐 온 정치인이 아니었다.
정치인이 되기 위해서는 상대의 무차별적 공격에도 끄떡없이 되받아 칠 수 있는 강단과 용기가 있어야 하는데 반기문은 그런 모습을 끝내 보여주지 못하고 주저앉고 말아 결과적으로 그를 지지하는 많은 국민을 실망시켰다. 반기문이 사퇴를 선언할 무렵에는 반기문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는 시점이기도 했다. 이것이 반기문 사퇴의 한 원인으로 작용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론조사란 본인이 하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등락을 거듭하는 속성이 있는데다 대선을 3개월 앞둔 시점의 여론조사는 대세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도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반기문의 중도 사퇴는 대단히 경솔한 결정이었다.
만약, 반기문이 중도에 사퇴를 하지 않고 자신을 보수층의 단일후보로 추대를 받는데 탁월한 정치적 역량을 보여주었다면 어쩌면 대선 결과는 지금과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반기문의 정치 입문은 이렇게 막을 내리고 말았다. 대선에서 문재인이 당선되자 반기문은 작년 6월2일과 9월12일, 두 차례에 걸쳐 대통령 문재인과 회동했다. 이 회동을 두고 정치권 참새들은 문재인 당선을 도운 특급 도우미와의 회동이라면서 입방아를 찧기도 했다. 이때만 해도 반기문은 문재인 정권이 북한 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져 있는 정권이라는 것을 몰랐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5개월이 지났다. 반기문은 지난 17일, 미국의 브루킹스연구소와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조선일보가 공동 주최한 국제 콘퍼런스에 참석하여 작심한 듯 말문을 열었다. 이날 있었던 그의 발언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가 북한의 핵 폐기가 아닌 핵 동결에 만족한다면 그것은 열흘도 못 갈 굴종적 사이비 평화에 불가하며 그것은 민족주의적 순진성에 빠진 문 정권때문이라고 했다. 또 한국과 미국은 이제 더 이상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해선 안 되므로 미증유의 압박과 제재를 계속 가해 북한이 비핵화 협상 테이블에 나오도록 강제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문재인의 대북정책을 정면으로 반박한 발언이자 현 정권이 주사파 정권임을 직시한 발언이기도 했다.
이날 반기문은 이런 발언도 했다. ‘북한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를 검증할 수단도 없이 정례적인 한,미 군사훈련 중단이나 미국과 북한이 평화협정 체결을 말하는 것은 순서가 잘못됐다’고 비판한 것은 문재인의 외교안보특보인 문정인을 비롯한 청와대에서 문재인을 보좌하고 있는 주사파 참모들에게 날리는 직격탄으로 들기에 충분했다. 반기문의 발언은 현 정국상황을 제대로 본 발언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반기문의 발언은 때 늦은 감이 있다. 이와 같은 발언을 하기 위해서는 반기문은 대선을 완주해야 했다.
만약, 반기문이 끝까지 완주 의지를 밝혔다면 보수단일 후보로 추대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반기문의 불출마 선언은 보수층을 우왕좌왕하게 만들었고, 보수 후보들이 제각각 출마하게 만드는 동인(動因)으로 작용했으며, 문재인 후보가 독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보수층에게는 갚을 수 없는 채무를 안겨준 결과만 만들고 말았으니 이것이 반기문의 한계였다. 반기문은 사퇴의 변으로 ‘국가 통합을 이루려고 했던 순수한 뜻을 포기한다’는 말을 남겼다. 그러나 자신의 희망과 정반대의 길로 가고 있는 정치상황을 보면서 불출마를 선언했던 그 당시, 극세척도(克世拓道}를 하겠다는 자신의 의지가 부족했던 것을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첫댓글 유엔사무총장까지 한 분이, 더구나 대선 후보도 나섰던 분이
중도 포기를 하면서 보여줬던 그의 이미지가 산산조각이 나
서야 비로소 그도 역시 샌님같은 외모 만큼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답니다
좌우가 분명치 못한, 주관과 절개가 역부족이었던 그는 외교관
인 사무총장 인물밖에는 더 이상의 기대는 될 수 없음을 깨달았
답니다 ^^*
그것이 관료생활만 오래한 반기문의 한계였던 셈이지요,
그래놓고 지금와서 비판한들 무슨 효과가 있겠습니까,
반기문 씨는 유능항 외교관은 될 스가 있었지만 카리스마가 있는 정치가는 없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가 출마하려 해도 종북좌파들의 촛불이 강한데다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로 보수가 박살이 난 현실에서 그가 우뚝서기가 힘들었다고 봅니다. 그를 받쳐줄 보수의 능력도 없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