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전선
- 김수우
바구미 한마리 모니터 앞을 기어간다 수상하다, 느릿느릿
오래된 만행인 듯 어린 척후병인 듯 돌아본다
다음 날 선풍기 옆에 또 한마리 서성인다 조심조심, 의아하다
부엌서 베란다서 자꾸 마주치는 여섯 개 발목을 가진 점, 점들, 점들
밤을 새웠는지 큰 산을 넘었는지 비틀비틀, 어디서 출발했을까
나흘 만에 그 첫 길을 발견한 날 후두염이 시작됐다
묵은 쌀 봉지에서 새까맣게 기어나온 무수한 바구미의 무수한 이데아
그 치밀한 절망 그 꼬깃꼬깃한 혁명을 막을 수 있을까
모든 고독은, 모든 모순은 최전선을 가지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총알도 팔레스타인의 핏자국도 인디언 아이가 부는 자칼 호각도
걸어 걸어 구멍 많은 지평선을 꿰매는 중
귀신보다 더 귀신같은 슬픔, 난민들의 찢어진 목록이 펄럭인다
점점이, 살아내라 살아내라, 닳은 발톱마다 화약 냄새 진한데
순간순간에 부지런히 목숨 걸었던 저 눈물화석들
그예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멀고 멀다
ㅡ계간 《창작과비평》(2024,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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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야에 들어 온 모든 생명체는 저마다 삶의 최전선에 나와 있는 겁니다
날아드는 하루살이도, 기어가는 바구미도 순식간에 스쳐가는 바퀴벌레도
어쩌면 치열한 삶의 최전선에 나와 있는 것이지요
분쟁 지역에 드리운 모든 고독, 모든 모순도 나름의 최전선입니다
오래전 이탈리아 폼페이 유적지에서 모아둔 화석을 보며 진저리쳤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나하나가 살고 싶은 이들의 찢어진 목록에 비명과 한숨과 눈물이 스며 있었습니다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그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요^*^