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거룩한 주일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게 하옵소서.
오늘은 이사야 말씀을 묵상합니다.
말씀으로 성탄절을 맞이할 준비하고
또 여러 가지 발표 연습으로 행사를 준비합니다.
기쁨과 진지함으로, 구별된 심령으로 주님의 탄생을 기뻐하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하오니
정한 마음을 주옵소서.
말씀으로 말미암아 이 하루를 또 승리하게 하시어
주님께 영광 돌리게 하옵소서.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2.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3.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하게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4. 이는 그들이 무겁게 멘 멍에와 그들의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주께서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5.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들의 신과 피 묻은 겉옷이 불에 섶 같이 살라지리니
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본문 주해)
1~2절 : 이사야 시대의 이스라엘은 전체가 캄캄한 어두움이었다.
스불론 땅과 납달리 해변 길과 갈릴리는 변방지역이고 이스라엘의 경계 부분이다. 지정학적인 요인 때문에 예루살렘을 향하려는 적들의 침공에서 이 변방 지역들은 반복해서 초토화되었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므로 이 땅은 주류 사회에 편입되지 못하고 비주류 집단이 되었던 것이다.그러나 오늘 말씀에서는 메시아가 오실 때에 이곳들이 먼저 빛이 비추게 된다고 하신다.
이 흑암의 땅에 하나님께서 빛을 비추어 주심으로 이 비천한 곳을 영화롭게 하셨다.
그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는 것이다.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있었기에 스스로 빛을 만들어 낼 수도 없었고, 빛을 찾아 갈 수도 없었는데, 하나님께서 빛을 비추어 주시는 것이다.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아 있던 백성이 영화롭게 되고 빛을 보게 되는 것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께서 빛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을 이사야서는 증거하는 것이다.
3~5절 : 빛이 비취는 때에 일어나는 일이다.
3절에는 그것을 ‘즐거움’이라 표현한다.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하게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그래서 무거운 멍에와 그 어깨의 채찍과 압제자의 막대기가 꺾어지는 것이다.
그날은 마치 미디안의 날과 같을 것이라는 한다.
‘미디안의 날’이란 기드온과 3백 명 군사가 미디안 군대 13만 5천 명을 물리친 것을 말한다.(삿7장)
‘미디안의 날’의 의미는, 군사의 숫자나 그 용맹함을 의지하는 것도 아닌, 여호와의 전쟁을 뜻한다. 사람들이 ‘내 손으로 구원을 얻었다 하지 못하게 하시는 방법’으로 전쟁을 하시는 것이다.
3백 명은 용사라기보다 하나님의 구원을 본 ‘증인’인 셈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시는 전쟁이 바로 미디안의 날과 같이 구원을 베푸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군대를 동원하지 아니하시고, 힘 있는 자를 부르지 아니하시고, 어부들을 부르시고 세리를 부르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는 것이다.
6~7절 : “한 아기가 우리를 위해 태어났다. 우리가 한 아들을 모셨다. 그는 우리의 통치자가 될 것이다. 그의 이름은 '놀라우신 조언자',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화의 왕'이라고 불릴 것이다. 그의 왕권은 점점 더 커지고 나라의 평화도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그가 다윗의 보좌와 왕국 위에 앉아서, 이제부터 영원히, 공평과 정의로 그 나라를 굳게 세울 것이다. 만군의 주님의 열심이 이것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다.”(새번역)
하나님께서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아 죽음만 기다리는 자들에게 미디안의 날과 같은 구원을 베푸시기 위해 한 ‘아기’를 보내셨다.
이 아기의 이름은 ‘놀라우신 조언자’,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화의 왕’이시다.
이 아기가 대적을 물리치는데, 세상의 힘과 권세로 전쟁을 한 것이 아니다.
오직 십자가로 승리하신 것이다.
세상이 볼 때는 참으로 보잘 것 없어 보였고 비참하고 저주 받은 죽음으로 보였지만 하나님의 전쟁은 이러한 방법으로 자기 백성을 가려내는 것이다.
이러한 일을 사람의 열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열심이 이루어 내시는 것입니다.
사람의 열심은 힘을 쌓는 일에 열심이지만, 하나님의 열심은 인간의 기대와는 반대로 한 아기를 보내셔서 전쟁을 하시는 것이다.
(나의 묵상)
나는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아 있던 자였다.
그때 내 마음도 함께 흑암의 상태였다.
그런 내게 놀라운 큰 빛이 찾아왔다.
빛을 받은 내게, 내 눈에 이제야 세상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세상은 흑암이다.
흑암 중에 빛을 보게 되니 다른 모든 것은 다 시시한 것들이 되고 만다.
이제 빛을 보았기에 빛 가운데로 나아간다.
말씀의 빛이 내 심령에 들어온 이후 ‘즐거움’이 차고 넘친다.
주님을 만난 이후 ‘즐거움’이 없다면 아직도 그 마음은 흑암의 상태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말씀의 빛이 비취니, 내 마음 속에 가치 있다고 여기는 세상 것들이 힘을 잃어가기 시작한다.
빛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그 사명을 통해 이루고자 하신 일이 무엇인가?
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는가?
세상 것으로 충만하게 하여 이 땅에서 복 받고 잘 살게 해 주시는 것이 아니다.
창세 전 아들에게 충만했던 그 하나님 아버지를 우리도 충만히 가질 수 있도록 하시는 것이다.
이 땅에서부터 아버지께로 나아가 그 품속의 평안을 누릴 수 있도록 하시는 것이다.
믿음을 가진 우리들의 삶 속에서 ‘이 세상 그 무엇보다 크신 하나님’은 입으로는 잘 되뇌이지만, 실제 삶 속에서 그 심령에 체감되지 못하면 주님이 주신 즐거움이 누릴 수 없다.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살다가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을 찾고는 이것을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신다고 착각한다.
항상 현실 속의 문제가 너무 크기에 그것을 해결해 주십사고 ‘동원’시키는 하나님일 뿐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유는, 우리도 하나님과 함께 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이다.
어떻게 함께 하는가?
매일 주님과 교제하는 것, 말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그리스도를 배우는 것이다.
그럴 때 주님에 비해 사소하기 그지없는 세상일을 걸핏하면 크게 체감하고 깜짝깜짝 놀라는 연약하고 어리석은 나를 발견하는 것이다.
육체로 살아가는 한 나의 이 체질,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이 죄성은 끊임없이 나를 위협하고 유혹한다. 그러면 나도 끊임없이 십자가에 연합되어야 함을 알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이다.
내게 이것을 선물로 주신 주님은 진실로 내 삶의 ‘놀라우신 조언자’,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화의 왕’이심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너무도 가까이 계시는 주님이 체감되기 시작한다.
그 증거가 바로 내 마음에 생겨나는 기쁨과 만족과 즐거움이다.
(묵상 기도)
주님,
흑암에서 빛으로 옮겨 주심을 감사합니다.
저에게 미디안의 날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그 3백 용사에 들어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증언하는 자로 살아가게 하신 감사합니다.
저와 함께 하시는 주님의 이름을 크게 외쳐 부르게 하심도 감사합니다.
‘아기’와 ‘십자가’로 승리하신 그 진리를 보게 하심도 감사합니다.
이 모든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보며 기뻐하며 찬양합니다.
성령님, 감사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